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7,834
추천수 :
558
글자수 :
209,961

작성
23.12.22 19:00
조회
708
추천
13
글자
13쪽

일망타진(3)

DUMMY

‘말도······ 안 돼······.’


위지현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생면부지의 고아인 자신을 스승이 거두어들였을 때.


그러한 스승의 검법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스승이 자신의 제자가 되어달라고 말했을 때.


인생의 몇몇 강렬한 순간에조차도, 이렇게나 놀라지는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돌이켜보면 그가 동요할 때는 언제나 스승과 그의 무공이 있었다. 이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촤악!


마치 섬전과도 같은 쾌속무비한 동작. 고죽삼귀가 쓰러진 뒤에도 흑의협의 몸은 족히 한 장(3M)은 더 날아갔다.


카가각!


한쪽 팔로 제동하며 ‘가까스로’ 멈춰선 흑의협. 흑의협의 몸은 거의 넘어지다시피 하며 앞으로 쏠려 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간신히’ 균형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리라.


그러나 ‘가까스로’도, ‘간신히’도 아니었다. 고죽방의 무인들은 단번에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천하에 산재한 무공 중에는 아주 특이한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는 부류도 있었다.


이러한 무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상형공(象形功)이었다.


상형공은 특정 짐승의 움직임을 본 따 만들어진 무공이다. 당랑(螳螂), 오공(蜈蚣), 대호(大虎), 백학(白鶴) 등 뭇 짐승들의 움직임을 권장지각을 비롯해 각종 병장기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상형공이었다.


신체구조가 다르니 인간과 짐승의 움직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상형공에는, 필연적으로 특이한 자세가 수반되는 일이 많았다.


외다리로 서거나, 사족보행을 따라 하는 등······ 흑의협의 기묘한 자세는 그러한 시도의 일종일 것이다.


저 자세가 어떤 짐승의 모방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고죽방의 무인들 중 저 자세를, 저 무공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랑검법(天狼劍法)?”


육등위가 진기를 끌어올리며 탄식했다.


몸의 균형을 극단적으로 낮추어 속도를 배가하고, 대처하기 까다로운 최하단에서 검격을 쏟아내는 검법.


한 마리 늑대가 달려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야성적이며 난폭한 쾌검.


작금 강호에 이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는 단 세 명뿐이었다.


검귀로 이름 높았던 독안랑(獨眼狼) 마비자.

고죽방주, 탐랑귀(貪狼鬼) 구유백.

그리고 그의 사제, 혈랑(血狼) 위지현.


분명히, 세 명이어야만 했다.


‘방주의 말에 따르면 독안랑은 일평생 두 명의 제자면 충분하다고 천명했다. 자신감의 발로인지, 제자들의 자질을 믿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물릴 자는 아니야.’


육등위는 광차륜을 출수하며 위지현을 힐끔거렸다.


위지현은 적잖이 당황했는지 얼굴에 핏기가 가셔 있었다.


‘혈랑도 금시초문인가보군.’


놈에게는 형산파의 기재를 패퇴시킨 철혈검법이 있다.


또 이젠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고죽삼귀를 내쫓은 의문의 검공 또한 있었다.


‘그런데도 천랑검법을······ 이놈! 심계가 제법이구나.’


고죽방주의 무공.

고죽방의 무인 중 저 검법 앞에서 초연할 자가 얼마나 있을까.


남은 자들은 전원 절정지경의 고수.


그러나 절정고수라고 해도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직면하면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당황과 잡념이 일구어낸 빈틈.


흑의협의 검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펑!


땅을 박차며 화살처럼 쏘아지는 흑의협의 신형. 지면을 스치다시피 쇄도하면서도 검로는 일절 뒤틀리지 않는다.


“엇?”


너무나도 당황한 탓에.

비천겸(飛天鎌) 최립은 부지불식 간에 간합(間合)을 허락하고 말았다.


“이······!”


뒤늦게 낫을 휘둘러보지만 협봉검이 이미 그의 품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난데없이 솟아오른 검격, 그 예기의 형상은 마치 늑대의 이빨과도 같았다.


콰득!


“······끄윽!”


카가각!


흑의협은 손으로 바닥을 쓸어 멈춰선 뒤 다시금 다음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적의 병장기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


-흑의협, 어떻게 된 거냐. 네가 어떻게 천랑검법을······.


안유는 위지현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도저히 전음을 보낼 상황이 아니었다.


오싹.


안유의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위기에 반응한 것이다.


사방에서 살기가 짓쳐들어온다.

살기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기(氣)의 유형화. 병장기의 예기에 절삭력을 더하는 검기상인(劍氣傷人)의 수법.


심(心), 기(氣), 체(體)가 오롯이 합일한 절정지경의 고수는 병장기에 기를 덧씌울 수 있었다.


‘상당히 흉험하군. 다들 불이 붙었나 본데.’


그들과 다르게 안유의 검에는 예기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안유는 ‘아직’ 검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심(心), 깨달음은 모자라지 않았다.

기(氣), 삼불삼 덕분에 내공 또한 충만한 상태였다.


문제는 체(體), 몸이 아직은 미진했다.


십오 세. 덜자란 데다 단련 또한 부족하다. 지금까지 단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요소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가벼운 협봉검이다. 기를 두른 병장기와 부딪힌다면 그 즉시 부러지겠지.’


직접 격돌해서는 안 된다.

받아내서는 안 된다,

흘려내서도 안 된다.


공방을 주고받는데 이는 치명적인 족쇄나 다름없었다.


지도대련이 아닌 실전, 게다가 이만한 수의 절정고수다.


이들의 공격을 전부 피해내며 우위를 점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웬만한 고수들에게는 말이다.


‘비명에 간 비천겸을 포함해 선풍검수, 귀영자, 철쌍장, 탈명륜, 그리고 혈랑에······ 다 아는 얼굴이군.’


안유는 암천회 내, 외당 무인의 용모파기와 내력은 물론 무공까지도 소상하게 파악했다. 무공 수위는 물론 형과 버릇까지도······.


회귀 전, 이들은 안유가 부회주가 되었을 당시에도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외당 중 하나인 고죽방의 절정고수라면 죽마고우만큼이나 훤하게 알고 있는 안유였다.


무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안유에게는 뛰어난 ‘눈’과 그 못지않게 날카로운 ‘혀’ 또한 있었다.


쉬익!

촤르륵!


안유는 자세를 한층 더 낮춰 선풍검수의 일검을 피해냈다. 이마가 땅에 찧을 듯이 가까워졌다가 돌연 솟구쳐 올랐다.


펑!


왼손으로 지면을 밀쳐낸 뒤 그 반동으로 몸을 뒤튼다. 회전력을 가미해 찔러 들어가는 낭아출동(狼牙出洞)의 초식.


“······읏!”


선풍검수가 기함하며 물러섰으나 가슴께는 이미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협봉검이 살점을 한 움큼이나 도려낸 탓이었다.


안유는 선풍검수의 숨통을 마저 끊으려다 물러서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귀영자와 철쌍장의 공격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왔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합공이다. 손을 많이 맞춰보지 않으면 이런 연환은 불가능하지.’


펑! 펑!


각법과 장법.


고목조차 쓰러뜨리는 소혼퇴(消魂腿)와 집채 같은 바윗돌을 깨부수는 파철장(破鐵掌).


양 옆구리로 날아드는 살초들. 안유는 살초 간의 위화감을 포착했다.


동시에 날아들어도 완전한 동시는 아니었다. 합격진 정도나 되면 또 모를까 두 사람의 연계는 미세한 빈틈이 있었다.


‘파철장이 한 호흡 빠르다. 그렇다면······!’


캉! 펑!


안유는 협봉검으로 지면을 밀어 파철장의 투로에서 벗어난 뒤 곧바로 왼손을 휘둘러 허리를 뒤틀었다.


소혼퇴에 스치며 옷자락이 한 뼘 넘게 잘려나갔다.


-흑의협!


쐐액!


육등위의 광차륜이 안유의 머리통으로 날아들었다. 안유는 검을 쥔 채 물구나무를 서서 광차륜을 피해냈다.


-바쁩니다. 왜 자꾸 부르십니까.

-······생각보다 어린······ 아니, 너, 죽을 셈이냐?

-죽기는요. 살아야지요.


카가각!


돌연 지면에서 솟구치는 검광. 안유는 공중으로 도약해 검격에서 벗어났다. 복면 조각이 허공에 흩날렸다.


천랑검법, 위지현이 사나운 눈빛으로 안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유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죽일 셈입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대답해라!


안유가 복면 속에서 미소를 머금었다.


-스승님은······ 역시 신선곡에 계셨던 거냐? 넌 그분께 사사한 거고?


콰가각!


언제 회수한 것인지 또 머리통을 노리는 광차륜. 안유는 허공에 검을 연달아 휘둘러 그 반동으로 몸을 기울였다.


촤륵!


광차륜은 왼 목을 스치며 날아가 버렸다.


-스승님은 왜 홀연히 사라지신 거냐? 갑자기 왜······ 혹시 사형과······.


위지현의 동공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위지현의 고뇌를, 그리고 모든 내막을 아는 것은 안유뿐.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도 있었지만 안유는 그러지 않았다.


혈랑은 구해야만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안유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당신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당신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겠죠.

-······.

-독안랑께서는 실종되신 게 아닙니다. 제 발로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

-탐랑귀, 당신의 사형은 스승님을 찾기 위해 고죽방을 만들었을 겁니다. 한데, 뭔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자세를 다잡는 안유. 그러나 궁여지책은 한계에 이르렀다.


기예에 가까운 회피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은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자세를 낮추면 소혼퇴와 파철장이 날아온다.


물러서면 선풍검수의 검초가 뒤따라 온다.


도약하는 즉시 육등위의 광차륜이 쏘아질 것이고.


다른 고수들의 날붙이 또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구십구검을 전력으로 펼치면 타개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구십구검은 쓰지 않는다. 지금은 검을 휘두를 때가 아니야. 검을······ 쥘 때다!’


-고죽방을 둘러싼 묘한 기류, 당신의 사형을 지원하는 암중 세력. 수색을 구실 삼아,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며 세를 넓혔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전적으로 당신의 스승님을 위해서였습니까?

-나는······.

-강호지이(江湖志異)! 신전흥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대로라면 영영 독안랑을 찾지 못할 겁니다.


쐐애액!


흉맹한 공격이, 전방위에서 쏟아진다. 고죽방의 무인들은 이로써 결착이 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직 위지현만이 의구심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훗날을 도모하십시오.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릴 테니······.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 전음으로 건넸던 말이, 전음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제게 협조하십시오. 제가 활로를 열어드리겠습니다.


‘이런 맹랑한······.’


위지현이 혀를 내둘렀다.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말인가.

곧 죽을 녀석이 되려 자신을 보채고 있었다.


‘이리도 촉박하게······ 어디까지 의심해야 하는 거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거냐? 스승은, 사형은, 고죽방은 대체······.’


혼란스러웠지만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결단코 겉핥기나 흉내 따위는 아니었다.


흑의협의 천랑검법은 틀림없이 진품, 스승과 연이 닿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성취.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역시, 당신은 당신이야.’


안유가 웃으며 포위망의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검기가 맹렬하게 비산하는 험지. 그물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검영은 안유에게 닿기 직전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촤아아악!


피 분수가 튀고 고수들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커헉!”

“혈······랑?”

“네가 왜······?”


믿을 수 없다는 듯, 고죽방의 고수들이 한껏 눈을 치켜떴다.


육등위가 악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위지현! 네가 감히······!”


육등위 또한 눈앞의 참변을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믿지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믿었다.


촤르륵!


땅을 미끄러지듯 착지하며 자세를 낮추는 위지현.


안유와 위지현은 서로를 마주 보며, 둘 사이에서 눈만 끔뻑거리는 고수들을 향해 출수를 준비했다.


-흑의협, 약조를 지켜라.

-물론입니다.

-천랑검법을 어디까지 익혔지?

-아마도······ 당신만큼?

-맹랑하군. 천랑검법의 극의 또한······ 알고 있나?

-그 또한, 물론입니다.


‘어디 안다 뿐일까.’


구십구검 중에는 천랑검법의 절초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랑검법은 단순히 구십구검의 한 초식으로 그치지 않았다.


구십구검의 근간을 이루는 묘리 중 하나, 합(合)의 구결.


이 합(合)의 구결은 바로 천랑검법의 극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부방주!”

“두 놈 다 죽여버리시오! 방주께는 내가 말씀드리겠소.”


두 마리 늑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바야흐로 사냥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알려드립니다. 24.01.15 96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24.01.04 111 0 -
공지 19화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23.12.21 408 0 -
36 암살(5) 24.01.12 237 11 13쪽
35 암살(4) 24.01.11 216 9 13쪽
34 암살(3) 24.01.10 260 6 13쪽
33 암살(2) 24.01.09 293 8 13쪽
32 암살(1) 24.01.08 320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30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2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20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 일망타진(3) 23.12.22 709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5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5 1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