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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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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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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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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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2)

DUMMY

태산파 장문인 명운호.


무공 수위는 절정, 와력기공(瓦礫基功)과 철패권(鐵覇拳)을 익힘.


와력기공은 극히 뛰어난 외공으로 일정 성취를 넘어서면 웬만한 날붙이로는 생채기를 남기기조차 어려움.


명운호는 와력기공을 대성해 도검불침(刀劍不侵)에 다다랐다는 평을 받음.


철패권은 위력적인 강권으로 여기에 와력기공이 더해지면 커다란 바위도 분쇄할 정도임.


명운호는 일신의 무공으로 일류고수 십수 명을 불구로 만든 바 있음.


두포는 명운호의 신상을 상기하며 걸음을 바삐 옮겼다. 아직 동이 트기엔 이른 시각, 새벽 어스름 끝에는 태산파가 있었다.


“어서 오게.”


총호법 맹화가 문간에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하면서도 달뜬 표정을 두포는 모르는 척 넘겼다.


“와줘서 고맙네. 내 자네만 믿고 있었지. 얘기보다는, 직접 보는 게 빠를 거야.”


맹화는 문주의 침소로 두포를 안내했다. 대문과 중문을 거쳐 내당으로 향한다. 스쳐 지나가는 태산파의 정경은 고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괴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간밤의 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끼리라. 두포는 벌써 비릿한 혈항 같은 것이 코끝에 맴도는 듯했다.


침소의 문이 열리자 과연 혈향이 들이닥쳤다. 두포의 눈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장내의 상황을 파악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다. 발자국은 안 보이는군. 창문에서 다섯 걸음이면 침상, 별다른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침상 위에는······.’


이부자리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두포는 그 위로 몸을 뉘고 있는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명운호.’


두포의 눈이 일순 파르르 떨렸다. 반신반의했지만 맹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사에서 손꼽히는 고수이자, 또한 손꼽히는 불한당.


악랄한 흑도의 일맥으로 최근 그 고죽방에 가세하여 욱일승천하던 명운호는.


“······.”


자신의 침상 위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발견한 건 늦은 자시(子時, 오후 11시에서 오전 1시 사이) 무렵이었네.”


맹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늦도록 침소에 불이 켜져 있기에 처음에는 그저 잠을 못 이루시나 싶었지. 그러나 한밤중이 되어도 불이 꺼질 줄을 모르고, 또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으셔서 들어와 보니······ 이리돼 있었네.”

“수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나? 흔적은?”

“즉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흔한 족적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네. 혹시 몰라 번을 서던 놈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영 모르는 눈치더군.”


‘은근히······ 이놈은 역시······.’


두포는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군. 잘했네.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나를 부른 건 현명한 판단이었어. 타초경사(打草驚蛇)를 경계함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게 무슨 말인가?”


‘무식한 놈.’


“······경거망동하지, 아니, 신중하게 행동했다는 뜻일세.”

“아 물론이지. 괜히 헤집었다가 흉수 놈이 자취를 감추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와 자네, 그리고 총관뿐이네.”

“허율령도 알고 있다고? 그럼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사태를 빨리 수습해도 모자랄 판에······.”


맹화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습은 무슨, 쥐새끼 같은 놈일세. 장문인이 죽었으니 틀림없이 다음 주인을 찾아 떠났을 걸세.”


맹화가 두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도와주게. 이제 믿을 사람은 자네뿐이야. 하오문과 연이 닿아 있는 자네만이 날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일세.”

“······.”

“부디 흉수를 찾아주게. 내 놈을 직접 징치하여 의를 바로 세우고 장문인의 유지를 이을 것이네.”

“그렇다면, 알겠네.”


두포가 고개를 담담히 끄덕이며 말했다.


“벗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지. 입단속 잘하고 있게. 명심하게. 장문인의 일은 물론 나에 관한 것도 꼭 함구해야 하네. 자칫 잘못하면 일을 그르칠지도 몰라.”

“여부가 있겠나. 고맙네, 고마워!”


두포는 맞잡은 손을 몇 번 흔들어주고는 침소를 세밀하게 살폈다. 시신, 창틀, 침상, 바닥을 비롯한 내부는 물론 외부의 뒤뜰이나 지붕, 근처 전각까지 찬찬히 뜯어보았다.


“음······.”


그러나 두포의 표정은 갈수록 침중해졌다. 의문과 의혹 또한 깊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엇을 알아냈는가.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을 들을 사람은 맹화가 아니었다. 두포는 서둘러 천화루(天花樓)로 돌아갔다.


***


똑똑.


“들어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매예령의 목소리. 두포는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꼭두새벽부터 고생하셨어요.”

“그럼 바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포는 지필묵을 내어 곧바로 그림을 그렸다. 명운호가 죽은 침소와 그 주위의 지형지물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이었다.


“우선, 명운호는 확실히 절명했습니다. 시반(屍斑) 등을 확인해보니 맹화의 증언대로 자정 무렵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인은요?”

“가슴 정중앙에 검흔 한 군데가 있었습니다. 기다란 꼬챙이 같은 것으로, 아마도 기형검이겠지요, 일검에 즉사시켰습니다.”

“그 명운호를 일검에······ 대단한 살수로군요.”


매예령이 탄성을 내뱉으며 그림을 집어 들었다. 면사 가까이 그림을 갖다 대는 매예령.


그녀는 한동안 그것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침상 밑에 숨어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흉수는 굉장히 용의주도한 놈입니다. 명운호의 행동거지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침상 밑도 무흔(無痕)이었습니다. 먼지가 그대로 있더군요.”

“음. 창문과 불빛은 일부러 내버려 둔 걸까요. 묘하군요. 적당히 들키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매예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만한 실력자를 보냈다면 보통 은원은 아니겠죠. 그런데 짐작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네요.”


두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태산파는 문파를 자처하고 있어도 흑도 방파나 다름없었습니다. 지금껏 패악질이란 패악질은 전부 부렸으니, 사방에 적이 깔려있지요.”

“죽어 마땅한 자이기는 했지만 왜 하필 지금······, 그나저나 총관 허율령의 행방은 어떻게 됐나요?”

“일이 터진 직후 자택에 처박혀 있다가 뒤늦게 고죽방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저런. 총관과 총호법. 둘 다 딴 맘을 품었군요. 일문을 이끌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네요.”

“총호법은 과감하나 생각이 짧고, 총관은 셈이 빠르나 배포가 작으니 누가 이기던 태산파는 점차 쇠락할 것입니다. 이거 장사 무림의 정세가 크게 요동치겠군요.”


매예령은 그림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두포의 말대로 태산파의 명운은 곧 장사 무림 전체와 이어져 있었다.


장문인 자리에 눈이 먼 총호법이 아니었던들 이만한 상등의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써먹기에 따라선 하오문 내의 입지를 한층 더 탄탄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몰랐다.


‘명운호가 죽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만 흉수를 특정할 수만 있다면 요긴한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거야.’


살수는 혼자서 움직이지 않는다.


살수를 타고 올라가 그 뒷배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고급 정보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고죽방일 확률은 한없이 낮아. 육등위가 몇몇 고수들과 사라진 지 한 달여. 그 육등위의 성정에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이런 거사를 치르게 하지는 않겠지. 하물며 허율령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을 대한다면 더더욱.’


비선의 정보망뿐 아니라 하오문의 정보망 또한 육등위가 돌아오지 않았음을 직,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상당한 전력을 이끌고 어디론가 떠난 부방주. 그가 종적을 감춘 것은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고죽방주 구유백은 구태여 내막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행사’가 어느 정도 어긋났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에 이목을 끌고 싶진 않겠지. 좋든 싫든 은인자중하는 게 옳아. 연합 세력과의 관계도 연일 끈끈해지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진 않을 거야. 어떤 식으로든, 어떤 목적 때문이든 말이야.’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고죽방이 가장 유력하기도 했다.


‘육등위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가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구유백의 독단, 육등위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육등위가 죽었을지도······.’


대체 어떤 ‘행사’이기에 고죽방을 파국으로 치닫게끔 한다는 말인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정말로 그런 사달이 났을 경우 시선을 돌리기 위해, 혹은 얼마쯤 숨통을 트기 위해 일대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매예령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당분간 고죽방에 신경을 좀 써주세요. 특히 허율령의 소재는 계속 파악해주시고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가보세요.”


조만간 각지에서 비선의 정보가 도착하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예령은 희미한 기대감을 품은 채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하오문과 비선의 정보를 갈무리하려면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가고야 말았다. 명운호의 암살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삼일 뒤, 매예령의 방.


특급 정보를 갖고 온 두포는 보기 드물게 허둥거리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매예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보기 드물게,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죽었습니다.”


두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유협계의 태전음과 육지문의 현소열도······ 죽었다고 합니다. 명운호와 똑같이······ 기형검에 가슴이 찔려서······.”


***


장사 어딘가의 저자.

한 떼의 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다 죽여버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자고!”


언동과 행색을 보아하니 인근의 흑도 무리인 듯싶었다. 상인들은 애써 그들을 외면하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 다들 살기등등하군요.”


안유가 소면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죽립을 둘러쓴 위지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흑의협, 지금 소면이나 먹고 있을 때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기껏 암살을 시켜놓고 미적거릴 참이냐. 외려 이럴 때일수록 들이쳐야······.”

“아직 신 대협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 대협과 약조한 기간도 오 주야 가까이 남았고요.”

“그래도······.”


후루룩.


안유가 국물을 깔끔하게 비운 뒤 말을 끊었다.


“저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방금 지나간 장정들 말입니다.”

“모른다.”

“저도 모릅니다. 어디 뒷골목을 주름잡는 흑도 놈들이겠지요.”

“······본론만 말해라.”

“저들이 날뛰는 이유는 팽팽하던 세력도 어딘가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공백은.”


안유가 빙글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딱 이만큼입니다. 태산문, 유협계, 육지문, 활빈회, 밀밀당, 그 수뇌의 머리통만큼, 삐걱거리고 있는 게지요.”

“당연한 소리를. 그걸 노리고 암살을 꾀한 거잖나.”

“그런데 어디 삐걱거리는 게 흑도뿐이겠습니까?”

“뭐?”

“여기가 삐걱거리면 저기도 삐걱거리겠지요. 움직인 만큼 자리가 생기니 누군가는 고개를 쳐들지 않겠습니까.”


안유가 저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죽방의 연합을 와해시켜도 구유백이 건재한 이상 연합은 언제고 재건될 겁니다. 휘황찬란한 성도에 흑도는 차고 넘치니까요.”

“흑도와 정반대의······ 백도의 힘을 빌리겠다는 거냐?”

“정반대는 맞지만, 백도라면 약소 문파들 말씀입니까? 그들이 어디 힘이나 제대로 쓰겠습니까.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게 고작일 텐데요.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여기, 장사는 아닙니다.”


안유가 폴짝 뛰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색깔 놀이를 하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흑의 반대는 백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누구든 힘을 쥐면 흑도, 백도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중간을 노립니다.”

“······.”

“며칠 후면 전부 솎아져 있을 테니 그때 움직이도록 하지요. 밀밀당주가 죽은 직후, 그들이 고개를 든 순간을 노려서!”


안유가 한 전각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것은 은근한 차향을 사방으로 풍기는 높다란 다관(茶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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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2) 24.01.09 293 8 13쪽
32 암살(1) 24.01.08 319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30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1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19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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