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권법 수련.
‘육합권법에 성왕십삼수의 묘리를 담아낼 수 없을까?’
성왕십삼수에는 총 열세 개의 권각술이 담겨 있다.
남궁세가의 무공답게 철저하게 실리를 요구하는 권법이었다.
‘추혼비접에 숙달되면 다른 비수에도 그 힘이 실린다던데······.’
나름대로 독학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당중수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추혼비접을 연마했다.
그래서인지 내 주먹질에도 제법 매서운 소리가 나는 듯했다.
‘단장수의 마음에 썩 들지 않는가 보지만.’
연무장에서 남궁적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소문 대로라면 당 공자에겐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하던데······.」
그는 내게 권법을 어떻게 가르칠지 골몰하고 있었다.
남궁적은 마냥 당가타에 머물 순 없었다.
그가 사천에 머무는 건 남궁린이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에 돌아갈 체력을 회복하기 전까지였다.
「세가의 무공도 안 되고,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면 육합권법과 같은 기초권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단지 그 정도라면 단장수라는 별호가 울었다.
더구나 남궁적은 나를 어떻게든 남궁세가와 엮고픈 마음이 컸다.
「단순히 기초권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름값에 걸맞은 가르침을 달라는 거겠지.」
같은 무공을 배우고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에 따라 그 실력 고하가 현저했다.
내 의도대로 남궁적의 가르침에는 성왕십삼수의 묘리가 섞여 들었다.
‘이거라면 내 육합권법에서 성왕십삼수 느낌이 난다 해도 남궁세가에서 뭐라 하지 않겠지.’
게다가 그걸 가르친 사람이 남궁적이었다.
남궁적은 내가 남궁세가의 무공을 원하지 않다는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춰 육합권법의 구결을 가르쳤다.
“육합권법은 권각술의 기본이 되는 무공이지. 이 권법 안에 찌르고 당기고 막고 휘두르는······ 권법의 기초가 모두 담겨 있다.”
남궁적은 온화한 태도로 설명을 덧붙였다.
육합권법이 가장 기초적인 무공이다 보니 배운 자의 성격에 따라 무공의 성질도 쉽게 바뀌었다.
“그러니 일단 정권 지르기부터. 처음이니 일단 만 번 정도 해 보지.”
이어진 남궁적의 수련법은 상당히 가혹했다.
‘······만 번?’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괴랄한 초식 운용법이 담긴 추혼비접과 비교하면 간단했다.
그 횟수가 정신 나갔을 뿐.
그렇게 시작된 정권 지르기는 해가 뜨기 전에 시작해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한 백 번쯤 주먹을 내질렀을 때까지 남궁적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지르기가 삼백 번이 채 되기도 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공 재능은 없다고? 당문의 기준이 높은 것일까? 아니면 당 공자가 몸을 낮춘 걸까?」
나는 남궁적의 평가를 그대로 지르기에 반영했다.
「힘을 너무 냈어. 삼 푼 여유를 남겨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힘을 조금 빼고.
「살의가 부족해. 반드시 죽이겠다는 패기가 담겨야지.」
그럴 땐 주먹에 살의를 담아 질렀다.
그렇게 만 번의 지르기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남궁적에게도 감탄이 나왔다.
“정말이지 당 공자의 성장 속도는 남다르군. 마치 권법을 아는 것처럼 말이야.”
“그야 가르쳐 주시는 분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까?”
「왜 당문에서는 당 공자가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남궁적이 나를 가르치면서 의문을 보였다.
그가 보기에 나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하는 제자였다.
‘그야 그땐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과거의 당연우는 당연강처럼 뼈가 굵지도, 근육이 잘 자라는 체질도 아니었다.
오히려 뼈도 가늘고 좀처럼 근육이 늘지 않는 체질이었다. 거기에 이해력도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성왕십삼수를 한 수 정도 가르쳐 볼까?」
남궁적은 가르치는 맛이 나자 욕심을 보였다.
“그야 가르쳐 주시는 분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까?”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물론 남궁적은 내가 자기 머릿속에서 성왕십삼수의 절기를 속속들이 빼먹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당연우가 무공을 되찾았군.”
당연해의 시선이 연무장을 향했다.
연무장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남궁적에게 무공을 배우는 당연우의 모습이 담겼다.
‘시녀가 사라진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네가 손을 쓴 걸까? 아버지가 눈과 귀를 가리니 이것도 쉽지 않군.’
당연해의 공작은 모두 가주 당중월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일이었다.
그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태연히 막내에게 독을 보냈다.
“보험은 실패했다고 봐야겠군.”
당연해에게 당연우는 크게 신경 쓸 적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일찍이 소가주를 차지한 당연강은 견고했고, 지금까지 당연우가 쌓아온 인식이 너무 나빴다.
“지금부터 지지기반을 쌓는다고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일단 경계는 해야 하나?”
당연해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꺼끌꺼끌한 감촉이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를 정략결혼을 시키실 생각이지. 마음이 바뀌시기 전에 빨리 보내야겠어.”
당연우가 몸을 회복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당연해는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의 재능과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남궁도 남궁이지만 성의문도 녀석의 의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경쟁을 시켜 볼까?”
당연해가 당연우의 처우를 생각할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손님입니다.”
“들어오시라 하게.”
방문을 허하자 말끔한 차림새의 중년인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해가 창문을 닫고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부장님. 그간 별일 없으시죠?”
중앙전장의 사천지부장이었다.
그는 당연해가 외유 때 만든 자금줄이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중앙전장은 중원 전체를 대상으로 지점을 둔 거대 금융회사였다.
중앙전장이 황제보다 더 많은 황금을 가졌을 거란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그들의 자금력은 막강했다.
“하하, 둘째 공자님께서도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지부장이 정수리까지 온 이마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는 당연해를 마주하자 자연히 허리가 굽었다.
“저야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찾아뵀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요 개월, 오대세가 회합 준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야 알죠. 둘째 공자님께서 워낙 공사다망하시지 않습니까?”
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비는 모습에 당연해는 미소를 지었다.
‘웃는 낯으로 지껄이기는.’
당연해는 속내를 숨기고 지부장의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
“뭐, 덕분에 회합에서는 많은 이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오대세가 회합에서 당연해는 지부장의 지원금을 아낌없이 썼다.
당연해는 이번 회합에서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보다 그들을 수행하는 무사나 시중들을 더 오랜 시간 만났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부터 쏴야지.’
돈의 힘은 달콤하면서도 무섭다.
만나는 이들에게 입바른 이야기와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용돈을 줬다.
그들이 돈 몇 푼에 자기 주인을 배신할 리는 만무했지만, 적어도 좋은 인상을 준 것은 틀림없었다.
“저희가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지부장이 마침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연해는 그런 지부장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맞서 눈웃음을 지었다.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지부장은 막내에게 음독을 의뢰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연해는 이 모든 것을 이미 당중월이 파악했고, 묵인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전표를 환금하러 오지 않더군요. 그 시녀 말입니다. 충분히 시간은 지났고, 또 막내 공자도 멀쩡히 일어난 것 같은데······.”
지부장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당연우를 언급했다.
당연해 피식 실소하곤 입을 열었다.
“그걸 내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살기를 담아 덧붙였다.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건가?”
***
“헥헥! 잠시 쉬어도 될까요?”
남궁적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나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그늘 밑으로 기어갔다.
육합권법이 기초권법이라 만만하게 본 것이 실책이었다.
남궁적은 웃는 낯으로 두 시진 내내 지르기만 시켰다.
귀신이 따로 없었다.
‘아니, 이렇게 혹사해선 근육이 다 아작 난다고!’
차마 그런 불평은 낼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담긴 수련 계획을 보니 운기를 통한 근육의 초회복 효과를 만들어 내려는 것 같았다.
내공으로 신진대사를 활성하는 것이 요점이었다.
‘의도는 좋아, 내 체력이 개판이어서 그렇지.’
암기술이야 결국 던지는 거라 누워서 하든 앉아서 하든,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연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손목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매일 매 시진 수련했다고 생각했는데, 남궁적의 수련에 비하면 약과였다.
‘혹독하네······ 아니, 내가 굴렁쇠도 아니고 그렇게 굴려야겠냐?’
라는 속마음을 숨기고 이를 악물며 남궁적이 제시한 수련법을 따랐다.
후들거리는 팔이 조금쯤 진정된 뒤에 슬쩍 하늘 높이 찌를 듯 서 있는 전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기서 지켜보려나?’
당가타는 당문을 둘러싼 마을이다.
높은 지대에 세워진 당문의 건물들은 당가타의 거리가 한눈에 보이도록 설계돼 있었다.
‘무공을 배웠다······ 정도로만 끝나진 않겠지.’
나는 그곳에서 지켜볼 당문 사람들, 특히 당연강과 당연해를 떠올렸다.
최근 당연우의 이름이 의술로 알려지긴 했지만, 무공과 관련된 평판은 여전히 바닥을 기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엔 이전의 당연우가 보였던 무공 실력은 너무도 처참했다.
그렇다 보니 당장 몸이 낫고 무공을 익힌다고 경계할 이들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에 자극받아 당연해가 암습을 하느냐 마느냐였다.
‘회합 이후 두 사람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니······ 당장에 뭘 하진 않겠지.’
나는 입맛을 다시며 당문을 살폈다.
마침 당문을 나서는 낯선 사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싶어 기억을 읽어 보니 중앙전장의 사천지부장이었다.
‘그러니까······ 작은형의 돈줄이 중앙전장이렷다?’
그리고 동시에 음독을 사주한 곳이기도 했다.
‘뒤를 캐 봐야겠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대협, 이후 수련은 내일로 미뤄도 되겠습니까? 제가 잊은 일이 떠올라서요.”
“음, 당 공자가 그리 말할 정도니 중한 일이겠지. 그럼 오늘은 이만하자꾸나.”
나는 남궁적에게 포권을 취한 뒤 사천지부장의 뒤를 쫓았다.
당가타는 당가의 식솔이 모인 마을이었지만, 그 규모가 작은 도시급이었다.
그래서 당가타 안에도 여러 전장 및 상회가 들어와 있었고, 이 중에는 가장 큰 규모가 중앙전장의 지부도 있었다.
“이거 옛날 생각이 나는데?”
괜히 기자 시설 취재 대상을 몰래 쫓거나 잠복했던 일이 떠올랐다.
배운 무공이란 게 추혼비접뿐이라 마땅한 은신술 하나 없었지만, 무공을 모르는 상인 하나 쫓는데 거창한 은신술은 필요가 없었다.
‘요컨대 상대의 인식 밖에 있으면 되는 거란 말이지.’
추적할 대상의 마음을 읽는 이상 그의 시선을 피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사회부 기자 시절 아주 지겹게 해 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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