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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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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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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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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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아메리고에서 대선으로 소란이 이는 동안 3 주가 지났다. 이제 움브라에게 남은 기한은 일주일뿐이다. 부담감 때문인지 사무실 안의 공기는 무겁고 조용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파이니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내팀은 국빈 방문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반대편에 자리에는 보고서를 넘기며 최후의 계획을 재검토 중인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앉아 있다.


“콘트라, 이제 시간이 없다. 조금 있으면 알코즈 세자 놈이 탄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니.”


파이니트의 우려에도 콘트라는 묵묵히 펜을 움직였다.


“기다려 보죠, 실장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유니우스.”


“어쩌겠습니까? 탄트도 없는 지금 개미 지옥 작전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콘트라뿐인데.”


대내 팀장 트라디토르는 콘트라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질되지 않은 수염과 커피 자국으로 가득한 얼굴은 초췌하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이제 7 일, 단 7 일이면 모든 게 결정난다. 움브라는 물론이고, 소속원 모두의 앞길도 정해진다.


수상의 직속 기관 중에서도 특수한 조직인 움브라는 특이하게도 수상이 직원을 직접 선발한다. 그러다 보니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남달랐다. 창설자이자 실장인 파이니트는 말할 것도 없다. 트라디토르는 유명한 PD 출신으로 언론과 관련된 여러 직위를 거쳤다. 제일 어린 포에나도 아나운서로 시작해 수상실 대변인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여 움브라로 왔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공적이 물거품이 될 위기다.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콘트라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트라디토르는 부디 자신의 동료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원했다.


“이거 좀 마시면서 해요.”


“응.”


포에나가 따뜻한 차를 조심스레 책상에 내려놓자 콘트라는 짧은 대답만 툭 던지고 한입에 들이켰다.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서러운 포에나였다. 가정에 돌아가면 다른 모습일 것이란 생각과 아내에게는 다정할 것이란 질투가 머릿속을 뒤덮었다. 사적인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자리로 돌아온 그녀에게 트라디토르가 다가왔다.


“담배나 피우러 가지.”


“저 담배 안 피워요, 팀장님.”


웃으며 사양하던 포에나는 이내 상사의 권유 속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눈치채고 일어났다. 둘을 유심히 지켜보는 파이니트는 혀를 찼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저 씁쓸한 말투로 “슬슬 끝날 때가 되긴 했지.”라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외진 곳으로 나온 트라디토르는 포에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콘트라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슨 일이라뇨?”


“시치미떼지 마. 어느 순간부터 네가 콘트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설마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오해예요. 콘트라와는 친한 동료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트라디토르는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상대의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연기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는 포에나가 정치판에 잠시 몸을 담으며 적응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포에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관계가 발설된 건지 다급히 유추했다. 콘트라가 말한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신경전이 오고 간 이후 침묵이 흘렀다. 트라디토르도, 포에나도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시선을 회피했다. 그때 어색한 공기를 비집고 익숙한 외침이 찾아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여러분!”




알코즈의 왕세자 빈 제마가 전용기에서 내리자 이데아의 의장대는 거기에 맞춰 축포를 발포했다. 곧이어 수상 보좌관 아디우토르가 계단 아래에서 양팔을 벌리며 빈 제마를 환영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왕세자님.”


“반갑소, 아디우토르 수상 보좌관. 정말 오랜만이군.”


“이번에는 좋은 일로 만나게 됐으니 다행입니다.”


껄껄 웃는 아디우토르지만 묘하게 날이 선 말투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빈 제마는 언중유골이라며 혀를 찼다. 그래도 입가에 미소를 유지하는 게 이 남자 역시 정치적인 면에서는 밀리지 않는다.


“다행이오. 오늘은 축배를 들 수 있겠구려. 아, 물론 본인이야 커피만 마셔야겠지만.”


“역시 독실한 마엘리교도다우십니다. 하지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술이 아닌 다양한 음료도 준비해 놓았으니. 자, 어서 수상 관저로 이동하시지요.”


아디우토르의 안내에 따라 빈 제마와 수행원들이 빠져나갔다. 이후 의장대와 외교관들도 이동하자 검은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전용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나크 사드 알코즈 첩보 장관이 있다.


“너희는 숙소로 먼저 가 있어라.”


“장관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잠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마침 저기 오는군.”


나크가 손을 들자 거기에 화답하듯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콘트라다. 짧은 인사를 마친 콘트라는 나크를 데리고 군사 공항의 비밀 면담실로 향했다. 신변 안전을 요구하는 나크를 위해 경호원의 동행도 허용했다. 다만 면담실 안에는 콘트라와 나크 둘만이 들어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사드 장관님. 그때만 해도 소장이셨는데.”


“자네도 출중한 외교관이었는데 이제는 쥐새끼가 다 되었군.”


“그 쥐 한 마리를 잡길 원해 쥐약을 놓다가 손이 잘려서 화를 내시는 겁니까?”


“여전히 말 하나는 잘해. 맘에 안 들어.”


큰 소리를 내며 혀를 찬 마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콘트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전하시군요.”


“비밀은 지켜 주게나.”


“물론입니다. 마엘리교도에게 흡연은 금기니 말입니다.”


“참 골치 아퍼. 이놈의 종교란 게 권력을 유지할 때는 유용한데 말이지, 정작 내 생활을 간섭하니까 너무 귀찮단 말이야.”


“왕세자 전하께서도 그러시지 않습니까? 술을 참 좋아하시는 분인데.”


“알고 있었군.”


“역시 그랬군요. 혹시나 해서 떠본 건데.”


순간 나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연기로도 가려지지 않는 표정을 보며 콘트라는 말을 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비밀은 지키겠습니다.”


“후, 자네에겐 너무 휘둘려.”


“제가 나쁜 사람같이 들립니다.”


“지금도 협박하려고 부른 거 아닌가?”



“협박이라니 오해입니다. 전 그저 투 트랙으로 협상하려는 것뿐입니다. 장관님께선 세자 전하의 오른팔이시니 말입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험악했던 나크의 얼굴이 밝아졌다. 평소 시종 장관 카마르 압딜라와의 알력 다툼에 시달리다가 간만에 우위를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풀린 것이다. 이를 눈치챈 콘트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장관님께선 늘 시기를 당하셔서 곤욕을 치루셨지 않습니까?”


“맞아, 그랬었지.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 너무 많아.”


“장관님께선 그나마 마엘리교도 여성이 위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놓으려고 한 건데 그걸 인맥 정치라며 모함을 받았지 않습니까?”


“아직도 징계를 받았던 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군.”


물론 콘트라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마엘리교가 여성 차별이 심한 건 사실이다. 경제 활동 자체를 제약하는 교파가 상당수 있을 정도다. 알코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나크 사드가 여성 차별을 철폐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첩보부는 여성 첩보원을 정식으로 선발한다. 남성 첩보원이 여장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여성이 군에 입대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나크가 징계를 받은 사유 자체도 교리 위반이 아닌 능력이 부족한 지인의 딸을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합격시킨 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콘트라 도크트리나지만 일단은 나크 사드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그래야 지금까지 기다려 온 요구를 꺼낼 수 있기에.


“장관님, 제가 알코즈에서 주재하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지. 그때 자네의 도움을 받지 않았는데 어찌 잊겠어.”


“제가 귀국하기 전에 대사관에 큰일이 벌어졌었습니다.”


“큰일?”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려던 나크는 순간 아차 싶은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콘트라가 준비한 함정에 이미 걸려들고 말았다.


“당시 폭동이 벌어졌고, 이데아 대사관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랬었나······”


“그때 콘트라가 죽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지금 내 앞에···”


“왜 모른 척하십니까? 장관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데아에는 콘트라가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커진 목소리에 나크는 입을 다물고 숨을 죽였다. 그가 더 이상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콘트라는 마지막 쇄기를 박기로 했다.


“콘트라 데키무스, 그가 폭도들의 손에 무고하게 희생되었을 때만 해도 알코즈는 분명 약속했지 않습니까? 이 사안을 국제적인 분쟁으로 만들지 않고 양국만의 문제로 끝낸다면 차후 이데아가 요구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난 모르는 일일세.”


“그럼 집에서 서약서를 가지고 와야 합니까? 알코즈 국왕의 직인이 찍힌 그 종이를!”


“그건···”



“물러나 주세요.”


숨을 가다듬은 콘트라는 다시 한번 말했다.


“팔리아에 개입하지 말고 물러나 주세요. 그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작가의말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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