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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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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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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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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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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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피아니에지스테 : 3+1=3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너도 잘 모를 거야.

왜 자꾸 그런 짓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게 바로 인간의 본능이라는 거라고.

깊은 해저(海底)의 심연(深淵) 같은 본능이라고.

인간의 본능이라고.

너도 웃기냐? 나도 웃기지는 않다.

내가 웃고 있을 것 같아?








싸늘한 비웃음 같은 말소리가 흐르고 나서

정적이 다시 찾아온 숲에,

이윽고 한 방울 두 방울 후두둑 후두둑 툭 툭

빗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비가 점차 내리고

비의 습기와 어렴풋한 불투명한 장막에 갇혀져서

어두운 숲은 점차 초록과 시커먼 색깔이 혼합이 되어서

시야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인적도 끊긴 비가 내리는 숲속에서

말없이 생명과 대자연과 그리고 토양마저도

고요히 보이지 않는 음률에 맡기고서

잠시 안정적인 음조가 된 듯이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는

어두운 시간대였다.









크레뮐켑테이톤은 비가 내리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먼 곳의 풍경까지 아득히

물안개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뭔가가 뿌옇게 보였다.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는지 유리창 밖이 온통 물방울들이

달라붙어서 가끔 어두워지는 바깥 풍경이 잘 안 보일 때가 있었다.

바지 두 주머니에 손을 다 집어넣고

평범한 키의 크레뮐켑테이톤은 한참을 그저

바깥만 내다보고 있었다.

빗소리가 점차 자욱하고 빈번하게 들려오자

무슨 잔잔한 음악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그가 있는 큰 방에는 거의 가구가 없었고

피아노마저도 없었다.

너무 방이 커 보일 정도로 휑하게 가구들이 없어서

그가 있는 방에는 자꾸만 시커먼 고독이 밀려오고

그렇게 채워지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단순하고 차분하게

단지 유리창 창밖만 지켜보고 있었다.

빗줄기들로 숲과 그 너머 멀리멀리 펼쳐진 자그마한 면적의

들판과 들판에 여기저기 가까이 널려있는 민가의 지붕들이

점차 비에 갇히듯 비에 적셔지고 있었다.

비가 채우고 있는 작은 들판의 풍경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어쩌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도

그 풍경은 그렇게 멀어서 모든 윤곽들이

희미했는지도 몰랐다.

비도 그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였고

풍경과는 무관하게 그는 자꾸 어두워져서

자꾸만 어둠 속으로 침몰하듯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있는 큰 방의 바깥 복도에서도

어떤 사람의 지나가는 작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크레뮐켑테이톤은 힐끗 복도를 쳐다보았다.

문 밖에서는 역시 어떤 작은 소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가 유리창 밖을 다시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다.

비가 타고 흐르는 큰 창문 밖은 이젠 거의 완연한

검은 허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윗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반신에 옷이 남지 않을 때까지

옷을 계속 그는 벗었다.

몸에 새겨진 빛살처럼 파랗고 보랏빛인 번쩍거리는

문신들을 들여다보다가 그가 옷을

다시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옷을 다 입은 그는 침착하게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크고 아름다운 목재로 된 문을 열고 그는 복도로 나갔다.

복도를 따라서 그는 하염없이 걸어갔다.

미로처럼 길고 자꾸만 꺾이고 자꾸만 돌아가는 길고 긴

길을 걸어서 그는 점점 더 윗층으로 올라갔다.

계단들과 복도들을 계속 지나서

그는 건물 바깥의 계단까지 나가게 되었다.

빗줄기들이 계속 쏟아져서 그의 머리칼들이 덮힌

정수리와 어깨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빗방울에도 적셔지지 않았다.

그의 머리통과 그의 옷에는 어떤 빗줄기들도

묻지 않았다.

그가 성채(城砦)의 외벽에 설치된 좁고 가는

바깥 계단길을 계속 돌고 돌아서

높고 뾰족한 전망탑 꼭대기에 드디어 도달했다.

잠깐 그는 전망탑 난간에 두 손을 얹고 내려보더니

그 순간 이미 없어졌다.

빗줄기들만이 요란한 소리들을 떨어뜨리면서

전망탑의 어둡고 자욱한 검은 공간에

과밀하게 좁은 소음으로 자꾸만 내려왔다.

판타지 문피아 수요일 피아니에지스테.jpg

레이피엘페이셔스는

피아노가 있는 실내가 아닌

멀고 먼 숲속에 앉아있었다.

자신의 저택이 아닌 이런

자연의 한적한 장소에

있는 것은 별로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오전에 세이덴미트레퍼스 공작이

자신의 집에 방문을 하고 다시 돌아가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하게 나빠졌다.

친척지간이라서 그의 방문을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나서

즐거워 할 사람들과

그렇지 않을 사람들을 구분하고 구별할 줄 알고 있다.

심지어 어리고 어린 아이들마저도.

세이덴미트레퍼스 공작은 사무적이고 평범한 말들을

침착하고 조용히 말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온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만 같이

레이피엘페이셔스에게는 느껴졌다.

집에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내려는 염탐성 방문이 실제로 주된 목적인

그런 식으로.

남동생 피케메이엘레세이시엔은 음악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별다른 말은 더 할 것도 없었지만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그렇게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 금발 머리카락 짐승들은 거둬들이지 않는 법이라는

전래 속담을 믿을 것도 없이

세이덴미트레퍼스 공작에게서는

이상하게 짐승의 냄새가 풍겼다.

그렇게 비싸고 고급스러운 옷들을 전신에 걸치고

그렇게 공을 들여서 몸치장을 했는데도

그에게서는 자꾸만 동물적인 체취가 이상하게

분위기상으로 풍겨왔다.

강렬한 욕망과 굉장한 본능이

한껏 가득가득 팽팽하게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그에게서는 점잖고 교양 있는

거대한 야망이 늘 감으로 전해졌다.

가끔 천천히 둘러보는 시선과

어딘지 의젓한 대화들인데도

대화의 소재들에서

그런 거대한 탐욕들이 자꾸 느껴졌다.

세상에는 별별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는 법이므로

의당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되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그가 피아니에지스테 얘기를 쓸데없이

꺼내서는 자꾸 하고 돌아간 것이었다.

그렇게 오래전에 사라진 전설적인 악기이자

신급의 보물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턱이야 없었지만.

음악 학교에서도 그 피아노 중의 피아노라는

피아니에지스테 이야기를 가끔,

지금까지도 했었다.

행방조차도 여부를 모르면서

파악이 안 되는 시간이

벌써 몇 백 년이 지났을 것이라는

사라져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그 경이로운 보물에 대해서.

이제는 정확한 생김새조차도 아무도 모르고 있을

그리고 또한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나 가장 필요할

피아니에지스테 이야기를 왜?

이런 친척 어른이 이야기를 할까,

궁금함과 의문이 계속 들었지만

그렇다고 차마 막 물어볼 수는 없었다.

세이덴미트레퍼스 공작은 자신에게는

친척이고 또

친척 어른이었으니까.

숲속에서 밤이 차츰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피부가 싸늘하게 점차 냉각되어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앉아있는 곳에도 더욱 차가운 어둠이

거대한 장막처럼 점점 드리워지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왕궁에서 왕세자비로 그녀를 자꾸만 이야기를 거론했었지만

그녀는 그것도 그냥 다 귀찮았다.

왕세자비가 된다면

그 다음에는 자연적으로 왕비도 당연한 순서였다.

어떤 정말 곤란하고 급작스러운 최악의 상황

몇 가지만 아니라면.

그녀는 앞날을 더 이상 예상하지 못하니까

그냥 포기하듯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에서 혼자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

다시 집으로 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내일은?

잘 모른다.

내일도 또 다른 날이니까

뭔가가 또 기다리고 있을 터였지만.

자꾸만 밤이 깊어져서 어느덧 주변에는

모든 방향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먼 밤하늘에서

별무리가 지나가듯 서서히 나타났다.

작은 금속 가루들 같은 반짝거리는 별들이

자꾸만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들이 숫자가 많은 곳들도 있었고

작은 곳들도 있었다.

은빛 가루들 같은 무수히 작은 별들이

어둡고 검은 밤하늘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는

차갑고 축축한 언덕에서

그녀는 그냥 물끄러미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판타지 문피아 수요일 피아니에지스테2.jpg

데이모레페이게스는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데이베리페코스가 비둘기로 보낸 편지였다.

그의 부하들은 첫 인상과 달리 그다지

쓸만한 재능이 없을 때가 있었다.

유능하지 못한 부하들이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상관인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또 다른 두 번째의 분통이 찾아왔다.

임무는 일그러지고 어긋나고 망했는데

그 수습과는 무관하게 부하들을 어떻게 문책하고

어떻게 또 조율을 해줄 것인가.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그만 해고를 하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또 금방금방 보충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참으로 답답했었다.

그래도 데이베리페코스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지금도 보고서에 적혀있는 내용에는

중요한 지점이 있었다.

휘케텔프가 왕궁에서 탈출한 환자를 몰래 숨기고 있다는 걸

미레로스 혹은 데이베리페코스가 최초로

보고서를 보낸 것이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유능한 부하였고 재능이 충만한 첩자였다.

앞으로 크게 쓸 인재였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푸른 성>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표면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푸른 성>에서는

데이모레페이게스를 경원시하는

집단적인 분위기가 뚜렷했다.

그것이 여론이고 집단적인 의견이겠거니,

그냥 그는 그렇게만 받아들였다.

그래도 뭐 어쩔 수가 없다고만 그는 여겼다.

아무래도 그 사람들에게는

다른 속셈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그쪽 사람들도

데이모레페이게스를 잘 모르고 있었다.

오판이든 오해든.

그도 그 나름대로 생각과 의견은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을.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언제나 충성심을

보일 것이라고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푸른 성>의 사람들은 너무 자신하거나

너무 과신하고 있었다.

사람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있는 법이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닌 가면들을.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심중이나

그의 평상시 의견들이나

얼마든지 상충할 수 있는데도.

불의 접시에 이어서

이번에는 왕궁에서 탈출한 숙주인 환자에 대해서

실로 톡톡히 실적을 또 이번에도

데이베리페코스는 올렸다.

그가 보낸 보고서를 천천히 잘 접은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어두운 성채(城砦)의 작은 방에서

바깥으로 검은 사각형으로 뚫린

창가에 얹혀진 작은 접시에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마법이 아니라 귀찮고 성가시게

등잔을 가지고 와서 유리 부분을 벗기고

그 심지에 불로 붙이고는

다시 접시에 놓았다.

창문은 전혀 없이 정사각형의 공간만 뚫린

창가에서 접시의 편지는 잘 타올랐다.

바람도 별로 불어 들어오지 않아서

접시의 불길을 이리저리 휘청거리게 하는

방해하는 요소도 전혀 없었다.

편지는 금세 재로 변해버렸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점차 짙어지는 바깥을

잠시 내다보았다.

그의 얼굴도 자꾸만 더 어둠 속으로 잠기고 있어서

이젠 거의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게.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등을 돌리고

방을 나갔다.

그는 이제 세이덴미트레퍼스 공작과

그리고 크레뮐켑테이톤을 격파하고 제압할 수 있는,

새롭고 완전하고 더 놀라운 마법을 수련해야만 했다.

지금의 그의 전투력으로는 그들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는 없었다.

판타지 문피아 수요일 피아니에지스테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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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고요한 날들은 지나가고 다시 분주한 날이 또 다가오리라 24.08.05 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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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성년의 망각 24.08.01 7 0 12쪽
101 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 24.08.01 5 0 15쪽
100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다 마찬가지가 인생이다 24.07.31 9 0 15쪽
99 사랑의 근본적인 비밀 24.07.30 5 0 12쪽
98 증오도 사랑도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24.07.29 6 0 14쪽
97 다시 세상에는 어둠이 또 내릴 것이다 24.07.26 8 0 11쪽
96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24.07.26 6 0 12쪽
95 짐승들의 슬기로운 시대 24.07.25 11 0 11쪽
94 무덤이 없는 계절 24.07.25 9 0 11쪽
93 세상에 음악이 들어있었다면 24.07.25 5 0 11쪽
92 사랑이 인생과 세상 속에 들어있다면 24.07.22 3 0 12쪽
91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24.07.22 5 0 12쪽
90 필요가 없는 것들의 의미 24.07.21 3 0 11쪽
89 악마적인 말들도 가끔은 달콤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24.07.21 5 0 14쪽
88 왜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미는 없을지라도 24.07.21 5 0 12쪽
87 신들의 즐거운 한낮 24.07.20 8 0 11쪽
86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목소리를 붙잡아서 24.07.20 12 0 11쪽
85 또 다른 세상과 그 의미 24.07.20 5 0 12쪽
84 흘러가는 운명처럼 단지 그렇게 24.07.19 3 0 11쪽
83 가장 많은 시련은 가장 많은 시도 속에 함께 있다 24.07.19 5 0 12쪽
82 내게도 운명은 동일할까 24.07.19 7 0 11쪽
81 음악과 시간의 강물 24.07.17 4 0 12쪽
» 3대의 피아니에지스테 : 3+1=3 24.07.16 8 0 11쪽
79 나무에 새겨진 글귀 24.07.16 3 0 11쪽
78 왜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인가 24.07.15 2 0 12쪽
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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