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니 x발 그래서 이름 뭐냐고
“미안하다.”
마을을 나와 숲으로 향하는 길은 정적 그 자체였다.
숲에 도착할 때까지도 앙피는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칙사의 화려한 춤에 정신이 팔려 눈치 못 챈 사실을 뒤늦게 생각하는 중이다.
‘소환수가 날뛴 곳이 숲이랬지. 내가 꾸던 꿈 중에도 숲이 있었어.’
앙피가 자라며 소환술 역시 성장한 것이다.
일명 시야 공유. 그가 꾼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닌 소환수들의 시야를 공유받은 것이다. 그 탓에 매일 잠을 설친 것이지.
‘이번 소환수만 문제가 아니야. 소환수가 하나라도 남아있는 한 숙면은 영원히 안녕이야.’
앙피는 굳은 결심을 했다.
이참에 자신의 능력을 지워야겠다고.
“내 꼭 보상하마...”
그리고 이 칙사 아저씨한테 말 좀 그만 걸어달라고 말해야겠다고.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앙피가 피곤 가득한 눈으로 칙사를 바라봤다.
“저...”
“그래 내 책임지고 소환수 잡는 걸 도와주마. 정말 미안하다.”
“...아. 네.”
앙피는 칙사의 기세에 눌려 눈을 깔았다.
칙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 녀석이 단둘이 있으니 싸한 구석이 있다. 특히 어두운 안색으로 조용히 있으니 여간 섬뜩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소환술 같은 마법을 부리는 녀석이라니. 마법사가 희귀하진 않지만 이런 시골 마을에 소환술사가 있단 사실은 몇 달 전 처음 알았다.
사실 깜빡해서 한 달이나 칙령을 미룬 것이 아니다. 뜬금없이 시골 마을에 소환술사라니. 영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었다.
이 녀석을 조사해보니 여간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소환한 소환수가 한둘이 아닐뿐더러 하나같이 자아를 갖고 있다.
‘이 녀석 의도하고 나라에 소환수들을 심어둔 걸지도 몰라. 반역의 기질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하는데.’
칙사가 앙피의 뒤통수를 따갑게 노려봤다.
“저... 무슨 일···.”
“하하, 아닙니다. 어서 숲이나 돌아보죠.”
“...?”
칙사는 얼른 앙피의 눈을 피해 숲으로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단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
숲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울창하기보단 나무와 이파리의 색이 짙고 어두운 탓이 컸다.
그래도 칙사가 시발 마을로 올 적에 숲을 이미 한 번 지나쳤기에 길은 잘 알았다.
“내가 올 때 숲의 서쪽을 훑으며 왔으니 동쪽을 훑으며 가면 소환수가 나올 거다.”
“그보다 혹시,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미안한 게 있으니 뭐든 알려주지.”
“혹시, 능력을 없애는 마법사도 있나요?”
칙사는 앙피의 질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답했다.
“그 소환술을 없애려는 거냐? 흠. 마법사야 널렸다만 그 정도 능력이 필요하면 아마 대마법사를 찾아야겠구나.”
“대마법사...”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알려지지 않은 대마법사.
만났다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하나같이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본인을 본 자에게 망각 마법이라도 거는 게 분명하다.
“아마 왼섬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게다. 워낙 자유분방한 인간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보다 저쪽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칙사는 수풀 너머를 가리켰다. 그 방향에서 조그만 말소리가 들렸다.
스스스-
그리고 그 소리가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칙사는 몸을 움츠리며 긴장했다. 오랜 춤 실력으로 다져진 근육을 보여줄 때인가.
-샤삭. 수풀 사이에서 커다란 덩치가 나타났다.
“야, 너 뭐하냐 여기서?”
“히야앗!”
칙사가 용맹하게 주먹을 날렸다. 마치 춤을 추듯 날아간 주먹은 볼품없이 덩치의 뱃살에 박혔다.
“어라. 골푼?”
“뭐야. 제 뱃살 왜 만지세요. 시발.”
골푼이 칙사를 저 멀리 밀어버렸다. 덕분에 나약한 칙사는 나무에 머리를 박으며 정신을 잃었다. 골푼도 칙사의 약함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골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더욱 위협적으로 앙피에게 다가왔다.
“야. 여기까진 웬일이냐? 마을에서 나가려고? 하긴 내가 다스리는 마을에 살기엔 자존심이 못 버티겠지. 이해한다 이해해.”
‘취임식으로 바쁘다면서 여긴 무슨 일이지..?’
앙피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혹시 도마뱀 같은 거 못 봤어? 내 소환수가 여기서 말썽을 부린대서. 너도 여기 있으면 위험해...”
“위허엄? 위이이허엄? 야, 내가 너 같은 새끼가 만든 소환수한테 당하겠냐?”
골푼이 앙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악..”하는 앙피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도마뱀 같은 건 한 번도 못 봤다. 가끔 여자 목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너랑은 상관없지. 너 여자랑 대화도 못 하잖아?”
앙피는 머리를 문지르며 골푼을 빤히 쳐다봤다.
‘도마뱀이 아니면 어떤 소환수지..?’
“야 뭘 봐. 난 대화할 수 있거든? 아쉽게도 그 목소리 주인이 없으니까 보여줄 수는 없겠다. 있었으면 내 작업스킬로 그냥···.”
골푼이 뭔가 찔렸는지 급하게 변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골푼의 뒤에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스킬인데? 너 이름이 뭐냐?”
창백한 피부에 성숙한 모습의 여자가 다가와 골푼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녀의 날카로운 입꼬리에서 기분 나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골푼은 잔뜩 쫄아 어깨를 움츠린 채 그녀를 올려다봤다. 딱 봐도 ‘악’이 가득 들어찬 날카로운 외모. 꽉 끼는 검은 가죽옷에 머리에 작은 뿔도 달린 게 어쩌면 진짜 악마일지도.
“와...”
골푼은 저도 모르게 추잡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뭘 보고 뱉은 감상평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살이 맞닿게 딱 붙은 여자를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다.
“큼큼. 안녕하세요. 레이디.”
골푼은 얼른 그녀에게서 벗어나 멋있는 척 자세를 잡았다. 그의 작업스킬이 얼마나 화려한지 볼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그대가 숲에 있던 걸 알고 있었소.”
“야 돼지. 좃같은 말투 쓰지 말고. 이름이 뭐냐고.”
“나는 이 시발 마을의 촌장이 될 남자로···.”
“하. 시발. 욕했냐 지금?”
“하하... 그게아니라...”
아무래도 골푼의 작업스킬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여자는 짧은 한숨과 함께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골푼의 안면에 리듬감 있게 내리꽂았다.
“야. 이. 시발아. 이름. 뭐냐고.”
신기하게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데 철썩거리는 소리가 낫다. 얼굴 살이 얼마나 많은 걸까.
“악! 골푼입니다! 골푼이요! 곮···.”
“츳. 찾던 애는 아니네.”
여자는 혀를 차며 골푼의 멱살을 놨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누군가를 찾고 있던 모양이다. 이 숲은 워낙 어둡고 마을에서도 떨어져 있어서 누굴 찾기 적합하진 않은데.
“ㄴ..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누나. 흐극...”
골푼이 눈물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그녀를 자극했다.
“아오.”
“악! 왜 더 때려요! 아악!”
다시 한번 찰진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라? 저거...’
한편 앙피는 여자의 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의 목에 무언가 익숙한 문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눈치챈 여자가 떡이 된 골푼을 던져놓고 다가왔다.
“야. 넌 이름이 뭐냐?”
앙피는 여전히 그녀의 목에 있는 문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녀가 어떻게 할지는 뻔했다.
“야. 이름이···.”
“네? 아..! 앙피에요.”
다행히 앙피가 빨리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의 날카로운 눈이 더 짙어지더니 순식간에 달라붙었다.
그녀가 앙피의 턱을 붙잡은 채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재차 물었다.
“네가 앙피라고?”
‘나 발음을 이상하게 했나..? 그보다 너무 가까워.’
앙피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까워진 덕에 여자의 목에 그려진 문양이 더욱 확실히 보였다. 앙피는 그제서야 그녀가 누군지 알아냈다.
“...시발. 찾았다.”
그녀는 앙피의 소환수였다. 그녀의 목에 그려진 양파 단면 같은 문양이 앙피의 소환수라는 표식이었다.
숲에서 날뛰는 소환수. 그래, 그녀를 만난 지 잠깐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썽의 주인공이 확실했다.
‘날 찾으려고 난동을 부렸던 건가...? 하지만 누군지 모르겠어. 누구냐고 물어보면 상처받겠지...?’
앙피는 우물쭈물하다가 “오랜만이에요.”하고 인사치레를 했다.
“그렇지. 벌써 10년은 됐으니까.”
“십 년...?”
“그래 이 씹년아.”
10년 전이면 앙피가 소환술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다. 그날도 골푼에게 괜히 얻어맞던 때. 고작 5살이었던 앙피는 본능적으로 소환술을 사용했다.
그의 능력이 언제부터 있던 건지는 몰라도 그때 소환되었던 소환수가 하나 있었다.
작고 연약했던 여자. 그녀의 이름은···.
“일순이야..?”
1 그리고 순. 5살 꼬마의 엄청난 작명센스.
“그딴 이름은 버렸어! 난 이제 카라시아 힐볼라스야.”
일순이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쳤다.
그렇게 작고 연약했던 일순이가 저렇게 성숙한 누나 캐릭터가 되어있다니.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역변한 걸까.
“일순이가 더 정감 가는데...”
“닥쳐! 난 카르시아 힐볼라스야. 네가 날 버린 그 날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해. 이 숲에서 내가 얼마나 개고생하면서 살았는지 알아?! 이제 복수할 때야!”
‘...이름 잘 못 말했다. 말해줘야 하나...?’
하지만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주먹이 눈앞에 날아들었다.
일순은 정말 죽일 기세로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앙피는 “꺅!” 거리며 요리조리 그녀를 피해 도망갔다.
“뭐야..! 왜 그래! 날 찾던 거 아니었어?”
“그래. 엄청나게 찾았지! 널 죽이려고 찾았으니까!”
그렇다면 골푼이는 왜 그렇게 팬 걸까. 정답은 그냥 기분 나빠서다. 일순이는 상대가 앙피가 아니었어도 일단 패고 봤다. 그렇게 숲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을 붙잡고 패다 보니 왕에게까지 소식이 간 것이다.
그제서야 앙피는 잠시 잊고 있던 왕의 말이 기억났다.
「님 사형 수고(?)」
자세히는 기억 안 났지만 어쨌든 일순이를 제압해야 한다.
일순이한테 죽든 사형당하든 죽는 건 매한가지다.
‘...어쨌든 내 소환수니까...!’
앙피는 도망가던 발걸음을 급하게 틀었다. 그렇게 뒤를 돈 순간, 일순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대로 복부에 박혔다.
푸욱-
즉사는 피했지만 조금 위험한 부분을 찔렸다.
“드디어 이날이 오는구나.”
일순이 사악한 웃음을 지어냈다. 그녀는 정말로 마족이었다. 소환됐을 당시엔 그녀도 어렸기에 티가 안 났지만 다 큰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마족이다.
앙피는 신음을 뱉었다. 복부에 박힌 손톱이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두근.
난생처음 겪는 생명의 위협에 앙피의 본능이 그를 자극했다. 정확히는 그의 소환술을 자극했다.
앙피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발악하지 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데 너 같은···.”
그리고 그 순간 일순의 팔이 뒤로 꺾였다.
-철컥. -철컥. -철컥.
순식간에 검은 구속구들이 일순의 몸을 둘러쌌다. 그녀의 목 그리고 팔과 다리에 단단한 구속구가 생겨났다.
“뭐야 이거! 시발 안 풀어?”
일순은 팔다리가 통제당했는데도 다시 일어나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엎드려.”
-쾅. 앙피의 말에 따라 일순이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녀의 목에 있는 문양이 웅웅 거리며 빛나고 있다.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앙피의 소환수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주인은 앙피다.
앙피는 으르렁거리는 일순의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구속구 덕분인지 일순은 앙피의 힘에 눌려 들썩거리기만 했다.
‘윽...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어. 흐윽..’
일단락된 상황에 안심한 앙피가 피와 눈물을 질질 흘려댔다.
그리고 때마침 기절했던 칙사가 눈을 떠 그 광경을 봤다.
“오.. 이런.”
영락없는 마족과 그걸 손가락 하나로 간단히 제압한 소년. 게다가 자신의 피를 마족에게 주입하고 있어. 대체 무슨 마법이지!?
실력자다. 이건 힘숨찐.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실력자야!
칙사가 엄청난 오해를 해버렸다.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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