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골렘은 인간이 밉다
덜컹. 덜컹.
다행히 문박이 개인 기차를 만들어둔 덕에 쉽게 마을을 벗어났다. 왜 본인은 타지도 않는 개인 기차 같은 걸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던 건데?”
눈뜨자마자 랭커가 앞에 있질 않나, 마을을 나가보니 근육맨과 근육맨이 싸우고 있지를 않나. 카힐이 앙피를 추궁했다.
“...그.. 혁명..? 같은 게 일어난 것 같아요.”
“미친. 설마 동참한 거야? 세상 얌전한 척하더니..”
“ㅇ...아니에요..!”
앙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반란이라느니 혁명이라느니 앙피는 그런 머리 아픈 일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랭커의 부당함, 랭킹 시스템의 폐해 같은 건 앙피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긴. 우린 하이드로만 찾고 나가면 되니까.”
카힐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런 일을 좋아할 만한 인물은 없으니까. 이세계물에 열광하는 오타쿠인 누구만 제외하면 말이다.
“아..!”
마침 앙피가 누군가 기억난 듯 탄식을 뱉었다.
“하이드로. 저 하이드로 님을 본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오타쿠는 또 잊혀진 모양이다. 살아남아라, 나영웅. 버텨라, 나영웅!
“봤다고? 설마 강한 마을에 있었냐? 시발. 진작 말해야지!”
“그어어어!”
카힐과 비비가 앙피에게 들러붙었다.
“ㅇ..아뇨! 그게 아니라. 꿈에서 봤어요.”
“...”
카힐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앙피를 내려다봤다. 소환수의 표식만 없었어도 한 대 때릴 표정이다.
어. 아니다 한 대 때렸다.
“아뇨... 그게...”
날카로운 시선, 아니 주먹에 앙피는 서둘러 해명을 시작했다.
자신이 소환수와 시야 공유를 한다는 사실과 어제 꿈에 공유한 시야의 주인이 하이드로 같다는 것을.
“와.. 소름 돋아. 시발 그럼 너 내가 뭐 하는 지도 다 훔쳐본 거야? 진짜... 씹 변태.”
카힐이 손으로 몸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옆의 비비도 그녀를 따라 했다.
“...전혀 안 궁금해요...”
앙피가 얼빠진 표정으로 답했다.
앙피는 카힐같이 날카롭고 고혹적인 사람보다는 수수하고 차분한 여자가 좋다. 기왕이면 말은 잘 안 걸어주면서 너무 가까이는 오지 말고 멀리서 사랑해주는 그런 여자.
“아무튼 한마디로 하이드로도 네 소환수라고? 왜 이 돌멩이도 소환수라 하지 그러냐.”
카힐이 비웃었다. 그녀는 소파에 떨어져 있던 돌멩이를 잡고는 앙피에게 들이밀며 장난쳤다.
“인사해, 주인님이야 주인님.”
카힐이 돌멩이를 인형 놀이하듯 갖고 놀았다.
“...ㅈ..진짜에요.”
“그래그래. 착각이 아니라면 하이드로 찾기만 하면 정보를 술술 불게 할 수 있겠다. 요걸로 말이야.”
카힐이 소환수의 표식을 톡톡 건드리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강제로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개같은 건지 널리 널리 전파하는 거다.
만약 저게 단순한 앙피의 착각이라면, 카힐은 이참에 앙피를 실컷 갈궈줄 생각이다.
그때 비비가 갑자기 앙피에게 얼굴을 부비며 쿡쿡 찔렀다. 앙피는 팔에 느껴지는 감촉이 소름 돋았다.
“우어어어!”
그녀는 무언가 강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그걸 앙피가 알 턱이 없다. 그는 비비의 죽은 피부가 너무 차가웠다.
“........”
“우어어!”
비비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앙피의 머리를 가방으로 내리쳤다. 참고로 저 가방은 앙피의 바지를 살 돈으로 샀다.
“캬하하. 잘한다 비비!”
앙피의 머리에 적중한 가방의 입구가 열리며 비비의 옷들과 종이 몇 장이 흘러나왔다. 이전에 상인들에게 받았던 전단지였다.
그러고 보니 전단지 중에 이상한 게 하나 껴있긴 했다.
하지만 앙피가 눈치를 못 채자 비비가 다시 가방을 들어 올렸다.
“왜... 왜 그래요..!”
머리를 감싸는 앙피 대신 카힐이 비비의 의도를 눈치챘다.
“이걸 보라는 거 같은데. 음···. 어? 뭐야 이거!”
카힐이 수상한 전단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파티 초대장. 이 하이드로의 역작을 발표합니다. 대상:20위권 이내/장소:약한 마을, 1번가/시간···.」
하이드로가 파티를 여는 모양이다.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하지만 굳이 강한 마을까지 뿌린 이유가 있나.
“비비! 이런 걸 챙겨놨구나! 똑똑한 년 같으니.”
카힐이 비비를 힘껏 쓰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비비 머리가 10도 정도 기울어진 것 같다.
비비는 고개가 삐딱하게 꺾인 채 앙피에게도 칭찬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잘하셨어요.”
“쿠.”
비비가 만족의 웃음을 뱉었다.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기차는 어느덧 약한 마을에 도착했다.
끼이익-
기차가 긁는 소리를 내다 이내 멈춰 섰다.
멈춰 선 기차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앙피가 창밖을 살피더니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기차 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 확실히 강한 마을보다 더 발달한 도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도 안 보여요.”
북적북적한 강한 마을의 기차역과 달리 약한 마을의 기차역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사람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랭킹의 변동이 거의 없으니까. 강한 녀석들은 높은 랭킹을 탐내지 않는다. 랭킹에 집착하는 건 오직 약한 녀석들뿐.
한마디로 약한 마을의 사람들은 고착된 것이다.
“와. 왜 이렇게 조용해? 다 뒤졌나?”
카힐이 그럴듯한 감상을 뱉었다.
‘...음. 조용해서 좋다.’
“일단 나가죠.”
앙피는 한적한 약한 마을이 체질에 맞나 보다.
기차역에서 나와 마을로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빈 거리엔 고철 덩어리와 고요함만이 즐비했다.
앙피는 양껏 그 평화로움을 들이마셨다.
‘....좋다.’
“우와! 시발! 이거 봐봐 앙피!”
‘...안 좋다.’
카힐이 고철 덩어리를 보고는 흥분했다. 정확히는 고철로 만든 골렘에 가깝다. 약한 마을인들이 애용하는 이동 수단이다.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주는 골렘]이라고 어떤 마법사가 홍보해 팔아먹은 철골렘이다. 뭐 나름 잘 만든 골렘이긴 했다.
카힐은 좋다고 철골렘에 올라탔다.
“야야 너네도 빨리 타!”
“...1번가는 여기인데요. 어디로 가시려고요.”
파티가 열리는 곳이 바로 앞인데 어딜 간다는 소리지.
“아오, 말이 많아. 넌 타지마 그럼 병시나.”
카힐이 뻐큐를 날려줬다. 어느덧 옆에 올라탄 비비도 그녀를 따라 중지를 올렸다.
카힐은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철골렘 등을 살폈다.
철골렘의 등에는 손잡이 하나와 버튼 하나가 전부였다.
카힐은 당연히 버튼부터 눌렀다. 빨갛고 동그란 버튼이 있는데 안 누를 수 있는 인간이 있나? 마족도 누르는데.
그러자 철골렘이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골렘. 골렘.”
철골렘이 무슨 포*몬처럼 말했다.
“오! 켜진 건가 봐. 이걸로 움직이는 건가? 이랴! 가자!”
카힐이 손잡이를 우측으로 밀었다. 그러자 골렘도 우측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골렘.”
이번엔 좌측으로.
“좌골렘.”
“오. 그럼 이건 어떠냐.”
카힐이 손잡이를 잡고는 신나게 흔들기 시작했다. 좌우좌좌우전후후전전좌우좌우.
“좌골렘. 우골렘. 좌골렘. 좌골렘. 좌골렘...”
“뭐야 이 새끼. 틀렸는데?”
카힐이 계속해서 손잡이를 돌려댔다.
“ㅈ..우골렘. 전....후... 휴... 시-발. 그만해라 인간.”
“말한다! 고철이 말을 해!”
“컨셉 깨지 마라 인간. 잠시만, 넌 인간이 아니다.”
인간들의 수다에 지쳐 말 못 하는 컨셉을 잡은 철골렘이었다. 서비스업의 고충에 눈물이 난다.
그때 비비가 폴짝 철골렘에 올라탔다.
“골렘. 골렘.”
“꿔!”
그러고는 손잡이를 최대로 밀었다. 그리고 약한 녀석들 전용인 손잡이는 비비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뚝 부러졌다.
“엥?”
“우어?”
“골르랴랄랴랴. 뭘 건든 거냐 미친 인간.”
쿠당탕. 우다다다. 철골렘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부러지며 철골렘에 깃든 마법 술식이 비틀어진 모양이다.
“우아악!”
세상 조용한 마을에서 카힐이 철골렘을 타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쿠다다다 쾅. 우다다다 쾅.
마을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이날 1번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꺄아아악!”
“끄어어어!”
“오-류. 오-류.”
‘... 모르는 사람인 척 하자.’
“으아악!”
그때 철골렘이 앙피를 향해서 달려왔다. 앙피는 철골렘을 피해 도망가려 했고 그 마음을 모르는 카힐은 그를 순식간에 낚아챘다.
덕분에 앙피도 고장 난 철골렘에 합승했다.
“끼야악!”
“우어!”
“...흐어엉.”
앙피 일행은 고장 난 철골렘에 겨우 매달린 채 끌려다녔다.
철골렘은 어느 커다란 건물에 크게 부딪히고는 드디어 멈춰 섰다.
그리고 그 건물이 바로. 파티를 열기로 했던 그 건물이다. 역시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주는 골렘’이다.
“골렘.... 좆간 수준···.”
하지만 철골렘은 그대로 생명을 잃고 붕괴되었다. 그 탓에 매달려있던 앙피 일행은 무너진 지붕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타앗. 쿠당탕. 뽀각.
유일하게 착지에 성공한 카힐이 이마를 쓸었다.
“휴. 큰일 날 뻔했네.”
그녀의 옆에는 착지에 실패한 앙피와 발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비비가 쓰러져있었다.
“....충분히 큰일 났어요.”
“뭐냐. 너 녀석들은! 설마 지금 난리 난 그 혁명군 무리냐!!”
갑자기 나타난 앙피 일행에 파티를 즐기던 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어.....’
“잘 못 들어왔어요...”
앙피, 카힐, 비비.
화려하게 파티에 등장!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