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7,824
추천수 :
558
글자수 :
209,961

작성
23.12.12 19:00
조회
716
추천
15
글자
13쪽

백학무관(5)

DUMMY

연호가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 참관인 쪽에서 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왔다.


체격이 다부지고 눈빛도 날카로운 게 무공을 익힌 모양.


“다음 경합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그다지 악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목소리가 연무장 끝까지 울려 퍼졌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

괜히 생색을 내기보다 실리를 노린, 현명한 선택이었다.


곧 두 무관의 제자들이 연무장 중앙으로 모였다.


내심 아까만 못하리라 생각한 이들도 그 면면을 보고는 하나둘 마음을 고쳐먹는 듯했다.


아버지들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직 체면치레가 익숙하지 않을 나이였다.


두 사람은 그들보다 한참이나 젊었고, 젊은 만큼 혈기왕성했다.


“얼굴빛이 영 안 좋군. 급체라도 한 건가? 나중에 딴소리하는 일 없게 의원을 불러주겠네.”


오유관은 감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면식이 몇 번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람을 풀어 미리 조사해둔 덕분이었다.


‘계집애 같은 놈. 성정이 화급하고 유약한 데다 실전에 익숙지 않다지?’


이렇게 성미를 일으켜 주면 가뜩이나 무딘 검이 더더욱 무뎌질 터였다.


그러나 감명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차분하게 도발을 흘렸다.


“자넨 패배가 두렵나 보군. 그럴 만도 하지. 자네가 진다면 경합은 사실상 끝이니까 말이야.”

“······놈!”

“하지만 난 아닐세. 이제 패배 따윈 두렵지 않아.”


감명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고, 지고, 또 지다 보니 알겠더군. 지나고 보면 고작 한 번의 패배일 뿐이지. 까짓 몇 번이 더해지면 어떤가.”

“무슨 개소리냐.”

“전력을 다하겠단 말일세. 이기던, 혹은 지던. 한 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래. 한발 앞서 있다 이거지?’


오유관은 노화를 억누르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과연 잠시 후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그럼, 시작하시오!”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이 검을 뽑았다.


철혈과 화안.

강검과 환검.


앞서 승부와 동일한 무공이었지만 양상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유관은 빙해탈각(氷解脫却)의 수법으로 선공에 나섰다.


빙해탈각은 신속한 일검을 세 갈래 검영 속에 숨겨 발출하는 초식이었다.


상대의 검을 맞받아치기엔 좋아도 먼저 공격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초식.


다소 무모한 감이 있었지만 공세를 취한 나름의 이유 또한 있었다.


쩡!


감명은 늦지 않게 철혈성세, 쾌속한 찌르기로 대응했지만 자신이 얼마쯤 손해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아귀가 찢어질 뻔했다. 상상 이상의 공력······.’


초수는 유인. 우월한 내공을 믿은 노림수였다.


감명은 기죽는 대신 전의를 불태웠다.


‘그래. 모든 상대가 안 소협 같지는 않겠지. 기교 대신 내공의 우위로 찍어누르는, 이런 승부도 있구나. 이게 바로······ 실전!’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겁먹는 대신, 감명은 어떤 기이한 쾌감에 휩싸였다.


안유와 겨룰 때 간혹 찾아오던 감각.

호승심이었다.


쩡! 쩡!


싸움이 길어질수록 감명의 패색이 짙어졌다.


오유관은 환검으로 자신의 검로를 틀어막고는, 반격을 다시 되받으며 우세를 점하는 중이었다.


아버지에겐 무수한 경험이 있고.

안유에게는 타고난 승부 감각이 있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똑같이 유인으로 낚아볼까? 아니면 도박에 가까운 맹공으로? 남은 내공을 전부 쥐어짠다면 어떨까?’


위기일발의 순간이었지만 타개책을 떠올리는 일은 무척이나 흥겨웠다. 그러나 반드시 한 가지만 골라야 했으니.


감명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안정적인 수를 골랐다.


쉬이이이익!


철혈검법의 절초.

안유와 함께 벼려낸 강검의 정수였다.


다섯 줄기의 검광이 비산하며 운포성라(雲布星羅)가 만들어낸 예기의 그물을 통과했다.


캉! 캉! 캉!


세 갈래는 그물에 가로막혀 흩어졌지만 두 갈래는 온존해 오유관의 요혈로 날아들었다.


“엇!”


오유관이 기함하며 재빨리 검을 회수했다.


돌아오는 초식의 이름은 연홍지탄(燕鴻之歎).


검을 거둬들이며 세 번 크게 흔들어, 한 개의 눈속임과 두 개의 공격을 만들어내는 한 수였다.


워낙 창졸간에 펼친 것이라 손속에 사정을 둘 겨를은 없었다.


검로는 감명의 급소 세 군데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감명은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셋 중 하나는 거짓. 공세를 뒤틀어 막아도 두 갈래가 남는다.’


두 갈래와 세 갈래.


한 갈래를 운 좋게 막아내도 호각이 최선이었고.


만약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목젖이 잘려나갈지도 몰랐다.


- 강검이라 해도 꼭 단기 결전이 능사가 아닙니다. 천천히 풀어나갈 할 때는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합니다.


불현듯 안유의 조언이 머리에 스치며, 감명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


무언가가 보인 것 같기도 했고,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그에 따라 검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흉맹한 검격을 그대로 막아버렸다.


카가가각!


감명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만!”


참관 무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유관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방금 천수무관 측은 명백한 살수를 사용했소. 하마터면 사람이 죽어 나갈 뻔했소이다!”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무인이 감명의 목젖 부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새빨간 혈선이 새겨져 있었다.


“으······.”


중인들은 눈을 가리거나 손가락질하며 소란을 피웠다.


사영풍을 비롯해 천수무관의 제자들이 참관인들에게 항의하자 소요는 한층 더 격심해졌다.


“밀린다 싶으니 콱 죽여버리려 한 건가?”

“형산파에는 법도도 없느냐! 에이, 때려치워라!”


오유관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이런 개 같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대사를 그르쳤다.


이기기만 했다면 나머지는 사영풍이 알아서 했을 터인데.


“······.”


그 사영풍은 자신을 포함해 야유를 쏟아내는 군중들을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줄초상을 치르겠구나. 저자는 싹 다 도륙 내고도 남을 자다.’


자신이 나설 틈도 없이 져버렸다.


또 어이없는 패배도 패배지만 본산의 기재가 언제 이런 모욕을 들어봤겠는가.


오싹.


사영풍이 내뿜는 살기가 점점 강해진다.


오유관은 순간 빙굴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의 한기를 느꼈다.


“······.”


철컥.


그가 막 검을 뽑으려는데 한 명의 인영이 연무장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백학무관주 감지승이었다.


“다들 진정하시오. 본 무관주가 한 말씀 올리겠소이다.”


감지승은 천수무관, 그중에서도 사영풍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 소협의 손속이 과하긴 했으나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을 것이오. 본 무관의 제자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지금 분위기는 너무 과열된 감이 없잖아 있소.”


자랑스러우면서도 대견한 아들.

방금 그 아들이 비명횡사할 뻔했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굴 때가 아니었다.


사태가 격화되면 승리조차 무색해질 지경에 다다를지 모른다.


안유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몰래 찾아와 이 점을 지적했다.


‘내 안 소협만 믿겠소.’


“오늘 경합은 친교의 장이나 이대로 끝나면 또 그것대로 아쉬울 것 같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터이니······.”

“참으로······ 옳은 말이오.”


그제야 사영풍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방금 경합을 불문에 부치고, 마저 친교를 다져봄이 어떠하겠소.”


천수무관주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이번에도 대답한 사람은 사영풍이었다.


“바라마지 않던 바요.”


참관인 중 몇이 이의를 제기하려 했으나 사영풍의 표독한 눈초리를 받고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교분을 쌓아보고자 하는데 백학에서는 어느 분이 나설 생각이오? 배분은 아무래도 좋소.”


노골적인 눈빛과 언동이었다.

사영풍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감지승을 불러내고 있었다.


‘단단히 독이 올랐군. 이제 형산은 물러설 곳이 없다. 애꿎은 제자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겠지.’


자신을 찾는 이유는 부상 때문에 상대하기 수월할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백학무관주가 가장 강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기는 것이 그나마 설욕할 수 있는 유일할 방법이기 때문이리라.


“본인 이외에도 철혈검법을 대성한 자가 있소. 그자라면 사 소협과 좋은 승부가 되겠지.”

“기대되는군. 더 끌 것도 없이 당장 시작합시다.”

“좋소.”


감지승은 기진맥진한 아들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버지······.”

“지금 난 백학무관주다. 언동을 조심하거라.”


감명이 피식 웃었다.


“제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관주님.”

“담은 좀 커진 모양이구나.”

“잘 모르겠습니다. 검을 휘두르기도 바빴던지라. 이놈의 담이 쪼그라들었는지 아니면 부풀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죽다 살아난 놈이 큰소리는.”

“······그 큰소리를 얼마나 참은 줄 아십니까? 하마터면 사영풍, 저자에게 달려들 뻔했습니다.”

“그랬다간 진짜로 죽었겠지.”


감명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몇 명쯤 죽여도 문제 되지 않는 자다. 실제로도 그렇고, 본인도 그리 생각하고 있겠지.”

“······.”

“힘과 재능, 젊음과 뒷배. 전부 갖췄으니 누가 뭐라 한들 신경이나 썼겠느냐.”

“그렇다면 임자를 제대로 만났군요.”


감명이 연무장 위로 올라오는 사내를 보며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것들은 저 사람도 전부 갖고 있으니까요.”


***


“저자가 백학무관의 마지막 순번인가?”

“그런 듯한데······ 뭘 저렇게 싸매고 있는 거야?”

“얼굴을 보여라!”


괴한은 새카만 복면으로도 모자라 흑의로 온몸을 두르고 있었다.


비무와는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수상한 행색.


‘난입인가?’


진행을 맡은 무인은 저도 모르게 백학무관주를 쳐다보았다.


- 우리 무관 쪽의 사람이 맞소. 부득불 저런 꼴로 나오게 되었으나 양해해주기 바라오.


백학무관주의 전음에 무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비무였다면 용인하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백학무관이 다소 양보했으니 천수무관도 얼마쯤은 양보해줘야겠지.’


사영풍 또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백학무관주가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내가 개의치 않으니 다들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서슬이 시퍼런 목소리에 수군거림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 궁금하지도 않아.”


사영풍이 검을 뽑으며 이죽거렸다. 안유는 복면 아래로 미소지으며 협봉검을 꺼냈다.


‘잔뜩 달아올랐군. 역시 자넨 재밌어.’


“기형검이라니, 천박하긴. 그깟 물건으로 패배를 위안 삼을 셈이냐?”

“······.”

“분수는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렇게만 해라. 쓸데없이 입을 놀릴 시간에 생각하고, 움직여라.”


사영풍이 싸늘하게 웃었다.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말이야.”


오싹.


주위를 잠식하는 엄청난 살기.


갑작스러운 오한에, 무인은 서둘러 물러서며 소리쳤다.


“마지막 경합을 시작······!”


펑!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사영풍은 딱 한 번 발을 굴러 순식간에 안유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노상보(露霜步)의 성취가 대단하군. 벌써 극성까지 익히다니.’


안유가 눈을 빛냈다.


현재로선 체력도, 내공도 사영풍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승부가 길어질수록 사영풍이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는데 저쪽에서 자청해서 다가와 주다니.


안유가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게 진짜 화안검법이다.’


쏴아아아!


쾌속무비한 손놀림을 따라 무수한 그림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한평, 오유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검영.


명문정파의 절학은 궁구할수록 날카로워지니 이는 연마한 시간보다도 깨달음이 중요했다.


이년 전 원공검법(猿公劍法)에 입문한 사영풍은 형산 검법의 묘리를 한창 체화해나가고 있었다.


속문 무공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형산의 진수.


이 깨달음이 더해져야 비로소 형산의 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안유는 무수한 검영에 맞서는 대신 본체를 노렸다.


파바밧!


협봉검이 다섯 줄기로 비산하며 철혈검법의 절초로 화했다.


‘흥, 철혈무위. 처음부터 절초라니 애쓰는군.’


사영풍은 코웃음을 쳤다.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견식한 절초.

이미 그 변화와 투로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참에 검을 박살 내주지. 다섯 조각이면 적당하겠어.’


카가각!


검영으로 검광을 하나씩 짓누르려다가, 사영풍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어?’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알려드립니다. 24.01.15 96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24.01.04 111 0 -
공지 19화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23.12.21 407 0 -
36 암살(5) 24.01.12 237 11 13쪽
35 암살(4) 24.01.11 216 9 13쪽
34 암살(3) 24.01.10 260 6 13쪽
33 암살(2) 24.01.09 292 8 13쪽
32 암살(1) 24.01.08 319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30 불귀산장(5) 24.01.04 358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1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19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 백학무관(5) 23.12.12 716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