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흉수 찾기.
시녀 소소는 흥얼거리며 개인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멍청한 막내가 나갔네.”
개인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말이지. 다 나았으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여기서 뭐 하는 짓이었담?”
당연우가 몸을 일으켰을 때만 해도 그녀는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혹시나 향로에 넣은 수면향이 들킨 것이 아닐까, 걸렸다면 자신은 어떨 꼴이 될까. 끔찍한 상상이 그녀를 짓눌렀다.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가운데 당연우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이어갔다.
‘그래, 그 멍청한 막내 공자가 알 턱이 없지. 본래 높은 사람들은 뭐가 어디에 놓였는지도 모르잖아? 하물며 처음 이용하는 개인 병실에 청동 향로가 놓인 걸 어떻게 의심하겠어.’
당연우가 이용한 개인 병실은 당문의 고위급 인사나 빈객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고급 시설이었다.
장인의 솜씨가 아낌없이 발휘된 향로는 그런 고급 병실에 위화감 없이 잘 어우러졌다.
“거길 연구실 삼아 들락거렸을 때는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오늘 나갔으니까.”
그녀가 청소를 위해 개인 병실의 문을 열었다.
주인이 떠난 병실에는 은은한 약향이 머물고 있었다.
당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신약 실험을 한다고 이곳을 개인 연구실처럼 이용했다.
병실에 들어선 그녀의 시선은 처음부터 침상 곁에 놓인 향로로 향했다.
“흐흥~ 일단 이것부터 처분하면!”
그녀가 가져온 보자기로 향로를 포장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걱정이 사라지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번 일의 대가로 그녀가 받은 전표에는 상상도 못 할 숫자가 쓰여 있었다.
‘이제 나도 마름이 아니라 남을 부리는 삶을 살 수 있어!’
커다란 저택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생 시녀를 부려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액수를 받았다.
전표의 출처도 중원 전국에 지점이 있는 중앙전장의 직인이 박힌 물건이었다.
“돈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 그게 네 목숨까지 살 수 있을까?”
소소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메뚜기처럼 펄쩍 뛰었다.
소소는 당문의 시녀였다. 고위층을 전담하는 만큼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다.
“고, 공자님?”
“어, 그래.”
당연우가 문가에 서 있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소소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자신이 행한 일이 들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꾹 누르고 조용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막내 공자는 무공을 몰라. 처리하고 도망친다면······.’
당문의 복수는 강호에서도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일개 시녀가 가주의 혈족을 죽이고 도망친다면, 아무리 가주가 막내 공자를 버렸다지만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소소는 피가 마르는 추격전을 상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도련님, 뭐 잊으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막내 머리로 내가 손을 쓴 걸 알 리가 없어.’
그녀는 당연우를 태어났을 때부터 봤다.
최근 재능을 꽃피워 조명식 의원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렸고, 실제로 이 개인 병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봤다.
최근 당연우가 달라졌다 소문이 그녀의 귀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소소는 그를 어려서부터 봐온 터라 그들이 당연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당연우는 부단히 노력하지만 늘 실패하는 사람이었다.
소소는 그런 당연우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준수한 건 외모뿐이었다.
‘가주가 쓸모없는 막내를 팔아보려고 수를 쓰는 거겠지.’
무능한 당연우는 일찍이 정략결혼의 대상자로 낙점된 몸이었다.
워낙 무능하다 보니 당문 안에서도 더욱 비싼 값에 팔고자 당문이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넣은 건 수면향과 마비독 정도야.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소소는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며 당연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어진 당연우의 말에 더는 웃을 수 없었다.
“잊은 거? 잊은 건 너겠지.”
당연우가 손가락으로 청동 향로를 감싼 보자기를 가리켰다.
“독, 네년 짓이잖아?”
***
‘직접 만나만 본다면 취조 따윈 필요 없지.’
소소의 머릿속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간 안에 송두리째 들여보는 것은 시간도 많이 들고 의미도 없었다.
‘일단 배후가 누군지 캐볼까?’
그녀가 연상만 한다면 정보는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죽을 뻔했어.”
“그, 그것이······.”
소소가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녀가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내공을 끌어올린 것을 알 수 있었다.
틈을 보인다면 머리를 고정한 비녀로 내 목에 박을 심산이었다.
“독공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수면독이든, 마비독이든 위험하단 걸 모른다고 이야기하진 않겠지? 당문 사람이 말이야.”
소소가 독공을 익히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무공까지 익힌 고급 인력이었다.
주화입마인 상태에서 작더라도 외부의 자극이 오면 어떤 상태가 될지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누구한테 돈을 받은 건지 알아야겠지.’
나는 그녀의 공격에 대비하며 입을 열었다.
“전표를 준 놈은 향로에 독만 담으면 된다고 했나?”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소소가 인형 같은 미소를 지우고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중년인이 떠올랐다. 이어 그가 전표와 함께 독낭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중앙전장의 사천지부······ 상계인가?’
“음, 대충 네가 적지 않은 돈을 받고 내 목숨을 노렸다는 정도까지. 그리고 그 일에 중앙전장이 관련됐다는 것 정도겠지.”
소소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도련님은 참으로 무섭네요. 지금까지 어리숙한 척 속내를 숨겨온 것입니까?”
“살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
“정말로 도련님은 당가 사람답군요.”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반드시 죽여야 해!」
어마어마한 거금에 돌아갔던 그녀의 정신이 당중월에 대한 공포로 이성을 되찾았다.
「배신했다는 걸 안 이상 살려둘 사람이 아니지.」
이전 가주도 그랬지만 현 가주 당중월은 자기 자식도 내칠 정도로 냉혹한 사람이었다.
하물며 일개 시녀인 소소가 당문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옥 끝까지라도 사람을 보낼 위인이었다.
「빨리 처리하고 바로 도망가야 해.」
소소가 살의를 머금고 표정을 풀었다.
나는 품속에 추혼비침을 쥐며 그녀와 거리를 계산했다.
‘위력이 당중수가 펼친 것만 하진 않겠지만······.’
나는 품에서 추혼비침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소소가 뒤통수에서 비녀를 뽑아 던졌다.
내공이 담긴 비녀가 내 미간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몸을 비틀며 그대로 손을 뻗었다.
당중수의 깨달음이 담긴 추혼비접이었다.
송곳 같은 침 다발이 비녀를 삼키고 단숨에 그녀의 어깻죽지를 씹어먹었다.
“꺅!”
날카로운 비명이 소낙비 소리와 함께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어깨를 삼킨 추혼비접이 기세를 죽이지 못하고 벽에 박혔다.
‘생각보다 위력이 쓸만한데?’
상승 암기술이라 그런지 부족한 내공에도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 추혼비침에 담긴 내공은 10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취화독공과 토독을 삼킨 정도로는 수십 년 공부한 당중수의 내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전력을 다하더라도 당중수의 추혼비접과는 위력에 큰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일개 시녀 따윈 단숨에 부숴버릴 정도로 추혼비접은 강력했다.
“미안, 힘 조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애석하게도 사람을 상대로, 그것도 전력으로 추혼비접을 펼쳐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가 시선을 마주했다.
“하하, 사람에게 써보는 건 처음이었거든.”
‘심장 부근까지 도려졌어. 살긴 글렀군.’
“다, 당신······ 무공을 숨겼어.”
죽음을 예감한 소소의 눈에는 원망이 담겼다.
거금을 두고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죽어야만 하는 지금 상황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잖아? 마지막은 편히 보내줄게.”
나는 그녀가 향로에 담았던 것과 같은 수면향과 마비독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
***
가주의 집무실은 언제나처럼 묵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수북하게 쌓인 업무 계약서와 각 부처에서 올라오는 정보 보고로 당중월은 한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가주님께선 정말 당문을 위해 몸을 아끼시질 않는구나.’
당중월의 목소리가 당하익의 상념을 깼다.
“총관, 모임의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당하익 총관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 남궁, 모용, 팽가, 제갈가에 연락을 보냈습니다. 또한 당가타에 그들을 위한 간이 연회장도 완공됐고요.”
독과 암기 관련 비전이 가득한 당문 안에 통제하기 어려운 고수들을 다수 초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밖 마을인 당가타에 임시 연회장을 마련했다.
“그래, 그래도 총관 덕에 내 한시름 놓는군. 쯧! 본래 연강이나 연해가 해야 했건만.”
당중월이 모자란 자식들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당하익 총관이 결재 서류를 그 앞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을 두둔했다.
“그래도 두 분 모두 강호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습니다.”
“녹안과 신기 말인가? 그들의 이름 앞에 당씨 성이 없었다면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당중월은 냉정하게 당연강과 당연해를 평가했다.
“게다가 좋은 의미도 아니지 않은가.”
“언제 당문의 후기지수가 처음부터 좋은 의미의 별호가 붙은 적이 있었습니까?”
당중월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당문 사람들의 주 무기가 독과 암기다. 게다가 다들 한 성깔하다 보니 자리를 잡기 전에 좋은 소리를 듣는 법이 없었다.
“크흠! 흠! 그래도 나는 조롱거리와 같은 별호가 붙진 않았어.”
당하익 총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차라리 막내 공자님은 어떻습니까? 최근 사천의료학회에서도 신약 개발로 화제를······.”
“의술에 재능을 보이고 있으니 의독당에 보낼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야.”
당중월이 잘라 말했다.
그가 아는 당연우는 무공을 익힐 수 없었다. 무가의 자제가 무공을 쓰지 못한다면 밖에 내놓을 수도 없었다.
“기껏 재능을 보이면 뭐 하나? 그래 봐야 삼류 무사보다 못하거늘.”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남궁세가의 일입니다.”
당하익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중월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사자검왕의 고명딸이 구음절맥입니다.”
사자검왕은 현 남궁세가의 가주였다.
사자와도 같은 검세와 호방한 성격으로 중원 강호에서도 인정받는 무인이었다.
“최근······ 그 아이가 절맥증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었지?”
“네, 그리고 이번 회합에 사자검왕이 딸을 데리고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중월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깊어지자 그의 손이 다시금 탁자를 두드렸다.
당중월이 계산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녀석을 비싼 값에 팔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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