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앙피, 이번엔 탑등반물에 휘말리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시스템 창은 계속해서 기본 설명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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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우선 당신의 성향을 파악하겠습니다. 앞의 구슬에 손을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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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에 갑자기 구슬 하나가 나타났다.
앙피는 구슬에 조심스레 손을 올려놨다. 반면 카힐은 구슬을 보자마자 일단 깨버렸다. 검은 구슬인 줄 알았다나 뭐라나.
어쨌든 앙피가 손을 올려놓자 구슬은 잠시 빛나더니 여러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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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당신은 이미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 스탯 부여 및 스킬 개방을 취소하고 기본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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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여기서 초기 직업 및 스킬, 스탯 등이 결정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환술사인 앙피가 새 직업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기본 튜토리얼을 전부 뛰어넘고 곧장 전투 튜토리얼로 넘어갔다.
앙피가 잠시 눈을 깜빡이자 하얀 공간은 사라지고 커다란 광장에 있었다.
광장에는 다른 녀석들이 이미 와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검은 점 밖에서 치렀던 전투 덕에 기본 튜토리얼이 빨리 끝난 듯했다.
“야. 앙피. 이쪽이야.”
카힐이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ㄴ... 네.
..... 나영웅 님은 왜 저래요...?”
앙피가 이상하게 궁디를 씰룩거리는 나영웅을 빤히 쳐다봤다. 왠지 모를 불쾌함이 느껴지는 움직임이다.
“몰라. 아까부터 존나 흥분했어. 뭐 판타? 팬티? 그런 공간이라고 좋아하던데?”
“팬티를...”
‘그래서 그때도 팬티만 입고 계셨구나...’
판타지 공간이라 신이 났다는 뜻이었다.
미궁. 탑. 등반자. 레벨업.
통칭 탑등반물로 불리는 장르.
이것 또한 나영웅이 좋아하는 장르였다.
그리고 이 장르에서 빠지면 섭섭하면서도 넣으면 갑갑한 요소가 있었다.
“후후후. 어서 상태 창을 외쳐보게.”
“뭘 외쳐요..?”
“상태 창! 이렇게 말이네.”
“.....”
다들 그런 이상한 짓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뺀질대다 결국 나영웅의 성화에 못 이겨 하나둘 외쳐봤다.
그러자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 마법 종이랑 비슷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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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정보를 불러옵니다. 일부 정보가 축약되어 표시됩니다.
<사용자 정보>
이름 : 앙피(Lv. 5)
나이 : 15
특성 : 소환술사
스킬 : 소환술, 소환 해제, 무릎 굽히지 않고 제자리 뛰기.
세부 스탯 : 힘(3), 속도(3), 지능(5), 행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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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도 스킬이야..?’
앙피가 파란 시스템 창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기 객관화에는 좋아 보이긴 한데 뭐 봐도 딱히 별거 없었다. 나영웅이 왜 이런 거에 열광하는지 앙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앙피는 이리저리 시스템 창을 둘러보다 스킬 창을 눌러봤다. 생각해보면 소환술을 원하면 쓸 수 있었기에 딱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앙피는 이번 기회에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나 알아보자 싶었다.
하지만 스킬 창을 열자 작은 오류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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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일부 스킬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측정 불가 스킬의 레벨을 미표시합니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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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피는 딱히 읽어보지도 않고 확인을 눌렀다. 무슨 내용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일단 확인 버튼이 눈에 들어와서 누른 것이었다.
이런 성향은 앙피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앙피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경고 메시지를 넘기고 스킬 창을 천천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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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스킬>
- 무릎 굽히지 않고 제자리 뛰기(Lv. 2) : 무릎을 굽히지 않고 제자리에서 뜁니다.
- 소환술(Lv. ??) : 소환수 하나를 소환합니다.
- 소환 해제(Lv. max) : 소환한 소환수를 역소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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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세 개밖에 없는 스킬. 게다가 하나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중요한 건 소환술. 앙피는 소환술을 눌러 자세히 보기를 클릭했다.
그러자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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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술>Lv. ??
시전 마나 : -
쿨타임 : -
최대 소환수 : 제한 없음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이 세계로 소환합니다. 해당 생명체는 시전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단, 소환 해제했던 소환수가 있다면 새로운 소환수가 소환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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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나영웅을 소환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만 소환됐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보다 앙피는 ‘다른 차원’이라는 점이 조금 신경쓰였다.
나영웅이나 비비야 그렇다 쳐도 카힐이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그녀는 분명 마왕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고, 지금 그 마왕이 오른섬에 있다.
그렇다면 카힐도 같은 차원에서 살던 게 아닌가?
‘음... 인간계랑 마계는 다른 차원인 걸까...’
그렇게 조금의 의문을 품고 있는 찰나. 스킬 창 위로 다른 창 하나가 떴다.
그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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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환된 소환수>
- 카힐
- 하이드로
- ■■
- 뭉치
- 지저 왕
- 비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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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피가 이때까지 소환했던 소환수들의 정보가 쭉 나열되었다. 그 목록이 얼마나 길면 시스템 창이 끝도 없이 천장을 향해 늘어났다.
띠리리리리링-
시스템은 계속해서 발견되는 앙피의 소환수에 오류가 날 기세였다. 시스템 창 목록에 계속해서 앙피의 소환수가 추가되었다.
앙피가 지금까지 소환한 소환수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안 될 수준이었다. 이걸 정말 단순히 소환술사의 영역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 으악 눈 아파....’
앙피는 너무 빨리 올라가는 이름들을 하나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시스템 창은 천장에 닿고 나서야 멈췄다.
시스템 창 제일 밑의 비비와 나영웅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약 수백 개의 이름이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가는 곳마다 소환수가 있다 싶더니 정작 그 목록을 보고 나니 오히려 적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피는 이제 시스템 창은 질렸는지 전부 꺼버렸다. 굳이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을 생각은 없었다.
‘ㄱ... 괜히 책임감만 생겨...’
한편, 나영웅은 다른 사람들의 상태 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후후. 어서 보게. 비비 양은 뭐라고 쓰여 있는가!”
“꾸어어?”
“뭐냐 이거. 웃기네. 봐봐. 너희는 뭐냐?”
셋은 옹기종기 모여 서로 정보 창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언가 재밌는 거라도 있는 건가?
잠시 한 명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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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 - 봉인 당한 마족의 이인자
종족 : 마족
레벨 : Lv. 15
특성 : 힘(Lv. 20), 속도(Lv. 8), 지능(Lv. 3), 행운(Lv. 1)···.
<버프>
- 소환수(시전자 : 앙피)
<디버프>
- 약해진 구속(Lv. 3)
- 구속(Lv. 50)
[해당 사용자는 봉인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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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힘]
레벨 : Lv. 74
특성 : 힘(Lv. 166), 속도(Lv. 130), 지능(Lv. 3), 행운(Lv.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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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은 구속구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이 되었다.
레벨이 74에서 15로 떨어지는 수준이라니. 그나마 이것도 구속구가 조금씩 풀렸기에 이 정도로 돌아온 것이다. 앙피에게 처음 구속당했을 때, 앙피에게 꿀밤만 맞아도 아파서 소리를 질렀던 걸 생각하면 1, 2레벨 언저리였을 것 같았다.
“와. 봤지! 빨리 구속구 풀라고!!”
“쿠쿠쿠. 카힐 양은 봉인이 풀려도 지능은 똑같군.”
“야. 넌 뭐 되냐? 니 것도 봐봐!”
“후후후. 상태 창!”
“으. 진짜 씹덕.”
카힐이 뭐라 하든 나영웅은 당당하게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는 정말이지 이세계에 와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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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웅> - 이세계 모험가
종족 : 인간
레벨 : Lv. 8
특성 : 힘(Lv. 5), 속도(Lv. 3), 지능(Lv. 40), 행운(Lv. 10), 잠재력(Lv. 99)
<버프>
- 소환수(시전자 : 앙피)
<디버프>
- 공복(Lv.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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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는가! 내 칭호. 이세계 여행자. 멋있지 않은가!”
“나도 마족 이인자거든?”
카힐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사실 이곳으로 소환되기 전에 딱히 마족의 2인자였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이유로 저런 칭호가 붙은 것 같은데, 당장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앙피도 옆에 다가와서 상태 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의 것을 훔쳐보는 건 즐겁다고 생각하는 앙피였다.
앙피는 조용히 있는 비비의 상태 창도 몰래 훔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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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 축복받은 신체
종족 : 언데드
레벨 : Lv. 13
특성 : 힘(Lv. 3), 속도(Lv. 48), 지능(Lv. 3), 행운(Lv. 5)···.
<버프>
- 소환수(시전자 : 앙피)
- 언데드의 의지
- 무한한 신체
- 부활한 의식
<디버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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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카힐 님이랑 지능이 똑같으시네요...”
“뭐? 누가?”
카힐도 다가와 비비의 상태 창을 보고는 얼굴을 쓸었다. 좀비랑 지능이 똑같다니, 카힐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헤헤 웃는 비비를 보니 더 착잡했다.
어쨌든 각자의 능력을 수치로 확인하니 뭔가 느낌이 색달랐다.
“후후후. 그것이 시스템 창의 매력이네. 성장이 즉시 눈에 보인다는 것.”
“안 물어봤고, 앙피 근데 왜 너는 파란색이냐?”
“파랑이요...?”
그러고 보니 파란색인 앙피의 시스템 창과 달리 나머지 셋의 시스템 창은 붉은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내용도 미세하게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색깔 어떻게 바꿨냐? 난 기왕이면 흰색이 좋은데. 어떻게 한 거야?”
카힐이 시스템 창 여기저기를 눌러댔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 튜토리얼을 끝낸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 미궁의 탑에 끌려왔다.
앙피 일행과 같이 검은 점에 실수로 발을 들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경우였다.
미궁의 탑이 다른 차원에서 도전자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렇게 이곳으로 소환된 자는 강제적으로 탑을 올라야 했다. 그들의 운명은 탑을 오르는 것 단 하나였다.
보통은 죽거나 오르거나 아니냐고?
틀렸다. 이 검은 점은 도전자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만약 탑에서 죽을 경우, 도전자의 영혼은 그대로 검은 점에 흡수되었다.
죽음과는 다르다. 그들은 탑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이 검은 점을 파괴하기 전까지 말이다.
미궁의 탑의 기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흡수된 도전자가 ‘마지막에 떠올린 인물’을 탑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탑에 흡수된 자들은 눈뜨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이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검은 점이 검은 점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사악하며 고약한 목표만을 추구했다. 이전의 ‘귀신의 집’에서도 봤듯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형태이기에 악랄하게 진화한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도전자들이 탑으로 소환되었다.
앙피 일행을 포함한 103명.
이 103명은 탑을 오를 도전자로 선택되었다.
‘... 근데 우린 튜토리얼만 하면 되니까...’
앙피는 한가로이 코를 훌쩍였다.
현재 층수 1층.
[튜토리얼 : 의지 증명] 시작.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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