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세 개의 문 중 정답을 찾는 방법
‘후엥.. 너네 그냥 나가.’
통로를 빠져나온 김인간은 아찔한 기억에 눈물을 훔쳤다.
“별거 없군.”
“생각보다... 금방 나왔네요...”
그야 당연하다. 결국 참지 못한 김인간이 순순히 지름길을 불었다.
누구라도 나영웅의 튼실한 엉덩이를 몇 분 동안 보고 있으면 모든 정보를 술술 불 것이다.
하지만 지름길로 급하게 오다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다.
본래 다락방으로 직진했어야 하는데 그 옆방으로 오게 된 것이다.
‘흐흐흐. 그래도 여긴 내가 설치해둔 마법이 있지.’
그들이 도착한 방은 좁은 단칸방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방 안에 문이 세 개나 있다.
“다락방치고는 쾌적하군. 좁은 건 매한가지지만.”
“...음. 아마 여긴 다락방이 아닐 거예요. 저 문 중에 하나같은데요...?”
“맞아. 저 세 개의 문중에 하나를 골라야 해.”
‘흐헤. 잘못 고르면 괴물이 튀어나올 거야.’
김인간은 두 개의 문에 소환 마법을 걸어놨다. 문을 열면 검은 점 안의 괴물이 나올 것이다.
물론 앙피처럼 다른 세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고차원 마법은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김인간의 소환술은 단순한 이동 마법에 가깝다.
그녀는 앙피의 놀라는 얼굴을 보기 위해 스윽 옆으로 빠졌다.
앙피는 나영웅과 나란히 서서 문을 살폈다.
“...이 가운데 문만 칠을 새로 한 흔적이 있어요.”
“오호라. 일종의 힌트인가?”
‘흐흐. 저긴 괴물이 나오는 곳이지. 일부러 신경이 가게 만든 나의 천재적인 계획이란 말씀.’
김인간은 자신의 의도가 먹혀 기분이 좋았다.
“음... 나영웅 님은 어디가 다락방 문 같아요..?”
“후후후후. 너무 쉽군. 질문의 의도가 뻔하다. 그렇지 않은가 소녀여.”
나영웅이 그윽한 눈매로 김인간을 바라봤다.
‘...설마 내가 이 검은 점의 주인이란 걸 간파한 건가..?’
당황했는지 얼어붙은 김인간을 보며 나영웅은 멋있게 웃었다.
“하하. 당연히 여기 아니겠나? 저렇게 대놓고 있는 문은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나영웅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이미 지나온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거기에 있긴 뭐가 있겠는가. 금방 지나온 좁은 통로밖에 없었다. 아, 나영웅의 찐득한 땀이 사방에 묻어있긴 하네. 윽.
“뻔하긴 무슨. 멍청한 거 아니야 진짜?”
김인간은 괜히 쫄았다고 느꼈는지 나영웅을 매도했다.
“제길.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했거늘.”
나영웅은 비통하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가 본 이세계물 주인공이 동료를 잃었을 때의 모습을 따라 한 것이다. 고작 추리가 틀린 것 갖고 말이다.
한편 마찬가지로 추리엔 젬병인 앙피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가 이렇게 다크서클 짙은 눈이 주름질 정도로 고민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근데 그냥 다 열면 되는 거 아니야?”
나왔다. 앙피의 무지성 추리.
“?”
김인간은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세 개의 문중 하나만 정답이라면, 나머지가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녀는 자신이 바보인지 이 남자애가 바보인지 헷갈렸다.
물론 다른 바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군! 역시 나의 마스터다운 총명함일세.”
“잠ㅁ···.”
끼익- 철컥- 벌컥-
김인간이 말릴 새도 없이 앙피와 나영웅이 문 세 개를 동시에 열어버렸다.
원래는 김인간의 계획이 한참이나 더 있었다. 몬티홀 딜레마를 쓰거나 선택에 긴장감을 주어 예상치 못하게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 전조도 없이 뜬금없이 문이 함정이 발동해버렸다.
“아.. 역시 오른쪽이 다락방이었어요...!”
“후후후. 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병신들아.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쿠에에에엙!”
“으어어어어.”
오른쪽 문이 정답이라면 나머지 두 개는 오답이라는 소리다. 좁은 단칸방에 순식간에 좀비 두 마리가 나타났다.
근데 둘 다 아는 좀비였다. 하나는 지하실의 좀비이고 다른 하나는···.
“그마아아아안...”
“아닛? 카힐 공.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이오! 마스터, 이게 무슨 일인가! 마스터?”
우리 자랑스러운 마스터 님은 이미 도망갔다. 좁은 통로에 여러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뒤로 도망간 것이다.
하지만 카힐은 갑자기 본능이 자극되었는지 주인인 앙피를 따라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으아아앙프이이이!”
카힐이 좁은 통로를 기어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몸매로 앙피의 뒤를 바짝 쫓았다.
“으아악! 왜 절 따라와요..!”
앙피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게 정말 싫다. 그게 특히나 좁은 통로라면. 그게 특히나 마족이었던 좀비라면!
앙피는 엉덩이를 미친 듯이 씰룩거리며 통로를 기어나갔다. 다행히 구속구에 좀비화까지 된 카힐에게서 겨우 도망갈 수 있었다.
“휴...”
앙피는 눈에 보이는 방으로 일단 나와 옷장에 숨었다.
그가 들어온 이 방은 김인간의 침실이다. 그녀의 취향이 한껏 들어간 침대와 가구로 꾸며져 있다. 그중 앙피가 들어간 옷장은 성인 4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컸다.
들어있는 옷이라고는 전부 소매가 이상할 정도로 긴 티셔츠들 뿐이지만.
그때 앙피를 뒤쫓아온 카힐도 침실로 들어왔다.
“으어어어어!”
좀비치고 너무 기운차게 운다. 저 정도면 짐승의 포효에 가깝지 않나.
카힐이 좀비처럼 입을 축 늘어뜨린 채로 방 안을 돌아다닌다. 방 안에 숨을 곳이라고는 고작해야 침대 밑이나 옷장이 전부다.
그러나 카힐은 “으어어어.”거리다가 다시 좁은 통로에 몸을 구겨 넣으며 사라졌다. 좀비가 돼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멍청하게 느껴진다.
“휴.. 카힐 님이 똑똑하지 않으셔서 다행이야..”
앙피는 이참에 옷장에서 쉬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밖을 나가도 괴물이 돌아다닌다. 기다리면 나영웅이나 김인간이 적당히 괴물들을 도맡아주겠지, 하는 적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때 옷 사이에서 창백한 팔 하나가 튀어나왔다.
“으아악! 좀비다!”
깜짝 놀란 앙피가 옷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옷장 안에서 좀비 하나가 기어 나온다. 어기적. 어기적.
“꾸어?”
“으아···. 아. 비비 님?”
“크아아암...”
비비가 꿀잠을 잤는지 하품을 하며 기어 나온다. 같은 좀비라서 그런지 습격을 당하지 않은 모양이다.
앙피는 부럽다는 눈빛으로 비비를 바라봤다. 저렇게나 잠을 잘 자다니.
“....비비 님 팔자 좋네요..”
“쿠엙!”
비비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짖었다. 그리고는 앙피의 손을 잡고 옷장으로 들어갔다.
옷장의 구석 어딘가.
비비는 옷장 뒤편을 발로 퍽 밀었다.
그러자 그곳엔 다름 아닌 다락방이 있었다.
“숨겨진 길...?”
“꾸어!”
비비가 칭찬을 바라는 듯 눈썹을 찡긋거렸다.
확실히 무지성 좀비를 보다 비비를 보니 아무렇지 않다.
“잘했어요...”
앙피는 다락방으로 폴짝 들어갔다.
다락방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는데 가구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찾았다...”
앙피는 바닥에서 동그란 물체를 들어 올렸다. 다락방에서 유일하게 찾은 것이니 검은 구슬이 확실할 것이다.
그는 부푼 마음을 갖고 신발을 벗었다. 맨손으로 구슬을 내리칠 순 없으니까.
앙피는 신발을 높게 들었다가 그대로 구슬을 내리쳤다.
퍽.
구슬에서 둔탁한 소리만 난다.
그리고 그때 다락방의 문이 열렸다. 바깥의 빛이 다락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곳엔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다.
“후후후. 문이 왜 닫혀있나 했더니 마스터가 먼저 와있었군. 비비 양도 오랜만일세.”
“나영웅 님...?”
“우어어..?”
비비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손에 든 그건 뭐지?”
“아.. 구슬을 찾···. 으악!”
앙피가 들고 있던 건 검은 구슬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페인트칠이 된 누군가의 머리가 들려있다.
그리고 다락방 한켠의 숨겨진 공간에 김인간이 있었다.
“흐흐흐. 어때. 절망스럽지.”
그녀는 애초부터 검은 구슬로 안내할 생각이 없었다. 검은 구슬을 깨면 본인이 죽는데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젠 마무리다.”
김인간이 준비해둔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숨겨놨던 문 하나가 앙피 일행 앞에 나타났다. 문에는 ‘출구’라는 표시와 함께 희망찬 색깔이 가득 칠해져 있다.
언뜻 보면 출구인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들어가는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죽게 될 것이다.
큰 절망을 준 뒤,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어서 붙잡게끔 만드는 김인간의 작전이다.
그리고 앙피가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어... 여기로 나가는 건가 봐요...”
“그렇군! 검은 구슬이란 건 단순한 표현에 불과했어. 사실 그 머리통이 검은 구슬을 의미하는 것이지.”
나영웅이 감탄했다. 맞는 말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근데... 검은 점에서 나가는 방법은, 검은 구슬을 깨는 게 유일한 게 아니었나요...?”
“흠. 그런가. 그렇다면 그걸 깨지.”
“하지만... 이건 그냥 머리통인데요..?”
앙피와 나영웅이 심각하게 고민하자 김인간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당연하지, 내 검은 구슬은 저렇게 크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꼭꼭 숨겨놨다고!’
검은 구슬의 크기는 해당 검은 점의 힘과 비례한다. 이곳의 검은 구슬이 정말 머리통만큼 컸다면 앙피 일행은 들어오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꾸어? 우에에엑.”
그때 비비가 입 안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주먹 정도 크기의 검은 구슬이다. 비비의 위산이 좀 묻어있다.
“어..? 검은 구슬..?”
“흐헤.”
비비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앙피가 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밖에 있던 비비는 수상한 돌무더기를 파헤쳤다. 그러자 그 안에 떡하니 검은 구슬이 있던 것이다.
애초에 저택까지 들어올 필요도 없었다. 저택 전체가 맥거핀이었던 것이지.
쿠당탕-.
당황한 김인간이 숨겨진 공간을 부수고 다락방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잔뜩 당황한 채 소리 질렀다.
“뭐야! 그걸 어떻게 꺼냈어! 돌무더기는 살아있는 자가 건들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다고!!”
“꾸어어?”
“...좀비?”
쨍그랑-.
검은 점, [인간의 집] 소멸.
“뭐냐고오오오. 저주할 거야!···”
[인간의 집] 주인, 김인간 소멸.
앙피 일행 무사히 검은 점 탈출!
“...? 금방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요.”
“기분 탓일 걸세.”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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