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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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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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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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아직도 넌 논점에서 벗어난 소리를 하고 있네?

그건 이 논쟁에서의 논점이 아니잖아?


내가 뭘?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왕세자와 오랜 시절을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친구로 지내다가

이제는 어쩌면 애인도 아닌 부부 사이로

변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녀가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이 상태를 최대한 신속하게 끝내고만 싶었다.

왕세자도 또 왕세자의 아이도 또 자신의 이 지긋지긋한

요즘 일상 생활도.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 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무기력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고 나서부터

그녀는 차츰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늙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육체적인 영양 상태는

금전적으로 여유 있고 넉넉해서

전혀 손상이 없더라도

감수성 측면에서

너무 피폐해지고 있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걸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걸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

죽는 건가? 그렇다면?

죽어야만 되는 건가?

다시 태어나려면?

그녀의 얼굴이 굳고 메마른 삭막한 얼굴이어서

왕세자도 점점 더 차갑고 답답한 표정이 되어갔다.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야?

왜 이러는 거냐고?

레이피엘페이셔스가 꼼꼼히 왕세자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차분히 대꾸했다.

너는, 언제나 이기적이야.

그게 다야.

그 외에는 어떤 이유라고는 있지도 않아.

너무 단호하게 레이피엘페이셔스의 대답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왕세자는 얼떨떨해졌는지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아주 크게 웃기 시작했다.

너무 심하게 웃어서 나중에는 고개가 다 뒤로 젖혀질 만큼

크게 웃고 있었다.

너 드디어 이제는 정말로 미쳤구나?

왕세자가 드디어 고개를 똑바로 내리고는

아직도 웃음이 남아있지만 진지한 편인 목소리로

그러나 즐겁고 유쾌하게 말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뭔가를 살피는 것처럼

레이피엘페이셔스를 똑같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레이피엘페이셔스가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상처를 받는 체질이 있다면

습관적으로 상처를 주는 체질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왕세자라는 남자는 어떤 체질일까.

어떤 사람일까.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곰곰이 눈앞의 남자를

자로 재고 무게를 재어보듯이 파악해보려고

애를 써봤다.

그러나 안개처럼 도무지 모호하고

뭐든지 흐릿하기만 해서

뭐가 뭔지를 모를 것만 같았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니.

게다가 나는 너도 잘 모르겠어.

이 왕국에서 장차 왕위를 계승할 남자라는

너도 나는 잘 모르겠다고.

요즘이 특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라서

그래서 판단력 자체가 없어져서인지도

모르겠다고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그렇게도 가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신은

언제부턴가 늘 무기력하고 늘 삭막하며

늘 침울하게 살고 있었다.

겉으로만 단지 괜찮은 척, 겉으로만

상냥하고 기분이 유쾌하고 즐거워서

잘 지내고 있는 척만 하고

그렇게 오래도 지내온 것만 같았다.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그 원인과 최초의 시점조차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무기력이라는 건 그냥 늪과 같은 거구나.

빠지게 되면 헤어나올 수가 없구나.

그러나 눈앞의 남자도 천국이거나

적어도 즐겁고 기분 좋은 건물 실내는

또 결코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이상하게 지루한 권태가

몰려오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도 만약 다시 또 다른 늪으로 변하게 된다면?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다시 두려워졌다.

두렵다는 건 매번 경험해도 두렵구나.

절대로 익숙해질 수가 없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적어도 나는 그런데.

레이피엘페이셔스는 판단력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요새는 자꾸만 궁금해졌다.

너는 아예 판단력이 없구나?

레이피엘은 두 눈을 똑바로 동그랗게 뜨고는

방금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잘 생긴 왕세자였다.

흡사 정신병자를 쳐다보는 듯한 멸시의 눈빛이

서서히 그 왕세자의 두 눈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네가 감히 나를 버려?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순간, 숨이 콱! 막혀버렸지만

그냥 겉으로는 담담한 척을 했다.

뭐라고?

왕세자가 몸을 뒤로 크게 젖히면서

오른팔을 크게 옆으로 뻗어서 의자 윗부분에

걸치듯이 내려놓고는

의자에 그대로 여유만만하게 기대었다.

너 따위가 나를 버리겠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레이피엘이 자꾸만 두 눈이 커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애써 억제하면서 물어보았다.

다리를 크게 들어서 왼쪽 다리에 얹어서 꼬고 나서는

고개를 오른쪽 허공 어딘가라고도 할 수 없는 지점을

한 번 괜히 쓸데없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정면에 있는 레이피엘페이셔스에게로 돌리더니

왕세자가 말했다.

이게 아직도 현실파악을 못하네?

나한테 왜 이래? 왜 그렇게 말투가 험악하고 폭력적인데?

레이피엘페이셔스가 화가 이젠 참을 수도 없는 지경이라서

억울한 나머지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한참을 왕세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온통 순백색의 가구들과 벽지로 뒤덮인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방에서

고독하고 기괴한 침묵이 팽팽하고 위험하게

실내 위에 덮이듯이 고여만 갔다.

그렇게 오래오래 아무런 말이 없던 왕세자가

응시하던 행동을 그만두고 일어나면서

드디어 한마디만을 하고 돌아갔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좀 쉬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고개를 돌리고 나가면서

그의 등만 올려다보고 있는 레이피엘페이셔스에게

다시 한마디를 더 남겼다.

신체적으로 피곤하면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되니까.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그냥 어떤 대답도 없이

자꾸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서.












저는 정말 어찌해야만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낯설고 외진 곳이라서

사방으로 조용히 번지듯이

일종의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물결 위에 고요히 퍼져나가는 파문처럼.

그래? 그러면 이제는 뭘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창로하고 고색창연해서

실제로 그 목소리의 주인이 보인다면

얼마나 나이가 많을지 제대로 짐작도 잘 되지 않았다.

크레뮐켑테이톤은 조용히 무릎 한쪽을 꿇고는

왼쪽 무릎을 세우고서 고개도 그렇게

일종의 경건함과 복종이 엿보일 만큼

순종적인 자세로 숙이고

나직나직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왜 이제 와서야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이럴 거라고 내가 이미 그 전에

다 말을 하지 않았더냐?

정말 오래되지 않았더냐?

그건 그렇습니다.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송구스럽기라도 한 듯이

크레뮐켑테이톤은 계속 어두운 목소리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너의 신체를 강화시킨

그 마법을 다시 해제를 하고

그 전으로 돌릴 수는,

그럴 수는 도저히 없다.

공중을 떠 다니는 듯한

마치 밤 까마귀처럼 음산하고 소슬하게도 오싹한

그 늙은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는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검은 허공 어딘가에 떠 있으면서

목소리로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걸 내가 알겠니?

어찌 보면 웃음이 바로 팍, 터져나올 만큼

한심하고 유치한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촌극을 공연하고 있는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둘은 정말 진지하고 엄숙했다.

게다가 시간대와 그 장소가

기묘하고 음산한 곳이어서

서서히 보이지 않는 공포가

느린 밀물처럼 자꾸만 다가오는

기분 나쁘고 위험한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는 걸까요?

요새 알게 되었느냐?

네.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극한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고강도로

고수위의 큰 힘을 끌어올리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그런 부작용을

내가 다 경고했음에도

굳이 너는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선택을 했었으니까.

그 이상의 대답을 더는 들을 수 없다는 걸

절감한 크레뮐켑테이톤은 그냥 서서히 일어났다.

고개는 여전히 패배한 자처럼 숙이고 있었지만.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래도 최근에서야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지?

네. 그 이전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흡사 공동 묘지 위를 날아다니는 밤 까마귀 같은

검고 으스스한 목소리가 다시 대답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것만 같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기적의 나무에는 가 보았느냐?

네. 이미 가 보았습니디.

그렇군...

다시 여운을 남기며 침묵을 끌고 가던

목소리가 이윽고 또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여신의 왕관은 어떨까?

네? 여신의 왕관은 또 뭡니까?

목소리가 웃기 시작했다.

아이야, 너는 내 말을 들을 마음이 있느냐?

그건 그렇고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크레뮐켑테이톤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슴의 심장처럼 생긴 물체였다.

보석에 뭔가가 마구 뒤엉켜서 만들어진

자연 원석이었다.









타락과 오염에 취약한 체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덕과 선행에 최적화된 체질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체질이 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그저 논점을 벗어난 해괴한 말장난이다.

단지 그런 삶의 양상들이 있을 뿐이다.

그저 가치관과 사고 방식만이

각자에게 고유하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착각과는 달리 논쟁에서 논점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논쟁이 왜 시작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논쟁과 말싸움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세상은 흘러가니까.



맹목적인 집착만큼 사람들이 즐기고 즐거워하는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이유라고 해봤자, 악의적인 공격성 밖에는 없건만.

목격한 자도 보고 들은 사람도 현장에서 있었던 사람도

없더라도 어쨌거나 그 집착은 끝도 없이

호수 위의 파문처럼 자꾸만 더 넓게 넓게 그리고

동일한 형태로 퍼져서 멀리 멀리 나가기만 한다.

모두가 진심으로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기에

자꾸만 그 집착이 광범위한 규모로 재확산되는 것이다.

왕궁에서 집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였다.

왕궁은 왕궁대로 백성들과 평민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서로 비인간적이고 증오심으로 충만한 점은

백성들이나 왕궁쪽이나 다 똑같았다.





왕궁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다.

언제나 대단하고 굉장한 것들만이 넘쳐났었다.

과거에도 또 지금까지도.

백성들은 충성스럽게 왕권과 왕국의 질서와

그 지배 체제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척을 했으나

돌아서면 뒤에서 자기들끼리는

언제나 싸늘하게 비웃으며 수군수군거렸다.

온갖 비난과 험담들을 다 해가면서.

그 대상에서 제외되는 귀족들과 왕족들은

실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그것이 인간 세상의 오래된 전통이었고

항구적인 법칙이었다.

나는 저것들이 싫다.

그러나 강대하고 강력하므로 차마 두렵기는 하다.

단지 그것뿐이다...

언제나 왕족들과 귀족들을 둘러싼 온갖 음해와

온갖 더러운 소문과 온갖 이야기들이

돌고 돌며 왕국 전체를 흘러다녔다.

유통은 유통망을 건설하는 것이 문제이지

유통에 필요한 소재는 늘 넘쳐났으니까.





왕궁에서 탈출한 숙주들에 대해서 수도의 시민들은

1세기도 더 되는 그 오래전부터 이미 의심을 하고 있었다.

왕궁에서 사람들을 숙주로 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탈출할 때마다 잡아오더라도

오랫동안 잠잠하다가 정말 간만에 다시 재시도가 성공을 해도

숙주들은 늘 출현했다.

왕궁이 100년이 넘을지 모른다는 전통을 도저히 포기 못하는 것이었다.

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백성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었지만

왕궁은 왕궁대로의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도 역시 숙주가 탈출을 했다.

오랜 왕궁의 악습이 기어이 이번에도 또 들키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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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 24.08.01 5 0 15쪽
100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다 마찬가지가 인생이다 24.07.31 9 0 15쪽
99 사랑의 근본적인 비밀 24.07.30 5 0 12쪽
98 증오도 사랑도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24.07.29 6 0 14쪽
97 다시 세상에는 어둠이 또 내릴 것이다 24.07.26 8 0 11쪽
»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24.07.26 7 0 12쪽
95 짐승들의 슬기로운 시대 24.07.25 11 0 11쪽
94 무덤이 없는 계절 24.07.25 9 0 11쪽
93 세상에 음악이 들어있었다면 24.07.25 5 0 11쪽
92 사랑이 인생과 세상 속에 들어있다면 24.07.22 3 0 12쪽
91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24.07.22 5 0 12쪽
90 필요가 없는 것들의 의미 24.07.21 3 0 11쪽
89 악마적인 말들도 가끔은 달콤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24.07.21 5 0 14쪽
88 왜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미는 없을지라도 24.07.21 5 0 12쪽
87 신들의 즐거운 한낮 24.07.20 8 0 11쪽
86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목소리를 붙잡아서 24.07.20 12 0 11쪽
85 또 다른 세상과 그 의미 24.07.20 5 0 12쪽
84 흘러가는 운명처럼 단지 그렇게 24.07.19 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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