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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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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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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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누가 왔을까? 왜 왔을까?

이런 생각들과는 다르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이른 아침에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왜 굳이

이토록 빠른 시간에 찾아온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다 끝났건만

그녀가 왜 나를 찾아올까?

헤어진 연인이 이렇게 계속 머뭇거리며 머무르듯이

차마 떠나지 못하듯 또 찾아온다고?

의아한 마음에 굳이 상의를 걸쳐서

단추들을 일일이 잠그어 가며

더웬델러스케펠경은

손님을 응대할 준비를 했다.

세수까지는 하는 것보다는

눈꼽들만 일단 달려있는지

손가락으로 비벼서 들여다보기만 했다.

달라붙어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냥 응접실로 가기로 했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까

길고 긴 머릿결의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의자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침착하게 다가가면서

더웬델러스케펠경이 물었다.

아니,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날 왜 찾아온 거야?

반말이 그냥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더웬델러스케펠경의 몸속에서 어디에 들어있었는지

튀어나왔다.

돌아보며 천천히 일어서는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수줍고 어색하게 희미한 웃음을 간신히 지었다.

그 미소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착잡함과 미안함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종류의 감정들을

한꺼번에 다 느끼면서 더웬델러스케펠경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문득 아침 식사 생각이 떠올랐다.

그도 그렇지만 그녀도 아침을 아직 먹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맞는지 그 얘기부터 해야겠다고

그가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차츰 서두를 것도 없이

차분하게 다가갔다.

그녀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러나 그리운 것도 같고 애상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한

예전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변한 모습인 것만 같은 모습으로

레이피엘페이셔스가 그곳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울상인 것 같기도 하고

기뻐서 어색하고 소심하게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가 이상했다.

그러나 너무도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더웬델러스케펠경은 그저 어서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말을 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심정적으로는 너무도 오랫만에 만난 것만 같이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싶었다.

멀찍이서 대화를 하는 건 좀 그랬다.

그녀에게 악수를 신청할까, 아니면 정답지만

별 뜻은 없게 포옹을 할까.

망설이며 다가가는 그에게 그녀가 슬프고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두 팔을 벌렸다.

어설픈 동작이 아니라 뭔가 상황과 잘 맞는 것이

아니라서 어설픈 식이었다.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면서 그가 말했다.

왜 이렇게 일찍 찾아온 거야? 뭐가 대단히 급한 것이라도 있었어?

그가 그녀 뒤의 막연한 것들을, 가구와 벽과 벽지와 바닥 같은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품에 안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급한 게 있기는 있어서 찾아왔지. 이렇게 이른 아침에.

그가 뭔가 다른 느낌에 놀라서 몸을 떼고

그녀를 다시 내려다보자

그녀는 사악하고 괴상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그의 배와 가슴에는 깊은 구멍들이 몇 개가 뚫려있었다.

그가 놀라서 아래를 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그녀는 점점 더 변하고 있었다.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아니라 외이겐테르델핀으로

점점 더 그녀는 아니 그는 변하고 있었다.

넌, 넌... 너는...

처음 보는 낯선 젊은 남자 때문에 경악으로

말을 못 잇고 있는 더웬델러스케펠경에게

외이겐테르델핀이 천천이 말했다.

내가 찾아올 줄은 미쳐 몰랐겠지?

싸늘하고 차갑게 빛나는 미소에는

어떤 따뜻한 애정도 없었다.

당연하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겠어?

라는 말은 하지도 못하고 몸의 통증과

그리고 그보다 더 심한 정신적 충격에 그는

그냥 두 눈만 계속 껌뻑거리면서

눈앞의 처음 보는 남자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왕궁에서 보낸 사람이야.

그것만 그것까지만 알고 있으라고.

그리고 나는 이만 떠나야겠어. 몹시 바쁜 몸이시라서.

외이겐테르델핀이 이상하게 예리하고 몹시 번쩍거리는

감수성으로 몸을 멋지게도 순간적으로 한 번 홱, 틀면서

옷자락이 빙그르르르 회전했다.

그가 떠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라서 아! 라는 굉장히 큰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른

더웬델러스케펠경에게 그냥 순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외이겐테르델핀이 등을 돌리며 앞으로 유령처럼

어떤 소리조차 없이 대단히 매끄럽게 나아가고 있었지만

이미 몇 백 개의 단검들이 그대로 허공에서

더웬델러스케펠경에게 직격하듯이 미친 듯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 3자루의 모두 칼날에서 번쩍거리며

빛이 반사되던 단검들이었음을

더웬델러스케펠경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몇 백 자루의 단검들로 변해있었다.

더웬델러스케펠경이 두 팔을 겹쳐서

서로 엇갈리게 사선으로

가슴 앞에 모으자

파랗고 진한 광선막이 둥근 원으로 나타났다가

점점 더 크게 확장되면서 정사각형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길고 넓은 직사각형인 파란 빛들의 막으로

변해버렸다.

가느다란 김들처럼 끝없이 작은 연기 같은 빛들이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빛의 차단막이

더웬델러스케펠경에게서 떠나지 않고

그의 앞에 버티고 있어서

단검 수백 자루들은 다 일일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실내의 바닥에 떨어진 단검들은 대단히 빨리

쉭,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짧은 연기 한 줄기들로

각자 다 변하더니 신속하고 경쾌하게

모두 다 사라졌다.

실내의 바닥에는 융단으로 만든 양탄자와 의자들과

탁자들과 기타 다른 가구들만 남아있고

그 외에는 사람도 다른 사물도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다시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가슴 앞을 보호하던 두 팔을 내리면서

더웬델러스케펠경은 아무런 혼잣말도 하지 않았다.

방안에는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창밖에서 아침이 되어서 들려오는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마저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타났던 것은 단지 낯선 불청객이

옛 연인의 모습으로 변장이나 혹은 변신을 하고서

자신의 몸에 부상이나 입히고 떠나간

짧고도 믿을 수 없게 어이없던 순간들의 기억뿐이었다.

배가 고프다고 더웬델러스케펠경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요새 나는 부상을 여러 번 자주 당하는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씁쓸한 생각에

그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그녀는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그건 그래도 다행이잖아.

불행하게도 그녀가 직접 찾아와서

그런 짓을 저지르고 떠난 경우는,

그래도 아니라고.

억지로 가장 좋은 쪽으로 그는 생각을 고쳐서

다시 하려고 애를 썼다.

막상 그녀가 누구를 돈을 주고 고용을 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었건만.

왕궁에서 보냈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외이겐테르델핀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을 이유라고는

전혀 없는 더웬델러스케펠경은 그저 쓴웃음만 지으며

피가 흐르는 몸을 여기저기 만져서

손바닥에 묻은 피를 확인하고는

옷도 갈아입고 부상당한 곳도 치료도 하고

또 몸도 씻고 얼굴도 세수도 하고

아침 식사를 정식으로

오늘 하루의 첫 식사로 하기 위해서

응접실에서 나갔다.

돌아서서 그 방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허탈하게 기운이 빠져나간 것처럼 약간은 쓸쓸했다.

아침은 언제나 그랬듯이 눈이 부시게 맑고 차가워서

세상을 여는 새 시도로 높이 높이 그리고

싸늘하게 전날의 여러 가지가 멀어지고 있었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질 것이다.

오늘도 또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들이.

어제와 같았으나 오늘은 달라진 그

오래되고도 새로운 것들이.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침대보에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공허한 것 같기도 하고 분노한 것 같기도 한

그 눈빛에는 차가운 면적만큼 허무하게 비워진

정신적인 공백이 엿보였다.


벗은 상반신에는 온통 흰 붕대를

여러 겹으로 감고 있었다.

붕대들을 여러 번 갈아주었기에

이제 붕대에는 피는 배어있지 않았다.

싫은 날들이 이런 것이라고

오래간만에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잘 하지 않던 분노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긴 검은색 바지를 입고 아무렇게나

그러나 최대한 힘을 줘서 꼿꼿하게

정좌를 하고 앉아있는 데이모레페이게스는

이제는 웬만큼 부상에서 회복이 된 듯싶었다.

이 치료를 위해서 그가 비장해두고 있었던

마법을 걸어두었던 치료제가

대량으로 소진이 되었다.

이 마법 치료약을 위해서

그는 3년치 식량분에 해당하는 대금을 지불해주고

구입을 오래전에 해두었었다.

산속에 쳐박혀서 살고 있는 작은 집단들이

의외로 굉장한 수준의 마법들을 몇 가지 종류에

국한된다고는 하지만 가끔 보유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의 신분과 직책상 그는 그런 신기하고 낯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과 그런 정보들을

자주 접하고 자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것들은 미리미리 선구매를 해두면

나중에 언젠가는 잘 쓸 때가 올 것이다.

그의 안목이 이제서야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되었다.

대단한 영약답게 치료는 잘 되었다.

빠른 속도로 몸이 좋은 상태로 돌아왔다.

완전히 경이롭게 완전무결하게

회복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파란색 작은 물병에 든 걸

마시고 또 수시로 그 환부에도 발라주라고

그 산골 주민들은 팔면서 사용법도 함께

가르쳐주었다.

연보라색과 엷은 선홍빛이 함께 섞인 액체를

마셔가며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지가

3일이 다 되어갔다.

아직도 며칠은 더 요양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내가 의사처럼

의학 상식도 갖춰야만 하는 거 아니야?

그는 슬픈 마음에 이가 꽉 깨물어졌다.

좁혀진 미간과 두 눈매에 살기(殺氣) 같은

서글픈 분노가 내비쳤다.

이렇게 대패(大敗)를 해본 적은

그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것도 보석 보관자 훈련 과정에서

그는 가르친 적도 없는

평범한 재능이었던 보석 보관자인

소년 한 명에게

이렇게 무참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오늘 따라 해도 잘 뜨지 않은

창밖은 그냥 흐린 날씨였다.

먼 창가 밖으로 더 멀고 더 어렴풋한

산맥과 구름들과 들판이 흐릿하고 희미하게

아주 사소한 크기로 멀리서 보였다.

식사는 하면 안 되었으니까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며칠을 더 이렇게 앉아서만 지내야 할지

그걸 잘 모르겠지만

몸이야 부상이 다 회복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엔 최종적으로는.

몸이 너무 고달퍼서 그러는지

자꾸 옛 생각이 났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알고 보니 보석 보관자의 한 명인

휘케텔프의 작은 이모라는.

인생에서 손해와 이득이라는 공식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 수학 공식에서 예외를 적용한

최초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녀도 역시

그 인생의 수학 공식대로

모든 계산을 다 끝낸 후에는

그는 버리고 말았다.

심정적으로도 저버렸다.

그게 잘한 것일까, 그 후로도 몇 십 년째

그는 가끔 그 생각에 매달렸다.

그녀도 자신처럼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더 이상은 그렇게 눈부시도록

생기가 가득하게 젊지도 또 예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그녀였다.

후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책감도 아니고

이상한 허무만이 덧없게 그리고 쓸쓸하게

그의 가슴을 물들일 때면

그는 연하게 물들어가는 노을진 창가에서

창밖만 내다보았다.

노을이 지고 나면 마치 자신의 감정도 가라앉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러나 그 다음 날에도 해는 또 새롭게 떠올랐고

또 계속해서 언제나 날마다 매일매일 새로운 해가

또 뜰 것이다.

그 다음 날이 되기만 하면.

내가 이 인생의 여행길을 일부러 이 길로

골라서 들어왔으니까,

어찌 되었건 이 길에서 이탈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젠 그게 맞는지도 자꾸만 의심스러워졌다.

드디어 데이모레페이게스도

자신이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이 자신을 떠나가기 시작하는,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판타지 문피아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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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고요한 날들은 지나가고 다시 분주한 날이 또 다가오리라 24.08.05 3 0 11쪽
105 한낮의 적막한 화재 24.08.05 6 0 11쪽
104 누가 너희들의 엄마를 따뜻하게 먹여 돌아버렸나 24.08.05 3 0 12쪽
103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24.08.04 8 0 14쪽
102 성년의 망각 24.08.01 7 0 12쪽
101 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 24.08.01 5 0 15쪽
100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다 마찬가지가 인생이다 24.07.31 9 0 15쪽
99 사랑의 근본적인 비밀 24.07.30 5 0 12쪽
98 증오도 사랑도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24.07.29 6 0 14쪽
97 다시 세상에는 어둠이 또 내릴 것이다 24.07.26 8 0 11쪽
96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24.07.26 7 0 12쪽
95 짐승들의 슬기로운 시대 24.07.25 12 0 11쪽
94 무덤이 없는 계절 24.07.25 10 0 11쪽
93 세상에 음악이 들어있었다면 24.07.25 5 0 11쪽
92 사랑이 인생과 세상 속에 들어있다면 24.07.22 3 0 12쪽
»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24.07.22 6 0 12쪽
90 필요가 없는 것들의 의미 24.07.21 3 0 11쪽
89 악마적인 말들도 가끔은 달콤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24.07.21 5 0 14쪽
88 왜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미는 없을지라도 24.07.21 5 0 12쪽
87 신들의 즐거운 한낮 24.07.20 8 0 11쪽
86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목소리를 붙잡아서 24.07.20 12 0 11쪽
85 또 다른 세상과 그 의미 24.07.20 6 0 12쪽
84 흘러가는 운명처럼 단지 그렇게 24.07.19 3 0 11쪽
83 가장 많은 시련은 가장 많은 시도 속에 함께 있다 24.07.19 5 0 12쪽
82 내게도 운명은 동일할까 24.07.19 7 0 11쪽
81 음악과 시간의 강물 24.07.17 4 0 12쪽
80 3대의 피아니에지스테 : 3+1=3 24.07.16 8 0 11쪽
79 나무에 새겨진 글귀 24.07.16 3 0 11쪽
78 왜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인가 24.07.15 2 0 12쪽
77 내가 아는 세상 24.07.10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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