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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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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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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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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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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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3)

DUMMY

무릇 성도에는 사람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온갖 재물과 물산 또한 자연스레 모여든다.


장사 또한 예외가 아닌지라 드넓은 호남에서도 장사만큼 기름진 옥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옥토란, 당연히 농사짓는 밭뙈기가 아니라 이권을 이름이다.


여기서 창출되는 막대한 이윤은 힘깨나 쓴다는 작자들끼리 나눠 먹는다. 그리고 그 비율은 당연히 힘의 논리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었다.


장사의 경우에는 이 이윤의 삼 할 가까이가 어느 연합 세력에 귀속된다.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세를 불린 고죽방을 필두로 태산파, 유협계, 육지문, 활빈회, 밀밀당까지.


소위 ‘육패(六覇)’라고도 불리는 장사 육대 문파의 결맹은 장사 무림의 판도를 확연히 결정지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확고부동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불온한 소문으로부터 촉발된 동요가 장사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쾅! 쾅! 쾅!


새로 마련한 탁자는 삼 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곤죽이 되고 있었다.


‘그 비싼 자단목으로 만든 것인데······.’


이러다간 탁자값으로 이달의 수익을 전부 탕진해버릴지도 모른다.


유대평은 그 생각을 조용히 삼켰다. 지금 심기를 거슬렀다간 탁자 대신 자신이 곤죽이 돼버릴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 병신 같은 자식!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냐!”


구유백이 한 사내의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켁, 케흑, 죄, 죄송······.”


숨을 껄떡이는 사내의 이름은 굉모. 그는 육지문주의 사제로 육지문의 총관을 맡고 있었다.


“어떻게든, 큭, 수습해보려······ 했는데, 켁켁, 힘에 부쳤······.”

“진작 말했어야지! 문주가 죽었다고! 당장 도와달라고! 일이 이 지경이 된 뒤에 찾아와?”

“······꺼헉!”

“이······!”


구유백은 굉모의 목을 부러뜨리기 직전 가까스로 노기를 가라앉혔다.


‘이놈을 죽이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육지문을 회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문주 육지신마에게 찔러준 전낭은 얼른 생각해도 마차 몇 대분은 되었다.


이 굉모란 자에게도 그 못지않게 커다란 공을 들인바, 만약 지금 죽여버린다면 그 숱한 전낭은 물론 연합의 일각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되리라.


‘이놈의 셋째 사제는 야심만만한 놈이다. 연합을 벗어나 웅비하려 할 테고······ 억지로 붙들고 있어도 되려 내 목줄을 노릴 거다. 빌어먹을!’


구유백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허억, 허억, 감, 감사합니다!”

“고수 몇 명을 붙여줄 테니 육지문을 되찾아라. 앞으로는 네가 육지문주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무력행사는 최대한 자제해라. 명목상으로는 집안싸움이 되어야 한다. 우선은 명분을 챙기고, 협잡으로 셋째 사제를 몰아붙여라. 명심해라. 육지문이 무너지면 네놈도 죽어.”

“······예.”

“얼른 떠나라. 한시가 급하다.”


굉모가 떠난 뒤 구유백은 탁자를 마저 박살 내기 시작했다.


쾅! 쾅!


“태산파도! 유협계도! 육지문도! 전부 죽어 나자빠지느냐! 누구냐! 대체 어떤 놈이 우리를······ 으아아아!”


‘죽을 맛이군.’


유대평의 안색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방금 굉모를 떠나보내며 새로이 두 개의 서신이 도착한 참이었다.


서신을 보낸 곳은 각각 활빈회와 밀밀당. 연합의 다섯 개 문파 중 아직 수뇌가 살아있는 두 곳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구유백은 오늘 아침 전서와 동시에 고수 여럿을 딸려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아마 그 전에 보냈을 서신이 먼저 이쪽에 도착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유대평은 불길함을 억누르며 구유백에게 서신을 전달했다.


“방주님, 활빈회와 밀밀당입니다.”

“······음!”


구유백은 서둘러 서신을 뺏어 들었다. 희미한 기대가 구유백의 두 눈에 어렸다.


최근의 뒤숭숭한 상황을 반전시켜줄, 뜻밖의 소식이 담겨 있길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그렇지. 역시 두 사람은 다르군. 활빈회주는 산동의 여러 촌락을 집어삼킨 비적이었고 밀밀당주는 강소의 한 개 문파를 몰살한 지고한 살수······.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지.”


두 사람에 쏟은 정성은 나머지 세 개 문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위는 자신보다 처질지언정 잔혹함과 용인술, 조직에 대한 장악력만큼은 가히 한 지역의 패주로 군림할 만한 자들.


확실히 다르다.

달라야만 한다.


구유백은 부러 활짝 웃으며 서신을 펼쳤다.


“하하······.”


쏜살같이 줄글을 읽어내려가는 시선. 잠시 후 구유백은 서신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쫘아악!


“이런 미친!”

“방주님, 왜 그러십니까?”


구유백의 눈동자는 격랑 위의 쪽배처럼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대평.”

“예. 말씀하십시오.”

“활빈회주와 밀밀당주도······ 죽었다.”

“······!”

“비적과 살수들······ 이 머저리들이 저들끼리 혈전을 벌이고 있다는군. 당장 발 빠른 놈을 보내라! 돕는 게 아니라, 싸움을 멈춰야 한다. 서둘러라!”

“예!”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오던 유대평은 다시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콰앙!

콰지직!


요란한 굉음과 함께 탁자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그 직후 방주의 고함 또한 들이닥쳤다.


‘세 문파에 이어 나머지 두 문파까지! 이대로 가다간 연합이 무너진다. 부방주가 사라진 지금 우리만 신경 쓰기도 벅찬데······ 여기에 다른 세력까지 지원하게 되면······.’


유대평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희미하던 불안감이 점점 몸피를 키운다.


누군가가 연합을, 고죽방을 노리고 있었다.


***


“사람은 말입니다.”


안유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상관을 잘 만나야 합니다.”


위지현이 검병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굳이 지금 입을 놀려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좋은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지요.”

“어련할까.”

“좋은 상관이 누군지 아십니까?”

“적어도 우리 사형은 아니었다. 스승님이라면, 아니, 스승님도 상관으로 모시고 싶진 않군. 무공에 미치······ 무공에만 흠뻑 빠져 계셨으니까.”

“저런. 그럼 제가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좁은 골목.

사방을 에워싼 흑도 무리를 두리번거리며 안유가 싱글거렸다.


척 봐도 사나워 보이는 사내들이 두 사람을 보며 연신 소리를 질렀다.


“비켜 이 새끼들아!”

“단지회! 이젠 하다 하다 애새끼까지 데려왔냐?”

“무슨 개 같은 소리냐! 절완회, 네놈들 쪽 애송이지 않나!”

“······뭔, 어이, 거기 애새끼랑 죽립 병신! 피 보기 싫으면 비켜라. 이 어르신들이 자웅을 겨루려는 참이니 말이야.”


안유가 손가락으로 위지현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혈랑. 죽립 병신이랍니다. 애새끼는 절 말하는 것 같은데 죽립 병신은 대체······.”

“찌르지 마라. ······길을 잘못 들었더니 별 미친놈들을 다 만나는군.”

“연합이 삐걱거리니 이런 재미난 분들도 뵙게 되는군요. 아무튼, 좋은 상관은, 작명에 소질이 있어야 합니다.”

“작명?”

“문파 이름은 멋지고 볼 일 아니겠습니까. 저들처럼 단지(斷指)니 절완(絶腕)이니······ 어휴, 듣기만 해도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군요. 참. 고죽(苦竹)도 별로긴 매한가지입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고죽방과 연을 끊었다.”

“비켜! 이 배냇병신들아! 귓구멍이 막힌 채로 태어났느냐?”


위지현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소양은 바로 수명입니다. 목숨이 질길수록 좋은 상관이지요.”

“그건······ 의외군.”

“연합분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기껏 세력을 일궈놓고 픽 죽어버리면 거기서 끝이지요. 아무래도 아랫것들은 힘도 그릇도 그에게 미치지 못할 테니까요. 말아먹는 데는 몇 달이면 충분할 겁니다. 특히 흑도라면 더더욱.”

“오냐! 이 어르신의 손속이 과하다고 원망하지 마라. 내 친히 죽립을 베어 네놈의 면상을 확인하고야 말겠다!”


스릉!


위지현이 검을 뽑으며 차게 웃었다.


“그럼 저놈들은 좋은 상관이 아니겠군. 저리도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말이야. 준비해라, 흑의협. 단숨에 끝낸다.”


발검한 채 자세를 낮추는 위지현.

안유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따로따로 가시죠.”

“왜.”

“잊으셨습니까? 이 대협에게 검을 빌려드렸지 않습니까. 우리의 멋진 합격은 다음을 기약하심이.”

“병신. 인사 잘 하는구나. 하지만 늦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들 내가 봐줄 성싶으냐!”

“······.”


까득.


위지현은 이를 짓씹더니 혼자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절완회의 명운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전부 좋은 상관을 섬기지 못한 탓이었다.


‘좋은 상관이라.’


안유는 회귀 전의 상관을 떠올렸다. 그는 참으로 좋은 상관이었다.


암천(暗天).


무림을 자신의 대계로 뒤덮겠다는, 절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작명.


그리고 필생의 노력으로도 끊어내지 못한 기나긴 목숨줄까지.


그 같은 상관은 천하에 둘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런 상관을 ‘제대로’ 섬길 만한 부하 또한 천하에 둘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주······.’


안유의 미소가 짙어졌다. 위지현이 달려간 방향의 반대쪽으로, 그가 소매를 휘저었다.


펄럭!


품이 넓은 소매가 나풀거리며 차가운 물건 여러 개가 손가락 마디 사이로 파고들었다.


물건의 정체는 근처 시전(市廛)에서 긁어 모아온 바늘들.


일전에 나뭇잎을 쏘아 보낸 수법으로 이번에는 이 바늘들을 쏟아낼 작정이었다.


쿠구구구!


홍라공의 진기를 끌어올리는 안유. 단전에서 내뿜어진 진기는 혈맥을 내달려 마침내 오른손에 이르렀다.


열 개의 바늘을 움켜쥐고 있던 오른손이 특수한 요령에 따라 움직였다. 열 개의 암기를 쥐고, 동시에 쏘아내는 것.


십영출수(十影出手)는 십영촉비(十影鏃飛)의 첫 관문이었다.


‘이거 옛날 생각나는군.’


안유는 머릿속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십영촉비를 익히려면 우선 십영출수에 다다라야 하오. 우선은 열 개부터 시작해봅시다.”


당가독종, 엄편은 그렇게 말하곤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촤르륵!


그의 손에는 어느새 세침 열 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호오. 엄지와 검지,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세 개씩. 그리고 나머지에는 두 개씩입니까.”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오. 얼마나 빨리 쥐느냐,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느냐가 중요하지.”


콰가각!


그의 손이 움직인다 싶더니 세침 열 개가 날아가 나무 밑동에 틀어박혔다.


十.


박힌 세침은 정확히 십자를 그리고 있었다.


“이게, 보기보다 쉽지 않소. 나도 피나는 고련을 통해 간신히 습득했으니까.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피를 봐야 하오. 처음 반년 동안은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파바박!


안유가 손을 휘젓자 엄편과 마찬가지로 손가락 사이에 세침 열 개가 나타났다.


“기법이라기보다는······ 요령이군요.”

“이럴······ 수가. 나는 열 개를 동시에 쥐기까지 반년도 넘게 걸렸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고안하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비, 빌어먹을······!”


다시 생각해봐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십영(十影) 다음에는 이십, 삼십, 사십을 지나 끝내는 백영(百影)에 다다른다.


당가의 만천화우(滿天花雨)를 따라잡았다고 평가받는 절세의 암기술.


이런 피라미들에게는 십영촉비의 기초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촤르륵!


안유가 한 번 더 소매를 휘두르자 작은 그림자 열 개가 단지회를 향해 날아갔다.


콰가가가각!


“아아악!”

“이, 이 애새끼가······!”


단지회의 삼분지 일 가까이가 몸 이곳저곳에 비침이 꽂힌 채 아우성을 쳤다.


안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정확히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바늘의 궤도가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손이 작아져서 그런가, 고작 열 개만으로도 이렇게 흐트러지다니······.”

“무, 무슨 짓거리냐. 이 눈 찢어진 애새끼야!”

“그렇군요. 도와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이리저리 조정하다 보면 나아질 테지요.”

“······뭐?”


촤르륵!

촤르르륵!


“아악!”

“히이이익!”


촤르르르륵!


“부, 부탁드립니다. 그만 멈춰주십시오. 저희가 고인을 몰라뵀습니다. 그러니 제발······.”


촤르르르르륵!


“아아아아악!”


골목에서는 한동안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은 한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죽립인이 떠나간 뒤에야 차츰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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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암살(2) 24.01.09 292 8 13쪽
32 암살(1) 24.01.08 319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30 불귀산장(5) 24.01.04 358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1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19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1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3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6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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