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에라이 전학생 받아라!
왼섬의 두 번째 반도에 위치한 검지.
검지는 특이하게도 바다 안으로 점차 들어가는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검지인들은 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잠긴 영토로 점차 들어갔다.
바다를 막을 벽을 높게 세우고, 바닥의 습기를 제거해 건물을 세웠다. 그렇게 검지인들은 본래 주어진 영토보다 넓은 구역에서 생활이 가능해졌다.
타지에선 검지를 바닷속 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바다를 막아 영토를 늘린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이 가능했던 것은 검지인들의 특성에 있었다.
검지에는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모여 산다.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남을 가르치고 부리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따르는 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계급을 만들었다.
귀족.
평민.
노예.
그 이상 자잘한 것은 필요 없었다. 부려 먹을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그 계급이 바로 바다를 치우는 작업에서 나뉘었다.
누구보다 앞장서 벽을 세운 자들, 메이커.
바다의 흔적을 치운 자들, 설지거.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개백.
순서대로 귀족, 평민, 노예의 신분을 얻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검지를 떠날 방법은 단 하나였다. 손바닥 방향이 아닌 바다 방향으로 떠나는 것.
검지인들은 마을 가장 깊은 곳, 바다를 막은 벽에 조그만 방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조롱하려는 듯 [탈출구]라는 팻말도 붙였다.
한마디로 귀족이 아닌 자는 검지를 떠날 수 없었다.
바다 밑에 위치한, 모두가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곳.
그런 두 특성을 가진 이곳을 우리는 [수장 마을]이라 부른다.
“ㅈ.. 잠시만요.. 너무 많아서 기억 못 하겠어요...”
한창 피죠가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앙피가 맥없이 끼어들었다. 마차에서 도망갈 수도 없고 가만히 앉아 그의 설명을 듣는 게 영 지루했던 모양이다.
“그래 시발. 아카데미 이야기한다며. 갑자기 검지 TMI는 왜 말하는데. 너 설명충이냐?”
“후후후. 이런 자잘한 정보가 학생으로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라네. 일명 과몰입. 그런 것도 모르는가, 카힐 양?”
“지랄. 또 헛소리.”
앙피 일행이 투닥대며 피죠의 설명을 듣는 동안 마차는 부지런히 아카데미를 향해 달린다.
***
“크흠. 전학생이 온다라.”
여기는 [명문 영웅육성과마왕퇴치그리고가문의재건 아카데미].
“타지에서 오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정말 오랜만이군요.”
교장실에선 교장과 교감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그나저나, 여왕의 추천서라니. 왕족이 오는 건 아니겠죠.”
“아니다. 왕족은 나르여앙 외엔 하나도 남지 않았어.”
“풉. 그럼 이건 위조인가 보군요. 수장 마을에 온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요.”
교감이 앙상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랴랴랴. 걱정 말게. 우리에겐 저스틴이 있지 않은가.”
교장은 차를 들이켜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교장실에서 곧장 보이는 강가에 무언가 꿈틀거린다.
교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카데미는 곧 돈이 된다. 수많은 수업과 자잘한 프로젝트엔 전부 돈이 필요했고 그 수입은 고스란히 교장에게 들어갔다.
게다가 이곳이 수장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카데미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명문 영웅육성과마왕퇴치그리고가문의재건 아카데미]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아카데미가 세워졌다.
하지만 하나 같이 남을 가르치는 선생만이 넘치는 이곳에 학생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뒤 계급이 생겨나며 자연스레 메이커 출신의 선생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메이커 출신의 선생만 보유하던 이곳이 ‘명문’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명문을 빼도 이름은 충분히 길지만 말이다.
“이토록 정교한 위조를 하는 녀석들이면 분명 돈도 많을 겁니다.”
“그랴랴랴. 기대되는군.”
똑똑-
“교장 선생님! 일외동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거라.”
교장실의 두꺼운 문을 열고 진중한 분위기의 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영웅을 육성하는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는 악당과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 전교 1등이구나. 무슨 일이니?”
“전학생들이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크흠. 예상보다 빨리 왔구나. 그래, 고맙다. 곧 나가보지.”
“네! 메이커 학생들을 정문에 집합시킬까요?”
“아, 괜찮다. 이번 녀석들은 별 볼 일 없어 보이거든.”
교장은 책상에 놓인 4장의 종이를 집었다.
앙피, 카힐, 비비 그리고 나영웅의 지원서였다. 이르하라가 본인의 입맛대로 작성했기에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
어차피 각 지원서엔 나르여앙의 도장이 찍혀 있기에 그 내용 따위 중요하지도 않았다.
교장은 앙피의 지원서를 유심히 바라봤다.
「앙피(15세), 남
출신 : 소지, 시발 마을
지원동기 :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많은 친구를 사귀어보고자 함.
특이사항 : 소환술사」
‘크흠. 마법사가 오는 건가.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겠군. 뭐, 생긴 게 이리도 얼빵하니 걱정은 안 된다만.’
교장이 형식 치레로 쓰인 지원서를 대충 책상에 던졌다.
그도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받은 게 아니다. 여차하면 노예 신분의 개백으로 만들어 굴릴 요량으로 전학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녀석들도 하나같이 볼품없군. 듣자 하니 나르여앙도 왕궁에서 안 나온 지 몇 달이 되었다는데, 이 애송이들이 손바닥의 밑까지 갔을 리도 없고.
위조 하나는 기깔나게 했군.’
교장은 엄지로 나르여앙의 도장을 쓱쓱 닦아봤다. 잉크가 완전히 마르지 않았는지 조금 번졌다. 실제로도 급하게 만든 것이기에 당연했지만.
“그럼 메이커 학생들에겐 다시 훈련으로 돌아가라고 전해두겠습니다!”
“아니다. 잠시만···.”
“네!”
“모두 모이라고 해. 우리 아카데미가 위조 따위가 통할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겠어.”
교장이 사악하게 웃었다.
“위조 말입니까? 이번 전학생은 여왕의 추천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랴랴랴. 그럴 리가. 이런 애송이들을 여왕이 굳이 추천할 리가 없지. 어서 다 모이라고 해. 전투태세로 말이야.”
교장이 4장의 지원서를 일외동을 향해 던졌다. 일외동은 울끈불끈한 팔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푸핫! 뭐야 이 얼빵한 녀석은.
교장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서 메이커 학생들에게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일외동이 교장과 마주 보고 한참을 웃고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그럼 어서 저희도 준비하시죠.”
교장과 교감도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정문으로 나섰다.
정문엔 이미 메이커 출신의 학생들이 정갈하게 서 있었다.
고작 10명의 메이커 학생들은 각자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어떤 병신들이 올지 기대되는구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입니다. 비록 사기꾼이래도 참회하면 고쳐 쓸 수 있습니다.”
“불가능.”
그들은 앙피 일행의 기세를 눌러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앙피의 마차가 보였다.
“오. 저기 오나 보오. 어떤 좆같은 이동 수단을 타고 올지 궁금하오!”
선비처럼 생긴 학생이 호쾌하게 웃었다.
다른 이들도 별다르지 않고 앙피 일행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이내 그쳤다.
덜그럭- 덜그럭-
말 없는 마차가 정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떡하니 박혀 있는 왕국 마크에 학생들은 당황했다.
“일외동 군. 자네가 분명 사기꾼들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 왕국 마크도 가짜입니까?”
“윽. 그럴 리가 없는데. 저놈들 생긴 걸 내가 분명히 봤는데! 분명 교장 선생님께서도···.”
“크흠. 일외동 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네.”
“지금 교장 선생님을 모함하는 것이오? 자네는 쌉소리를 감히 떠넘기지 마시오.”
설마 마차까지 위조했을 리가 없기에 학생들은 조용히 적대심을 거뒀다. 진짜 왕국 사람들이라면 나쁘게 보일 순 없으니까.
신분이 누구보다 중요한 그들이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다들 숨죽여 마차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드디어 마차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으아... 멀미 나...”
앙피가 앓는 소리를 내며 급하게 마차에서 뛰어내리다 그대로 넘어졌다.
쿠당탕-
보기 좋게 넘어진 앙피는 일어날 생각 없이 그대로 누워있었다.
“마차도 위조인가?”
“그럴 리 없습니다. 저 뒤에 계신 분은 왕국의 칙사분이십니다.”
“후후후. 이 몸. 아카데미에 등장. 폭풍의 전학생 강림.”
어떤 의미에선 폭풍이 맞는 나영웅이 위풍당당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칙사도 위조인가?”
“불가능.”
“젠장 대체 뭐야 이놈들은!”
명문 뭐시기 아카데미의 1위, 일외동.
이때까지 숱한 전학생들을 받아봤지만 지금처럼 당황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를 더 당황하게 할 녀석들이 마지막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앙? 여기냐? 존나 크네.”
“우어어어어!”
“ㅁ..뭣! 저게 뭔가!”
“가능.”
얼빵, 마족, 좀비, 나영웅.
아카데미에 등장.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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