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오. 앙피시치!
큰(?) 결심을 한 앙피는 조심스럽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우와.......”
반듯한 도시의 풍경이 앙피를 반겨주었다. 사실 도시라 해도 높은 건물과 기계 덩어리가 좀 있을 뿐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평생 시골 같은 ‘시발 마을’에서만 살던 앙피에겐 신세계였다.
그리고 그때 신세계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아까 신나서 뛰어갔던 그 남자다.
“오! 무사히 잘 도착했군! 멈출 때도 부드럽게 잘 멈췄나?!”
“ㄴ..네!”
갑자기 나타난 문박의 질문에 앙피는 저도 모르게 크게 답했다.
“하! 하! 대답 좋군! 그나저나 왜 안 내리고 있지?”
“아.. 저희는 약한 마을로 가야 하는데. 기차가 망가졌나 봐요...”
앙피가 문박의 프라이드를 긁었다.
그러자 문박이 이글거리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너희 가장 낮은 녀석 랭킹이 몇이지?”
“247위다, 왜.”
밖이 시끌거리자 카힐도 기차 밖으로 나왔다.
“오. 그대가 가장 약한 친구로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턱도 없어. 약한 마을은 강한 사람만 봐도 숨이 가빠져 압박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기에 랭킹 200위 이상만 들어갈 수 있다네!”
세상에 그 정도로 약한 친구들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일까. ‘스치면 사망’이란 문구가 어울리는 마을이다.
문박은 골똘히 생각 중인 앙피에게 은근슬쩍 다시 말을 이었다. 기차가 망가졌단 소리를 이대로 넘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절대 기차 탓이 아닌···.”
“....랭킹을 올릴 방법이 있나요?”
기차 따위 중요하지 않은 앙피였다.
문박은 그런 그를 이해해주었다. 자신도 기차 이외엔 크게 관심이 없으니까.
“랭킹을 올린다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겠군! 그럼 나는 바빠서 안녕!”
문박이 삼각근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또 순식간에 뛰어서 사라졌다. 인사 타이밍을 놓친 앙피는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ㅇ..안녕히 가세요...”
“아 씨 뭐가 또 문제야. 그냥 패서 이기면 랭킹이 오르겠지!”
카힐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고 순간 주변의 근육맨들이 일제히 카힐을 바라봤다.
“세상에. 약한 사람을 패겠다고? 야만적이군.”
“발로 차면 부러질 놈들을 어떻게 팰 수가 있지. 악마가 따로 없군.”
근육맨들이 수군거리며 지나갔고 카힐은 “나 마족 맞아!!”라고 소리치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그들은 지금 ‘인간’인 척을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카힐이 잔뜩 끌어버린 이목에 웬 무리 하나가 다가왔다. 흔치 않은 관광객에 눈독을 들인 상인들이었다.
이 강한 마을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1. 인종까지 다를 정도로 보이는 근육맨들. 대체로 랭킹이 400위 미만이다.
2. 랭킹 200~400위 사이의 평범한 사람들.
2번에 해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앙피 일당이랑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냥 평범한 장사꾼이라는 거다.
“아이고! 이쪽으로 오시면 저희가 50% 가격에 요리를 드리죠! 그리고···. 으악!! 마족이다!!!”
“저희 숙소는 300위 이상에겐 무료 식사를···. 끼야 앗! 좀비다!!”
“저희는···. 우아 악! 꼬맹이!”
“....15살이에요. 그리고 놀랄 일도 아닌···.”
“크흠. 그렇구나. 미안하다. 그나저나 저 괴물들은 뭐냐?”
상인 네다섯 명이 카힐과 비비를 위협적으로 바라봤다.
“사람이에요.”
“우!”
비비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떻게 자네들이 사람인가?”
“말 심하게 하네. 인종차별 하냐?”
“우와...”
카힐과 앙피가 뜻하지 않게 합이 맞았다.
‘아니 저 뿔이랑 재봉선은 뭔데. 내 눈에만 보이는 겐가?’
앙피 일당의 뻔뻔함에 상인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크흠. 나는 아니지.”
“ㄴ..나도 아니야! 어디 감히 인종차별을 하는 거야 자네들은.”
상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앙피 일당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이상한 일당에게 더 휘둘리기 전에 급하게 전단지를 잔뜩 쥐여주고는 도망갔다.
“헤. 싱거운 놈들. 그래서 약한 마을까진 걸어갈 거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좋아. 당장 출ㅂ..!!”
꼬르륵. 카힐의 배가 우렁차게 울었다.
“... 기차에서 제대로 못 쉬었으니까 이참에 제대로 쉬고 가죠....”
“좋아. 찬성!”
“꿔꿔!”
카힐이 앞장서 전단지를 보기 좋게 늘어놨다.
「구백 여관. 마왕을 무찌를 자 이곳에서 잠을 청하여라. ※엑스트라 급 인물 절찬 모집 중※」
「밥이냐, 잠이냐. 그것이 문제라면 그건 잘 모르겠고 옷 팝니다. 원조 강한 옷가게. 근육맨 출입 금지!」
「파티 초대장. 이 하이ㄷ···.」
“뭔 전단지를 이따구로 만드냐. 하나같이 무슨 불법 광고 같네.”
앙피는 순간 뜨끔했다. 이 전단지들이 자신이 만들었던 전단지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ㅇ..이정도면 잘 만든 건데. 전단지 만드는 거 엄청 힘든데....’
“...그럼 여긴 어때요?”
「혁명 여관. 명당 10골드.」
그냥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띡. 참 성의 없고 대충 만든 전단지다. 손님을 모을 생각은 있는 걸까.
“오. 좋네! 필요한 정보만 딱. 여기로 가자!”
“꿔!”
“...이게 이쁜가...”
‘앗. 넵!’
“...?”
앙피 일행은 지체하며 여관을 향해 출발했다.
***
강한 마을은 이름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이 분포하고 있다. 아무래도 ‘중간 마을’이나 ‘평범 마을’ 같은 게 없어서겠지.
진짜 강한 근육맨들은 마을 밖 초원에 스스로 집을 짓고 산다.
이유는 없다. 모두가 그저 “그게 낭만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래도 몇몇 강한 자들도 이곳에 살고 있다. 그들은 혹여나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마을 변두리에 모여 산다.
이름하여 ‘강한 마을, 강한 거리.’라고 불리는 구역.
도시와 와일드라는 두 단어가 섞인 이상한 곳.
건물이 5층이지만 계단도 없어 암벽등반으로 오르는 곳.
식당이 있지만 굳이 직접 사냥을 하며 날고기를 즐기는 자들.
앙피 일행이 고른 여관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들은 거리의 가장 안쪽에서도 가장 깊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야. 여기 맞냐? 무슨 여관이 이런 뒷골목 구석에 숨겨져 있어.”
“...지도가 대충 그려져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역시 별로인 것 같은데...”
“병신아. 지도 제대로 본 거 맞아? 음···. 저긴가?”
도시라며 혼자서 허름한 나무로 지은 여관. 한 명당 1박당 10골드면 싼 편이지만 이런 건물이라면 5골드도 아깝다. 슾밥도 하나에 1골드인데.
똑똑-
“저기.. 계세요....?”
앙피가 슬며시 여관의 문을 열었다.
“뭐해. 비켜봐.”
쾅!
“여! 주인장! 방 있냐!?”
카힐이 조금 열린 문을 호기롭게 열어젖히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카운터에서 퍼질러 자는 주인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책상을 내리쳤다.
쾅-.
“손님 세 명. 방 있지?”
주인은 찌뿌둥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흐아암. 손님? 무슨 손님.”
다 헤지고 펑퍼짐한 옷을 입은 주인은 백수마냥 배를 벅벅 긁으며 답했다.
머리가 발끝까지 떨어지는 이 여자의 이름은 히키. 보기와 다르게 랭킹 458의 나름 강한 자다.
히키가 세상 졸리다는 표정을 하며 앙피 일당을 쓱 훑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뭔 200대 놈들이 여길 와. 더 좋은데 많을 텐데. 여기서 자다가 진드기에 물려서 죽어도 모른다~”
주인이라는 자가 손님을 받을 생각이 일절 없어 보였다.
“그래서 방 있냐고 없냐고!!”
“...진정하세요. 카힐 님은 진드기에 물려 죽을 정도로 약하시진 않잖아요.”
“헹. 그러셔.”
“이런 십.”
“우린 방 두 개밖에 없어. 보다시피 낡고 오래돼서 손님이 잘 없거든.”
“꾸어!”
비비가 본인은 밖에서 자도 된다는 의미로 말을 했다. 물론 아무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럼 둘 다 줘.”
“그리고 안타깝게도 방 하나는 이미 나갔어.”
“...손님 없다면서요.”
“내 말이! 무슨 날인가? 왜 오는 거야.”
그리고 그때 먼저 와있던 다른 손님이 2층에서 내려왔다.
저벅. 저벅. 우직끈. 저벅.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근육맨. 다름 아닌 문박이었다.
“오! 친구들! 또 보는구만!”
“ㅇ...안녕하세요...”
“여기에 묵으려는 건가?”
“아...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다른 델 찾을 것 같ㅇ···.”
“이봐. 히키! 세 명이면 단체라 할인해 줄 거지?”
문박이 카운터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리고 익숙한 듯 히키에게 말을 걸었다.
히키는 이제 아예 의자 등받이에 늘어져 설렁설렁 대답했다.
“그래~ 세 명이니까 3골드만 내라~”
아니, 한 명당 10골드라는 전단지를 주인 본인도 잊고 있다. 세 명이면 30골드인데 할인을 90%나 해주다니.
그리고 그 3골드조차 문박이 흔쾌히 내주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쏘지! 편안히 묵다 가라고!”
“...아뇨. 이 정도는 저희가...”
문박이 괜찮다며 앙피의 등을 철썩 때렸다.
지잉-. 등에서 퍼진 통증이 전신을 감쌌다.
“으악..!”
“고마워할 필요 없네! 나는 일 때문에 나가니 나중에 또 봅세!”
“그래! 이럴 땐 받는 거야!”
카힐도 앙피의 등을 때리려 했고 이내 반사적으로 나온 앙피의 명령에 저 멀리 날아갔다. 이것으로 소환수 통제는 전적으로 앙피의 본능에 달려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셋이 자기엔 좁을 텐데. 뭐하면 나랑 자도 돼~”
히키는 시답잖은 농담과 함께 방 열쇠를 건넸다.
“...그게 더 불편···.”
“아오 앙피! 어 주인장 고마워. 우린 올라가 볼게.”
그들은 있지도 않은 짐을 풀었다.
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침대도 2개나 있었고 진드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마을 변두리에 위치해서 그런지 창밖으로는 드넓은 초원도 보였다.
“그래도 좁긴 하네요...”
“야. 이 정도면 됐지. 이 침대는 내꺼다~”
“꾸어!(여긴 내 자리!)”
‘...히키 씨랑 잘까...’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저기. 혹시 식사는 되냐?”
“우! 우!”
카힐과 비비가 카운터에 매달려 히키를 독촉했다.
조금 전까지 또 잠에 빠졌던 히키는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났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카힐과 비비의 어깨를 잡았다.
“....너희. 정말 이 여관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왔냐.”
여관 안에는 히키와 앙피 일당밖에 없음에도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여기 여관 이름이···. 그래. ‘혁명’ 여관이었지.
“....... 설마. 여기는···.”
앙피가 불안함을 감지했는지 손이 떨렸다.
“그래. 맞아.”
히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 옆의 문을 활짝 열었다.
원래 식자재를 보관하는 창고. 하지만 그곳에서는 음식 냄새 대신 썩은 내와 함께 검은 형체들이 일렁거렸다.
“여긴···. 쥐가 존나 많아서 식재료가 없어.”
히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고에서 쥐가 쏟아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꾸어? 냠냠.”
정말 ‘혁명’적으로 최악인 여관이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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