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아니 그니까 나는 안 나갈 거라고!!
한편 다른 방에 갇혀 있는 비비의 경우.
“쿠에에에엙!”
비비는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그녀 역시도 두 손을 묶은 수갑이 거슬리는 모양이다.
찰랑. 챠르르. 비비가 수갑을 정신 사납게 흔든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같은 방에 수감된 죄수1이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비비의 방에는 그녀 외에도 3명의 남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끝방의 누구들과 달리 아주 차분해 보인다.
그들은 비비가 들어왔을 때 성심성의껏 감방에 적응하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비비의 창백한 피부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그들은 비비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눈치챘지만 무례하게 그 점을 지적할 순 없었다. 애써 모른 척하면서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우어어어!”
비비가 죄수1에게 수갑을 빼달라고 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한껏 긴장하던 죄수1은 그 손짓에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으악! 아. 죄송합니다. 이런.”
‘피부가 좀 창백하다고 선입견을 갖다니. 난 못돼먹은 흉악범인가?’
죄수1이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크륽...”
비비는 다른 죄수들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하나같이 겁을 먹고 구석에 뭉쳐있는 꼴이 퍽 우스웠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비비를 도와줄 방도를 찾고 있다.
“저희가 저 아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하지만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모양입니다. 무슨 심한 일을 당한 건 아닐까요? 그 일부터 알아내어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혹시 인외종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지 밖에는 커다란 덩치의 생명체나 머리에 뿔이 달린 생명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뿔이 달린 생명체는 카힐과 같은 마족을 말하는 듯하다.
“흠. 하지만 다른 종족이냐고 물어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일단 함부로 판단하진 말죠.”
“그렇군요. 무례를 막아주어서 감사합니다.”
죄수들이 지루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동안 비비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
수갑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팔을 부숴버리면 된다.
비비는 즉시 이 무식한 방법을 시도했다.
“크르르르륽!”
비비가 비좁은 수갑 사이로 손목을 비틀어 빼고 있다.
우직. 우직.
좀비라서 통각 따위 없는 비비는 뼈가 부서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을 더 비틀었다.
콰지직. 뿌드득.
“으아아악!!”
“꺄아아아아악!”
덕분에 죄수들은 더욱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저건 중법 제1항 ‘소리 지르기 금지’ 위반이다.
“쿠헤헭.”
거의 다 빠진 손목에 비비는 미소를 머금었다.
“우아악!!”
“역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죄수들도 중법을 계속 어길 정도로 반응이 좋네.
***
앙피 쪽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갑자기 발견한 2명의 소환수.
young한 노인, 제트.
앙피는 그를 언제 소환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진실은 소환해놓고도 너무 소환수스럽지 않아서 동네 어르신으로 착각했었다. 앙피는 그냥 소환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넘겼었다.
또한, 제트 쪽에서도 본인을 소환한 소환술사가 저러니 자신의 주인이 누군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소환수의 본능으로 주인의 이름이 ‘앙피’라는 것만 인지하고는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홀로 떠났다.
그러다 중지에서 껄렁하게 돌아다닌 탓에 감옥에 잡혀버렸지만 말이다.
“자네가 앙피였구먼. 같이 나가보자고! 껄껄.”
“아뇨. 주인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에게 맡기십시오.”
경비병인 그는 어느새 감방 안으로 들어와 제트를 견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뭉치. 슾밥 배달 업무로 소환되었다가 길을 잃는 바람에 중지까지 와버린 경우다.
듬직한 체구의 뭉치는 감옥의 가슴팍을 팡팡 두드리며 자신만 믿으라 했다.
“...전 지금 안 나갈 거예요...”
“봤지? 앙피는 너랑 지금 나가기 싫다는구나. 나랑 밤에 나간다는 뜻이지.”
“주인님 사실입니까? 이런 죄수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뭬야! 경비병이 탈옥을 도와주는 게 말이 돼?!”
“탈옥 님이 아니라 주인님을 도와드리는 겁니다!”
‘...다 꺼졌으면 좋겠다...’
앙피는 으르렁대는 둘을 피해 슬슬 구석으로 도망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환수 둘의 경쟁은 더 심해진다.
“죄수 신분으로 주인님을 도와줄 방법이 있기나 합니까!?”
“흥. 독대지 편인 경비병보다는 낫지. 죄수의 마음도 모르는 주제에.”
“그럼 저도 재판을 받고 죄수로 다시 오겠습니다.”
“끝방이 그렇게나 쉽게 올 수 있는 곳 같애?”
“어후! 시끄러! 둘 다 그만해!”
결국 보다 못한 아치가 둘을 말렸다. 처음 보는 상황에 다른 감방에서도 창살 너머로 머리를 빼고 구경하고 있다.
아깐 죄수가 감방 밖으로 나오더니, 이번엔 경비병이 감방 안으로 들어가 있다. 탈옥이니, 주인님이라느니 알 수 없는 말만 해대면서 말이다.
“그럼 둘 다 도와주면 되겠네. 앙? 그럼 되지?”
“좋습니다. 누가 더 도움 되었는지 나중에 평가받죠.”
“굳이 안 해도 알겠지만.”
제트가 귀를 후비적댔다.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과 달리 사실 아무 계획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도 중지인이 아니기에 뻔뻔하게 무례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반면 뭉치는 뼛속까지 중지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일반인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방법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저는 빨리 가보겠습니다.”
뭉치는 앙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감방을 떠났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래서 앙피. 넌 소지에서 왔다고?”
아치가 이빨을 쑤시며 물었다.
“...네.”
“근데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냐?”
“아... 대마법사를 찾으려고요.”
“너도 마법 부리는 거 아냐? 저 할배가 저렇게 누구 말 잘 들을 사람이 아닌데.”
“사실 능력을 없애려고 해요..”
“왜? 마법사라는 게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 마법이란 건 타고나야만 가능한 것. 일반적으로 마법사는 마력이나 마나가 필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곳의 마법사에겐 그런 게 필요하지 않다. 마법사의 대다수가 아무런 제약 없이 발현한 고유한 마법을 쓸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능력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단 두 명. 그 단점이 없는 자가 있다.
그중 한 명은 당연히 대마법사. 그의 능력은 타인의 고유 마법을 빼앗는 것이다.
악한 마음으로 모든 마법사를 멸종시킬 수도 있었던 그는 여왕의 제안으로 지금의 포지션을 갖게 되었다.
악한 마법사의 능력을 빼앗아 처벌을 내리거나, 마법사의 길을 거부하는 이들의 능력을 빼앗아 평범한 삶을 선사해주는 일.
그렇게 그는 느리지만 천천히 능력의 가짓수를 늘려가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예상한 대로 앙피다.
그는 이전엔 없던 ‘시야 공유’를 습득했을뿐더러 필히 ‘수 제한’이 걸려 있어야 할 소환수를 끝도 없이 소환할 수 있다.
정작 앙피에겐 ‘무한한 소환수’ 따위는 ‘무한한 어색함’으로 수렴한다는 단점이 되었지만 말이다.
“...전 이 능력이 싫어요.”
“쯧. 배부른 소리 하네.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인 건 아냐? 너 가만 보면 무례 수준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이상해.”
아치가 비겁하게 팩트로 폭행했다.
하지만 앙피도 앙피 나름대로 숙면이 방해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성격만 좀 고친다면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 해제하면 해결될 일이긴 했다.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베-. 니가 친구 하나 없는 건 알겠다.”
아치가 낼름 혀를 내밀었다. 그래도 이번 건 앙피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했다. 앙피는 ‘친구’의 필요성을 딱히 못 느끼는 편이니까.
그보다 시간이 슬슬 밤이 다 되어 가니 탈옥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소극적인 앙피는 저 멀리 치워둔 채 아치와 제트가 탈옥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여기가 최하층이니까, 위로 3번 올라가야 해.”
“위로 올라가면 재판소로 이어지잖니. 독대지가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런가? 신경 쓰지 말라고 빌면 봐주지 않으려나.”
그렇게 전혀 도움 안 되는 계획이 세워질 무렵. 저 멀리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뚜벅- 뚜벅-
뭉치의 발소리다. 아까 무슨 좋은 생각이 난 듯 떠나더니, 뭘 가져올까.
“그래요. 여기예요?”
“네! 이분들이 탈옥을 준비하고 계신답니다.”
이 미친 경비병이 자신의 상사를 데려왔다. 심지어 현재 감옥을 관리하는 총 담당자다.
‘....뭐지. 배신인가..? 갑자기 잠금장치 같은 거 걸면 안 되는데....’
심상치 않은 상황에 앙피도 구석에서 슬슬 기어 나왔다.
총 담당자는 두꺼운 눈썹을 씰룩거리며 방 안을 훑었다. 그리고는 가벼운 기침과 함께 입을 뗐다.
“그 탈옥이란 게 괜찮은지 논의하기 위해 왔어요. 누가 대표로 얘기할 테죠?”
죄수를 얼마나 존중하면 탈옥까지 심의해주는 걸까.
“저분이 해줄 겁니다!”
“앙피! 네가 가장 잘 알잖니!”
두 소환수의 따가운 눈초리가 앙피에게 꽂힌다.
아니 그니까.
“ㄴ...난 안 나간다고...”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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