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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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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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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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5)

DUMMY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간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음에도 식구들이 날 왕따시키고,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지 뭔가!

북조선 인민들은 원래 내 조국 중국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때 남조선은 쌀이라도 보내줬는데 비해, 중국은 북한 지하자원을 헐값에 사버리고, 대신 썩은 밀가루나 보내주었다는 불만여론이 비등했다는데 사실일까?


훗날 들은 얘기로는, 북조선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북한과 중국 간에 중간거래를 통해 잘 살고 있는데 대하여, 인민들은 불평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북한 거주 화교들 덕분에 그나마 인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절 굶지 않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 화교들이 당시 돈 좀 있다고 북한 주민들을 천대했다는 주장이 있던데···.

그래선지 식구들이 중국에서 온 나와 장백을 ‘똥때놈(북한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물론 우리가 없는 자리이거나 뒤에서였지만. 남한에서 중국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혈맹관계여서 무조건 가깝다는 선입관만을 가진다면 정책 추진에 있어 까닥하면 오판할 수 있을 것이거늘.

남한도 마찬가지이지만, 북한도 밑바닥 민심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한국에 오자마자 집에서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본 영화가 있다.

그땐 영상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이 어디인지 몰랐지 뭔가. 내용도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고.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건 횡단열차로 달리는 시베리아 대평원이었으니!

러시아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로되 러시아영화는 아니었다.


그건 미국 MGM 영화사가 만든 ‘DOCTOR ZHIVAGO(닥터지바고)’!

찬란하고 위대한 감동의 대서사시였노라.

아직도 내 귓전에는 OST ‘LARA’S THEME(라라의 노래)’가 들리는 듯한데···. ‘Somewhere my love(내 사랑 어디에)’가···.


속았다! 내가 영화 속 러시아 대설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실은 핀란드 동남부 Joensuu(요엔수)란다. 또 꽃피는 봄 장면은 스페인이었고. 캐나다 로키마운틴 밴프 국립공원 레이크루이스 역에서도···.


어디서 찍었거나 말거나 간에 주인공 닥터 지바고를 명배우 오마 샤리프가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주인공 이름(쥬리 크리스티)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자가 닥터라면서 여주인공을 우연히 보고 기차에서 내려 달려가다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무식한 식구들은 이 영화가 공산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다소 안일한 판단에서 나에게 시청을 허용하더라.

나 역시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러시아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영화란 걸 알았고, 거기에 나온 ‘하얀 군대’가 10월 혁명으로 집권한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대항하는 것이었음을 이해했지.

제3국의 제3자인 나로서는 뭐, 어느 쪽이 이기든 상관없지만, 독학으로 백군(白軍)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추적했다.


먼저 패배 원인을 보자. 백군의 경우,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제국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제정 러시아 시대 장교들과 무기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적군(赤軍)에 무조건 대항한다는 목적의식을 빼면, 백군(白軍) 각 집단들의 단결력이 적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극동의 어느 나라, 어느 세력처럼 도무지 뭉치질 못하더라.

더욱이 백군은 이들 오합지졸을 지휘할 최고리더 역시 부재했다는 데, 그 실패의 원인이 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방은, 백성들이 보기에 이들 백군은 과거 기득권 세력으로서 착취자에다 매국노라는 단단한 프레임에 갇혀있었다.

그러니까 패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 현재 남조선의 어떤 서글픈 집단이 생각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프레임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거늘.


전해지는 문헌에 따르면, 백군 중 일부는 러시아 본토에서 도망가, 한때 하얼빈과 상해 등지에 모여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중국 공산당에 쫓겨났고, 극히 일부는 한반도의 남북한에 각각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공화국이 건국되고 남침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백군 출신 모두가 소련에 송환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바로 처형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기록에는 이미 1922년 7천여 명이 조선총독부에 망명을 요청함으로써 수용소에 잠시 있었으며 아주 일부는 한반도에 정착했는데, 여성 중에는 유곽(遊廓)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여러분들은 믿겨지는가? 러시아제국 귀족과 지주 등 지배계급의 딸들이 극동의 콩알만 한 조선 땅에서 창기가 되다니!

그런 식으로 백군은 역사에서 점점 잊혀졌다. 러시아 땅에서 마침내 백군이 전멸되자, 적군에 감히 저항할 세력은 완전히 사라졌고, 드디어 러시아 인민들은 조지 오웰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농장’과 ‘1984년’의 배경을 찬란하게 맞이한 것이 아니더냐!


러시아 군가 중에서 ‘쁘로셰니예 슬라비연끼(슬라브 女人의 작별)’이라는 노래를 개작한 것이 있다.

언제 들어봐도 불세출의 명곡이다. 현대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데 이렇게 부르더라.

‘나스뚜빠옛 미누따 쁘라샤니야 띄 글랴디쉬 므녜 뜨례보쥐나 브 글라자 이 라블류 야 라드노예 뒤하니예 아 브달리 우줴드쉿 그라자∼(이별의 시간이 되었구나. 너의 근심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고 나는 조국의 공기를 삼켜본다. 이미 저 멀리선 폭풍의 내움이 풍겨온다. 안개 낀 푸른 하늘 뺨을 스치는 머리카락도 불안에 떨고 있구나∼)


다만, 내 생각엔 웅장한 사운드와 비장한 목소리는 뭔가 원작의 가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전에 있던 소련은 물론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피터지게 싸웠던 적군이나 백군 모두 자기 입맛에 맞게 가사를 붙여 불렀다.

심지어 폴라드, 스페인, 프랑스, 이스라엘, 중국에 이어 한반도까지도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더라. 고로 수십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패배를 앞둔 백군의 장병들이 부르던 노래가 가장 인상적이기에 소개하려 한다. 일명 ‘학도병의 노래’라고 부른다. 여자가수의 설명할 수 없는 비탄함과 담담함에 탄식이 절로 나오누나.

‘Кровавая, Хмельная, Хоть пой, хоть волком вой. Страна моя родная, А что ж тьі делаеѡь со мной?(∼피투성이로, 취한 채로, 울부짖어라, 늑대처럼 울부짖어라. 친애하는 나의 조국이여 대체 내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한국전쟁 당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포항 전투 등지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던 학도병들이 생각난다.


그건 그것이고. 왜 대한민국은 영화 닥터 지바고를 미국에서 개봉한지 13년이 지난 1978년이 되어서야 개봉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난 몹시 궁금했다.


동맹국 미국이 만들었다면서? 혹시 이 영화가 닥터 지바고라는 인텔리겐치아의 생을 담은 비극적 스토리로서 좌와 우를 모두 비난하는 소지가 있어서일까?

소위 한국어와 일본어가 결합된 합성어인 ‘왔다리갔다리’하는···.

대한민국은 1960년대나 1970년도 중반까지는 모호한 정체성을 용납하지 못했기에···. 내 생각이 그냥 그렇다는 거다.

지금 한국에 이러한 ‘왔다리갔다리호(號)’가 많더라.


그날도 늦은 밤, 난 홀로 외로이 강남역 인근을 돌고 있었다.

밤거리 시민들은 얼핏 보기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떼로 몰려다니는 것 같지만, 각자 귀가 방향이 다른 관계로 동보(同步) 하면서도, 속으론 이상(離想)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될 성싶다.

‘이상’이라고 다 같은 이상(理想)이 아닌 것이다. 난 이러한 밤거리 행진을 북적이는 군중들 속에서 외려 ‘외로울 권리’를 보장받는 것 같아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멀리서 장백 삼촌께서는 젊은 여자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마친 후 언덕 쪽으로부터 내려오더라. 뭔가 묘한 그녀의 분위기!

“절대로 여염집 아낙네가 아닌걸!”

난 그때 반갑게 인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도다!

어떤 일군(一群)의 무리가 장백 삼촌의 뒤를 조직적으로 미행하는 게 아닌가!

그들은 서로 순번을 바꿔가면서 따라오는 게, 전문가의 발길임이 느껴졌다.


난 삼촌 대신 정체불명의 사람들의 뒤를 쫓는다. 그들은 장백 삼촌을 추적하느라 내가 뒤에서 따라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걸 당랑포선(螳螂捕蟬-사마귀가 매미를 잡는다. 눈앞에 있는 이익에만 매몰되어 뒤에 있는 위험을 모른다.)이라고 해야 하나.

계속해서 쫓고 쫓기는 꼬리 밟기 놀이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미 대부분 상점들은 셔터 문을 내렸고, 사방엔 만취한 선남선녀(善男善女) 골뱅이들만 흐느적거리면 걷고 있다. 장백 삼촌은 평소에도 미행을 피하고자 걸어 다녔다.


그날도 걸어서 집 근처까지 왔을 때이다. 난 우리의 아지트가 노출되는 걸 피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삼촌에게 신호를 보냈다.

여유작작하게 걷던 장백 삼촌은 내 신호를 접수하자마자 냅다 달렸고, 그것도 잠시, 왕년과 다른 체력저하를 실감하면서 곧바로 우겨쌈을 당하더라.


평소 그렇게 중국 당랑권이니, 영춘권이니, 하면서 자랑을 치더니, 한국형 특공무술로 보이는 단순하고도 무(無) 현란한 동작에 처발리더냐?

난 순간 숨을 멈추고 난장판이 된 무리들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횟가루를 뿌린다. 내가 직접 조제한 약물이다.

이런 걸 당랑포선(螳螂捕蟬)을 뒤따르는 황작재후(黃雀在後-사마귀를 참새가 노린다)가 아니겠나?

장백 삼촌과 시름을 벌이느라 숨을 가쁘게 내쉬었던 정체불명 괴한들은 정지화면이 되었다. 이어지는 화면은?

잠시 후 오바이트를 해대기 시작한다. 이렇게 난 거의 실신상태였던 삼촌을 업고 무사 귀가했지만서도···.

그는 내 등에 업혀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더라.

“너래두 왓으니까나 살앗지 아이무스··· 휴! 내 오늘 제댈(제대로) 마사젰구나(망가졌구나). 잘 업어라. 이래무 허리가 삐달어져가지구, 내가 담에 빼주(白酒) 살게.”


한편, 지나가는 행인들은 정체불명의 일당들이 그냥 집단으로 토하는 더러운 장면을 접하면, 회식을 오부지게 했다고 생각할 테지.

이들은 사건과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대인배적인 민족습성이 있어서다.


이튿날 장백 삼촌의 반대에도 불구. 식구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어머니께서는 상부에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전후 사정이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다시 전체 회의를 소집하셨고, 상부의 조사 결과를 거룩하게 발표하신다.

정체불명 무리들은 국정원 새끼들로 밝혀졌단다. 그래도 간첩 잡는 대공(對共) 담당들은 아니어서 다행이란다.

장백을 미행하던 조직은 국정원 외사방첩 분야 요원들이라는데. 중국어 학원 원어민강사가 산업스파이 혐의가 있다고 보고 미행하는 과정에서 장백 또한 따라잡게 된 것이었다.

난 이날을 계기로 어머니의 윗선에서 이제는 국정원 내에도 정보소스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을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북조선에서는 국정원에 빨대를 꼽아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담 그 스트로우는 적어도 고위직일 텐데? ‘레드 스토로우’?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그럼 장백 삼촌은 중국인 여자강사를 왜 만났으며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 했을까?

많은 의문점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한민족은 작은 데는 미심쩍어하면서도 큰 데는 나 몰라라 하는 대범한 인간들인지라. 지나치게 영악해서일까?

그래서인가? 머리에 핵폭탄을 이고서도 “괜찮아유! 같은 민족 물건이 아닌감? 남한을 겨냥한 게 아이래요!”라며 각 지역별로 지껄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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