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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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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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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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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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비사(3)

DUMMY

마차는 며칠 동안 부지런히 달린 끝에 상담(湘潭)에 도착했다.


상담(湘潭)은 물길과 물길이 만나는 데다 주주(株洲)와도 맞닿아 있어 호남의 뭇 산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 때문에 안유 일행이 지금까지 거쳐온 여타 군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번성했다.


그래서일까, 마차를 몰고 있는 안유는 유난히 들뜬 기색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지난 며칠 동안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위지현이 피식 웃었다.


“흑의협. 상담은 처음인가?”

“······그런 셈이지요.”


회귀 전 숱하게 왕래했으나 굳이 혈랑에게 이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줄곧 벽지에서 지냈을 테니 신날 법도 하지.”

“하하, 안 소협. 모처럼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는군.”

“절로 흥이 샘솟는군요.”


소년 특유의 동경과 선망.

위지현과 신전흥은 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안유가 들떠 있는 것은 도회의 번화함 때문이 아니었다. 풍광과 활기에 취해서도 아니었다.


현재 안유가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는 호승심에 가까웠다.


‘이제 코앞이군.’


상담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성도(省都)가 나온다.


호남의 성도 장사(长沙), 안유가 무너뜨려야 할 첫 번째 기둥이 그곳에 있었다.


장사제일문 고죽방.

암천회 외당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방파.


고죽방은 복수의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안유는 이번 기회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고죽방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내, 외당의 연계가 아직 미숙하고, 또 특히나 은인자중하고 있는 이 시점······. 계획이 어그러진 데다 부방부를 위시한 고수들마저 처리했으니 고죽방은 당분간 어수선하겠지.’


이쪽은 초석을 쌓았으나 저쪽은 초석을 잃었다.


허둥거리는 사이, 연달아 들이친다면 어쩔 도리가 없을 터. 고죽방은 곧 또 다른 초석이 되어 안유의 계획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고죽방의 혼란을 더욱 가중할 필요가 있었다.


안유가 여기까지 온 것은 강호지이의 행방을 쫓으면서도, 또한 혼동시키기 위해서였다.


푸르륵.


마차는 어느 장원 앞에서 멈춰섰다. 내린 것은 두 사람, 안유와 위지현뿐이었다.


신전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내가 거들지 않아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거창하게 세 명이나 몰려갈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또 신 대협의 용모파기가 알려져 있을 수도 있으니······ 되도록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저쪽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신전흥은 곧 마차를 몰고 떠나갔다. 피어오른 흙먼지를 가르며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혈랑. 말씀드린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사다망(公私多忙)의 계(計)만한 게 없지요.”

“······다시 들어도 웃기지도 않는 이름이군. 알겠다.”


두 사람은 높다란 담을 따라간 끝에 커다란 문과 마주했다. 위지현이 짐짓 목소리를 높여 사람을 불렀다.


“문을 열어라!”

“······.”


한동안 기다려봤지만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유가 멀거니 위지현을 응시했다.


“크흠.”


위지현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


“아무도 없나? 어서 문을 열어라!”


미약하나마 내공을 실었기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과연 이번에는 달랐다.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이내 한 명의 장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무척 불콰했으며 전신에선 알싸한 주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구······냐. 아침 댓바람부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시간은 막 정오를 지나고 있던 참이었다. 안유가 싱글거리며 위지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역시 장사제일문은 다르군요. 기강이 상당히 잘 잡혀 있습니다.

-······특출난 고수 몇몇을 제외하면 고죽방도 대부분은 흑도 출신이다. 파락호들이, 본타와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이리될 수밖에.

-호오. 풍류야말로 용인(用人)의 비결이란 겁니까. 고죽방의 역량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


위지현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그저 사형을 따라 적을 두었을 뿐, 고죽방에 별다른 애착이 없는 위지현이었다. 안유와 함께 추격대를 해치운 후에는 일말의 소속감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외인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괜스레 자신의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혈랑. ‘공사다망’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속을 긁어놓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또 진정하라는 거냐······ 흑의협 이놈······!’


“후우······.”


위지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또 내쉬며 노화를 억눌렀다.


“고생이······ 많다.”

“감히······ 본 어르신에게······ 그 무슨 망발이냐! 아······ 네놈! 술값을 받으러 온 게냐?”

“······.”

“내가!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또······ 경을 쳐야 정신을 차릴······.”


빠직.


위지현의 이마에 새파란 핏줄이 돋아났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인내의 끈이 마침내 끊어져 버렸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살기가 취객을 향해 쏘아졌다.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게, 오른손은 검병을 쥔 상태였다.


고죽방도의 안색이 순식간에 해쓱해졌다.


“허억! 무, 무슨 이런······. 아니! 다, 다, 당신은!”

“······당신?”

“죄송합니다! 제가 고인을 몰라뵀습니다!”


고죽방도가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혈랑 위지 대협을 뵙습니다.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위지현이 여전히 살기를 쏟아내며 말을 이었다.


“고생이 많다. 너희의······ 고생을 치하하시며 방주께서 전언을 보내셨으니.”


혈랑이 으르렁거리며 읊조렸다.


“일다경(一茶頃) 내로 전부 모일 수 있도록.”


***


널찍한 장원 내부의 객청.


고죽방도는 두 사람을 이곳으로 안내한 다음 경공을 펼쳐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위지현과 안유는 차를 마시며 방도들을 기다렸다.


“엉망이군.”

“실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로써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안유가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부방주가 다녀간 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모양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안하무인처럼 굴 리가 있겠습니까?”

“일단락?”

“당분간 방주 등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 말인즉슨 시일이 깨나 소요된다는 뜻이겠지요.”


안유가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저들은 일의 주체가 아닙니다. 감시, 혹은 감독. 그마저도 건성이긴 하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일 터. 실제로 굴려지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럼 그 일이란 건······.”

“아마도 단순반복작업. 저들이 불가능한, 느낌상 먹물이나 할 법한 일이겠지요. 육등위가 가지고 있던 강호지이와 연관해보면.”


안유가 검지를 펼쳐 바닥을 가리켰다.


“강호지이 위본은, 바로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위지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비약이 심하군. 일리는 있지만 반쯤은 추측에 불과······.”


안유는 빙그레 웃으며 이어지는 말들을 전부 흘려들었다.


‘강호지이 필사는 내가 암천회에 들어가기 한참 전의 일. 하지만 정황상 여기가 확실하다. 여기밖에 없어.’


“혈랑.”


안유가 찻물을 마저 비우며 말꼬리를 잘랐다.


“놈들이 오면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그자는 어디에 있나’라고요.”

“그자? 그자가 누군데?”

“누군가는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지도 모르면서 불러내라는 거냐? 윽박질렀다가 괜한 의심이라도 사면 어쩌려고?”

“세상 물정에 참으로 어두우십니다.”


탁.


안유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본거지인 장사를 놔두고 굳이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일을 꾸미고 있지 않습니까. 뒤가 켕긴다 이 말이지요. 그리고 뒤가 켕기는 자들은 대충 말해도 용케 알아듣는 법입니다.”

“······.”

“이런 부류는 듣는 귀가 없는데도 과할 정도로 조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분’이 시켰다던가 아니면 ‘그자’를 확보했다던가······ 하하, 떳떳지 못하니 지레 겁을 먹는 것이지요.”

“······신선곡에서는 그런 용인술도 전수하는 건가?”

“글쎄요.”


이는 배우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이 아니었다. 암중 세력의 이인자로서 활동하며 체득한 용인의 비결.


한때 ‘그분’으로서 수많은 ‘그자’를 모셔온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벌컥!


객청 문이 열리며 일곱 명의 고수가 동시에 들이닥쳤다.


“혈랑을 뵙습니다!”


미리 입을 맞춘 것인지 동시에 들려오는 인사. 제법 규율이 엄정해 보였으나 그들의 행색은 말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저런.’


술독에 빠져있던 놈은 제법 말쑥한 편이었다.


그놈을 제외한 여섯 중 두 명은 얼굴이 발그레하니, 마찬가지로 곡차를 들이킨 듯했다.


그런데 어디서 뭘 주워 먹다 왔는지 옷 여기저기에 음식 찌꺼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이것 봐라?’


나머지 넷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어떤 패악질을 벌이고 왔는지는 몰라도 흙먼지와 핏방울이 전신을 수놓고 있었다.


한 놈은 특히 심해서 양 소매가 거의 피범벅이 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자기 피는 아닌 거 같은데. 옷깃에 달라붙어 있는 저건······ 골패(骨牌) 조각이군. 노름판에서 애먼 사람을 족치기라도 한 건가.’


안유는 즉시 위지현에게 전음을 보내려다가 곧 그만두었다. 때마침 위지현의 전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그만해라.


안유가 또 속을 긁어놓기 전에, 위지현이 다급하게 운을 띄웠다.


“너희가 고생해준 덕에 본 방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방주께서 너희의 노고를 잘 알고 계시니 임무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


쿵!


방도들이 동시에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방도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예를 차렸다. 위지현은 짐짓 모르는 척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자’는 어디에 있나.”

“‘그자’······ 말씀입니까?”

“······그래. ‘그자’. ‘그자’에게 방주의 전언을 직접 전하고자 한다.”

“방주께서······! ‘그분’이 다녀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혹시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입니까?”

“······.”


‘그분?’


위지현이 흠칫 놀라자 안유가 재빨리 전음을 보냈다.


-부방주 육등위를 말함이겠지요.

-빌어먹을! 사람 헷갈리게······.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부방주를 부방주라 부르지 못하고······.


위지현이 이어지는 전음을 무시하며 말했다.


“부방주는 제 역할을 다했다. 추가적인 지시사항이 있을 뿐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라.”

“······아! 그런 거였군요. ‘그자’는 지금 본채에서 한창 ‘작업’ 중입니다. 당장 끌고 오겠습니다.”

“아니. ‘작업’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직접 갈 터이니 ‘그자’에게 안내해라.”


-바로 그겁니다. 이제 상당히 익숙해지셨군요.


위지현이 전음을 가뿐히 무시하며 덧붙였다.


“너희 전원도 함께 간다. ‘일러줄’ 말이 있으니 전부 따라올 수 있도록.”

“옛!”


방도들이 앞장서서 두 사람을 이끌었다. 너른 장원의 안쪽, 몇 개의 건물을 지나치자 큼직한 본채가 나왔다.


“이쪽입니다.”


양팔을 피로 물들인 방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쾅! 쾅! 쾅!


그는 장지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본채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마지막 장지문을 열었을 때 안유와 위지현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히익!”


사내가 대경하며 들고 있던 붓을 놓쳤다.


촤아악!


먹물이 사방으로 튀며 방도의 소매에 묻어 있던 핏자국 위에 검은 점 여러 개가 생겨났다.



방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 자식이······!”

“히이익! 죄송, 죄송합니다! 실수였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쇼!”


사내는 손을 싹싹 빌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 이곳저곳에는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살갗이란 살갗에도 전부, 마찬가지로 피멍이 새겨져 있었다.


‘쯧쯧. 왕망, 역시 당신이었군.’


안유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지닌 재주를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한 처우와 몰골.


중원 전역을 뒤져본다 한들 감쪽같은 가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는, 역시 저자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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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5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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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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