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최근연재일 :
2024.09.01 23:20
연재수 :
219 회
조회수 :
11,421
추천수 :
32
글자수 :
1,131,441

작성
22.01.06 13:00
조회
37
추천
0
글자
11쪽

청백(1)

DUMMY

-청백(淸白, uprightness)-




2019년 기해년(己未年)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황금돼지의 해였다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별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요.


그냥 돼지였어요. 그래도 희망을 갖고 가즈아!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는 어떤 사건들이 펼쳐질지 궁금해지거든요.

이젠 더 이상 두렵지 않는걸요.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이미 종말이 시작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불로 응답하시는 이가 말갛게 쓸어버릴까 봐.’


육십갑자의 서른일곱째인 경자(庚子)는 바로 흰쥐! 실험실에서 인간을 위해 죽도록 헌신하고 있는 불쌍한 짐승이여!

먹기 싫은 약들을 수시로 먹어야 하는데다가, 주삿바늘에도 숱하게 찔리며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거늘.


혹여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곧 이들이 인간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요? 백서(白鼠)들이 몸에 치명적인 병원균을 지닌 채, 실험실을 빠져나가서 어두운 밤거리를 활개 치면 어찌 될까요? 아마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터인데요.


언제부터인가 이 땅의 인간들이 오히려 흰쥐가 된 것은 아닌가요? 이에 대해, ‘이 섹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라는 비난이 쇄도할 수도 있겠군요.


근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검증받지 않은 각종 정책의 홍수 속에 꼼짝달싹 못하고 살아나가야 하는 인간이라면?

이것이 바로 실험 대상 쥐가 아니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높으신 분들께서 “그럼 후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려면 그 정도도 희생 못하냐!”라는 호통을 칠 수도 있겠군요.

또, 역사의 실험정신(實驗精神)을 개무시하는 구시대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의 그물에 걸려들 수도 있을 것이고···.


프레임이란 단어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마당에 한 마디만 할래요. 대한민국 국민들은 작금에 와서 온갖 프레임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운명이거늘, 저런 쯧쯧. 다시 말하면 프레임이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수인(囚人)이라지요.


따라서 결론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 감옥에서 20년 이상 장기 복역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설사 불평꾼이란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아무렴요. 잡설은 여기까지 할게요.


어! 환자 중 한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여무명과 나 다니엘, 우리 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잖아요.

그런데 겁나 어리잖아요! 10대 환자인가? 일단 킬러가 아닌 것은 확실해졌건만.

암살조로 보기에는 너무나 신장이 길고, 얼굴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연예인급인데!

대다수 한국인들 얼굴 비율인 밥주걱 형이 아니란 뜻이죠. 얼굴이 유난히 작은 티스푼 타입이네요.


특수 비밀요원들의 경우, 007영화와 달리 무난한 외모의 소유자를 선정하는 것이 채용의 기본이랍니다.

제임스 본드와 같이 생기면 쉽게 신분이 탄로 날걸요?

혹시나 암흑계의 조직원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전혀 ‘아니올시다.’ 였답니다.


저런 외모의 소유자가 연예인이나 하지, 왜 흉악하고 힘든 일을 하겠느냔 말이죠.

키 크것다, 미남이것다, 뭐가 그리도 억울해서 정신줄을 놓았을까요?

이전에도 저 아이가 어쩌다 그 나이에 이곳에 왔는지, 안타깝게 생각했었지요.

그냥저냥 넘어가려는데, 혹여 지금까지 우리의 대화와 혼잣말들을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더라고요.


그 애는 얼굴 자체가 청백(淸白) 이래요.

저와 여무명을 계속 몰래 지켜보던 그 소년을 말하는 겁니다.

아쉬운 대로 전 그를 청백이라 부르기로 하겠어요. 당연히 본명은 따로 있고요.

가족이 부르는 이름은 ‘호구’라네요. 절대 웃으라는 이름이 아니라니까요.


‘호구(呼求)’란 엄청난 영적 영향력을 내포하고 있는 이름이 아닌가요? 이처럼 아무나 쓸 수 없는 이름임에도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명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건만···.


한국 고전동화에는 흰옷 입은 천사가 자주 나오거든요. 선녀라고 부르죠. 계속해서 하얀색이에요. 서양의 천사가 주로 남성을 상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랍니다.


일각에서는 서양 천사들 중에는 여성도 존재한다고 주장하지요. 영화에서도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키아노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이었지요. 아마도.


거기서 가브리엘이 여자배우였을 겁니다. 혹자는 천사가 양성이라는 억지주장을 하라더군요. 요즘 서양 천사 이름을 무단으로 빌려 쓰고 있는 게임 캐릭터를 보세요. 대부분 전사의 이미지잖아요.


반면에 한국의 경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에게 쉽게 납치도 당하는걸요. 한국 전래동화 속의 천사는 그리 힘이 막강한 편은 아닌가 봐요.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나무꾼, 그 인간은 납치 플러스 성범죄여서 중형이 불가피할 터인데 말이죠.


저 다니엘은 그 소년에게 최면을 걸어 정체가 무엇인지, 나아가 어느 정도 우리를 파악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신문절차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저의 최면 시도에도 별 저항이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이는 분명, 저의 카리스마적인 압박에 굴복한 것일 테죠.


그를 향한 최면 신문과정에서 캐어낸 사실은, 청백은 자신이 라파엘(Raphael)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지 뭡니까. 라파엘이라···.


지금까지 여러 인간들에게 최면을 걸어왔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역대 급 몽상가임에 틀림없어요.


계속되는 사연은, 자칭 라파엘 소년이 우리들의 대화를 감청해왔대요. 감히 스스로를 대천사 미카엘이라고 자칭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니겠어요?

정신병보다는 과대망상으로 보이는군요. 물론 과대망상도 정신병의 일종이랍니다. 이런 인간들이 요즘 대한민국 정치권에 많아졌어요.

나도 오래 입원하다 보니, 이제 거의 정신과의사 수준이 되었다니까요.


청백에 따르면, 처음에는 놀라서 신고할 생각도 했지만, 타고난 강심장으로 끝까지 청취함으로써 전반적인 사건의 해석과 인물 분석에 성공했다고 자랑 치더군요.

이왕 최면을 당하는 김에 잘해보자면서, 아직 어리지만 놀리지 말라네요. 까불고 있군요. 이어서 당신들보다 지능이 높고 지혜가 있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움을 느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건방마저 떨고 있지요.


이 외에도 전투력 역시 짱이래요. 자신은 정말 천사이며 만약 천사가 아니더라도 당당한 신의 사자일 것이라는 주장이에요. 어릴 적,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억울했기에 이 땅에 오기 전에 천사였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고 하니, 내, 참!


타락천사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님도 강조하더군요. 타락천사는 악마인 루시퍼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덧붙이기까지. 루시퍼와 같이 하나님께 교만하게 저항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작은 실수를 해서 잠시 여기에 와 있는 날개 잃은 천사 라파엘이라는데요?


그가 최면 상태임에도 계속 이렇게 우기고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지 않은가요? 저는 그를 최면상태에 묶어놓고 취조하면서도 웃음이 나왔지요.


청백의 말대로라면,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고 인간 세상으로 쫓겨 왔다는 적선(謫仙)이란 말인가요?


청백은 계속 ‘천사론(angelology)’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지요. 천상에 있는 7대 천사 중에서 한 분인 라파엘 천사의 경우, 4대 천사···. 아니, 3대 천사로까지 불린다면서. 이런 이야기들은 성당에 다니던 친척 누나로부터 들었대요.


그러곤 자기를 천사 면허증을 정지당한 라파엘로 생각해달랍니다. 그 애는 이렇듯 자신의 정체에 대해 천사와 비교해가며 밝힌데 이어 지상에서의 살아온 개인사에 대해 자세히 풀이해 주네요. 장황한 설명이었지만 맥락은 다음과 같답니다.


“나의 부친은 조선시대 표현으로 선비였어요. 그렇다고 글공부에 매진함으로써 장원급제하여 큰 벼슬을 하신 분은 아니랍니다.

그냥 백수로 올곧이 지내셨습니다. ‘양반은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라는 올곧은 정신으로 일평생 노셨죠.

가족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도 거부하신 채 오직 글만 읽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안은 대대로 본때 있는 청백리(淸白吏)였다. 몇 대조 할아버지, 그분으로 말하자면 옳은 말만 하셨기에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야에 묻혀 사셨다. 그래도 그분은 큰 학문을 이루셨지. 그분의 후손들도 대대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성미 탓에 각종 옥사(獄事)에 연루되었단다. 이런 집안의 종손인 이 아버지는 죽어도 손에 흙을 묻힐 순 없다.’라며 계속 백수로 지내셨답니다.


듣자 하니, 할아버지께서도 그러셨다고 하네요.

어릴 적 난 그냥 우리집안이 청백리 가문이어서 돈이 없는 것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러한 이유로 난 삐뚜로 나가기 쉬운 나이였음에도 큰 학문을 이루기 위해 독서와 공부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본데없는 집 후손이 아님을 보여줄 요량으로요.

어느덧 내 머리가 커지고, 역사에 심취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이 생구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더군다나 아버지껜 죄송하지만, 짧은 기간 쌓은 내 지식으로 테스트해 본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죠. 예상과 달리, 전반적인 지식이 딸리셨고

기본적인 상식도 없으셨던 것으로 판단되네요.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말이죠. 부친께서 실명을 거론하시면서 거품을 물고 자랑 치신 조상들은 옥사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지만, 옥사(獄事)에서 본인만 옥사(獄死) 하신 것이 아니라, 3족을 멸하는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 후손인 우리는 뭐지?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복장이 뒤집히고 부아가 치밀었죠. 내가 양반가문의 후손이 아님이 자명해지면서 이제 막 나갈까도 생각했고요.


근데 추가로 습득한 지식에서 얻은 놀라운 사실이 있었지요. 조선 시대 양반은 극소수였고, 나중에 평민들이 양반 족보를 사거나, 심하게는 성(姓)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노비들이 모시던 양반의 성을 그대로 받기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때 정말 경악을 넘어 수치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부친을 용서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한 가지!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불편한 진실을 전혀 모르고 계시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까지 그러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조상 중 어떤 분부터 이런 생구라를 쳤을까요?


어쨌든 한동안 이런 충격은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까지 이어졌답니다. 노비였던 조상들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는 자랑스러운 광경은 잠시였고, 조정에서 공을 세우면 면천(免賤) 시켜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완전 국가적 구라로 판명 나자, 병자호란 땐 아예 나 몰라라 하는 꿈이었죠.

제가 봐도 요즘 와서 국가적 구라가 왜 이리도 많은 거죠? 정말 궁금해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룡신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상백(2) 22.01.10 41 0 11쪽
69 상백(1) 22.01.09 36 0 11쪽
68 이백(5) 22.01.09 37 0 12쪽
67 이백(4) 22.01.09 40 0 11쪽
66 이백(3) 22.01.08 43 0 12쪽
65 이백(2) 22.01.08 35 0 11쪽
64 이백(1) 22.01.08 36 0 11쪽
63 청백(5) 22.01.07 39 0 11쪽
62 청백(4) 22.01.07 38 0 12쪽
61 청백(3) 22.01.07 40 0 11쪽
60 청백(2) 22.01.06 36 0 12쪽
» 청백(1) 22.01.06 37 0 11쪽
58 월백(5) 22.01.06 40 0 12쪽
57 월백(4) 22.01.05 38 0 11쪽
56 월백(3) 22.01.05 38 0 11쪽
55 월백(2) 22.01.05 39 0 11쪽
54 월백(1) 22.01.04 37 0 11쪽
53 장백(5) 22.01.04 39 0 12쪽
52 장백(4) 22.01.04 40 0 11쪽
51 장백(3) 22.01.03 37 0 11쪽
50 장백(2) 22.01.03 34 0 12쪽
49 장백(1) 22.01.03 34 0 11쪽
48 아두백(5) 22.01.02 37 0 11쪽
47 아두백(4) 22.01.02 40 0 12쪽
46 아두백(3) 22.01.02 38 0 10쪽
45 아두백(2) 22.01.01 43 0 11쪽
44 아두백(1) 22.01.01 44 0 12쪽
43 결백(5) 22.01.01 41 0 11쪽
42 결백(4) 21.12.31 39 0 11쪽
41 결백(3) 21.12.31 4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