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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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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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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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백학무관(3)

DUMMY

회귀 전 철혈여일(鐵血旅逸) 감명은 천하를 주유하며 무명을 떨쳤다.


무공 수위는 초절정.

익힌 무공의 이름은 철혈검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끔찍하리만치 위력적인 강검을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행보 또한 파격적이었기에 안유조차도 감명과는 단 한 번 만났을 따름이었다.


“누구냐?”

“안유라고 합니다. 피차 셈을 치를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무슨······.”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자는 얘기지요. 저는 철혈검법의 비급을 원합니다.”

“난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썩 꺼져라.”

“듣자 하니 철혈여일에 앙심을 품은 자들이 적지 않다더군요. 그런 자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니 내일 아침 해를 볼 수나 있을지······.”

“······어쩌자는 거냐.”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예까지 뚫고 들어왔으니 자격은 충분하겠지요?”


안유는 그렇게 철혈검법의 비급을 손에 넣었다.


구십구검 중 철혈무위의 초식을 펼칠 때마다 떠오르는 사내.


비무행을 위해 떠돌아다니던 과묵하고 쓸쓸한 검객.


“하압!”


그때보다는 왜소하고, 덜 쓸쓸해 보이는 등판을 안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젊군.’


쉬이익!

쉬익!


신선곡의 이름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틀 뒤의 경합에 심력을 많이 쏟고 있기 때문인지 감명의 검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안유는 감지승의 의도를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일까지, 그리고 당일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다.


신선곡의 사정을 빌미로 둘러대자 감지승은 흔쾌히 내당 연공실을 내주었다.


다만 연습 상대로 쓰라며 아들을 밀어 넣는 것이 조건 아닌 조건이었다.


‘승패엔 연연하지 않아도 그냥 지게 두지는 않겠다는 건가. 참으로 솔직하지 못한 내리사랑이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족하다.


감지승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으나 감명은 아버지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못마땅하신 거다.’


후웅!


감명은 철혈도도(鐵血滔滔)와 철혈유유(鐵血幽幽)를 연거푸 펼친 후 필사적으로 절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믿지 못하시는 거다. 나를, 아들을······.’


쉬이이익!


다섯 요혈을 노리는 철혈검법의 정수. 검광이 다섯 줄기로 나뉘며 철혈무위의 초식으로 화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특히나 감정적인 게 문제로군.’


안유는 짧은 단상을 정리했다.


이런 감명이 희대의 검객, 철혈여일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천수무관과의 경합은 그 시발점이었을 터. 승부에서 진 뒤 내쫓기듯 터전을 떠나고, 몇 개의 불행이 겹쳐······ 검귀가 되었는가.’


쑥.


안유는 조용히 협봉검을 꺼내 들었다.


‘저번 거래는 당신이 밑졌으니 이번에 셈을 마저 치르기로 합시다.’


“감 소협.”

“왜 부르······ 흡.”


감명은 협봉검을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한 번 겨뤄보지 않겠습니까.”

“······좋지요. 그런데 그 검으로 괜찮겠습니까? 기병으로 철혈검법을 펼치기 여간 어렵지 않을 터인데······.”

“아무렴 어떻습니까. 승부도 아닌데.”

“그러시다면야 뭐······.”


안유와 감명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감명의 몸은 제법 훌륭했다.

기골도 괜찮았고 잘 단련되어 있었으며 사족이지만 얼굴도 나쁘지 않았다.


부리부리한 눈썹에 선 굵은 이목구비.


숫기가 부족한 성정을 제하면 그야말로 제 아버지를 쏙 뺀 수준이었다.


“안 소협. 선공은 양보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안유는 사양 않고 선공에 나섰다.


철혈검법의 첫 번째 초식, 철혈성세(鐵血成勢)는 쾌속한 찌르기. 날카로운 검광이 감명의 오른 어깨로 짓쳐 들었다.


쐐액!


감명은 침착하게 철혈환지(鐵血丸之)를 펼쳐 반격했다. 허리를 숙여 상반신을 둥글게 말았다가 올려 베는 수법이었다.


‘나쁘지 않다.’


안유는 웃으며 격돌 직전 초식을 회수했다. 그리고 감명과 마찬가지로 상반신을 둥글게 말았다.


“앗!”


감명이 기함했다.

놀라우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회수와 출수는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졌는데 늦게 발출 했음에도 동작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쩡!


검이 사선을 이루며 맞부딪쳤다.


‘과연 신선곡은 다르다는 건가.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데······ 이익!’


감명의 속에서 울화가 치솟았다.


그리고 울화는 철혈도도와 철혈유유의 연환수로 변모했다.


쐐애애엑!


이 연환수는 인체를 정면으로 바라보아 이십사방(二十四方)으로 나누고, 서로 다른 방위를 점하는 공격이었다.


철혈도도는 축방(丑方), 간방(艮方), 인방(寅方), 다시 말해 상대의 왼 상반신을.


철혈유유는 미방(未方)과 곤방(坤方), 신방(申方), 다시 말해 상대의 오른 하반신을 노린다.


연격이 정반대의 방위로 날아들면 자연스레 손발이 어지러워지게 마련.


연계하기 까다로우나 상대가 대처하기도 어려운 비장의 한 수라고 자신할 만했다.


‘어떠냐.’


감명은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으나 안유는 이번에도 감명의 상상을 아득히 앞질렀다.


쐐애엑!


안유는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감명의 움직임을 정확히 따라했다.


철혈도도의 검세를 마찬가지로 철혈도도의 검세로.


철혈유유의 검세는 마찬가지로 철혈유유의 검세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받아낸 것이다.


쩡! 쩡! 쩡! 쩡!


협봉검의 검첨이 감명의 검첨을 찔렀다.


가느다란 만큼 가볍다. 가벼운 만큼 무르다. 경도를 생각하면 당연히 협봉검이 부러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는다.

감명은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충돌 직후 궤적이 조금씩 뒤틀린다. 그 찰나의 시간을 노려······ 힘을 흘리고 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놀라다 못해 질릴 정도의 묘기였다.


내공을 쓰지 않는 비무라 해도 날붙이는 날붙이다.


찔리면 다치고,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다.


“장부가 되려면 우선 사내부터 되어라. 듬직하고 굳건해야 한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철혈’의 뿌리는 부동심(不動心)에 있나니······.”


문득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씀이 떠올랐다.


요는 부동심.


감명에게 가장 필요한, 그러나 갖지 못한 것.


자신의 마음은 물 위의 부평초처럼 일렁이는데 저자의 마음은 강철과도 같았다.


저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수치심과 분노가 일었다.

감명은 다만 고함을 내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


비산하는 검광. 어지럽게 흩어지려던 예기에 가느다란 예기가 부딪쳤다.


쩡! 쩡! 쩡! 쩡! 쩡!


“······.”


기형검은 철혈검법의 절초를 다섯 번에 걸쳐 막아 세웠다.


절그럭.


검이 바닥을 뒹굴고 감명은 멍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여기까지.”


안유는 비무를 청했던 그 표정 그대로 말했다.


“혼자 익힐 때와는 다르군요. 확실히, 직접 검을 맞대니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만.”

“‘철혈’의 묘는 부동심에 기인합니다. 신속하고 정확해야 하기에 흔들려서는 안 되죠.”

“안 소협. 그만······.”

“감 소협은 분명히 오랜 세월, 최선을 다해 철혈검법을 연마했을 겁니다. 숙련도로만 따지면 아마 저와 비등하겠죠.”

“······.”

“그런데도 격차가 벌어졌으니 이는 무슨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그만!”


감명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나도 알아. 빌어먹을. 그러니 제발 좀 닥치란 말이다!”


쾅!


감명이 거칠게 바닥을 내려쳤다.


“담대해져라! 호협해져라! 물러터진 성격을 언제나 뜯어고치고 싶었지. 하지만 이 꼴이야.”


안유는 감명에게 그저 자그마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전생의 그가 도달했던 아득한 경지.

그곳에 좀 더 쉽게 도달할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검을 맞대야만 보이는 게 있다.


이는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득불 말해야만 전해지는 것 또한 있었다.


설령 그것이 욕지거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라고 좋은 줄 알아? 이 개 같은 자식아! 이겼다고 실실거리며 씹어대기는!”


감명의 욕지거리가 무언가를 촉발했다. 왠지 머리가 간질거려, 안유는 그 느낌에 푹 빠져들었다.


‘비급으로 익힌 철혈검법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구결이 있다 하더라도 사승 간에 구전(口傳)으로만 이어지는 심득이 누락 됐기 때문에······.’


안유는 구십구검을 위해 철혈검법을 극한까지 연마했으나 철혈여일의 검을 완벽히 구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뭔가가 부족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끝내 완성하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어렴풋이 짐작하던 무리(武理)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부족한 것은 비단 심득뿐만이 아니었다.


‘무학은 생물과도 같아 끊임없이 자라고 발전한다. 대를 이어 계승하는 건 이 때문. 그러나 쌓아 올리기에, 또한 무학이다. 한 생(生)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다.’


전생의 감명은 어떤 이유에선지 미친 듯이 검술에 매진했다.


아마도 복수를 위한 검.

낯설지 않았기에 쉬이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원한은 그저 일면일 뿐이다. 더 넓게 봐야 했어. 그가 강해지기로 마음먹은 동인(動因)은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승부가 낯설고 서투르다.


승패에 초연한 대신 일희일비하며.


스스로 미워하고 부정하는 젊은이다.


‘힘과 기술은 수단이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철혈여일은 결국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


거의 다 왔다.


안유는 어떤 황홀경 속에서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갈무리했다.


‘그렇군. 그는 되고 싶었던 거다. 무르고 모질지 못한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연한 무인이 되고 싶었던 거다.’


쓸쓸한 뒷모습이 또다시 머리를 스쳤다.


‘마치 아버지처럼······ 철혈······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철혈여일은······.’


“하아!”


안유는 참오에서 깨어나 숨을 내뱉었다.


아직도 징징대고 있는 감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군. 그런 거였어.’


어린 감명에게 가르침을 내리려다 되려 가르침을 받아버리다니, 기묘한 일이었다.


철혈여일 감명의 심득.


그가 가혹한 비무행을 거쳐 완성한 깨달음을 안유 또한 깨달아버린 것이다.


“나도, 나도······.”

“언제까지 징징거릴 작정입니까. 두렵습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그런 무인이 되지 못하는 게?”

“······.”

“철혈은 곧 부동. 그러나 부동을 위해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제가 얻은 비급의 주인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안 소협.”

“감 대협은 감 대협일 뿐입니다. 그 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지 마십시오. 당신이 바라는 당신이 되어야 합니다.”


철혈여일이 꺼내지 못한 말을 감명에게 전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으로 보아 감명은 안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정진하십시오. 쓰러지면 일어서고 지면 분루(憤淚)를 삼키며, 자신을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안유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를 뛰어넘으십시오.”


감명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건 실례가 아닙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만큼 큰 효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망연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감명.

동공은 여전히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지만 미약하나마 불씨를 지피는 데는 성공한 듯싶었다.


‘훨씬 나아졌군. 철혈여일이 언뜻 비쳐 보이기도 하고.’


땔감만 조금 더 넣어주면 경합 날에는 모닥불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럼, 감 소협. 다시 해봅시다. 설마 고작 한 번의 비무로 탈진하신 건 아니겠지요?”


흥.


감명이 엉망이 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이를 말입니까. 아직 한참은 더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쩡! 쩡! 쩡! 쩡!


두 사람은 해가 질 때까지, 그리고 해가 지고 난 뒤에도 대련을 이어나갔다.


“큭.”

“좋은 한 수였습니다.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았다면 더 매끄러웠겠지요.”

“다 읽혔군요. 곧바로 철혈무위를 펼치려고 했던 게 오히려 독이 된 모양입니다.”

“정확합니다. 강검이라 해도 꼭 단기 결전이 능사가 아닙니다. 천천히 풀어나갈 할 때는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합니다. 감 소협이 지치는 만큼 상대 또한 지치니, 그때 결착을 내십시오.”


감명은 수없이 지고, 구르며, 묻고, 궁구했다. 안유에 대한 반감은 이제 한 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를 상대하다 보니 이틀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마침내 결전 당일.


안유는 일어나자마자 의복부터 챙겼다.


‘음. 전낭은 역시 두둑하고 볼 일이군.’


시커멓고 품이 큰 흑의. 그리고 믿음직한 검은색 복면.


신전흥이 오늘을 위해 투덜거리며 사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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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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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5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 백학무관(3) 23.12.08 755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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