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최근연재일 :
2024.09.01 23:20
연재수 :
219 회
조회수 :
11,411
추천수 :
32
글자수 :
1,131,441

작성
22.01.09 14:00
조회
36
추천
0
글자
12쪽

이백(5)

DUMMY

어린 청백은 중국어는 모르지만 사자성어를 남발하기 시작한다.

“우리 담백 누님은 경국지색(傾國之色)에다 경성지미(傾城至美), 또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들 놀라셨죠?”


이런 화기애애한 와중에서 한쪽에서 계속 인상을 긁고 있던 ‘리쿠상’은 일본 ‘이나카와가이’ 조직원으로 보이는 자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나니이우텐넨(뭐라는 거야). 여기 싸비스(service)가 왜 이따위야?!”


여기에 우리의 쌍장군이 응수한다. “혹시 오사카?”


리쿠가 야바이(대박!)란 감탄사와 함께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맞다’라는 의미로 고개를 무심한 척 끄덕이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쌍장군은 일본에서도 한동안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 때문에 일본 표준말인 ‘나니잇떼루노’가 아닌 간사이(關西)지방 사투리인 ‘나니이우텐넨’이라고 말한 리쿠의 출신지를 정확히 찍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나 여무명에게도 한 말씀 하시더라.

“리쿠 상이 전에 너를 처음 봤을 때 ‘야바이’라고 했다면서? 야바이는 도쿄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 원래는 간사이 지역에선 거의 사용 안 해. 안 그렇습니까, 리쿠상?”


가히 놀랄만 하도다. 아무튼 모르는 것이 없고 못 하는 것이 없는 쌍장군이여!

어떻게 저런 다재다능한 인물이 무당 생활을 했는지도 경이롭거니와···.


나 여무명은 문득 백미가 낭독한 이백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 후두를 강타했으니!

그랬다.


지금 정국은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처럼 백성들이 탄 배가 겹겹이 쌓인 프레임의 산들을 뒤로한 채 떠나버리자,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와 같이 붉은 원숭이들의 울부짖는 아비규환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붉은 원숭이 해에 수작을 부린 양쪽 언덕에 있던 두 부류의 세력들이었다.


그런데 쌍장군이 화장실에서 리쿠가 혹시 한민족이 아니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아직까지 그에게 리쿠가 재일동포임을 말할 적이 없기에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쌍장군께서는 “음... 리쿠의 고구려 영토와 같은 광활한 어깨와 학다리를 보고 한국여인이 아닐까 했습지요. 전형적인 일본 여자의 체형은 이와 반대로 좁은 어깨와 짧고 튼실한 다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라는 거였다.

또 한 번 그의 혜낭록(慧囊錄)이 놀라울 뿐인 것을···.


우리 회사인 정명(精明) 소속원들과 죽련방(竹聯幇) 조직원들과의 술자리가 성황리 파했다.


난 쓸쓸하게 개인적으로 묶고 있는 고시텔로 향했다.

예전에 경험했던 서울구치소 독방 정도 크기의 방에서 피곤한 심신을 달래자, 곧 잠이 든다.


불현듯 풍겨오는 예전에 어디서 많이 맡았던 익숙한 향수 냄새?

중성적인 향인 ‘압생트’다. 고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었던 초록요정! 바로 그 압생트였다.


그 추억의 향에 잠이 깨보니, 내 개인실 문밖으로 사람이 서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치명적인 위험은 아니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된다.


난 잠잘 때마다 옆에 간직하고 있던 양궁을 든 채 순간적으로 문을 차고 뛰쳐나갔다.

고시텔 관계자들에게는 평소 양궁 선수라고 신분위장을 했기에 의심받지 않았다.

이 땅에선 죄송하지만 남자 양궁선수는 인기가 없고 관심도 별로 없어서이다.

압생트 향의 주인은 빠르게 고시텔을 빠져나간다. 예감 적중! 아, 이 익숙한 향수냄새와 도망치는 뒤태는 바로 전 여친 미백(美白)이었다네!


나 역시 빠른 속도로 그녀를 추격해 인근 야산에 도달한다. 그녀는 도주하다 체력이 다했는지 나를 향해 석궁을 겨눈다.


남한처럼 총기 소지가 금지된 국가에서는 활이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우선 소음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도 장점일 터.

생각보다도 치명적이고. 지금부터 상황은 활과 활이 마주 보고 있는 형국이구나!


이것이야말로 궁전수(弓箭手) 간의 대결이 아닌가?

한자로 亞(버금 아)와 유사한 모양세로다. 弓(궁)과 弓(궁)이 서로를 겨냥하고 있으니···.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먹는 마음(心)이 惡(미워할 오)인가 보다. 이는 물론 정통 한자풀이는 아닐세! 참고만 하시게.


옛정을 생각해서 미백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겠지?

“조금 전에 다치지 않았니? 오랜만이다. 야! 니 오늘 좀 곱다(예쁘다).”

오랜만이고 반가운 마음에 그간 배운 함경도 사투리도 곁들여봤다. 그러자 미백(美白)은 다소 원망 섞인 말투로 따지듯 대응하더라.


“일 없습니다(괜찮습니다). 아직까진 눈치는 빠르오 야, 니 식구들 말한기 들이모, 49호 병동(정신병원)에 있었다 들었소만, 어찌 내게 한 번도 아이 왔니? 말해 보라마. 야.”


미백은 아직도 제대로 사투리를 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상도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억양도 더 심해진 모양새가 아닌가!

이런 말투야말로 국적불명에다 지역불명이 아닐까 싶다.


난 미백을 놀릴 요량으로 장난을 쳤다.

“사투리 봐라. 아직도 야!”

미백도 지지 않더라. 날 보더니 우스워죽겠다는 듯···. “얼굴 봐라. 꼬락서니 하고는.”

아, 참. 이전에 로켓 우먼에게 맞아서 얼굴이 아직 엉망이다.

또 한 가지는, 그녀가 아무리 북에서 암살을 전문으로 배운, 피도 눈물도 없다는 공작원이지만, 전 남친을 즉사시킬 만큼 모진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시텔에서 충분히 그럴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를 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남조선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전 여친 살해나 전 남친 미투로 신고는 부지기수가 된지 오래이거늘.


“오빠 동무! 백사(白蛇) 동지는 벌써 눈치채셨을 거예요.”

미백의 경고성 멘트가 나오자마자 일이 벌어졌다. 어둠을 가르는 ‘휙’하는 쇠 소리! 도끼와 표창, 단검 등이 쏟아지는 숨 막히는 순간!

나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백에게도 날라 오고 있다. 행여 먼 거리에서 던져서 그런지 가볍게 피했지만 그만큼 백사는 용의주도(用意周到) 했다.

미백이 전 남친을 죽이지 않을 경우에도 대비했던 것이다.

장백이 저격용 소음총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


어쩔 수 없이 두 명의 궁전수는 백사 식구들을 향해 활을 겨누고 몇 발을 날린다.

弓(궁)과 弓(궁)이 한 방향을 향해 있으니, 즉, ‘弓弓’(강할 강)!


아무리 야밤이지만 서울이었기에 양쪽 진영에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계속 대치할 수 없다.

멀리 어둠 속에서 들여오는 장백의 목소리!

“니네 말두 많타야. 별난 것들 다 봤대, 야! 있잲니? 좋아하는 거 아이야? 정말 누가 보면 앙까이(부인)하고 나그네(남편)인 줄 알것다. 미백! 니 이제 서로 면목(面目) 모른다메 그랜가(얼굴 모르는 사이라고 그러지 않았느냐)?”


강한 함경도 여자 미백도 지지 않는다. “무시기라니(뭐라고요)? 안까이(부인)라니···, 그래다가(그러다가) 썩어지게 혼나고 싶나?”


난 여기서 함경도 출신인 미백이 여자나 부인을 ‘안까이’라고 하는데 비해 조선족인 장백은 ‘앙까이’라고 말하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구별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장백도 여전사인 미백의 도발적 언사에 주춤한다. 명궁수인 미백의 화살에 심장이 양 꼬치구이마냥 꿰일 수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장백 삼촌은 자존심은 지키려고 한마디 한다.

“눈깔 봐라 살벌하네···.”


백사는 이런 상황을 잠시 지켜보다가 여기서 싸워봤댔자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을 테지.

결국 식구들에게 철수를 명령하고, 산을 내려간다.

멀리서 장백의 푸념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보우 누님에 그냥 밟아 놓기우.----어째 그랬는가 말이다. 씨베(욕), 야야야 싹 거뒤치워라.”

그날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전시상태는 대충 휴전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앞으로 전면전을 예고하는 듯했다. 종전이 아니기 때문에···. 종전선언도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라 하네!


언제부터인가 쌍장군이 밤낮으로 옷을 벗고 누워 중얼거리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한 번은 낮잠을 때리다 깨더니만 한 말씀 하더라.


“정유년(丁酉年) 첫눈이 내리던 날 봉오리 3개를 배경으로 돼지 껍대기 옷을 입은 자가 말을 탄 채 황구(노랑 사냥개)와 해동청(푸른 매)을 앞세워 사냥을 즐기더군. 장차 자신과 집안이 일거에 도륙될 것을 모른 채 말이지.”


나 여무명은 담백에게 신이 그의 몸에 내려와서 저러냐고 물었다. 답은, “아뇨! 아뇨!” 아니라잖은가! 저런 흉한 모습은 처음 봤다나? 과거에 신기가 충만했을 때에도 저런 식으로 신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쌍장군이 가짜 무당이 된지 오래되었다며 자기도 이상하단다.


오늘은 담백과 다니엘이 다른 작업에 투입이 되었기에 나 여무명이 쌍장군을 데리고 미행에 나섰다.


나와 쌍장군은 그때 푸시킨이 접선하던 행정관의 뒤를 쫓기로 했다.

우린 푸른 기와가 나란히 놓여있는 건물 근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그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행정관은 치밀한 성격이어서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웬걸? 미행하라고 시킨 쌍장군이 갑자기 웃통을 벗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난 재빨리 그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곧 경찰이나 경호원들이 들이닥칠 것을 정녕코 몰랐단 말인가?


난 그를 겨우 진정시키고 한 마디만 했다.

“아까 뭘 그렇게 중얼거렸던 거요?”

이에 쌍장군은 자신도 기억이 나지 않으나, 갑자기 환상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기 위엄 있어 보이는 건물에 놓여있는 청색 기와들이 바람에 하나둘씩 날아가더니 종국에는 용오름(water spout) 현상 같은 돌개바람이 나타나 청기와들을 모조리 뽑아가는 것이야.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이 따로 없더라고. 그러더니 어떤 음성이 들리는데, ‘저기 기와집에 잠시 살던 자들은 그동안 바람을 심었으니 광풍을 거둘 것이다. 심은 것이 줄기와 열매가 없고, 혹여 있더라도 다른 자들이 삼킬 것이다.’ 라고 하는군. 정말 두려운 광경이었지요. 여하튼 무심중(無心中)에 한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러곤 종이를 펼치더니 자신이 중얼거렸던 말을 써대기 시작한다.

‘彌尼, 彌尼, 提客勒, 烏法珥新’. 그렇게 자신이 써놓고는 이상하단다.

“‘미니, 미니, 제객늑, 오법이신’이라! 이 한자들은 내 정신으로 쓴 것이 아니올시다. 거기다 도저히 내 실력으론 해석할 수 없겠는걸. ‘두루(彌) 다니는 중(尼), 손님(客)을 재갈(勒)에 물려 끌고 가다(提), 까마귀(烏) 법(法)에다 귀걸이(珥)가 새롭다(新)’라는 데,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네. 어떤 영적으로 강한 힘이 잠시 나에게 내려왔는데, 나 역시 처음 느껴보는 영이었는지라···”


쌍장군은 두려움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마치 넋이 나간 눈동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곤 또 중얼거리더라. “조만간 태양이 떠오르고 열풍이 불어 풀을 깡마르게 하고 꽃을 지게 하려나 보오. 그 풀은 독초, 꽃은 사람들을 최면에 빠지게 했던 양귀비꽃.”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룡신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상백(2) 22.01.10 41 0 11쪽
69 상백(1) 22.01.09 36 0 11쪽
» 이백(5) 22.01.09 37 0 12쪽
67 이백(4) 22.01.09 40 0 11쪽
66 이백(3) 22.01.08 43 0 12쪽
65 이백(2) 22.01.08 35 0 11쪽
64 이백(1) 22.01.08 36 0 11쪽
63 청백(5) 22.01.07 39 0 11쪽
62 청백(4) 22.01.07 37 0 12쪽
61 청백(3) 22.01.07 40 0 11쪽
60 청백(2) 22.01.06 36 0 12쪽
59 청백(1) 22.01.06 37 0 11쪽
58 월백(5) 22.01.06 40 0 12쪽
57 월백(4) 22.01.05 38 0 11쪽
56 월백(3) 22.01.05 38 0 11쪽
55 월백(2) 22.01.05 39 0 11쪽
54 월백(1) 22.01.04 37 0 11쪽
53 장백(5) 22.01.04 39 0 12쪽
52 장백(4) 22.01.04 40 0 11쪽
51 장백(3) 22.01.03 37 0 11쪽
50 장백(2) 22.01.03 34 0 12쪽
49 장백(1) 22.01.03 34 0 11쪽
48 아두백(5) 22.01.02 37 0 11쪽
47 아두백(4) 22.01.02 40 0 12쪽
46 아두백(3) 22.01.02 38 0 10쪽
45 아두백(2) 22.01.01 43 0 11쪽
44 아두백(1) 22.01.01 44 0 12쪽
43 결백(5) 22.01.01 41 0 11쪽
42 결백(4) 21.12.31 39 0 11쪽
41 결백(3) 21.12.31 4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