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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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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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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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성년의 망각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저것들은 원래부터 논리라는 게 없는 인간들이라네.

그러니 자네가 그냥 이해하게나.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엔티레이미크는

조용하고 인적 드문 풀밭에 앉아있었다.

가을이 찾아와서 이미 풀빛이 아닌,

다른 느낌과 그런 다른 장소였지만

그런 곳과 그런 곳에서

언제부턴가 계절이 전환되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논리라고 하는 건

오직 자기들을 합리화시킬 때만 나타나고

다른 경우에는 논리 같은 것들은

아예 그냥 무시하고 살아가지.

타인들을 대할 땐 논리 같은 건

필요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논리라는 건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인간들이라네.

다른 것들을 너무 절실하게 추구하니까.

다 그런 것이 아니겠나.

모두가 다 그러고 살아간다네.

먼 곳에서 떠가는 구름들이 하얗게 은빛으로 빛났다.

햇살이 뻗어오는 것 같았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아주 멀고 먼 곳에서.

앉아있던 엔티레이미크가

더웨인케펄시안경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뭘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요?

글쎄, 욕망들?

논리들이나 이론이나 사상 같은 다른 건 없을까요?

엔티레이미크는 선선히 말했다.

욕망들 말고도 다른 것도 있겠지. 명예나 그런 것.

그런 것들 말고는 다른 것들은 없습니까?

아마도 없겠지? 논리라는 것 자체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자주, 그것도 논리 자체가 아예 바뀌는

인간들이니까.

엔티레이미크가 가는 줄기 하나를

잔디밭에서 뽑아서

손으로 만지작거리듯 가지고 있다가

가볍게 휙, 그리고 천천히 던지면서 다시 말했다.

그는 저 멀리 아래에 펼쳐진 산밑 마을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시야가 무한대로 펼쳐지면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욕망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걸까요?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그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왜? 자네는 욕망이 없나?

좀 징그럽잖아요? 욕망이라는 것은?

특히 육체적인 욕망들은.

어린애들이 하면 어떤 장난이나 거짓말도 귀엽지만

다 큰 어른들이 똑같은 짓을 하면

뭘 해도 전혀

그런 느낌은 들지도 않고

그냥 역겨울 때가 가끔 있듯이요.

종류가 뭐건간에 욕망들도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팔짱을 끼고 담담히 서서

멀리 저 앞 어딘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얼굴은

평온하고 평화로워서

고요한 명상처럼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

뭔가 다른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그의 앞에서 지나가고

나무들의 나뭇잎들이 잎새들마다 약간 술렁거렸다.

좀 그렇기는 하지. 해도 해도 너무 지나친

강렬한 욕망은.

탐욕이 뭐가 되었든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좋을 게 없지.

다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늙은 남자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어린 소년은 앉아있었다.

오래되고 새로운 두 전설적인 존재의 뒤에는

나무들이 멀찍이

뒤로 물러서 따로 떨어져있었고

그래서 엔티레이미크도 어느 누구도

나무에 기대고 있지 않았다.

사방의 정적이 스산하고

아주 가느다란 바람소리처럼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가

그렇게 고요가 아주 투명하게 오고 갔다.

가을빛이 차츰 나무들과 풀밭마다 찾아오고 있었다.

엔티레이미크는 한참 동안을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엔티레이미크가 말했다.

저를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소리는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별다른 뜻은 없어 보였다.

평온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더웨인케펄시안경이 말했다.

순진하구만.

내가 자네를 도와주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나는 자네를 도와주는 게 아니야.

그럼 뭡니까?

엔티레이미크는 그저 먼 곳인 산 아래의

시야도 잘 닿지 않을 가물거리는 작은 마을들을

내려다보면서 감정은 실려있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면 장차 있을 투자 같은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

아니면 그냥 같은 사업자이거나.

같이 돕고 돕는 그래서 수익을 적당하게

배분하는 관계?

엔티레이미크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저도 언젠가는 교관님을 도와야만 합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약간 싱글벙글 재미있다는 듯이

더웨인케펄시안경이 미소를 지었다.

마을은 지붕들도 잘 보이지 않고 가물거렸다.

그래서 그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지붕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집과 비교하면 훨씬 더 작았으니까.

자꾸 이러시면 교관님도 위험해질 수

있을 텐데요?

글쎄, 그게 그러려나? 꼭 그럴까?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은 다시 또 웃었다.

그런데 자네에겐 교관이 여러 명이었지?

데이모레페이게스든 누구든?

그건 그렇죠.

자네라고 나이보다 훨씬 더 존중하는 호칭을

더웨인케펄시안경에게서 들으면서

그저 담담히 엔티레이미크는 대답했다.

언제까지 나를 계속 교관님이라고 부를 건가?

글쎄요.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뭐가 좋을까? 사업상 친구?

그건 아닐 것 같은데요.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저 앞의 소나무 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먼 곳으로 향하는 바람 한 가닥을 쳐다보며

다시 웃었다.

편하게 그냥 정하고 그냥 아무거나

그걸로 부르게나.

엔티레이미크는 그냥 아무 말이 없었다.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로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둘은 별로 친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아닌

그저 같이 있는 그 상태로 말없이

앞산 위의 높고 높은 곳에서 떠가는 흰 구름들과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가끔 부드럽게 스치듯

건드리고 가는 바람 몇 줄기들을 느끼면서

잠깐 한동안을 같이 그렇게 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이든 서로 같은 생각이든

뭔가 둘 다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조금씩 조금씩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외출을 하지 않으므로

그녀가 구태여 배에 복대를

감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실내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마음은 타인들 때문에 불편해지고

그런 것은 없었다.

의식할 타인들의 시선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냥 텅 빈 평화였고

그저 따분한 날들이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고뇌도 고통도 불편도 없는.

배가 점점 나오면서

건강도 미묘하게 힘들어졌으나

그런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공허했다.

무한대의 이기심도

정말 축복 받은 재능일 수 있었으나

그녀는 별로 그렇게 축복 받은

재능이랄 것이 없었다.

특별하게 이기적이지도 않았고

특별하게 대단한 다른 구석들도 없었다.

음악에 있어서 대단한 재능들

그런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 외에는 미모도 가지고 있었고

또 태어났을 때부터 대귀족 가문이라서

굉장한 사회적 지위와 그런 재산도

가지고 있었다.

당장이 아니라 언젠가 물려받게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점은 왕족들이 더 대단했다.

당면한 인생의 문제들을 그녀는 해결한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럴 능력은 그녀에게는 없었다.

피아노를 아무리 잘 쳐도

작곡을 아무리 잘 해도.

집에서까지 귀가를 하고 나서도

다시 또 피아노만을 잠도 자지 않고

연주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집에서마저도 모든 것을 미루고

피아노만을 연주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고 해도

집에서 잠도 안 자고 매일매일

꼬박 밤을 새워가면서

작곡만 평생을 하지도 않는다.

피아노 연주 실력과

인생 제반의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나 현명함은

아무런 비례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그런 사람에게

사소한 갈등 하나 조정할 협상 능력도 없었다.

음악적 재능과 인생사 온갖 고난을 해결하고

조정하며 조절하는 지적 능력은 별개였고

각자가 전혀 딴 세상이었다.

















문득 엔티레이미크가 물어보았다.

젊은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뭘 가장 해 보고 싶으십니까?

엔티레이미크는 잘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 맑은

공기 어디 속에서 있는 듯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더웨인케펄시안경의 모습과는 상관 없이

목소리만 들려왔다.



나?

갑자기 더웨인케펄시안경은 막 웃기 시작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데. 이것저것 모든 것들을

너무 많이 즐겨보고 해 봐서.

나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운이 좋았던 인생이라네.

모든 행운을 골고루 다 소유해 봤다네.




한참 동안 비어있는 적막이 흘러갔다.

가끔 어떤 적막은 비어있고

어떤 적막은 가득 차 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긴장처럼 가득 들어있는 것만 같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허전한 적막이었다.

다시 더웨인케펄시안경이 말했다.

후회 같은 걸 자네가 말한다면,

나는 그런 후회보다는 시도 같은 걸

말해 보고 싶네.

나는 그때 젊은 시절로 만약 돌아간다면

젊음이라는 가장 푸르고 생기가 넘치던 때답게,

아름다운 연애만 줄창 해보고 싶군.

다시 더웨인케펄시안경이 조용히 웃는 소리가

연신 유쾌하게 들려왔다.

다시 사방에 정적이 깔리고 점점 더

적막마저도 멀어져갔다.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자신의 저택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배가 점차 불러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외부에서는 없었다.

지나친 관심, 지나친 집착, 지나친 사랑, 지나친 열정,

레이피엘페이셔스에게는 그저 다 귀찮고 싫었다.

그러나 그녀가 배가 점점 더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새를 보냈다.

왕궁에서도 곧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왕궁이 잘 모르고 있는 점이 있었는데

더웨인케펄시안경은 담대하기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정말 놀라운 수준인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 먹고 이루지 못한 것은

손에 꼽을 만큼 실로 적었다.

늙을 대로 늙어서 더 이상은

마음에 피가 돌고

설레임이라는 음악이 혈관마다 돌아다니는,

그런 이상한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건만

의외의 곳에서 그의 잃어버린 옛 흥분과

옛 기억을 되살려줄

그런 대상을 찾았다.

그 상대가 지금 임신을 하고 말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왕세자의 아내가 될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 해도

그것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더웨인케펄시안경에게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끈기가 있었고

그의 고집과 의지는 세상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탁월하고 예리한 것이었다.

그가 끊지 못할 고난과 뛰어넘지 못할 위기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왕궁에서는 그런 점을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지만.

왕궁이 언제 그런 점들을 신경을 쓰던 장소였던가.

왕궁은 모든 사람들을 하찮게 여겼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대하는 태도에서

그런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자꾸만 하달되는

지시에서 저절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지시들을 그것도 그렇게 자주

반복적으로 내려보낼 리가 없었다.

더웨인케펄시안경에 대해서도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무관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은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었고

왕궁의 개나 왕국의 짐마차를

끌고 달리는 말이

될 생각이 없었다.

타고난 온화한 태도와

거의 평정에 들어간 경지처럼 느껴지는

담담하고 호수처럼 정지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짐작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내면의 소유자였다.

언제 또 다른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그의 모습을 뚫고 새롭게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속에 몇 개의 서로 다른

이온 더웨인케펄시안경이

들어있을지는 그도 잘 몰랐다.

그때 그때 그 상황마다 가 봐야 다 알 수 있었다.

판타지 문피아 성년의 망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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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고요한 날들은 지나가고 다시 분주한 날이 또 다가오리라 24.08.05 3 0 11쪽
105 한낮의 적막한 화재 24.08.05 6 0 11쪽
104 누가 너희들의 엄마를 따뜻하게 먹여 돌아버렸나 24.08.05 3 0 12쪽
103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24.08.04 7 0 14쪽
» 성년의 망각 24.08.01 7 0 12쪽
101 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 24.08.01 5 0 15쪽
100 그러나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다 마찬가지가 인생이다 24.07.31 8 0 15쪽
99 사랑의 근본적인 비밀 24.07.30 5 0 12쪽
98 증오도 사랑도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24.07.29 6 0 14쪽
97 다시 세상에는 어둠이 또 내릴 것이다 24.07.26 8 0 11쪽
96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24.07.26 6 0 12쪽
95 짐승들의 슬기로운 시대 24.07.25 11 0 11쪽
94 무덤이 없는 계절 24.07.25 9 0 11쪽
93 세상에 음악이 들어있었다면 24.07.25 5 0 11쪽
92 사랑이 인생과 세상 속에 들어있다면 24.07.22 3 0 12쪽
91 욕망과 사랑의 방정식 24.07.22 5 0 12쪽
90 필요가 없는 것들의 의미 24.07.21 3 0 11쪽
89 악마적인 말들도 가끔은 달콤한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24.07.21 5 0 14쪽
88 왜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미는 없을지라도 24.07.21 5 0 12쪽
87 신들의 즐거운 한낮 24.07.20 8 0 11쪽
86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목소리를 붙잡아서 24.07.20 12 0 11쪽
85 또 다른 세상과 그 의미 24.07.20 5 0 12쪽
84 흘러가는 운명처럼 단지 그렇게 24.07.19 3 0 11쪽
83 가장 많은 시련은 가장 많은 시도 속에 함께 있다 24.07.19 5 0 12쪽
82 내게도 운명은 동일할까 24.07.19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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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3대의 피아니에지스테 : 3+1=3 24.07.16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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