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후후후... 무슨 소리지.. 후후...
랭커. 랭킹 20위권 안의 사람들이다. 말이 랭커지 그냥 약한 놈 of 약한 놈들.
그런 놈들이 왜 안전한 약한 마을에서 이곳으로 오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약함을 어필해 랭킹을 올리려고.
그런 쓸데없는 이유 덕에 강한 마을은 주기적으로 이렇게 준비를 해야 했다.
혹여나 더럽거나 위험한 물건을 안 치워서 랭커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사람은 그대로 ‘약한 이를 다치게 한 불명예스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아무리 게으른 히키라 해도 주변에서 안 좋은 눈초리를 받으며 살고 싶진 않다.
“이쪽으로는 잘 안 오던 놈들인데. 내가 괜히 이런 구석에 여관을 처박아놓은 게 아니라고...”
히키가 툴툴거리며 카운터를 열심히 닦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안 올 것 같은데. 조심은 해야겠다.’
랭커들의 눈 밖에 났다간 약한 마을로 가긴 무슨 당장 약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밖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뿌우-
“아. 젠장. 벌써 온 거야?”
히키가 나팔 소리의 정체를 가늠케 해줬다. 그녀는 조용히 여관의 모든 불을 꺼버렸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는 작전이다.
어차피 골목 가장 안쪽에 있을뿐더러 애초에 이 골목에 들어올 이유도 없었다. 이 골목엔 정말 볼거리가 없으니까.
‘...음. 랭커라고...’
앙피는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랭커라는 뜻은 곧 엄청나게 약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럼 대체 어느 정도로 약한 걸까 궁금했다.
“...저.... 히키 님. 랭커들을 구경해도 되나요...?”
“굳이..? 그 약한 놈들을 뭐하러. 구경하는 건 상관없긴 한데.”
“...얼마나 약한지 궁금해서요.”
“어... 그러렴. 여관에서 멀리 떨어져 주기만 해.”
그나저나 얼마나 약한지 궁금하다니. 히키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앙피를 쭉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뭔 인간도 아닌 것들과 다니면서 음식 같지 않은 것(?)을 먹질 않나, 게다가 어제 앙피가 소환술을 쓰는 것까지 목격했다.
‘이상한 놈이랑 엮이지 말자.’
히키는 앙피를 내보내고 카운터 밑에 웅크려 눈을 붙였다.
그사이 앙피는 슬금슬금 골목을 빠져나왔다. 저 멀리서 랭커들의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저렇게 큰 소리를 듣고 죽지는 않는구나.’
“저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자꾸 오는 겨.”
“아이고. 약하면 얌전히 약한 마을에서 쉴 것이지. 뭐 한다고 온대.”
몇몇 근육맨들은 그들의 행차가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랭커 놈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점을 집요하게 이용했다.
이미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3명의 근육맨이 불명예를 안고 마을에서 퇴출당하였다.
근육맨들은 앙피에게도 조심하라 일러줬다.
“랭커분들 행차다!”
랭커 옆에 건장한 남자 하나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드디어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나게 큰 소파 3개에 골골거리는 랭커들이 앉아있었다. 수 명의 사람들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들을 들고 나르고 있다.
이렇게 랭커를 도와주는 근육맨들을 ‘헬퍼’라 부른다.
‘...우와. 힘들어 보여.’
앙피는 랭커 중 뚱뚱한 남자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별 뜻이 있다기보단 문득 고향의 골푼이 생각나서다.
근육맨들은 그들을 피해 길 끝으로 붙어섰다. 앙피도 그들을 따라 벽에 붙었다.
그때 랭커들이 앙피의 앞에서 멈춰 섰다.
“흐음. 저 녀석은 누구냐? 저렇게 약해 보이는 녀석이 왜 여키..쿨럭.”
랭커 중 머리가 다 까진 남자가 앙피를 가리키며 화를 냈다.
앙피의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견제하는 것이다.
“저놈 때문에 피를 토했어! 당장 내보내!”
뚱뚱한 랭커가 굵은 손가락으로 앙피를 가리켰다.
“....네?”
앙피는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눈만 끔뻑거렸다.
하지만 랭커 뒤를 쫓아오던 헬퍼들은 곧장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번쩍 앙피를 들어 올렸다.
“...잠시만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앙피가 버둥거렸지만 밑의 헬퍼들은 이상할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지금이다!!”
옆의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괴물 같은 피지컬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랭커들을 둘러쌌다. 모두가 빨간색 두건을 두르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앙피에게 뛰어와 앙피를 붙잡은 헬퍼들을 제압했다.
“소년! 오랜만이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문박이었다. 그는 헬퍼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빨간색 두건 무리 가운데에서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대장!”
“한 마디 해줘 대장!”
권력을 악용하는 약한 자들을 바로잡기 위해 뭉친 이름하여 ‘혁명군.’
(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판사님. - 혁명 여관의 히키 올림)
대장으로 불리는 자가 확성기에 입을 갖다 댔다.
“후후후. 이 몸 등장.”
“...?”
그 중심이자 리더. 나영웅 등장.
이 남자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선 지난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밀거래(앙피의 심부름)를 위해 여관을 나선 나영웅은 곧장 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다.
“후후.. 밀거래의 기본은 암구호.”
나영웅은 어두운 골목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앙피에게 전달받은 암구호를 속삭였다.
“밥.”
하지만 대부분 측은한 눈빛으로 나영웅을 쳐다봤다.
“후후후... 이상하군. 왜 하나 같이 먹을 걸 챙겨주는 거지. 이세계 음식치고 나쁘지 않군.”
나영웅이 동냥 받은 음식을 쩝쩝 받아먹으며 오래된 건물로 다가갔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상한 건물이다.
그는 건물 앞의 덩치에게 다시 암구호를 뱉었다.
“밥.”
“...? 어떻게 내 이름을?!”
혁명군의 문지기, 밥이 놀란 듯 그를 맞이했다.
“그 작전을 위해 왔다네. 나의 마스터의 명령이지.”
“....들어와.”
“후후...”
그렇게 나영웅은 혁명군의 본거지로 들어갔다.
혁명군은 한창 회식을 하며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다.
“젠장. 내 동생이 그 녀석들에게 잡혀간 이후로 돌아오질 않아!”
“내 친구도 마찬가지다. 헬퍼를 하러 가더니 소식이 끊겼어.”
헬퍼. 약한 랭커들을 위해 자원 혹은 뽑혀서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헬퍼들이 일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 점을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랭커들이 헬퍼를 세뇌했어.”
그 누군가가 바로 문박.
우연히 기차를 점검하기 위해 약한 마을에 들렀다가 해당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혁명군의 리더인 문박은 그들의 악행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혁명군 모두를 모았다.
그리고 작은 만찬을 열어 어떻게 랭커들의 갑질을 막을 것인지에 대해 의논 중이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나영웅.
“후후.. 이곳인가. 나의 첫 스토리가.”
“누구냐. 넌.”
고기를 뜯던 문박이 나영웅을 노려봤다.
“이 몸은 나영웅. 세계를 구할 몸이지.”
나영웅이 방구석에서 수백 번 연습했던 대사를 뱉었다. 고기 냄새를 맡아서인지 침이 가득 들어찬 발음이었다.
“세계를 구해?”
“그래. 너희가 밀거래 대상이군. 그 밥을 내놔라. 그렇다면 너희의 바람을 이루어주지.”
나영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의 바람... 네가 누군지 알고 우리가 믿지. 저 녀석 잡아.”
문박의 명령에 나영웅은 순식간에 잡혀 무릎을 꿇었다.
“후후... 이런이런. 이 선택을 후회할 텐데?”
“그 녀석. 랭킹이 몇 위인지 봐라. 분명 랭커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보낸 게 분명해.”
근육맨들이 사정없이 나영웅의 몸을 수색했다. 나영웅은 고문을 참듯 표정을 숨기고 가만히 있었다.
“...랭킹 명찰이 없습니다.”
그야 당연하다. 나영웅은 검문소에서 랭킹 테스트를 받지 않았으니까.
나영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후후후.. 이 몸의 랭킹은. 당연히 0위다.”
무슨 개소리지.
“뭣?”
“난 모든 것을 끝마치며 모든 것을 시작할 존재. 그렇기에 무엇보다 강하며 무엇보다 약하다.”
나영웅이 헛소리를 하며 서서히 일어났다. 그의 둥근 턱선이 반짝 빛났다.
그 모습이 혁명군에겐 마치 신의 재림처럼 보였다.
“정말 한심하군. 랭킹 따위에 목숨을 걸다니. 이 몸에겐 너희 모두 똑.같.다.”
나영웅의 말 한마디에 혁명군 모두가 동시에 깨달았다.
“랭킹 따위 부질없다..!”
혁명군은 일제히 랭킹이 적힌 명찰을 뜯어 던졌다. 그리고는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대장! 저분이 우리의 대장이다!”
“후후후... 무슨 소리지.. 후후....”
***
그렇게 다시 현재.
얼떨결에 근육맨들의 대장이 된 나영웅은 한껏 들떴다.
모두가 자신을 따르는. 그야말로 이세계 주인공다운 모습.
“후후... 너무 좋아...”
혁명군은 일제히 랭커들에게 달려들어 헬퍼들을 떼어냈다.
“정신 차려! 이놈아!”
하지만 헬퍼들은 정말 하나같이 세뇌라도 당한 듯 멍한 상태였다.
그렇게 난장판이 된 도로.
“후후.. 괜찮은가 마스터여.”
나영웅이 앙피에게 손을 건넸다.
‘...손이 정말 포근... 아니 포동하다.’
“ㄱ...고마워요.”
그리고 그 순간 랭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저. 저기 저 애매하게 생긴 녀석이 대장이다! 저놈을 잡아!!”
랭커들은 헬퍼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어디론가 도망가버렸다.
“후후.. 우리 마스터는 애매하지 않다고.”
“...”
그때 헬퍼 여러 명이 앙피와 나영웅을 향해 뛰어왔다.
나영웅은 당차게 앙피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대는 도망가게. 여긴 이 몸이 처리하지.”
“네..!”
앙피는 자신이 너무 편견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멋진 분을 소환 해제하려 했다니.
그렇게 여관으로 도망가던 앙피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근육맨들에게 잡혀 있는 나영웅이 보였다.
“후후.. 약한 자에게 힘을 쓸 필욘 없지. 그러니 나 좀 놓아주게. 놓아달라고.”
-쾅.
앙피는 헐레벌떡 여관의 문을 열었다.
하마터면 랭커들의 눈에 찍혀 약지 밖으로 쫓겨날 뻔했다. 아직 약한 마을로 갈 방법도 못 찾았는데.
“ㄴ...너!!”
“....?”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여관 안에는 세 명의 랭커가 서 있었다.
뚱뚱한 놈, 머리 까진 놈, 비실한 놈.
기껏 도망친 곳이 하필 랭커가 온 곳이라니.
“...어떡하지....”
그리고 그 순간 2층에서 카힐과 비비가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 카힐 님, 비비 님! 이분들 ㅈ..잡아주세요!”
“뭐? 얘네 누군데.”
“랭커에요..!”
하지만 카힐은 한가롭게 하품을 했다.
“흐아암. 우리도 약한데 랭커를 어떻게 이겨.”
“약한 걸로 랭커잖아요..!!”
“아, 맞네.”
깨달은 카힐이 매서운 눈으로 랭커를 노려봤다. 비비도 그녀를 따라 랭커를 바라봤다.
“하하. 딱 봐도 힘깨나 쓰는 년들이 어딜.”
랭커들은 기가 찬다는 듯 비웃었다.
그들은 약한 마을에 태어나 평생을 랭커로 살아왔다. 즉, 태어나면서 한 대도 맞아보지 않았다는 뜻.
왜냐면 시티롱 마을은 약한 자를 도와주는 곳이니까.
“좀 맞자 새끼들아.”
“쿠에에엙!”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시티롱 마을의 신념 따위 지킬 이유가 없다.
카힐이 뚜벅뚜벅 걸어가 랭커의 앞에 섰다. 그녀는 위협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씨익 웃었다.
“우린.. 이 시티롱 마을의 최약체들이다...! 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말이 많아.”
카힐의 두 손이 랭커 하나의 머리에 그대로 박혔다.
쾅- 쾅-. 퍽- 빠악-.
다양한 타격음이 여관에 울려 퍼졌다.
비비도 질세라 랭커 하나의 팔을 앙 물었다.
“으윽.. 역시 우리가 더 약ㅎ··· 크읍.”
랭커들은 처음 맛보는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들의 랭킹이 더 높다는 걸 강조했다.
“응. 그래그래.”
물론 카힐이 알 바 아니었다.
퍽- 퍽-. 빠각-
“약ㅎ···.”
뽀각- 우직-
“...으아아아아아악!”
“끄어어어억...”
그렇게 실컷 맞은 랭커들은 그대로 바닥에 뻗었다.
그들은 그렇게 맞고도 “더 약한 우리의 승리다....” 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빡-
카힐의 마지막 발길질로 세 명 모두가 조용해졌다.
“이제 이 명찰에 손을 올리면 랭킹이 뺏어져.”
카힐이 어제 깨달은 비법을 전수하며 뚱뚱한 녀석의 명찰에 손을 올렸다.
비비와 앙피도 잇따라 명찰에 손을 올렸다.
앙피, 랭킹 14위.
카힐, 랭킹 19위.
비비, 랭킹 17위.
“...우와. 이제 약한 마을로 갈 수 있어요.”
“너 얘네 기절한 건 신경 안 쓰이냐?”
“...그야. 나쁜 분들이니까요...”
한편 카운터에 서 있던 히키는 조용히 밑으로 숨었다.
“이 미친놈들이 랭커를 때려잡다니... 난 상관없어.. 난 기절해 있던 걸로 할래...”
히키는 혹여나 이 사건에 말려들라 카운터 밑에 누워버렸다.
“소년! 괜찮나!?”
그리고 그때 여관 문을 박차고 들어온 문박이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
도망치던 앙피와 쓰러진 랭커들. 약한 자를 때린 건가. 역시 나영웅의 마스터로군.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다.
“악한 소년...”
문박은 시티롱 마을의 신념을 버린 앙피에게 감탄했다.
“야! 너 기차 다룰 줄 안댔지.”
“그렇소만.”
“가자, 지금 당장!”
“ㅎ...하지만 도망간다 해도 랭킹이 이상하면 마을에서 의심받을 것이오!”
당황하던 문박은 그들의 명찰을 보고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때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랭킹까지 빼앗다니.
“악한 무리...”
그렇게 앙피 일행은 문박의 도움으로 혼란을 틈타 강한 마을을 벗어나 약한 마을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난장판이 된 강한 마을과 누군가를 남긴 채.
“후후... 나도 데려가 주게...”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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