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7,825
추천수 :
558
글자수 :
209,961

작성
24.01.04 19:00
조회
358
추천
13
글자
13쪽

불귀산장(5)

DUMMY

-······이건?


뒤따라온 위지현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인과 그 앞에 펼쳐져 있는 철창을 보고는 의문을 표했다.


안유는 저간의 내막을 위지현에게 설명했다.


-뇌옥이라, 번거로운 짓을 하는군. 굳이 이렇게까지 하며 가둬둘 필요가 있나?

-저마다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장 죽이자니 아쉽고, 그렇다고 어디 유폐해두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고······.


안유가 생긋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이렇듯 은밀하면서도 ‘구경’하기 좋은 뇌옥은 찾아보기 힘들겠지요.

-확실히······. 그래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다. 주인장, 냉일이라고 했던가. 그자는 무슨 연유로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거지? 돈깨나 있는 놈이 말이야.

-아마도 그래서일 겁니다. 돈을 벌 만큼 벌어본 자들은 딴마음을 품기 마련.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옥졸 노릇을 자청하는 게 아닐까요?


영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의 위지현. 안유는 설명을 더 이어가는 대신 손가락으로 철창을 가리켰다.


-열쇠를 찾아다니기엔 시간이 촉박하니, 열어주시겠습니까?

-흑의협, 네가 하면 되지 않나?

-제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말입니다.

-쯧.


혈랑이 발검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새파란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싶더니 두꺼운 철창이 수숫대처럼 맥없이 잘려나갔다.


촤악!


안유는 떨어지던 파편을 잡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직후 철창 안에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조용.


갑작스러운 전음에 끔찍한 몰골의 수인이 한 차례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숨죽이고 있으십시오.

“······.”

-곧 전부 정리될 테니 갑자기 떠들썩해졌다가 조용해지면, 서른 번 정도 숨을 내뱉은 다음에 나오시면 됩니다.

“동······.”

-동생분의 처우는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죽이던, 살리던······ 이제 당신은 어느 쪽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안유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려 동혈을 빠져나왔다.


뒤뚱거리며 따라오던 위지현이 안유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자는 왜 구한 거지?

-사람을 돕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개소리.

-도우려면 전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다구나 싶어서 곧장 달려가면, 아 놈의 목적이 바로 그놈이었구나, 이리 생각하겠지요.

-전부 씨를 말려버리면 해결되는······.

-고죽방은 과연 다르군요. 저 같은 협객은 절대 떠올리지 못할 발상입니다.


물론 위지현의 생각도 아예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종적을 감추기 위해선 살인멸구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안유는 어느 정도는 자신의 행적이 새어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하여 창월당주 이청을 유폐한 자들, 그들의 배후에 있는 암중 세력이 경각심을 느끼길 바랐다.


‘외당 다음에는 내당이다. 미리 흔들어두면 적잖이 도움이 될 터.’


이청의 몰락에도 암천회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유는 부회주가 된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 시점 이청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되어 있었다.


안유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청은 홀로 복수에 나섰다가 검하고혼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선배, 혼자선 안 됩니다. 독고(獨孤)는 필사(必死)······ 저도 그걸 죽고 나서야 깨달았지요.’


수인들의 해방은 안유는 물론 이청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장차의 파란을 위해, 안유는 몇 명쯤의 수인을 더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었다.


촤아악!


검광이 번뜩이자 철창이 맥없이 잘려나갔다. 위지현이 검을 회수하며 수혈이 짚인 장정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흉흉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죽일 놈! 제 스승을 이딴 곳에 가둬?’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는 혈랑. 안유가 전음을 보내 그를 제지했다.


-고정하십시오. 그 심중은 이해하지만 복수는 당신의 몫이 아니지 않습니까.

-······.


혈랑은 창살을 쳐다보고는 말없이 검을 거두어들였다. 두 사람은 다음 동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공동으로 나오기 무섭게 날카로운 기파가 두 사람을 덮쳤다.


쏴아아아아!


마치 살을 에는 듯한 기세, 어떤 한기 따위가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웬만한 고수는 이 정도의 기도를 발하지 못한다. 심, 기, 체가 합일되어 절정지경에 달한 고수만이 이러한 기도를 내뿜을 수 있었다.


각기 창과 도를 든 두 명의 고수.

그들을 양옆에 끼고 있는 사람은 백발을 단정하게 묶어 내린 노인이었다.


“허어!”


노소년장의 주인, 냉일이 빙글거리며 탄성을 터뜨렸다.


“웬 협객들이 나타났다 했더니 본 장의 손님들이셨군. 어인 일로 예까지 내려오셨습니까.”


안유가 웃음을, 웃음으로 맞받았다.


“갑자기 출출해져서 만두나 한 접시 얻어먹을까 하여 주방으로 갔는데, 글쎄 이런 멋진 동혈을 찾게 되었지 뭡니까.”

“저런. 그렇다면 요기만 하고 떠나면 될 것을,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고 말았군요.”


냉일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손님들은 상당한 고수인 모양입니다. 바깥의 놈들도 깨나 무명을 날리던 자들이었는데······.”

“실로 그렇습니다. 산장에서 잡일이나 하기엔 무공이 고강하더군요.”

“그래도 이들만큼은 아니지요. 이들은 창도쌍협(槍刀双俠)이라는 자들로 강서에서 혁혁한 명성을 쌓은 고수들이랍니다. 피라미들과는 격이 다르지요.”

“창도쌍협(槍刀双俠)!”

“오, 알고 계신 겁니까?”

“그게 누굽니까?”

“······.”


냉일의 얼굴이 아주 조금 일그러졌다.


“제가 과문하여 몇몇 유명한 고수들만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한창 맹위를 떨치는 ‘흑의협’이라던가······.”


위지현이 안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안유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심기가 불편한 건 냉일만이 아닌 듯했다. 창도쌍협 중 창을 든 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흑의협? 애들 비무에서 허명을 얻은 그자 말이냐? 흐흐 협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그 복면 뒤에 숨어있는 걸 보면 놈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겁쟁이일 것이다.”


안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숨었겠지요. 그래도 복면을 쓰고 협행을 하는 쪽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 토굴에 숨어 옥졸 노릇이나 돕는 것보다는 말입니다.”

“······이놈!”

“하하, 손님께서 입담이 제법이시군. 그만 진정하시게. 어차피 다 잡은 물고기 아닌가.”


그새 평정심을 회복한 냉일이 조금은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안유를 바라보았다.


“감이지만, 우연이 아니겠지요? 당신들은 누굽니까? 제가 궁금할 만한 것들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대답 여하에 따라 곱게 돌려보낼 용의도 있습니다.”

“······.”

“제 만두가 맛있긴 해도 계속 먹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저는.”


안유가 빙글거리며 운을 띄었다.


“당신이 누군지 알 것도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냉일, 당신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을 겁니다. 자신하는 만두, 아마 자주는 못 먹었겠죠. 일 년에 한두 번쯤, 그마저도 편하게 먹지는 못 했을 겁니다.”

“······.”


냉일의 얼굴에서 점차 표정이 사라졌다.


“유복한 가계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겠죠. 양친은 살아계셨고, 형제도 있었지요? 추측건대 형님, 화목한 가정이었겠지요. 당신만 빼놓고 말입니다.”

“······.”

“흠, 왜 그랬을까? ······혹시 첩실 소생이었습니까? 그렇군. 그런 거였군요. 그래서 갇혀서 자란 거군요.”

“······.”


안유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창고? 헛간? 어쨌든 당신은 여기보다는 좀 더 나은 곳에서 줄곧 묶여서 자랐던 겁니다. 가축처럼, 학대당하며, 경멸을 감내하면서······.”

“너······.”

“어떻게든 벗어나 일가를 이루었지만, 평생 물처럼 써도 남을 만큼의 재산을 일궜지만,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안유가 손가락을 그대로 들어 냉일을 가리켰다.


“노소년장(老少年莊). 기가 막힌 작명이군요. 당신은 그 뜻처럼 천진한 노인이 아닙니다.”

“······.”

“정 반대지요. 음습한 아이, 과거의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유폐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간 어떠셨습니까? 비슷한 아이들을 불러모아 소꿉장난이라도 하면 당신이······.”

“그만!”


냉일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전부 반병신으로 만들어라! 뇌옥에 처넣어서 죽을 때까지 오늘 일을 후회하게 해주마!”


눈 돌아간 냉일의 지시에 창도쌍협이 움직였다. 기민한 동작, 안유의 귓가로 위지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혀에 칼이라도 숨겨둔 건가. 부아를 치밀게 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군.

-칼은 항상 소매에 숨겨두고 있지요. 이번엔 따로따로 가십니까?

-겁먹었나?

-설마요. 합격까진 필요 없을 듯합니다.



두 사람 대 두 사람.

눈짓이 오가고 서로의 상대가 자연스레 정해졌다.


혈랑의 상대는 도.

안유의 상대는 창이었다.


“놈!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창날을 따라 피어오르는 선연한 기운, 틀림없는 검기상인의 경지.


안유의 소매에서 협봉검이 튀어나왔다.


‘창을 상대하는 선결 조건은 간합. 격돌을 피하며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샤아아아!


기묘한 파공성과 함께 찔러 들어오는 장창. 창날이 안유의 가슴께를 꿰뚫었나 싶더니 홀연 안유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런!”


안유의 몸은 어느새 지면과 밀착해 있었다. 몸의 중심을 극한까지 낮추는 천랑검법의 자세였다.


파바박!


안유는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움직임으로 적에게 달려들었다.


‘대체 무슨 검법······.’


창수는 뒤로 물러서며 서둘러 살초를 흩뿌렸다. 그러나 적중한 초식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스륵! 스륵! 스륵!


안유는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연달아 피해내고 있었다.


‘내 수가 전부······ 읽히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야. 자세가 너무 낮은 데다 빠르다. 자칫 땅이라도 찍었다간 대처가 느려······.’


파앙!


지척까지 다가온 안유가 왼손으로 지면을 밀쳤다. 몸이 용오름처럼 뒤틀리며 급변하는 검의 궤적, 낭아출동(狼牙出洞)의 초식이었다.


“큭!”


창수의 목에서 핏물이 튀었다. 그러나 반응이 늦지 않은 덕에 간신히 핏물에서 그칠 수 있었다.


‘또 아래에서 날아오겠지. 이제 보이는 것도 같다.’


창대를 조금 느슨하게 쥐어 언제든지 아래를 노릴 수 있도록 대비하는 상대.


안유는 그 미세한 움직임이 만들어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안유는 지면에 엎드리지 않고, 선 채로 검공을 펼쳤다.


쏴아아아!


검광이 다섯 줄기로 나뉘며 각기 다른 방향에서 상대방을 향해 쏘아졌다.


“······이!”


촤르륵!


창영이 비산하며 다섯 줄기의 검광을 맞받아치려는 찰나, 검광이 돌연 한 줄기로 합쳐졌다.


철혈검법의 절초, 철혈무위.


백학무관에서 얻은 깨달음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촤악!


협봉검이 목을 관통했다. 뜨거운 핏물이 협봉검을 타고 흘렀다.


꺼헉!


이름조차 듣지 못한 창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혈랑은 이미 검의 핏물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 검법은 뭐지?

-철혈검법입니다.

-상당한 절학이군. 물론 천랑만큼은 아니지만······.


안유는 가볍게 무시한 다음 혼자가 된 냉일을 응시했다.


“······.”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는 듯 냉일의 안색은 안쓰러울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잠······.”


툭.


안유는 쏜살같이 날아가 냉일의 혈도를 짚었다. 풀썩. 냉일의 노구가 허물어지며 아무렇게나 쓰러졌다.


“마저 끝내버리지요.”

“그러지.”


안유와 위지현은 나머지 동혈의 수인들도 전부 풀어준 다음 마침내 가장 안쪽의, 마지막 동혈로 향했다.


“손속에 자비를 두는 이유라도 있나?”


혈랑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나같이 수혈만 짚을 뿐이니, 정말 협객이라도 왕림한 줄 알겠군.”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제 몫의 복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냉일, 그자는 일이 끝난 다음 온당한 방법으로 처리할 작정입니다.”

“······저런. 안 됐군.”


두 사람은 횃불 아래에서 싸늘하게 빛나고 있는 철창 앞에 섰다.


스릉!


혈랑의 검이 지나가자 철창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쿠구구궁!


무너져내리는 철창 사이로 마지막 수인이 눈을 번뜩였다. 사지가 묶인 채, 재갈까지 물고 있음에도 여전히 형형한 눈빛.


“······.”


안유가 빙글거리며 수인에게로 다가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을 알려드립니다. 24.01.15 96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24.01.04 111 0 -
공지 19화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23.12.21 407 0 -
36 암살(5) 24.01.12 237 11 13쪽
35 암살(4) 24.01.11 216 9 13쪽
34 암살(3) 24.01.10 260 6 13쪽
33 암살(2) 24.01.09 292 8 13쪽
32 암살(1) 24.01.08 319 7 13쪽
31 불귀산장(6) 24.01.05 354 11 13쪽
»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1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27 불귀산장(2) 24.01.01 474 16 13쪽
26 불귀산장(1) +3 23.12.30 592 16 13쪽
25 서각비사(3) +1 23.12.29 625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19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8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8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6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3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4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4 1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