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기숙사를 정해보자
앙피 일행에 마족과 좀비가 있다지만 왼섬에서 이 둘의 존재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둘의 등장은 앞선 두 명보다 더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즐기는 자가 있었으니.
“후후후. 이 몸의 등장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군.”
나영웅은 양쪽으로 나란히 선 메이커 학생들 사이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가 섰다.
앙피 일행이 기존 학생들의 기를 누르는 동안 피죠가 교장과 은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는 마차를 타고 금방 가버렸다.
‘젠장. 진짜로 왕국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니. 이거 역으로 잡히면 안 되는데.’
“크흠. 전학생들은 날 따라오게. 메이커들도 어서 훈련하러 돌아가!”
“네!”, “넵!”
“알겠소!”
교장의 한 마디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그럼 이리로 가지.”
앙피 일행은 교장을 따라 학교 꼭대기에 위치한 교장실로 이동했다.
“크흠. 그럼 한 명씩 자기소개라도 해봐라.”
‘아무리 그래도 내가 교장이야. 왕국 사람이라 해도 감히 내 눈 밖에 날 순 없을걸?’
교장은 고급 의자에 푹신하게 앉아 다리를 꼬았다. 두꺼운 허벅지 탓에 제대로 꼬아지진 않아 조금 우스워 보인다.
갑자기 찾아온 자기소개 타임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앙피였다.
“ㄱ..근데 누구신데요...”
“그래 임마! 니부터 소개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카힐이 대놓고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댔다.
그들의 당돌한 태도에 교장은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아니, 여기 교장실이잖아! 이 녀석들 얼마나 얼빵한 게야!’
“크흐흠. 그래. 난 교장이다. 됐지? 이제 너희 차례다.”
“후후후. 이름도 교장이군. 외우기 쉽겠어.”
“와. 존나 대충 지었네.”
“아니야! 이름은 교유크증 사이코와 차음교···.”
“와 존나 길어. 그냥 교장이라 부를게.”
‘아니. 어쩌란 게야!’
교장이 주먹을 부들부들 쥐었다. 명문 학생들만 봐왔던 그에게 앙피 일행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교장은 바닷물을 만난 민물고기 마냥 온몸을 떨었다.
“암튼 난 카라ㅅ···. 앙피 내 이름 뭐였지?”
“카라시아 힐볼라스요..”
“난 카라시아 힐볼라스야. 줄여서 카힐이라 불러!”
“그래. 듣자 하니 카힐 양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한숨 진정한 교장이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응. 그랬나?”
“마왕을 잡는 용사를 육성하는 아카데미랬잖아요... 마족인걸 들키면 안 돼요..”
앙피가 카힐의 귀에 속삭였다.
마침 인간인 척 해봤던 경험도 있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카힐은 교장이 앉은 책상에 달라붙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뿔을 쿡쿡 가리키며 말했다.
“아, 맞아! 머리에 뿔 좀 나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병이야.”
부담스럽게 들이미는 카힐에 교장은 헛기침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눈은 떼지 않는 게 솔직한 남자였다.
‘마족 아닌가?’
“크흠. 알았네. 내가 알기로 희귀병을 앓고 있는 학생이 하나 더 있다고.”
교장은 시야를 가리는 카힐을 피해 다른 셋을 살폈다. 그는 어렵지 않게 한 명을 유추할 수 있었다.
“끄어어어?”
비비가 좀비임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이 행동했다. 예를 들면 갑자기 검지 손가락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던가.
“몬스...”
“헉. 괜찮니, 비비야. 또 몸의 관절이 약해지는 증상이 발현했구나.
그나저나 설마. 금방 우리 비비한테 몬스터라고 하려던 건 아니겠지?”
카힐이 어색하게 또박또박 연기했다. 그런 노력이 앙피 딴에는 신기했다.
“크흠. 그럴 리가! 난 모든 학생을 사랑해.”
“로리콘이란 겐가?”
“핰! 아, 존나 기분 나빠. 크흫.”
이쯤되면 교장을 놀리는 거에 맛들인 것 같다.
교장도 조금 내성이 생겼는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금니가 아득바득 갈리는 것만 빼면 말이다.
“비비 양은 성대가 망가져 말을 잘 못 하니 이해해주게.
그보다 내 소개를 하지. 이 몸은 이세계를 구할 존재, 나영웅이다. 지금까지 업적으로는 혁명군 리더, 그리고···.”
“다음.”
교장이 나영웅의 무용담을 끊었다. 앙심이 담긴 게 분명하다.
“앙피...에요..”
“그래. 됐다. 끝났다. 이제 학교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마.”
교장은 잠깐 대화한 것만으로 10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그는 구석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와 불을 붙였다. 학생 앞에선 시가를 태우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이 녀석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니 어쩔 수 없다.
그는 짙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책상 구석에 달린 마이크의 전원을 켰다.
“아아. 지금 당장. 각 기숙사 대표들은 교장실로 오길 바랍니다. 이상.”
아카데미엔 세 종류의 기숙사가 있었다.
힘이 곧 법이다. [두이지기 시르므 헤라] 기숙사.
피하면 그만이다. [슈 SU 쉬욱] 기숙사.
둘 다 멍청한 놈들이다. [No.1 지컬] 기숙사.
각 기숙사는 용사의 기질에 따라 분류되었다.
“후후후. 기숙사는 말하는 모자가 정해주는 건가?”
나영웅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아니. 이 녀석이 정해 줄 거다.”
교장은 시가를 집어넣고는 교장실 구석에 소중히 보관된 케이지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책상 밑에서 상자도 하나 꺼내 올렸다.
상자 옆의 케이지가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할 찰나 교장이 케이지 안의 무언가를 상자에 넣었다.
“안 무니까 가까이 오렴.”
교장은 안심하라며 손짓했다.
앙피는 쓱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찍- 찍-.
갈색빛의 쥐 하나가 늠름하게 상자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것의 발밑의 상자엔 재밌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퉁이마다 각기 다른 색깔이 정해져 있었는데, 교장이 말하길 각 색깔이 기숙사의 대표색이라고 했다.
힘의 기숙사인 헤라는 빨강.
속도의 기숙사인 슈는 노랑.
지식의 기숙사인 지컬은 초록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귀퉁이엔 갈색빛의 쥐가 앉아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비버에 가까운 것 같다.
크기는 쥐에 가깝지만, 커다란 이빨이나 납작한 꼬리 같은 비버의 특징을 가진 이 동물은 지저다. (원래 이름은 쥐와 비버를 합친 ‘뷔’로 예정되어있었지만, 차마 ‘뷔의 등을 쓰다듬어라.’ 같은 문장을 쓸 수 없어 바꿨다.)
“자. 이 지저의 등을 쓰다듬어라. 그럼 지저가 너희의 기운을 느끼고 어울리는 기숙사를 정해줄 거다.
누구 먼저 할 테냐?”
“나! 나나!”
카힐이 자신 있게 다가와 상자 속 지저와 눈을 마주쳤다.
지저는 아직 카힐의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동물의 감각으로 마족이 풍기는 위험 신호를 맡은 모양이다.
이빨과 털이 사스스스 떨리는 걸 보니 조금 징그러운 기분도 들었다.
“윽. 나 먼저 안 할래. 비비! 너 먼저 해.”
카힐이 비비의 손을 잡아끌어 상자 안으로 넣었다.
“기거?”
비비가 지저의 몸을 꽉 잡았다. 등을 쓰다듬으라니까, 아무래도 이전에 놓쳤던 쥐가 생각난 모양이다.
하지만 비비가 느릿느릿 지저를 들려고 하자 지저는 크게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썩은 비비의 손목이 똑하고 부러져 버렸다.
지저는 몸에 달라붙은 비비의 손에 기겁을 하며 뛰어다니다 모퉁이 하나에 머리를 꽝 박고는 멈춰 섰다.
“아니. 세상에! 괜찮니, 지저? 이 손목은 빨리 가져가도록 하세요!”
교장이 여전히 지저 몸을 붙든 비비의 손을 떼어냈다.
비비는 그저 해맑게 손을 받아 들고는 적당히 손목 부근에 쑤셔 넣었다.
“오. 비비, 노란색이네!”
지저가 부딪혀 멈춘 곳의 색깔이 노란색이었다. 그렇다는 건 비비는 속도의 기숙사 [슈] 소속이다.
비비는 어기적어기적 다시 상자로 돌아와 결과를 확인했다.
‘이런 느려터진 녀석이 어떻게 [슈] 소속이지? 지저가 몸이 안 좋나?’
“크흠. 그렇군. 비비 양은 슈 소속이라네.”
“끄오!”
비비가 뒤늦게 반응했다. 노란색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비비. 어때. 저거 만질 때 안 징그러워?”
“쿠엙?”
카힐은 본인 덩치의 반도 안 되는 비비에게 괜찮다는 표시를 받고서야 상자 앞에 섰다.
한편 교장은 지저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한 나뭇가지를 먹이로 주고 있었다.
“비켜봐. 교장. 내 차례야.”
카힐이 아직 나뭇가지를 입에 문 지저의 등을 팍팍 쓰다듬었다.
“자. 난 누가 봐도 힘이지? 빨간색으로 가라.”
카힐이 노골적으로 빨강 모퉁이를 향해 쓰다듬었다.
그녀에게 밀리듯 이동하던 지저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초록 모퉁이로 뛰어갔다.
“안 돼! 거기가 제일 싫은데!”
“카힐 양은 [지컬] 소속이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이니 배울 것이 많을 터. 너무 싫어할 필요 없다네.”
“아 씨. 머리 아픈 거 딱 질색인데.”
다음으론 나영웅이 지저의 등을 쓰다듬었다.
지저는 별 고민 없이 빨강 모퉁이로 향했다. 힘의 기숙사 [헤라] 당첨이다.
“아니. 이 비곗덩어리가 어떻게 힘이야!”
“후후후. 살이 아니라 근육이라네. 내 덩치가 안 보이는가?”
그렇게 마지막으로 앙피의 차례가 되었다.
앙피는 상자 속 지저와 빤히 눈을 맞췄다.
‘...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앙피는 지저에게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슥.
거의 털끝에 닿을락 말락 하게 손을 대자 지저는 곧장 출발했다.
지저는 상자의 가운데에 서서 모퉁이들을 보며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결정했는지 한 모퉁이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랴랴랴. 신기하군. 이런 경우가 또 나올 줄이야.”
지저가 앉은 곳은 다름 아닌 출발했던 그 모퉁이였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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