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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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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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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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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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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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귀산장(2)

DUMMY

암살이란 계획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표적을 처리하는 살행(殺行)을 말한다.


암살은 계획적이어야 한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선 표적에 관한 모든 것을 훤히 꿰뚫고 있어야 했다.


일과 및 동선, 대인 관계와 일신의 무공, 그 화후와 종류까지도 파악해야만 일의 가닥이 잡힌다.


이후 어떻게 들어갈지, 어떻게 빠져나올지가 확정된 다음에는 비로소 결행에 나서게 되는데.


또한 암살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이는 비단 암검을 찔러 들어가는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살행 전반의, 앞서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최선은 직행. 의뢰인과 살수 둘이서만 매듭을 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차선은 경유. 의뢰인이 사람을 거쳐 살수와 접선하면 비밀이 새나갈 공산이 점점 커진다.


상급자는 물론 정보상, 중개인, 기타 조력자를 거칠수록 암살은 요원해지기만 하니 뛰어난 살수는 혼자서 이 모든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이를 일컬었다.


그렇기에 창월당주 이청은, 가히 천하제일 살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계획과 은밀보다도 독고(獨孤)를 더욱 중요시했다.


“천지 간에 사람이 있으니 다만 혼자일 뿐이다. 혼자와 혼자가 만나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 암살······. 결국 혼자서 행함이 마땅하겠지.”

“그렇다면 왜 저를 거둬들이시려는 겁니까?”

“거둬들인다기보다는······ 하, 그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태평촌의 혈사로부터 이 년 뒤.

어느 뒷골목에서의 첫 만남.


창월당주 이청은 한줄기 쓴웃음을 머금은 채 안유의 질문에 대답했다.


“어떤 꼬마가 살문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문득 호기심이 일더군. 돈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 때문일까? 대체 어떤 놈이길래 살겁을 짊어지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직접 만나보시니 어떻습니까?”

“넌 천부적인 살수다.”

“과찬이십니다. 한데 왜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네가 혼자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혼자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길을 걷는 선배로서 내가 그러했듯 네게 작게나마 온정을 베풀려는 것이다.”

“온정이라면······.”

“계획을 세우는 법과 은밀하게 움직이는 법, 그리고 한 가지 무공을 알려주겠다.”

“제자로 들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사승지연을 맺으려는 것은 아니다. 부하 삼으려는 것 또한 아니다. 스쳐 지나갈 뿐인 인연, 그저 건네줄 따름이니······.”


스승이 아니다.

상관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선배, 달리 부르기엔 모호한 관계.


회귀 전, 안유는 그를 통해 무공에 입문하게 되었다.


무공의 이름은 잠은공(潛隱功), 안유와 마지막까지 함께한 내공심법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


“······흑의협,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위지현이 묵히고, 또 묵혔던 말을 끝내 입 밖으로 꺼냈다.


“가보시면 압니다.”

“그 대답만 벌써 서른일곱 번째다.”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무척이나 섬세하신 분이군요.”

“······.”


암살을 천명하고 며칠째.

안유와 위지현은 끝없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도무지 길이라 부르기 어려운 험로만 골라, 죽어라 경공을 펼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라! 고죽방 본타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으니 대체······!”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정.

무위가 절정에 달한 위지현마저도 얼마쯤의 피로를 호소할 정도였다.


위지현의 안색을 확인한 안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마침 물가가 코앞이군요. 그럼 조금만 쉬었다 가시지요.”

“아니······.”

“전 운기조식을 해야겠으니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화입마라도 오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


안유는 그렇게 말하곤 곧장 가부좌를 틀어 축기에 들어갔다. 혈랑이 혀 차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의식이 체내로 침잠을 거듭했다.


안유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단련이 부족한 신체.

그가 느끼는 피로감은 절정고수인 혈랑에 비해 족히 몇 배는 되었다.


그러나 축기 후 한 차례 운공을 하고 나면 눅진한 피로는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우선은 전신 세맥을 타통한 효험이었고 더욱이 아직 세맥 곳곳에 삼불삼의 잔재가 남아있는 덕분이었다.


‘홍라공으로 전부 소화했으나 담아내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아직은 시기상조다. 천천히 단전의 크기를 늘려나가는 수밖에······.’


홍라공의 구결을 외자 기혈이 감응하며 진기가 움직였다. 노도와도 같은 흐름이 전신을 세차게 휘돌았다.


쿠구구구!


텅 비었던 단전이 급격히 차올랐다. 온몸을 휘돌아, 정순해진 진기가 단전에 쌓이고 있었다.


원래 홍라공의 축기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무공의 연원이 타통에 집중된 탓이었다.


쿠구구!


그러나 단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충만에 다다랐다.


세맥에 자리 잡고 있던 홍라공의 잔존 공력이 운기에 휩쓸려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경공으로 온몸을 혹사한 덕분에 혈류의 운행이 더욱 원활하다. 이 기세면 머잖아 전부 흡수할 수 있겠어.’


붉은 그물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안유의 소우주. 안유는 어부라도 된 양 연신 그물을 잡아당겼다.


그물은 씨알 굵은 고기들을 잡아채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밀어 넣은 만큼 몸피는 불어난다.


더 많이, 더 깊숙이 품을 수 있게 변모하는 것이다.


번쩍!


길면서도 짧은 몰아가 끝난 뒤, 안유가 눈을 떴다. 몸은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가벼웠다.


검을 비끄러맨 채 서성거리고 있던 위지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오래도 걸리는군. 이제 내 차례다. 이번엔 네가 호법을 서라.”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쯧!”


잠시 후 조금이나마 피로를 덜어낸 위지현이 눈을 떴다. 안유가 눈에 띄게 쌩쌩해진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럼 가볼까요?”


두 사람은 다시금 경공을 펼쳐 길을 떠났다.


‘곧 도착한다.’


안유가 산세를 가늠해보고는 눈을 빛냈다.


황가촌(黃家村) 초흠에게서 입수한 비선의 정보는 총 세 가지.


첫 번째, 백학무관(百學武館)의 분쟁.

백학무관의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안유는 협명과 별호를 얻었다.


두 번째, 대호채(大虎寨)의 발호.

대호채의 발호를 저지함으로써 안유는 희대의 영약, 삼불삼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세 번째, 불귀산장(不歸山莊)의 암약.


‘이로써 마지막, 암살은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암살이 끝나면 남은 건 전면전뿐이야.’


회귀 전, 산장의 존재는 이청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장이 호남의 어느 산중에 있었을 줄은 안유로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드넓은 중원에서도 하필 호남이라니. 역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아니었어.’


이청에게는 산장에 대해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에 비선의 정보가 더해지니 갖은 정황과 종합해, 안유는 산장의 위치를 충분히 특정할 수 있었다.


비선의 정보에 따르면 혹자는 어느 날, 한 명의 비렁뱅이를 만났다고 했다.


“흐흐······ 흐흐흐······.”


추레한 몰골.

그보다 더 추레한 행색.


연신 실소를 흘리던 비렁뱅이는 아무리 살펴봐도 전형적인 광인(狂人)이었다.


“쯧쯧······.”


혹자는 주루의 점원이었다.


그는 일하던 중 잠깐 숨을 돌리러 나왔다가 가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광인을 발견했다.


그가 원래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괜한 분란을 피하고자 했음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는 손님이 먹다 남은 만두 몇 개를 접시에 담아 광인에게 건넸다.


아마도 좋게 타일러서 떠나보낼 생각이었겠지만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흐, 흐아아아아!”


광인이 만두 접시를 보자마자 발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왜 이래.”

“만두, 만두! 흐아아아!”


광인은 혹자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뜻 모를 말을 쏟아냈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해! 그런 곳이란 말이다! 운이 좋았어. 아니 나빴던 게지! 히히히, 어떻게든 도망쳤지만, 흐으으, 우아아아!”

“무슨······.”

“속으면 안 돼! 구천산은, 그 산장에는······ 하하하하! 흐으으······ 아무도 못 돌아온단 말이다아아!”


혹자는 대경해서 그를 떼어낸 다음 도로 가게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고 혹시나 해서 밖으로 나와보자 광인은 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여보게. 여기 있던 미치광이 못 봤나?”

“미치광이? 아, 그 발광하던 놈 말이군. 글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주위 상인은 물론 행인들도 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광인은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뭐지.”


혹자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이 일을 굉장히 기이하게 여겨 지인 몇 명에게 소상히 털어놓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싸늘한 핀잔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야기 값을 후하게 치러준다는 초흠의 소문을 듣게 되어, 황가촌을 찾아와 결국은 안유에게까지 내막이 도달하게 된 것이다.


‘슬슬 나올 때가······.’


안유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막 산의 능선을 빠져나온 찰나.

전방의 수풀 사이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지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건?”

“산장이군요.”

“이런 험준한 산에 산장이라······. 주인이란 작자의 얼굴이 궁금해지는군.”

“많이 궁금하신가 봅니다?”

“그 정도는 아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산지를 주파해야 하니 어서······.”

“오늘은 저기서 묵었다 가시지요. 배가 출출하기도 하고, 풍찬노숙(風餐露宿)도 질리던 참이니······.”

“······흑의협!”


안유는 빙그레 웃으며 위지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위지현의 이마에 새파란 힘줄이 솟아났다가 사라졌다.


“후.”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잠자코 안유를 뒤따랐다. 안유는 생글거리며 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산 중턱의 오목한 분지.

빽빽한 수림 사이로 마치 그곳만 도려낸 듯, 둥글게 터가 나 있다.


산장은 딱 맞춰 지은 것인지 그 분지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위지현이 감탄을 터뜨리듯 말했다.


“허어! 어찌 이런······.”


산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널찍했다. 크기로만 따지면 얼마 전 전소(全燒)시켜버린 본채와도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웬만한 객잔의 한 개 층만큼은 될 법해 보였는데 위지현의 말마따나 이런 산중에 있기에는 기묘하리만치 크고 넓었다.


<노소년장(老少年莊)>


고아(古雅)한 현판이 두 사람을 반겼다.


안에서는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인기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끼익.


장지문을 열자마자 여러 쌍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렸다.


“호오! 주인장, 오늘은 운수대통했구려! 손님들이 이렇게나 몰려오다니······.”

“간밤에 좋은 꿈이라도 꾼 거요? 하핫!”


하하하하!


백발을 단정하게 묶어 내린 노인이 껄껄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예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심히 고되시지요?”


안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중에 길을 잃어서 얼마나 난처했는지 모릅니다. 노심초사하던 와중에 이렇듯 멋진 산장을 찾게 되었으니 이런 홍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핫, 실로 그렇습니다.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었다 가려고 합니다. 혹시 요기도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국수도 있고, 닭구이도 있고, 이래 봬도 웬만한 요리는 다 가능하답니다, 하하하!”


안유가 장내를 돌아보고는 빙글거리며 말했다.


“진짜 잘하시는 요리는 따로 있는 듯합니다만?”

“허, 눈썰미가 좋으십니다그려.”


주인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바로 만두이지요. 한번 맛보시면 다른 곳의 만두는 이제 성에 차지도 않으실 겁니다.”

“하하, 그러시다면야 만두로 하겠습니다.”

“예, 금방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안유와 위지현은 식탁에 앉아 찻물을 들이켰다.


다른 손님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엿듣고 있으니 주방 쪽에서 이내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 나왔습니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주인장은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두 접시를 두 사람의 식탁 위로 내려놓았다.


“호오.”


입맛이 도는 듯, 위지현이 서둘러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절로 군침이 도는 고소한 내음.


그러나 안유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대신 나직이, 그러나 분명하게 위지현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이 만두는······.”


안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먹지 마십시오. 먹어선 안 됩니다.”

“······.”


주인장도, 손님들도 모두가.

동시에 입을 닫아버렸다.


돌연 산장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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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불귀산장(5) 24.01.04 359 13 13쪽
29 불귀산장(4) 24.01.03 412 9 13쪽
28 불귀산장(3) +1 24.01.02 442 11 13쪽
» 불귀산장(2) 24.01.01 475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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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서각비사(3) +1 23.12.29 626 12 13쪽
24 서각비사(2) 23.12.28 620 16 13쪽
23 서각비사(1) +1 23.12.27 696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9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9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5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5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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