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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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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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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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일망타진(1)

DUMMY

대정산 중턱의 산길.

장정 수십 명이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캉! 캉! 캉! 캉!

후두둑!

콰악!


돌을 깨고, 고목을 베어버리고, 울퉁불퉁한 지면을 평평하게 만든다.


그저 뚫려있었을 뿐이던 산길이 점점 ‘길’다워지고 있었다.


“쓰러진다. 조심, 조심해!”

“아직이야? 얼른 여기도 거들라고!”

“보채기는. 조금만 기다려! 우리라고 놀고 있는 줄 알아?”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은 서로 핀잔을 주면서도, 또 투덜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진짜’ 녹림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참으로 보기 좋군! 이제야 좀 녹림 같아졌어.”

“실로 그렇습니다, 공자님. 녹림이라면 산에서 땀을 흘려야 마땅하지요.”

“다들 일머리도 있고, 손재주도 썩 괜찮군. 이런 자들에게 덜렁 날붙이만 들려주다니······.”

“밥상을 차릴 줄도 모르면서 수저부터 찾는 꼴이지요, 쯧.”

“······혁전, 말투가 묘하게 날카롭군.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그게 무슨 말인가. 이치가 그렇다는 거지, 흠.”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어도 결코 만만히 볼 자들이 아니었다.


무위도, 명성도, 입지도······ 이런 외진 산채에 친히 왕림하기에는 너무나도 높았다.


“······후우.”


미친 듯이 바윗돌을 내려찍던 사내가 돌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과 어제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일대를 호령하던, 전 대호채주 막종이었다.


‘액운이구나. 액운이 단단히 들었어.’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울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털고 보니 뭐? 녹림왕의 의형제 셋에 녹림왕의 혈육이라고? 이런 개 같은! 빌어먹을!’


알았다면 건드리지 않았을 텐데.

무지의 대가는 억울하리만치 비쌌다.


“에이 씨!”


콱!


막종은 괜히 성질이 뻗쳐 애꿎은 돌조각을 걷어찼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가?”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와 그보다 더 싸늘한 살기가 들이닥쳤다.


‘혁전! 이 괴물 같은 늙은이. 어느 틈에 지척까지······.’


막종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하하핫!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영 굼뜬 듯하여······ 스스로 타일렀을 뿐입니다. 하하······.”

“······.”

“저, 정말입니다. 대협, 전 정말······.”

“대협? 대협이라니? 일개 노복에겐 과분한 호칭이군.”

“죄송합니다, 어, 어르신!”

“······공자님께서 보고 계시네. 자네, 언행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어. 두 번 말하게 하지는 말게.”

“예! 예! 물론입니다!”


막종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이를 악물었다.


‘염병.’


고개 따윈 몇 번이고 숙여줄 수 있었다. 강자, 그것도 자신이 범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초절한 강자니까.


그러나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건 강자뿐이었다.


“큽.”

“푸흡.”


부하들, 정확히 말해 전 부하들의 조소는 도무지 참기 힘들었다.


두령으로서의 위엄은 사라진 지 오래. 한때 그를 섬기고 두려워하던 눈빛은 적의와 멸시로 가득했다.


‘너희가 나를······ 괄시해? 두고 보자. 나 막종이다. 내가 여기서 무너질 줄 아느냐?’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올 거다.

언젠가는 전부 되찾을 것이다.

반드시, 전부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모욕을 전부 되돌려줄 것이다.


막종은 분루를 삼키며 곡괭이를 들었다. 막 내려치려는 찰나, 한 떼의 인영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휘익!


머릿수는 열여덟.

하나같이 표홀한 신법을 펼치는 데다 지닌 병장기 또한 범상치 않아 보였다.


‘상당한 고수다!’


어림짐작이지만 누구도 쉽사리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가장 신법이 처지는 세 명조차 막종의 아래로 보이지는 않았으니.


막종은 조용히 물러나서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고수들이 연이어······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대호채 분들이시오?”


백발을 늘어뜨린 중년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렇······.”


막종은 무심코 대답하려 했다가 아차 싶었다. 이제 대호채의 두령은 자신이 아니었다.


‘아.’


“그렇소.”


주지안이 노복들을 거느리고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막종은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더더욱 뒤로 물러났다.


백발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혹시······ 대호채주 되시오?”

“대호채주 주 모요. 반갑소.”

“대호채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채주께서 이리도 젊은 영웅이신 줄은 미처 몰랐군.”

“오늘 막 바뀐 참이오. 전 채주가 불민해 당분간 내가 이끌게 되었소. 그간의 오명은 잊어주시기 바라겠소.”


백발 중년인이 묘한 눈빛으로 장내를 훑었다.


그 시선은 주지안과 노복들을 비롯해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막종까지도 살핀 뒤에야 거두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 새로운 채주의 풍채가 헌양하니 가히 홍복이라 할 만하오. 부족하나마 성의를 표하려는데 받아주시겠소?”

“물론이오. 도리를 아는 분들이시군.”


주지안은 흔쾌히 전낭을 받아들었다.

묵직한 무게에 감탄하면서도 안유 때와는 달리 전낭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주지안이 전낭을 품속으로 챙기며 물었다.


“한데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비범한 분들이신 듯한데 내 강호 경험이 일천하여······.”

“아, 나는 고죽방이란 곳의 부방주 노릇을 하고 있는 육등위라고 하오. 대호채주께 뒤늦게나마 인사드리오.”


뭣!


구석에서 누군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고죽방! 장사제일문······, 헙!”


주지안과 노복들이 조용히 막종을 응시했다. 막종은 서둘러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전 부하들 속으로 숨어버렸다.


육등위가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장사제일문이라! 하하, 과찬이시오. 장사 일대에서 허명을 조금 얻긴 했으나 늘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채주 앞에서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

“음? 겸손이 과하시오. 나는 아직 허명이랄 것도 없소만?”

“대호채주로서는 그렇겠지요.”

“······.”


육등위가 주지안 뒤에 버티고 선 노복들을 힐끔거렸다.


“왠지 낯이 익다 싶더니, 이제야 기억났소. 일 년 전쯤이었나 먼발치에서나마 세 분을 뵌 적이 있소.”

“······그랬군.”

“칠십이채의 명성은 천하에 드높으니 우리 고죽방이 감히 비길 바가 되지 못하오. 칠십이채의 후계자께도, 당연히 마찬가지겠지요.”


과할 정도로 공손하지만 주눅 들지는 않는다.


육등위는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담소를 더 나누고 싶지만 급한 용무가 있어서 말이오. 하여 채주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소.”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혹시 최근에 한 명의 문사와 한 명의 검수가 대정산을 넘지 않았소?”

“문사와 검수?”

“문사는 신전흥이라는 자로, 이렇게 생겼소.”


육등위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제법 상세하게 그린 용모파기. 주지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역시.”


육등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의 얼굴은 알지 못하오. 꽁꽁 싸매고 있는 탓에 ‘흑의협’이라고 불릴 정도니까.”

“······그들은 왜 찾는 거요?”

“한 명은 손님. 한 명은 적이오.”


육등위의 웃음이 서서히 옅어졌다.


“채주께서 뭔가 알고 있는 듯한데 소상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소.”

“‘흑의협’이라는 자는 모르겠군. 그러나 신전흥이라는 문사는 과연 안면이 있소.”

“안면이 있는 정도가 아닌 것 같소만?”


주지안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 그자는 우리 손님으로, 지금 산채에 머물고 있소.”

“호오! 잘됐군. 잘됐어! 본 방이 그자를 얼마나 애타게 찾아다녔는지 모르오. 그럼 산채까지 안내해 주시겠소?”

“그건 어렵겠군.”


이번에는 육등위의 눈썹이 한 차례 들썩거렸다.


“그자는 내게 정당한 삯을 치렀소. 당신들 손님 이전에 내 손님이라는 말이지. 난 이 산의 주인으로서, 그를 잘 대접해서 보낼 의무가 있소.”

“······그럼 우리도 삯을 치르겠소.”

“그 또한 어렵겠소. 산중이라 객청이 마땅하지 않으니 이해해주시오.”


쿠구구구!


육등위의 전신에서 사나운 기파가 흘러나왔다.


“우우······!”

“큭······.”


대호채의 산적들은 저도 모르게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녹림 중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이는 주지안과 노복들뿐이었다.


“······채주. 본 방의 행사를 방해할 작정이오?”

“당신이야말로 우리 산채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게요? 지나가는 건 허락하겠소. 하지만 그 이상은 과욕이요.”

“과욕······이라.”


산중의 공기가 순식간에 빙굴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 얼어붙었다.


휘익!


노복들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홀연히 주지안의 앞을 버티고 섰다.


고죽방의 무인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무인들이 하나둘 병장기를 빼 들었다.


철그럭.

스릉.


그들을 중심으로 흉흉한 기세가 쏟아졌다. 지시가 내려지면 언제든지 달려들겠다는 듯한 모양새.


오직 한 사내만이 처음 그 자세 그대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음?’


고죽방 무리 중 유일한 청년.


청년은 흑발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데다 머리칼 사이로 사나운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 외양만큼이나 기도 또한 야성적인지라 주지안은 마치 한 마리 늑대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무림에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사실이었구나.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육등위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사내는 외려 눈을 똑바로 뜨고 육등위를 마주 보는 것이었다.


“난 분명히 말했소. ‘흑의협’에게만 관심이 있다고.”

“혈랑(血狼), 자네······.”

“사형······, 방주께서도 허락하셨소. 거들긴 하겠소. 그자와의 용무가 끝난 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래도······.”

“······.”


청년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저렇게 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열지 않음을 육등위는 잘 알고 있었다.


‘위지현! 웬일로 순순히 따라온다 싶더니······ 방주의 사제라고는 하나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그깟 검 좀 뽑는 게 뭐가 어렵다고.’


육등위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부딪힐 생각은 없었다.


대치 상태는 허세, 예상 밖의 상황에 맞닥뜨린 만큼 자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머릿수는 저쪽이 우세하지만 대부분 떨거지다. 거기에 녹림왕의 혈육, 그리고 수신십호(守身十虎)······. 열 명 중 셋뿐이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인가.’


현재 추격대의 전력이면 혈랑 위지현을 제외해도 저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였다.


‘머저리 같은 고죽삼귀에, 나를 포함해 절정고수만 자그마치 열넷.’


한꺼번에 들이치면 제아무리 수신십호의 일원이라 해도 도리가 없을 터.


녹림왕의 혈육을 집중해서 노린다면 일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죽이는 싸움과 지키는 싸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지. 빈틈이 생길 거다. 반드시! 서서히 체력을 깎아내도 좋고, 운 좋게 인질로라도 잡으면······.’


문제는 그 빌어먹을 ‘흑의협’이라는 작자였다.


‘놈, 위험요소는 놈뿐이다! 이게 전부 놈의 계획대로라면, 함정에 빠진 쪽은 우리일지도 몰라.’


신선곡의 후인, 흑의협.


거의 다 잡은 신전흥을 놓친 그 순간부터 고죽방은 전적으로 놈에게 놀아나고 있었다.


‘신전흥을 전면에 내세워 행적을 흘렸다. 그러나 행방이 묘연해질 무렵 보란 듯이 비무를 펼쳤지. 끝끝내 따라와 보니 이들까지······. 우연 따위가 아니다. 명명백백한 유인! 대체 무슨 생각이지? 목적은 또 뭐고?’


백학무관을 족친다면 뭔가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간의 이목이 쏠린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


이렇게까지 다가왔음에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모른다.


고죽방은 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드잡이질 중에 놈이 가세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여기까지 내다본 건가? 오늘, 이 순간, 이놈들과 협공하기 위해서? 망할······!’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당장 눈앞의 산적들을 처리하고 신전흥을 확보하던가.


아니면 이대로 곱게 물러나 훗날을 기약하거나.


그러나 육등위는 어느 쪽도 영 탐탁지 않았다.


‘다른 걸 노리고 있다면? 여기, 대정산이 신전흥을 추포할 마지막 기회라면 ······.’


육등위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영영 알 방도가 없게 되었다.


휘리릭!


빽빽한 수목 사이에서 한 개의 인영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오랜 고심을 무위로 돌리는 등장.


육등위가 인영을 바라보며 침음했다.


“······흑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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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3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6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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