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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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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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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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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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비사(2)

DUMMY

“부방주? 부방주가 왜 이 서책을······.”


손을 덜덜 떨며 서책을 받아드는 신전흥. 안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교섭 재료였겠지요.”

“교섭?”

“그들로서는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안유가 고삐를 다잡으며 말했다.


“흑의협의 목적이 신 대협이 아니었을 경우, 그러니까 신선곡 또한 강호지이를 노리고 있다면 순순히 내어주는 것 또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면서도 말인가?”

“여러모로 저울질해보지 않았겠습니까? 말이 통한다 싶으면 이걸 미끼로 교섭할 작정이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공염불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모르긴 몰라도 내줘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껄끄러워서인지, 신선곡을 떠보기 위해서인지, 혹은 신 대협만 확보하면 아무래도 좋았는지······ 전부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이상 알 방도는 없지만요.”

“어렵군, 어려워.”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겠군요.”

“다른 가능성?”


안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줘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 내줘도 아무 상관 없었다. 이득도 손해도 아니니 그냥 줘버리자······. 어쩌면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글쎄요?”


신전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위지현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고맙소, 혈랑. 그대 덕분에 본 서각의 숙원을 이루게 되었구려. 정말로 고맙소.”

“별말씀을. 내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오.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무슨 섭섭한 소리를, 미력하다니. 전혀 그렇지 않소.”


신전흥은 서책의 겉장을 쓸어보기도 하고, 군데군데 펼쳐보기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재질, 이 질감······. 그리고 거칠면서도 장중한 필체······. 다른 원본들과 똑같아.”


위지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원본들?”

“강호지이는 이것까지 포함해 총 열 권이 있소. 열권이 전부 모여야 비로소 완전한 강호지이가 되는 것이지.”


신전흥이 책장을 휙휙 넘기며 대답했다.


“원본이 있으면 사본도 있는 법. 목련서각은 나를 비롯한 사재(四才)들이 한 분의 각주를 모시고 있소. 불의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저마다 비고(祕庫)를 나눠 지키고 있지.”

“막중한 책임을 생각하면 과연 그럴 만도 하군.”

“각주가 계신 본산 비고에는 모든 비급의 원본이 있고 사재 비고에는 그 원본의 사본이 있소. 사본은 무공의 내력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내 비고에도 강호지이 사본 두 권을 보관 중이오.”


신전흥은 이제 책장을 아주 세밀하게,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매년 회합날이면 새로 입수한 비급을 본산에 전달하고 그 사본을 만들어 사재 비고로 옮겨놓지. 그 때문에 원본이 유실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소.”

“······이놈이로군.”

“바로 그렇소.”


신전흥이 탄식했다.


“서각 설립 초기, 서책들을 운반하던 마차 몇 대가 마교의 습격을 받았소. 정보가 샌 건 아니었소.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지. 다행히 추격을 뿌리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강호지이의 이 권(卷)만큼은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전해 들었소.”

“집 나간 자식이 마침내 돌아왔군. 그런데 그렇게 애타게 찾을 정도의 책이 맞소? 대충 훑어보니 무공 비급 같지는 않던데······.”

“하하, 그럴 만도 하지. 겉보기에는 한 무림인의 평범한 신변잡기(身邊雜記)에 지나지 않으니까. ‘제대로’ 읽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을 거쳐야 하오.”


탁.


신전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책장을 덮었다.


“그런 강호지이를 마침내 내 대에 이르러 회수했구려. 확실히, 이건 진본이 맞소. 요모조모 살펴봐도 확실하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겠소.”


끼이익.


잘 달리고 있던 마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안유가 말을 진정시키며 뒷좌석으로 넘어왔다.


‘진본이라······. 강호지이의 구결은 그 암천회주조차 칭찬할 정도였다. 이렇게 쉽게 내줄 리가 없어. 아마도 저건 그자의······.’


“안 소협?”

“너무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신 대협, 이게 진본이 확실합니까?”


신전흥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뭐지?’


개소리는 해도, 맹탕 헛소리는 하지 않는 안유였다. 무슨 곡절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캐물을 리 없었다.


호선을 그리고 있는 눈에선 정광이 번뜩였다. 신전흥은 조금 진중해진 말투로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은 책의 재질 때문일세. 다 비슷해 보여도 책마다 쓰이는 종이는 천차만별이라네.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가, 또 어떻게 가공하고, 누가 다듬었는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지. 세월의 풍상 때문에 상하긴 했어도 이 권의 재질은 다른 원본들과 똑같다네.”


신전흥이 책장을 넘겨 안유에게 펼쳐 들었다.


“그리고, 보게. 다음은 필치일세. 표지는 물론 모든 부분의 필치가 균등하지 않나?”

“확실히 그렇군요.”

“균등하면서 또 독특한 필치일세. 이런 필치는 쉬이 찾아보기 어렵지. 우리같이 서책만 들여다보는 자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네. 진본의, 바로 그 필치야.”

“그 밖에 또 이유가 있습니까.”

“마지막으로는 내용일세. 서책의 내용은 다른 권과 일맥상통한다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명승지를 구경 갔다가 술잔을 기울이는 등······. 구조뿐만 아니라 어떤 기풍이랄까, 아니면 호흡이랄까, 아무튼 전반적인 문체도 동일하네.”

“그렇군요.”


안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호지이를 쳐다보았다.


“하면 ‘제대로’ 읽혀야 마땅하겠군요?”

“······응?”

“방법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읽는 방법. 신변잡기를 무공 비급으로 뒤바꾸는 탐독법. 아니, 해독법이라 불러야 할까요? 그 방법으로는 읽어보셨습니까?”


신전흥이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모로 저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네. 각 권의 해독법은 전부 동일하지만 그것을 적용해서 읽어내는 건 또 다른 문제야. 시간이 꽤 많이 걸릴걸세. 짧게 잡아도 달포는 들여야······.”

“줘보십시오.”

“······.”

“어서요.”


신전흥은 잠깐 고민한 끝에 마지못해 서책을 건넸다.


촤르륵.


안유는 책장을 무서운 속도로 넘겼다. 싱글거리는 두 눈은 번갯불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 속도는 신전흥의 몇 배. 신전흥이 나직이 혀를 찼다.


‘읽는 건지, 읽는 척을 하는 건지 원······.’


“뭐가 보이기는······ 하나? 자네 심중은 이해하네. 그런 치밀한 성격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자네에게도 감사할 뿐이야.”


촤르르륵.


“나도 일이 너무 잘 풀리니 걱정부터 앞섰다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건 진본이 확실해.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시니 그간의 불행을 전부 갚아주시려는 것인지······.”


촤르르르륵.


“내 말 듣고 있나?”


탁.


마지막 장까지 확인을 끝낸 안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지, 진본일세.”

“확실히 가본이군요.”

“뭣?”


신전흥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단순한 이유입니다. 어느 기점부터 해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아마도 ‘구결’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말입니다.”

“미친!”


쾅!


신전흥이 대경실색하며 마차의 벽면을 후려쳤다.


“해독했다고? 그걸 전부? 말도 안 돼! 원리를 꿰고 있는 우리도 한참이나 걸리는 작업인데······!”


안유가 빙그레 웃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단락에 이르러 멈췄는데 그것은 친우에게 보낸 서한(書翰) 부분이었다.


“해독해야 하는 부분은 여기, 맞습니까?”


신전흥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하하, 한 번만 더 놀랐다간 턱이 빠질지도 모르겠는걸.’


문서 해독은 암약의 필수 소양 중 하나였다.


웬만큼 큰 조직이라면 저마다 독자적인 음어(陰語)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 암천회 같은 암중 세력의 경우는 특히나 더 심했다.


오가는 정보 중에 기밀이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무림을 경동시킬 사안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들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내야만 한다.


부하들이 있었지만 손을 거치는 만큼 일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하여 부회주인 안유는 모든 음어를 섭렵해야만 했다.


고죽방을 비롯한 외당 소속 문파는 물론이고 고죽방의 내당과 몇몇 대문파의 음어체계 또한 전부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다.


‘바쁠 때는 수십 건에 달하는 문서를 동시에 해독하기도 했으니······ 이 정도는 우습지.’


“서책 전체에서 단 몇 장. 백이십일 장 중 이 열한 장만이 비급으로 읽힐 수 있더군요.”

“······.”

“해독 원리는 총 네 가지. 파자(破字)와 이체(異體), 벽자(僻字), 그리고 치환(置換)이지요. 나머지는 그렇다고 쳐도 치환이 조금 까다로웠습니다.”

“······.”

“그런데 이 권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어떤 글자가 눈에 밟히더군요. 무난하게 쓰이다가도 간혹 억지로 삽입된 듯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슨······ 글자였나?”


안유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죽 그었다.


일(一).


“이 별 것 아닌 글자가 묘한 규칙성을 만들어내더군요. 그걸 이해하니 단번에 풀렸습니다. 바로 앞의 글자와 위치를 바꾸거나, 다음 단락과 이어버리거나, 혹은 해당 단락을 빼거나 하는 식으로······.”

“······.”

“신 대협, 괜찮으십니까?”

“······.”


신전흥은 여전히 입을 벌린 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위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하나도 모르겠군.”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쑤욱!


안유가 소매를 떨치자 안에서 붓과 백지가 튀어나왔다. 혈랑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암기만 들어있는 게 아니었나.”

“물론입니다. 자, 보십시오.”


슥슥.


안유가 하얀 종이에 일필휘지로 글자를 써 내려갔다. 안유는 서한 부분의 일부를 종이에 그대로 옮겨내고 있었다.


朋友休傷別以一杯投煩惱期一相遇.


“벗이여, 헤어짐을 슬퍼하지 말게. 한 잔의 술에 시름을 흩어버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세나. 여기에 앞서 말씀드린 것들을 전부 적용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안유가 붓을 휘적거리며 글자를 바꿔 쓰기 시작했다. 문장은 분해되고 재조립되어 이내 다른 문장으로 변모해버렸다.


回顧江湖只有一点悟.


“강호를 돌아보니, 한 가지 깨달음만 남아 있구나. 이런 식으로 ‘해독’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장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묘하게 해독이 되질 않습니다. 중간중간의 핵심 글자가 바뀐 듯합니다.”


안유가 싱긋 웃었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고죽방은 강호지이 해독에 성공했다. 그리고 강호지이의 진가 또한 눈치챘다.”


신전흥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해독이 이어지지 않는 건······.”

“일부러 빼버린 거겠지요. 핵심만 쏙, 가장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그도 모자라 이 정도로 정교한 가본까지 만들어내다니 참으로 지극정성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전흥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대체 누가 이런 수작을 부렸단 말인가! 또 진본은 어디로 간 거고!”

“짐작 가는 자가 있긴 하지만 확실치는 않군요. 직접 찾아가 보면 확실해지지 않겠습니까?”


안유가 빙글거리며 위지현을 쳐다보았다.


“혈랑. 익히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방주 주위의 암류를 조금이나마 캐보신 듯한데.”

“······.”

“혹시 우리가 어디로 향하면 길하겠습니까?”

“······확실치는 않다.”

“괜찮습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보다야 훨씬 낫지요.”


위지현이 검병을 매만지며 운을 띄웠다.


“반년쯤 전이었나. 부방주, 육등위의 지시로 몇 명의 고수가 어느 장원으로 급파됐다.”

“호오?”

“시시껄렁하지만 입만큼은 무거운 놈들이었지. 뭐 사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육등위는 몇 번 정도 장원을 왕래한 듯했다. 근래에도 두어 번 정도······.”

“그 목적은?”

“거기까진 모른다. 낌새가 이상하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는 터라······ 간신히 위치만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지이를 갖고 있던 부방주가 때마침 어딘가를 들락거렸다. 보아하니 추격대 건은 아닌 듯합니다만······ 이거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군요.”


안유의 눈이 위쪽으로, 더욱 짙은 호선을 그렸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입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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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불귀산장(4) 24.01.03 412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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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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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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