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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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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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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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불귀산장(4)

DUMMY

지청술은 지면의 미세한 진동을 읽어내 적의 위치와 움직임을 가늠하는 기예다.


내공 수발과 감각의 제련에 능숙해질수록 포착 범위 또한 늘어나는데 경지에 이른 자는 백 장(丈) 밖 적의 자취 또한 읽어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안유의 포착 범위는 종으로, 혹은 횡으로만 펼쳤을 때 십 장(丈) 남짓.


회귀 전과 비교하면 상당한 손색이 있었으나 이만해도 지금 당장은 충분했다.


터벅, 터벅, 터벅.


옆 방에서 손님 한 명이 밖으로 나갔다.


비교적 묵직한 걸음걸이, 아마도 너스레가 인상적이었던 푸짐한 중년인일 것이다.


중년인은 몇 개의 방을 지나 식탁이 늘어서 있던 곳마저 지나쳤다. 발소리는 더 깊숙한 곳으로 이어졌다.


‘주방 쪽. 거기서 더 들어간다.’


주방에 있던 세 명분의 움직임이 멈췄다. 쿠구궁. 미세한 진동과 함께 중년인과 한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쿠구궁, 다시금 진동.


주방에는 이제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방금 중년인을 마지막으로 전부 사라진 셈인가. 침소에 남아 있는 건 우리뿐.’


잠시 후 안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랑.

-말해라.

-슬슬 움직이도록 하죠.

-어디로 말이냐?

-우선은 주방입니다.

-주방?


안유가 기지개를 켜며 방문을 열었다. 위지현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안유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당당한 보무로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주인장, 냉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는 하인인지 점원인지, 줄곧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장정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둘 중 더 불퉁해 보이는 장정이 물었다. 안유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 길을 여쭙고 싶어서 말입니다.”

“측간은 저쪽이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밀실이라던가, 암동이라던가, 아무튼 그런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뭣!”


장정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계의 낯빛을 띠었다. 한 명은 식칼을 뽑고 한 명은 양 주먹을 둥글게 말아쥐었다.


안유의 눈이 기광을 내뿜었다.


‘저긴가.’


불퉁한 사내의 눈은 한순간 주방 구석의 커다란 찬장을 스쳐 지나갔다. 찬장 옆 바닥으로 무언가가 질질 끌려간 흔적이 보였다.


안유의 눈은 그 찰나 간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촤악!


식칼이 싸늘한 빛을 뿌리며 혈랑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고목 같은 주먹은 안유의 얼굴을 짓뭉개려 하고 있었다.


무공을 깨나 익힌 듯한 움직임.

허례를 배제한 지극히 실전적인 동작들.


‘피 맛을 아는 자들이다. 인육 만두로 만들지는 않아도 이렇게 몇 명이나 처리해온 건가.’


안유가 소매를 떨쳐 협봉검을 꺼냈다. 위지현의 검은 이미 뽑혀 나와, 장정의 목덜미를 파고들고 있었다.


촤아아악!


“끄억!”


휘익!


머리가 경풍에 휘말려 흩날린다. 안유는 고개를 살짝 틀어 장정의 주먹을 피해낸 뒤 가슴께를 협봉검으로 꿰뚫었다.


커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장정의 몸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주방에서 일하는 놈들치고는 솜씨가 좋군.”


혈랑이 핏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안유는 생긋 웃으며 찬장으로 향했다. 열어젖히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식기와 접시 따위가 보였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찬장.

범인(凡人)이라면 여기서 애를 먹었겠지만 안유는 아니었다.


타고난 눈은 찬장 곳곳을 훑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는 않다. 유독 두껍고 오목한 그릇이 안유의 눈길을 끌었다.


‘아예 달라붙어 있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고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안유는 그릇을 잡고 빙글, 돌려버렸다.


끼기기긱!


찬장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측으로, 아까 전의 끌린 흔적 그대로.


“뭐냐.”


위지현이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기관입니다.”

“그걸 물은 게 아니······.”


찬장이 밀려난 자리에는 아래로 동혈(同穴) 나 있었다. 조금 비스듬히, 사선으로 뚫려 있는 듯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전음을 사용하도록 하죠.”


***


두 사람은 무저갱과도 같은 동혈을 계속해서 내려갔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조금씩 옅어져만 갔다. 그에 따라 위지현의 걸음은 갈수록 느려졌다.


‘이젠 아예 아무것도 안 보이는군.’


절정고수쯤 되면 웬만한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쌓아 올린 내공과 안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점 빛도 비치지 않는 암흑 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은 또 아니었다.


그렇기에 안유의 움직임은 명백히 이상했다.


안유는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둠 속을 쑥쑥 치고 나갔다. 그는 벌써 한참이나 앞에서 위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지현은 벽면을 짚어가며 간신히 안유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 문제 없다.

-정 힘들면 불을 피우심이······.

-죽여달라고 고사를 지내자는 건가?

-확실히, 그건 그렇지요.

-내 신경은 쓰지 마라.


문득 생각났다는 듯, 위지현이 벽면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동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 거 같군. 기관에 동혈까지······ 냉일, 대체 뭐 하는 자지?

-모르긴 몰라도 부자인 건 확실합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부자. 그런 부자가 아니고서야 어디 이런 산장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렇게 둘러대며 안유는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속으로 삼켰다.


‘기관이야 돈만 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다지만 동혈은 아니다.’


이렇듯 깊고, 튼튼하면서도, 또 깔끔하게 굴을 팔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비스듬히 파고 들어가는 방식을 생각하면 그 폭은 더더욱 좁아진다.


필요 이상으로 깊게, 아득할 정도로 깊게 굴을 파는 자.


또 이렇게 열심히 파낸 굴을 미련 없이 내다 버리는 자.


안유가 추측건대 불귀산장은 그자가 내다 버린 굴을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 지나지 않으리라.


‘교토(狡兎). 여기도 굴을 파놓은 건가.’


회귀 전, 그 덕분에 숱한 계략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는 기인이지만 착굴(鑿掘)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 중의 대가였다.


‘교토에 관해선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땅을 파고 있겠지. 찾아내기만 하면 그 뒤는 일사천리다. 곧 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거다.’


안유는 고죽방과의 일이 마무리되면 그의 행방을 수소문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쯤 더 걸었을까.

두 사람은 동혈의 끝에 도착했다.


동혈의 끝에는 꽤 커다란 공동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공동의 초입에선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냄새.


아마도 먼젓번에 들어간 자들이 가지고 온, 혹은 그들을 위한 횃불인 모양이었다.


안유가 위지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착했나 봅니다.

-바로 들어가지.


공동에 들어서자 과연 횃불이 타오르는 중이었다. 횃불 조금 옆에는 장정 세 명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었다.


툭. 툭. 툭.


그들은 한껏 지루한 표정으로, 조용히 골패를 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골패라니. 가히 고죽방에 비견할 만하군요.

-······.

-빠르게 끝내버립시다.


휘익!


두 사람은 표홀한 신법으로 그들에게 다가섰다.


어둠 속에서 들이치는 급습, 노름에 눈 돌아간 무인들은 감히 대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촤아악!

풀썩!


안유는 세 사람의 시신을 공동 한쪽으로 치워버리고는 전방을 응시했다.


‘열두 개. 가장 안쪽 것까지 포함하면 열세 개······.’


안쪽으로는 작은 동혈 열세 개가 뚫려 있었다. 안유는 잠깐 고민하다가 가장 가까운 동혈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쪽으로.


두 사람은 작은 동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장은 지금까지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폭도 장정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였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괜찮다.


안유는 가뿐하게, 위지현은 조금 뒤뚱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깊이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입구 어름에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멀리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불빛 밑에서 끊임없어 어떤 말을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거동이 조금 불편하시니,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휘익!


안유가 신법을 펼쳐 불빛을 향해 쇄도했다. 매끄러운 벽면을 따라 불빛이 어른거렸다.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명확해졌다.


“더 먹어라. 옳지, 옳지. 하하.”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라진 푸짐한 중년인, 바로 그의 목소리였다.


중년인은 빼곡하게 들어선 창살을 마주한 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안유는 벽면의 그늘에 최대한 밀착해 그가 하는 양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냉일만두는 별미란 말이지. 그런데 위에선 이 맛이 안 나. 여기, 이 아래에서만 극상의 진미가 된단 말이야. 평소에 이런 진미만을 먹고 산다니 참으로 부러운 팔자 아닌가? 응?”


창살을 응시하며 만두를 쩝쩝거리는 중년인. 자세히 들어보니 창살 안쪽에서도 무언가를 우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다급하게 삼킨 다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음울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또한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만 용서해다오. 미안하다. 미안해. 다 내가 잘못했다.”


하하하.


중년인이 킬킬거리며 만두 한 개를 더 입에 집어넣었다.


“형님. 흐흐, 오랜만에 불러보는군. 이 모자란 사람아, 그래. 어디 들어나 봅시다. 뭘 잘못했는데?”

“전부, 전부 사과하마. 널 모욕하고 핍박한 것부터, 네 혼사를 가로막은 것도, 그리고 내가 감히 아버님의 유산을 물려받으려 한 것도 전부······.”

“아니, 그게 아니야.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란 말이지.”


중년인이 만두를 삼키며 말했다.


“당신은 무언가를 잘못해서 여기 갇힌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이냐. 난 대체 무슨 연유로 여기서, 이다지도 오래······.”

“궁금하지? 응? 궁금할 거야. 궁금해야지. 이름난 기재이자 거부였던 형님이 이런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야.”

“······.”

“그래서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야. 계속 곱씹어봐. 이 개 같은 곳에서, 평생······ 하하하!”

“아아······.”

“사내자식이 한심하게 울고 자빠졌어. 아, 이것도 형님이 해준 말이었지. 세상만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중년인은 묘한 느낌이 들어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소년을 발견했다.


“아, 자네는?”

“안녕하십니까.”


중년인은 놀라는 대신 태연하게 만두를 입으로 집어넣었다.


“빈방은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어쨌든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사내가 웃으며 만두 한 개를 집어 안유에게 건넸다.


“자네도 자네 형님을 뇌옥에 처넣었나 보군, 하하!”

“비슷합니다.”

“앞으로 더 재미있어질 게야. 한 반년 뒤에 다시 와보라구. 형님이 썩 재밌어져 있을 테니까.”

“호오, 어떻게 말입니까?”

“어둡고, 불결하고······ 제반 환경이 탄탄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만두야.”


중년인이 마지막 냉일만두를 꿀꺽 삼켰다.


“노소년장은 수인(囚人)들에게 만두밖에 안 줘. 삼 일에 한 번, 그마저도 조금씩 말이야. 그게 끝이야. 계속, 죽을 때까지 만두만 먹는 거지. 물리는 정도가 아닐걸? 그래도 어쩌겠어. 살려면 먹어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금방 미쳐버리겠습니다.”

“그렇지 않기에 재밌다는 거지. 우리 형님도 처음 얼마 간은 미쳐서 날뛰었어. 악을 지르고, 창살을 두드리고, 난동을 부렸지.”

“그런데 지금은 조용하시군요.”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지금에 다다랐지. 계속 질질거리거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거나, 정신을 살짝 놓거나, 다시 악을 쓰기도 하고······.”

“음, 축하드립니다. 복수에 성공하셨군요. 그런데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까?”

“마찬가지?”

“그러니까, 수인들 말입니다. 전부 누군가의 복수 때문에 여기 갇혔는지 궁금하군요.”


중년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 죄짓고 제 발로 들어온 놈도 있고, 나처럼 형제나 부모를 족치는 사람도 있고 또······ 아, 그렇지.”

“······.”

“뭔가를 토설하기 전까지 못 나가는 놈도 있다고 들었어. 가장 안쪽 방의 놈이라고 했지 아마?”


‘찾았다.’


안유가 활짝 웃었다. 해맑은 미소를 보고 중년인도 따라서 웃었으나, 그는 곧 정신을 잃어버렸다.


안유가 섬전과도 같은 동작으로 그의 수혈(睡穴)을 짚어버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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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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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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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19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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