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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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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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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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대호채의 기연(4)

DUMMY

대정산(大釘山).

그 이름처럼 산의 형상은 커다란 못을 연상시켰다.


쿵! 쿵!


산자락에 들어선 뒤부터 마차가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돌이나 자갈 따위가 길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쯧. 엉망이군. 엉망이야.”


주지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비가 전혀 안 돼 있군. 초입부터 이러면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하지. 이래서야 누가 산을 오르고 싶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잘되는 집은 문간에서부터 알아본다고 했습니다. 소정산과는 영 딴판이군요.”

“당신의 혜안이 참으로 대단하오. 우린 돌부리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지.”


‘곱게 넘어가긴 틀렸구나.’


신전흥은 눈을 감은 채 운공에만 전념했다. 두 사람의 장단에 맞춰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음! 이 와중에도 수행이라니. 당신의 동행은 무인의 귀감이라고 할 만하군.”

“참으로 그렇습니다. 대단한 고수이시지요.”

“당신도 무공을 익혔소?”

“감히 무림인을 자처할 수준은 아닙니다만, 배우긴 배웠습니다. 혹여 공자께서는?”

“아버지께 사사하긴 했으나 아직 한참은 모자라오.”


주지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녹림이라면 모름지기 커다란 도를 휘둘러야 하지 않겠소? 한데······ 도법은 영 안 맞더군.”


‘확실히.’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주지안의 몸은 몹시 호리호리했다.

타고난 근골이 얇고 왜소해, 날렵할지언정 용력은 다소 떨어지는 신체.


이런 체형은 무거운 도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검이 더 적합했다.


안유는 주지안의 등에 매달린 박도를 흘깃거렸다.


‘첫 대면 때도 끝내 놓쳤었지. 쉽지 않을 거야. 피땀을 쏟다 보면 언젠가는 극복하겠지만······.’


“흠, 그렇다면 다른 병기를 쓰는 건 어떻습니까? 연검이나, 혹은 비수라던가.”

“나도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소. 녹림은 녹림이어야 하오. 단지 무거워서 도를 버린다면 뭇 산적의 비웃음을 사게 되겠지.”


주지안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눈빛에 언뜻 냉기가 피어오르기에 안유는 더 입을 대지 않았다.


마차는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은 갈수록 궂어져 주지안의 심기는 더욱 나빠지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말을 몰던 노복, 혁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자님.”


그와 동시에 뇌성벽력과도 같은 고함이 산중에 울려 퍼졌다.


“멈춰라,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얼쩡거리느냐!”


걸걸한 목소리가 제법 위압적이었다.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허어.”


신전흥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친 비탈길. 한 떼의 장정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크핫핫! 그래도 행동은 꽤 빠릿빠릿하구나!”


우락부락한 장정들, 그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거한이 광소를 터뜨렸다.


호피를 두르고 박도를 걸머진 게 온몸으로 ‘나 산도적이오’라고 말하는 듯한 외양이었다.


그를 포함해 머릿수는 대략 서른 명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전방은 물론 양측의 수풀에도 장정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슬그머니 퇴로를 막는 놈들까지 포함하면 머릿수는 물경 일흔 명에 이르렀다.


주지안은 태연자약한 걸음으로 거한에게 다가갔다.


“······?”


조금 당황한 듯한 거한에게 주지안이 말했다.


“대호채의 두령은 어디에 있소?”

“······허허. 내가 대호채주 막종이다. 네놈은 누구길래 본 어르신을 찾느냐?”

“나는 옆 산에 산채를 편 동업자요.”

“동업자? 너도······ 녹림이라는 말이냐? 허 참! 이놈!”


막종이 노호성을 내질렀다.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내 옆 산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녹림 동도로서 두 가지를 당부하겠소.”

“무슨······.”


주지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첫째. 녹림이라면 녹림의 도리를 다하시오. 당신네의 소문은 내 익히 들었소. 신의가 없고, 절조가 없고, 명분 또한 없다지?”

“······.”

“그리 날뛰면서도 산을 전혀 돌보지 않으니 당신은 녹림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소.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막종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입꼬리 또한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말······ 다했느냐?”

“아직이오. 둘째. 이들은 내 손님들이오.”


주지안이 안유와 신전흥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내 그들에게 통행료뿐 아니라 숙박료까지 받았으나 후하게 치른 탓에 셈이 아직 남아 있소.”

“······.”

“내 그만큼을 당신에게 내어줄 테니 두 사람의 편의를 봐주시오. 예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조를 했다는군. 경우가 바른 자들이니 별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요. 내 보증하지.”


지독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동안 바람 스치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 정적을, 대호채주 막종이 깨트렸다.


“무슨 개소리냐! 뭐? 절조? 산을 돌봐? 도리는 얼어 죽을. 그깟 도리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산적한테 도리를 찾다니 정녕 실성이라도 했느냐?”


신전흥이 떨떠름한 얼굴로 안유를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가 분명······.”

“아하. 이치에 맞는 말이긴 하지요.”

“······.”

“하지만 고리타분합니다. 요즘은 달라졌지요.”


안유가 빙글거리며 말했다.


“당대의 총표파자께서는 도리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아랫것들은, 자연히 따라야 마땅하겠지요.”


막종이 광분하며 박도를 빼 들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전부 썰어버린 다음에 산짐승들의 먹이로 줄 것이다. 그리고 특히!”


막종이 주지안에게 박도를 들이밀었다.


“너! 이 계집애 같은 놈아!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주지안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귀까지 먹었느냐? 이 계집애 같은······.”

“혁전! 전칠! 상탁!”


막종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가 산간을 가득 메웠다. 추상과도 같은 지엄한 부름이었다.


“전부 꿇리게!”


한줄기 그림자가 주지안을 지나쳐, 막종에게 돌진했다.


‘미친.’


막종은 대경해서 도를 휘둘렀지만 기실 움직인 건 마음뿐이었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웬 중늙은이가 그의 박도를 가볍게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의 절반쯤 되는 몸피.

그 작은 몸뚱이 어디에 이런 거력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고수, 잠깐. 방금 혁전이라고······. 그리고 전칠······ 상탁······. 말도 안 돼. 설마, 설마!’


막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쾅!


혁전이 살짝 쓰다듬어주자 막종은 휘적거리며 하늘을 날았다.


쿵!


그는 엄청난 기세로 고목에 부딪힌 뒤, 아래쪽 수풀 속으로 처박혀버렸다.


‘이런······ 횡액이······.’


어두워지는 시야 너머로 부하들을 유린하는 세 개의 인영이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녹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


전칠, 상탁, 그리고 혁전.


막종은 커다란 호랑이가 되고 싶었으나 기실 한낱 고양이조차 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총표파자의 의형제이자 직속 호위.

녹림칠십이채의 최정예.

절정지경의 극에 달한 절세 고수들.


사람들은 경의를 담아, 그들을 수신십호(守身十虎)라고 불렀다.


혁전, 전칠, 상탁은 수신십호의 일원,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대호였다.


‘그, 그럼 저 젊은이는······.’


퍽!


피떡이 된 부하가 막종에게 날아들었다. 막종은 부하와 함께 그대로 졸도해버렸다.


***


세 사람이 대호채를 정리하는 데는 채 일다경도 걸리지 않았다.


“괴, 괴물이다!”

“오지마! 오지······!”


실력의 차이는 확연했고, 맞서든 도망치든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전부 흩어져서 달아났기에 대호채는 일다경 가까이 버틸 수 있었다.


쾅! 쾅! 쾅!


주먹질 한방, 발길질 한방이면 족했다. 의식은 촛불보다도 쉽게 꺼지는 것이었다.


“······.”


주지안은 명령을 내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노복들은 무슨 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공자 앞으로 산적들을 날랐다. 일각도 되지 않아 산적 행렬이 준비되었다.


“······으윽.”

“······웩.”


그쯤 되니 하나둘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철썩!


혁전이 가장 앞에 널브러져 있던 막종의 뺨을 갈겼다.


그러나 한 번으로는 부족한 듯했다.


철썩! 철썩!


“······윽.”


전칠과 상탁도 곳곳에서 뺨을 갈기니 마지막 한 명까지 어떻게는 눈을 띄울 수 있었다.


“고생 많았네.”


세 사람은 주지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마차 쪽으로 돌아왔다.


“우우······.”


막종은 정신이 들자마자 냉큼 고개를 조아렸다. 과연 두령은 두령이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귀인을 미처 알아뵙지 못해 크나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

“공자라고 부르게.”

“고, 고, 공자님. 사, 살려만 주십시오.”

“내가 왜 자네들을 죽이겠나.”


주지안이 싸늘하게 웃었다.


“할 일이 많은데 죽여서야 쓰나. 전부 원래대로 돌려놓게.”

“······원래대로라고 하시면?”

“말 그대로일세. 오명도 재물도······ 전부 돌려놓으라 이 말이네.”

“반드시, 반드시 돌려놓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반드시······.”

“그건 안 되지. 이미 임자가 있지 않나.”

“예?”

“뺏은 만큼 뺏기게 될걸세. 목숨을 앗았다면, 그나마 목숨으로 갚아야 온당하겠지.”

“그, 그건······.”

“지금 당장 갚고 싶은 건가?”

“······공자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주지안은 그제야 몸을 돌려 안유를 쳐다보았다.


얼굴에는 한줄기 고소(苦笑)가 매달려 있었다.


“······조금 거칠게 타이르고 말았소.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괜히 못 볼 꼴을 보여줬구려.”

“공자님. 혹시······.”

“후, 역시 대단한 통찰이오.”

“예?”

“그렇소. 내 부친께서는 총표파자, 녹림왕이시오. 그러니 나는 녹림칠십이채의······.”

“아니, 그게 아닙니다.”


주지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캐물으려던 거 아니었소?”

“뭘 캐묻습니까.”

“내 정체. 속였다거나 그런······.”

“주 공자는 주 공자이지요. 뭐 바뀐 거라도 있습니까?”

“······.”


주지안의 동공이 마구 요동쳤다.

안유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일을 보러 가려는데 길을 좀 묻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리 하시오.”


주지안이 눈짓하자 막종이 잽싸게 일어났다.


“예. 얼마든지 하문하십시오.”

“지류도 아니고 상류도 아니고. 딱 중간쯤 되는 곳에, 수원(水原)이 있습니까?”

“음. 그러한 샘이······ 다섯 개쯤 있습니다. 한데 그건 왜······?”

“그중에 혹시 ‘특이한’ 바윗돌이 있는 놈은요?”

“특이? 특이라. 특이하다면, 아! 딱 하나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막종이 침을 튀기며 산길에서 뻗어 나가는 오솔길 중 하나를 가리켰다.


능선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외길이었다.


“이리로 한 시진쯤 가다 보면 나옵니다요, 헤헤.”

“호오. 공자님. 혹시 일 좀 보고 와도 되겠습니까?”

“하핫, 물론. 얼마나 걸리겠소.”

“짧으면 반나절, 길면 한나절쯤 걸릴 겁니다.”

“들쭉날쭉하군. 까딱 잘못하면 하루 묵었다 가야겠구려?”

“내일 조반은 제가 직접 지어 올리겠습니다.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주지안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얼른 다녀오시오. 이들의 산채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느······.”

“저, 저희 산채는 저, 저, 저쪽 봉우리에 있습니다.”

“그렇다는군.”

“그렇군요. 신 대협은 푹 쉬고 계십시오. 저 혼자 가도록 하겠습니다.”


안유는 막 출발하려다가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렸다.


“공자님. 확실치는 않지만 손님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손님? 당신 손님이오?”

“저를 찾거든, 붙들어만 주시겠습니까.”

“붙들어달라······ 뭔가 곡절이 있는 듯한데 당신은 여전히 내 손님이오. 그것도 도리를 아는 손님이지.”


안유가 싱글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안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솔길을 내달렸다. 샛길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계속해서 이어졌다.


‘본인이 직접 알려줄 줄은 몰랐군.’


바뀐 건 사람뿐.

우연인지 필연인지 큰 줄기는 비슷했다.


회귀 전, 막종은 오늘보다 한참은 더 늦게 찾아온 주지안 일행에게 무참히 박살 났다.


대호채가 반쯤 와해 되자 막종은 실의에 빠져 대정산을 배회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가.

아주 우연히 이 길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하하하!”


안유가 웃음을 터뜨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럴 리 없건만, 벌써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천금을 준다 해도 사기 어려운 ‘진짜 영약’의 냄새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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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6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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