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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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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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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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무덤이 없는 계절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무작정 살아온 삶이 어떤 가교가 될 수 있을까?

본인의 삶에든 타인과의 사이에든.

그런 의문을 뒤로 하고 나는 그저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다.






더웨인켈퍼시안경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벼운 산책을 끝으로

더는 할 것이 없어서

창가에 서서 그토록 눈부신 새 아침을

목격하고 있었다.

새로운 아침은 눈부시게 깨끗했고

놀라울 만큼 맑은 화려함으로

세상을 비우듯 다시 새롭게 채우고 있었다.

치우고 씻어내어 다시 완전한 신선함으로

또다시 더 만들려는 듯이.

세상의 모든 아침이 땅과 하늘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에 공기가 채워졌고

지상에 모든 생물들이 번식하며 뛰어놀던 그 이후로

언제나 새로운 아침이 거대하고도 잔잔하게

높고 큰 커튼처럼 다시 투명의 극치로

멀고 높은 허공에서 내려와서 드리워지듯이.

세상을 이토록 정화시키려는 아침의

고단하지만 정성스러운 노력에

공기도 세상도 뭔가가 점점 더 걷혀지려는 듯

어렴풋한 것들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고 섬세해지면서

뚜렷한 윤곽과 그만큼의 차분한 인상으로

변함이 없으나 변한 무엇들로

세상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더웨인켈퍼시안경은 아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특별히 선호하는 시간대도

하루라는 단위에서 있는 것도

역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겐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과 그저 똑같은 것이었다.

그도 이젠 살만큼 살은 것이다.




지난 세월이 별로 길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제자들을 <바위의 학교>에서 길러냈었다.

또, 다른 때에는 마법을 가르치던 왕국의

교관이기도 했었다.

군사 학교에서도 왕국의 특수한 단체에서도

그는 언제나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서서히 다른 삶을 꿈꾸고 있었다.

도저히 그럴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다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

다시 젊어지면 되려나?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도 자주 그의 마음 속에 출몰하는

늑대개에게 시달렸다.

그에게 자꾸만 다르게 변신하라고

충동질을 해대고

가끔은 강요질까지 하는 그 늑대개에게

그는 어쩌지를 못했다.

그때마다 그 늑대개가 시키는 대로 변하고 나면

그때의 그 모습은

평소의 자기 모습이 아닌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그토록 거대하고 놀라운 존경을

받고 살고 있었지만

그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그 나름대로의 다른 고민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은거를 하듯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세상에는 알려져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도 욕망에 사로잡힌 한 명의 평범한 짐승이었다.


그의 분노와 그의 애수는 그만의 것이었으므로

남에게 털어놓아도 그들은 이해도 못하며

그들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온 더웨인켈퍼시안경은

타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서로 공평하다면 그것처럼 완벽하게 명쾌한 것은 없었다.




이온더웨인켈퍼시안경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더듬듯 천천히 느리게 어루만졌다

망토를 입고 산책을 나갔다가

혼자서 식당에 가서

어느 누구에게도 지시를 내리지 않고

혼자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왔으므로

지금 이 방에서도 그는 망토를 여전히

등 뒤의 두 어깨에 매달고 있었다.

어깨를 천천히 열고 난 후에

그는 그 어깨 속에서

정사각형의 물건을 천천히

조심스럽다기보다는 세심하고

정성스레 꺼냈다.

원래 그의 신중하고 온화한 성격처럼.

그래서 그는 급하게 행동하고 급하게 내뱉는 말을

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정사각형의 물체는 정육면체로 보였다.

비스듬히 눈부시게 내리비치며 스며들어오는

햇살은 고독한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의 얼굴과

그 주변의 순백색으로 흰 눈보다 더 빛나고 있는

커튼까지 모두 엷고 담담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1664



숫자가 적혀있었다.

문자들로 천 자리 단위와 백 단위와 그 밑의 단위들까지

그렇게 숫자들이 아닌 표현으로 각각 적혀서있었다.

정육면체의 물체는 그의 왼손 손바닥 위에서

정확한 사선으로 기울어져서

한쪽 꼭지각점이 바닥에 초점처럼 놓이듯

기우뚱한 모습이 되어서 자체적으로 완만한 속도로

계속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신비하도록 광휘가 휘황한 섬세함으로

그 빛처럼 조용하고 고요히 떠 있었다.

그 작고도 경이로운 정육면체의

찬란한 신비를 바라보고 있는

더웨인켈퍼시안경의 얼굴은

그러나 표정이 매우 착잡하고 어두웠다.

크레뮐켑테이톤 가문의 어느 귀부인을 유혹해서

알아낸 정보로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거듭 거듭

고심과 초조한 과정을 거쳐서

겨우 획득한 물체였다.

또 그 이후로도 그가 유혹한 여자들은 많았다.



다시 왼쪽 어깨에 그 정육체의 물체를

천천히 침착하게 그러나 쓸쓸하게 집어넣은

이온 더웨인켈퍼시안경은 그곳을 떠났다.

망토를 풀어서 옷장에 집어넣고

개인적 업무로 쓰는 그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작고 비좁은 입식 탁자 위에

산적하여 놓아둔 편지들을

한 개 두 개 집어들고 아무것이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금일 내로 응답하시오.

속히 그곳으로 오시기를.

두 번 거절당할 수는 있어도,

세 번은 거절당할 수는 없소.

우리도 그만큼 오래 참아준 것이오.

귀하의 영광스러운 명성을 위해서

그렇게 여러 번 참아준 것이니까,

오늘 내로 달려오도록 하시오.


편지지는 곧 파랗고 금티가 날리는 글자들로

편해서 편지지의 글자들만이 아니라

편지지 전체가 화르르르르르,

불이 붙어서 타오르고는

조용하고도 거대한 광란처럼

느릿느릿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사라져갔다.

이제 편지지도 그리고

거기 적힌 내용도 없어졌다.

심지어 개봉했었던 편지 봉투마저도

없어졌다.

고개를 돌리고 탁자를 바라보던

더웨인케펄시안경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아예 협박이 아닌가.

두 번은 거절이 허락되지만

세 번은 거절이 허락이 안 된다니.

그러면 네 번은 또 어떻게 할 텐가.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졌다.

왕궁은 언제나 이렇게 제멋대로구만.

이것이 무소불위하다는 힘인가.

권력자들은 늘 이렇게 제멋대로들이다.

칼을 뽑아든 그는 탁자를 그냥, 콱!

찍어버렸다.

편지들의 일부가 칼날 아래 박혀서

탁자 위에 고정이 되었다.

칼날은 탁자를 뚫고 그 밑인

반대편의 공간까지

아래로 내려가서 마치 허공에

매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자신의 인생인 것만 같았다.

더웨인케펄시안경은 왼쪽 옆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 검집을 그냥 풀어서 땅바닥에

소리가 나게 내리치듯이 던져버렸다.

얼굴이 그답지 않게 붉게 상기가 되어있었다.

침착하고 온건하기로 자타공인 모두에게 극찬을 받던

그가 웬일로 오늘 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안 좋아 보였다.

그에겐 이제 오후가 다 저물기 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궁전으로 가야만 한다.

마치 법원에 반드시 약속된 기일에

출두라도 하는 듯한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전에서 그는 왕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예전에 그랬었듯이.

이제는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쪽에서 그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없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없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아도 되고

가기 싫다고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반대가 인생의 진정한 실체였다.

인간에게는 하고 싶다고 해서 그 모든 본능대로

하고 살았다가는 큰일이 반드시 터지고 말았다.

바로 즉각 터지든 멀고 먼 훗날에 터지고 말든.

하고 싶은 것도 본능이었고

하기 싫은 것도 본능이었다.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이렇게

오래 살아왔었나.

내 나이는 웬만한 사람들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건강이야 신체적 상태가

어떤 젊은이도 따라오지 못할

절대적인 왕성함을 지금까지도 소실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이 내 인생을 설명해주거나

나를 만족시켜 주었을까.

내가 나를 모른다면

이 세상에서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또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엔가는 살고 있을까.

나는 언젯적부터 내 내면이라는 동굴로

숨어들었을까.

처음으로 외도를 위해 나와 만나러 나온

연상의 유부녀를 만났던 날?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나서 그는

왕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몇 시간 일찍 가든 몇 시간 늦게 가든

왕궁도 그의 인생도

왕궁에서의 만날 오늘 계획 때문에

어긋나거나 일그러지지는 않았다.

그의 인생이 어긋난 지점은

그도 알 수가 없었지만.

왕궁은 오늘도 햇살이 번쩍거리고 있을 것이다.

고지대에 높은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주변의 접근을 허용치 않게

왕궁은 있었다.









인생을 다 바친 의미가 고작 그런 보답으로 돌아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을 하고 말 것이다.

이를테면 배신이라든가

아니면 소원해지듯이 멀어진다면.

그러나 조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들에게도

어떨 때는 가끔은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잘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건 모르겠지만.

왕궁 측은 이번에 포상을 내리기로 한 명단에

여러 사람들을 새로 추가시켰다.

그러나 그런 상과 훈장을 받으러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왕궁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외이겐테르델핀이 상을 받는 사람들 속에

포함이 새롭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어찌 된 일인지 더웨인케펄시안경의

친척 아이인 휘케텔프도 상을 받게 되어있었다.

어차피 그는 휘케텔프든 누구든

그런 별로 명망도 없고 한참이나 어린 사람들을

일일이 사교계의 관습대로 만나야 할 필요가 없는

굉장한 저명인사였으므로

자신의 친척인 어린 휘케텔프를 굳이

만나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외이겐테르델핀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어려도 한참을 어린 젊은이였으니까.

삶은 언제나 새로운 피를 원했고

세상의 곳곳마다 새로 흘러들어간 피가

세상의 혈관들 적재적소에 또 다른

날카롭고 선명한 영향력들을

다시 자국마다 새길 것이다.

그에겐 왕궁에서 내리는 포상보다

그들이 구속에서 풀어줄 계약의 해지가

더 절실했다.

그러나 왕궁 같은 높은 곳의 신경은

대단히 게으르고 우둔했다.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주변에서 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게 되고

또 신경질을 내도 거리낄 것이 전혀 없게 된다.

그래서 그토록 둔감해지는지도 몰랐다.

왕궁이 언제까지 그를 붙잡아두려고

그런 보이지 않는 속셈을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태도 속에

숨겨두는지 그는 계산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언제까지나 왕궁의 농간 아닌 농간 같은

그들의 인형으로 살 수는 없었다.

왕궁은 간사한 자들을 미워했으나

오히려 왕궁이 더 간사한지도 몰랐다.

그것도 몇 배는 더.

비밀한 장소로 가기 전에

일단 연회장 같은 곳들을 싫어도 들러야만 했으므로

더웨인켈퍼시안경은 천천히 둘러보는 심정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찾아갔다.

그때였다.

낯익은 얼굴들 속에서 낯익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어떤 소녀가 있었다.

그가 젊었을 적에 유혹했었던 여자를 무척 빼닮은.

미덴필트였다.

판타지 문피아 무덤이 없는 계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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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고요한 날들은 지나가고 다시 분주한 날이 또 다가오리라 24.08.05 3 0 11쪽
105 한낮의 적막한 화재 24.08.05 6 0 11쪽
104 누가 너희들의 엄마를 따뜻하게 먹여 돌아버렸나 24.08.05 3 0 12쪽
103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24.08.04 8 0 14쪽
102 성년의 망각 24.08.01 7 0 12쪽
101 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 24.08.01 5 0 15쪽
100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다 마찬가지가 인생이다 24.07.31 9 0 15쪽
99 사랑의 근본적인 비밀 24.07.30 5 0 12쪽
98 증오도 사랑도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24.07.29 6 0 14쪽
97 다시 세상에는 어둠이 또 내릴 것이다 24.07.26 8 0 11쪽
96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24.07.26 7 0 12쪽
95 짐승들의 슬기로운 시대 24.07.25 12 0 11쪽
» 무덤이 없는 계절 24.07.25 10 0 11쪽
93 세상에 음악이 들어있었다면 24.07.25 5 0 11쪽
92 사랑이 인생과 세상 속에 들어있다면 24.07.22 3 0 12쪽
91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24.07.22 5 0 12쪽
90 필요가 없는 것들의 의미 24.07.21 3 0 11쪽
89 악마적인 말들도 가끔은 달콤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24.07.21 5 0 14쪽
88 왜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미는 없을지라도 24.07.21 5 0 12쪽
87 신들의 즐거운 한낮 24.07.20 8 0 11쪽
86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목소리를 붙잡아서 24.07.20 12 0 11쪽
85 또 다른 세상과 그 의미 24.07.20 6 0 12쪽
84 흘러가는 운명처럼 단지 그렇게 24.07.19 3 0 11쪽
83 가장 많은 시련은 가장 많은 시도 속에 함께 있다 24.07.19 5 0 12쪽
82 내게도 운명은 동일할까 24.07.19 7 0 11쪽
81 음악과 시간의 강물 24.07.17 4 0 12쪽
80 3대의 피아니에지스테 : 3+1=3 24.07.16 8 0 11쪽
79 나무에 새겨진 글귀 24.07.16 3 0 11쪽
78 왜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인가 24.07.15 2 0 12쪽
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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