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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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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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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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1)

DUMMY

어느 폐 사찰.

허물어 져가는 대웅전 앞 공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쪽은 아무렇게나 흑발을 늘어뜨린 청년이었고 또 한쪽은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 있는 중년인이었다.



“······.”

“······.”


두 사람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묵묵히 서로를 응시하기만 했다. 묘한 긴장감이 공터를 휘감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청년에게선 날카로운 기세가 줄기차게 뿜어지고 있는 반면 중년인은 기세는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서로의 외양만큼이나 대조적인 기도. 또 그만큼이나 대조적인 병장기, 패검과 협봉검.


쐐애에엑!

콱!


어디선가 나뭇잎이 날아와 두 사람의 간합 정중앙에 꽂혔다.


청년과 중년인은 기다렸다는 듯 신형을 서로를 향해 날렸다.


카가가가각!


청년은 기묘하리만치 낮은 자세로 짓쳐 들었다. 상당히 기민하고 재빠른 쾌검, 중년인은 반격하는 대신 회피에만 전념했다.


카가가각!


새파란 검기가 지면을 도려냈다. 잘려나간 옷자락이 허공에 흩날린다. 중년인은 연신 신법을 펼쳐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었다.


중년인이 익힌 것은 암검. 일격필살을 궁구하는 기예였다. 암검은 살검이자 일검이니 청년처럼 여러 초식을 펼칠 필요가 없었다.


일수(一手)면 충분하다.


중년인이 옅은 핏물을 흩뿌리며 땅을 박찼다. 청년의 눈에 미미한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깡!


청년의 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생겨났다. 협봉검이 뱀처럼 파고들어 목을 긋고 지나간 탓이었다.


제때 쳐낸 덕분에 한 줄기 자상에 그쳤으나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청년은 불귀의 객이 되었을 터. 협봉검을 타고 흐르는 검기가 그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음!”

“후우.”


피를 보았으니 여기까지, 두 사람은 나직이 탄성을 터뜨리며 무기를 거둬들였다.


살기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은 고졸한 미소와 함께 일전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았다.


“고작 달포 만에 이렇게까지······. 정면에서도 이렇게 날카로울진대 뒤를 노리면 도리가 없겠군.”

“그건 장담하기 어렵겠소. 이렇게 빠른 쾌검을 구사하면서도 빈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대단한 검법에 대단한 수양이오.”

“빨라지기 위해 덜어내야 하나, 전부 덜어냈다간 너무 가벼워진다. 스승님의 첫 가르침이셨지.”

“과연. 일찍부터 쾌검의 약점을 보완해온 게로군. 좋은 승부였소. 부디 이번이 마지막 승부였으면 좋겠군.”

“나 또한 마찬가지요. 당신의 본업을 생각하면 다음은 비무로 끝나지 않겠지.”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소년이 검법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휘이익! 휘이익!


소년은 얇고 기다란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몇 번이고 지면을 굴렀다.


바닥에 몸을 밀착하는 쾌검, 청년이 펼친 것과 똑같은 천랑검법이었다.


소년의 의복은 흙먼지투성이였다. 아마도 나뭇잎을 던져 신호를 준 뒤 줄곧 수행 중인 듯했다.


소년은 잠시 후 숨을 고르며 소매를 펄럭였다. 불쑥 튀어나오는 수건, 소년은 그것으로 땀을 닦으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위지현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물었다.


“흑의협. 대체 소매에 뭘, 얼마나 넣어놓고 있는 거냐?”

“비밀입니다. 한바탕 움직이셨으니 시장하시지요? 금방 요깃거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안유가 싱긋 웃으며 식사 준비에 나섰다. 불에 내건 솥은 두 개, 준비한 식재도 두 종류였다.


보글보글.


한 개의 솥에는 곡물과 소채, 고기가 들어가고 나머지 솥에는 고운 쌀가루를 비롯해 약초가 한가득 들어갔다.


이청의 회복을 위해 안유가 특별히 마련한 약초죽. 이청은 지난 십오일 간 꾸준히 이 약초죽을 섭취, 아니 복용해오고 있었다.


“크으.”


약초죽을 들이켠 이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먹어도 먹어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맛이군.”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지요.”

“확실히 그 말이 맞네. 그동안 열심히 정양했다 해도 이게 없었다면 곤죽이 되었던 몸이 이렇듯 빨리 돌아오진 않았겠지.”


이청이 약초죽을 한가득 퍼담으며 말했다.


“자넨 참으로 다재다능하군. 무공도 무공이지만, 웬만한 의원보다 약초에 능통한 듯하니······ 게다가 기이한 암기술까지, 검법을 봐두지 않았다면 그 당문의 식솔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안유는 빙그레 웃으며 위지현에게 죽을 더 퍼주었다.


‘역시 선배군.’


이청의 지적은 자못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실제로 안유의 약학과 암기술 전반은 당문의 일맥에게 사사한 것이었다.


‘당가독종(唐家毒種). 지금쯤 귀주에서 한창 날뛰고 있겠지······.’


그의 활살자재총람(活殺自在總覽)과 십영촉비(十影鏃飛)는 앞으로도 요긴하게 써먹게 될 것이다.


활살자재총람은 당문 직계와 방계의 독학을 총망라한 서적에 외가의 약초 비학을 섞은 것이었고.


십영촉비는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암기술이었다.


당장은 무리지만 언젠가는 그와의 인연도 매듭지어야 할 때가 오리라.


그리고 그 만남은 이전보다는 빨리, 시기적절하게 이뤄지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할 일이 많군. 하루빨리 고죽방을 정리해야겠어.’


“흑의협.”


위지현의 목소리가 안유의 상념을 깼다. 그는 미미한 호기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네가 용맹정진하는 모습은 가히 천랑을 자부할 만했다. 그런데 근 달포 간 지켜봐도 한 가지 의문이 해갈되지 않는군.”

“그게 무엇입니까?”

“굳이 쌍수연공(雙手硏攻)을 하는 이유가 뭐지?”


안유가 웃으며 죽을 들이켰다. 안 그래도 슬슬 물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할 만도 했겠지.’


천랑검법은 특유의 낮은 자세를 위해 항상 한 손을 지면에 맞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손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보통 좌수(左手)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검법이 그러하듯 천랑검법 또한 오른손으로 펼치는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검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유는 모처럼의 수련 기간 내내 지지하는 손을 끊임없이 바꾸곤 했다.


그에 따라 나뭇가지를 오른손으로 쥐었다가 왼손으로 쥐고, 다시 오른손으로 쥐기를 반복했다.


손이 바뀌면 몸의 무게 중심부터 검로, 보법의 걸음걸이까지 바뀐다. 이건 평생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쥐던 사람이 왼손으로 젓가락을 쥔 격이나 다름없었다.


‘고생깨나 했지만 구십구검을 만드는 것에 비하면 여반장(如反掌)이지.’


처음에는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젠 좌수로 펼치는 천랑검법도 상당히 매끄러워져 있었다.


쌍수연공을 하게 된 계기는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 덕분이었고 그 깨달음의 계기는 바로 혈랑이었다.


‘감명 때와 비슷하다. 그때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내 짐작대로라면······!’


아직은 추측에 불과한 가능성. 불확실한 이상 더 말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하여 안유는 헤실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해봤습니다.”

“······그냥?”

“흉험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팔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말입니다.”

“······.”

“정말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 안유는 떠날 채비를 했다. 이청의 몸이 상당히 호전되었으니 더 미적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세 사람은 차례대로 마차에 올랐다. 안유가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이 대협은 장사에 진입한 후 적당한 곳에 내려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다른 일행과 합류한 뒤 행동하겠습니다.”


안유가 빙글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때까지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이청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내건 기간은 한 달. 그중 절반을 네게 할애해 준 것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한데 너무 빠듯하진 않을는지요? 시간이 부족한 듯싶으면 시한을 조금 늦춰도 괜찮습니다.”

“아니, 충분하네.”


이청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동하는 시간과 여타 준비 시간을 제해도 오히려 차고 남음이 있어. 자네가 흑도 수뇌들의 대략적인 신상을 알려준 덕분이네.”

“별 것 아닙니다.”

“별 것 아니긴, 그 덕에 결행을 상당히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네. 흠, 자네가 검을 빌려준 것도 컸지. 자네도 알겠지만 이런 기형검을 마련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건 그렇지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니까요. 어디 사람 죽이는 데 이외에 쓸법한 물건입니까. 어떻게 의뢰를 맡긴다 해도 시일이 소요될 뿐 아니라 아 저놈 사람 죽이겠구나, 괜한 의심만 사게 되겠지요.”


안유가 생긋 웃었다.


“저도 고죽방이 마련해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번거로워졌을 겁니다.”

“······.”

“······.”

“하하, 농입니다. 농.”


말이 투레질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장사, 고죽방의 본거지가 마침내 코앞이었다.


***


“빌어먹을!”


쾅!


고풍스러워 보이는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상당한 고급품이었지만 진기가 담긴 주먹을 배겨낼 재간은 없었다.


“이놈들은 대체 뭣 하고 있는 거냐!”


고죽방주, 탐랑귀 구유백은 분통을 터뜨렸다. 방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절정고수 열댓 명이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웬만한 중소 문파는 하룻밤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전력.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하는 고수 한 명은 어렵지 않게 짓밟아 버리고 돌아와야 마땅했다.


설령 그것이 신선곡의 고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설령, 만에 하나 패퇴했다 하더라도 무슨 소식이라도 들려와야 하지 않느냐! 육등위! 일 처리를 감히 이따위로······!”


바로 옆의 탁자를 작살 내려는 찰나

그 앞으로 한 명의 인형이 홀연히 나타났다. 구유백이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웬일이오.”


새하얀 무면탈을 쓴 사내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확인차 들렀습니다. 일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소. 조금 지체될 뿐일 테니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지요. 당신을 비롯해 다른 자들도 전부······!”


사내의 말투가 날카로워지며 무면탈 너머로 기광이 번뜩이는 듯했다.


“그리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하겠지요. 다들 천치가 아닙니다. 방도들이 동요하니 연합 세력도 쑥덕거리고 있습니다.”

“······.”

“태산파, 유협계, 육지문, 활빈회, 밀월당······ 수고스럽게 길들인 사냥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목줄이 느슨해진 탓이지요. 부방주와 고수들이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빨을 들이댈 겁니다.”

“알고 있소.”

“강호지이의 존재를 눈치채게 되면 더욱 곤란해지겠지요. 자칫 잘못했다간 우리의 냄새를 맡게 될지도 모르고······.”

“······그 또한 알고 있소.”

“부디 심혈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강호지이는 대계의 큰 가지 중 하나입니다. 그르쳤다간.”

“그만!”


쾅!


구유백이 나머지 탁자를 박살 내며 소리쳤다.


“거기까지 하시오. 난 당신들 부하가 아니오. 그분께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사냥개처럼 쉬이 부리려 하지 마시오!”

“······.”

“내 고죽방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소. 신선곡? 흑의협? 우리가 전력을 기울이면 제깟 놈들이 어쩌겠소? 육등위에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요. 다른 사냥개들은 먹이를 던져주든 본보기를 보이든, 아무튼 알아서 잘 정리하겠소. 그러니 더 입 대지 마시오.”

“그러시다면야. 뭐, 믿는 수밖에요.”


무면탈은 코웃음을 치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구유백은 핏발 선 눈으로 그가 서 있던 자리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감히······ 누굴······!”


자신은 사냥개가 아니다.

사냥개에 그칠 심산이었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늑대. 천랑을 뛰어넘을, 이미 뛰어넘은, 언젠가 강호를 경동시킬 늑대였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이놈이······!”


그때였다.


쾅!


고죽방의 총관, 유대평이 허겁지겁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방주의 집무실을 뒷간이라도 된 양 드나들다니, 그 작태에 구유백이 노성을 터뜨리려는데 유대평이 선수를 쳤다.


“방주님, 큰일 났습니다!”


유대평의 안색은 죽을병에라도 걸린 듯 무척이나 창백했다. 구유백은 묘한 불길함에 노기를 거둬들이고 잠자코 그의 보고를 들었다.


“······뭐?”


곧 구유백의 얼굴에도 핏기가 싹 가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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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암살(2) 24.01.09 293 8 13쪽
» 암살(1) 24.01.08 320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30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2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20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5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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