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두 번의 전멸
차헌터는 전력을 다해 쉬지 않고 쉘터로 뛰어갔다.
삼솔 병원에서 쉘터까지는 뛰어서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그리고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건 차헌터 뿐이었다.
나머지 동료들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차헌터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던 임시 대피소에 피신시켜 놓고, 차헌터 혼자 쉘터로 달려갔다.
차헌터는 뛰어가는 내내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아있어라 모두.. 제발··· 제발..”
하지만 헛된 꿈이었다.
사람들이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던 4층짜리 작은 빌라 3동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고, 여기저기 퍼져있는 핏자국은 쉘터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알려주었고 곳곳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헌터는 끔찍한 지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실감
차헌터는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너무 화가 나면 웃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두 번째였다.
차헌터가 쉘터를 잃은 건···
이번 쉘터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목숨을 걸고 주변에 있던 모든 변이 좀비를 사냥하고, 쉘터에 공급될 물자를 위해 끊임없이 원정을 나가 마트를 수복하고, 쉘터의 안전을 위해 밤낮으로 경계를 서며, 사람들이 안전한 모습을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철저히 관리했다.
쉘터에 모인 사람들이 만족하며 쉘터 생활을 하는 걸 보면서 성심원의 일들을 조금씩 치유해 갔다..
웃음의 끝은 눈물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의 파도가 그를 덮쳤다.
그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아 눈물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갓난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죽어있는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도 엄마와 함께 이미 죽어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인과 아기를 들어 옮겼다. 이대로 길바닥을 뒹굴게 할 수는 없었다.
빌라 뒤뜰 쉘터에 신선한 채소를 생산하기 위해 여인들이 채소를 가꾸던 텃밭으로 가 모자를 위한 묘지를 만들어 주었다.
차헌터는 여인을 시작으로 쉬지 않고, 쉘터에 죽어있던 시신들을 수습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저녁노을이 어스름하게 질 때 임시 대피소 두고 왔던 동료들이 쉘터에 도착했고 그들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모두 울면서 절규했다.
절규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차헌터가 다가가 말했다.
“눈물 흘릴 힘이 남았다면... 이들을 편히 보내주는 데 쓰도록 해”
동료들은 멈추지 않는 눈물을, 이를 꽉 깨물어 겨우 진정시켰다.
차헌터와 동료들은 그렇게 묵묵히 먼저 간 이들의 안식을 위해 힘을 모았다.
밤새 이루어진 시신 수습은 동이 틀 때야 끝이 났다.
차헌터와 동료들은 35개의 봉분에 하나하나 큰절을하고 애도를 마친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 쉘터에서 온전한 사람은 차헌터를 포함해 다섯 명뿐이었다.
그중 네 명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인원으로는 파괴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차헌터가 말을 꺼냈다.
"나 혼자 가겠다."
나머지 네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안 됩니다. 헌터님 그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헌터님 !! 위험합니다 "
그때 김택현이 차분히 말했다.
"지금 감정적이실 때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김택현의 말이 옳았다. 혼자 간다면 자신도 개죽음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차헌터님 방법이 있을 겁니다. 조금만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보세요 "
차헌터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김택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난 듯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맞아 그 녀석이에요 그 녀석 우리가 도와준 좀비 말입니다."
"그 새끼로 뭘 어쩐다는 거지?"
"그 녀석 빨랐어요 거기에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데 땀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힘이 세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구요. 좀비지만 마치 각성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녀석이 돕는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효자 좀비 놈은 사람을 헤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쉘터가 이렇게 된 것에 일말의 책임은 있죠. 제가 도울 수 있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차헌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좀비 놈을 돕느라 쉘터로 오는 시간이 지체된 것도 사실이었고,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몸놀림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처리하려고 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처리할 수 없게 되니까...
"네 말대로 그 녀석 진화하고 있었어 처음엔 장난으로 같이 달렸는데 나중에는 진심으로 달려야 따라잡을 수 있었지 "
김택현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낱 좀비인데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일단은 끌려간 쉘터 사람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하지 않고 눈만 들키지 않으면 그 녀석 그냥 사람입니다. 파괴자 쉘터에 첩자로 넣어서 우리 쉘터 사람들도 찾고 그들을 약점도 알아 오게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그들을 파악하는데 쓰자는 거로군"
"네 그렇습니다"
차헌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파괴자 놈들은 차헌터와 동료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성심원 침공 때 선두에 섰던게 차헌터와 동료들이었다.
얼굴이 알려진 그들은 파괴자 쉘터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이 어느 정도 전력을 가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군 .. 잡으러 간다 그 효자 좀비 놈!"
***
같은 시각 차헌터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우리의 효자 좀비 임찬영은 엄마의 밥상에 행복해하며 연신 김치찌개를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부르르르}
엄마가 만들어 주신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으며 가족들과 오랜만에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뜬금없이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떨려왔다.
'뭐지...? 뭔가 불안해... '
"무슨 일 있니? 잘 먹다가 갑자기 왜 그래?"
잘 먹던 내가 갑자기 멈추자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엄마에게 싱긋 웃어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숫가락을 김치찌개에 푹 담궜다.
가족들과 즐거운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나는 내 방으로 가서 챙겨야 할 것들을 챙겼다.
제일 먼저 챙긴 건 가족사진이었다.
나는 가족들이 있는 경원 쉘터를 나가기로 결심했다.
단순한 가출이 아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나는 떠나야 한다.
우연찮게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내가 언제 다시 좀비로 변할지 몰랐다.
결정적으로 차헌터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쉘터의 일이 해결되면 나를 죽이기 위해 곧바로 찾아올 것이다. 아마 지금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에 앉아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기기 위해 펜과 종이를 들었다.
나의 장황한 거짓말을 가족들이 믿어주길 바라며 한자 한자 정성 들여 적었다.
어제 많이 울어서 그런가 담담하게 편지를 적어 나갈 수 있었고, 편지는 금새 완성되었다.
아빠는 쉘터 경비 순번이셔서 나가셨고, 엄마는 옆집에 놀러 가셨다. 유일하게 집에 있는 건 형이었지만 자기 방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지금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야 어디가?"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제일 걸리기 싫었던 인간한테 걸렸다.
[산책]
"지랄 말고 방에 쳐 들어가있어! 엄마아빠 걱정시키면 뒈지는 거다."
[꺼져]
"저 새끼가 살아 돌아왔다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기어오르지?"
형이 내 뒤통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일반인인 형이 하는 공격정도는 쉽게 받아 칠 수 있을 정도로 신체가 발달 했기 때문에 가볍게 피했다.
"아우 이 새끼가 피해? 뒤지고싶냐?"
[반사]
"아놔 이런 덩치만 큰 초딩 새끼가 야 꺼져 꺼져"
형의 공격을 아주 쉽게 피하자, 형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회피를 택했다.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그 길로 안대위가 있는 통제실로 향했다.
[똑 똑 똑]
"들어와"
안에서 안대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제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군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아마도 나였던 것 같다.
"찬영아 그렇지 않아도 부를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계신 쉘터에는 불행하게도 각성자가 나오지 않았다. 저들은 나를 각성자로 알고 있다.
저들이 나를 붙잡으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간다고 하면 내보내 주지 않을 것 같네'
내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안대위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찬영아 네가 우리 쉘터로 오게되서 얼마나 든든한 줄 모른다. 이제 우리 쉘터로 완전히 돌아오는 거지?"
안대위 옆에 있던 군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안대위님도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다. 부모님이 여기 계시는데 어딜 간단 말입니까?"
"맞아요. 맞아 아직 어린데 부모님이랑 함께해야죠"
"그렇지 암! 암!! 찬영아 이전 쉘터는 잊고 이곳 경원쉘터에 익숙해지도록 해 부모님도 계시니까."
그들은 부모님을 걸고 넘어졌다.
혹시나 자신이 그냥 나간다고 한다면, 그들이 부모님께 해를 끼칠까 걱정까지 되었다.
적당한 변명 거리를 생각해 스케치북에 옮겨 적었다.
[안대위님 저는 원정을 다녀올까 합니다. 쉘터에 도움이 될 곳을 수복하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좀 위험해서 시간이 걸립니다]
"찬영아 살살해 살살! 우리 쉘터는 아직까진 물자가 모자라지 않아."
안대위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쉘터 헌터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안대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금새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도 어린 나를 사지로 내몰아 물자를 비축하는 게 양심에 걸렸던 모양이다.
'내가 나갔다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걸로 알겠지?'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지 였다.
안대위가 아랫사람을 시켜 나를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죄송해요 안대위님 제가 돌아 오지 않으면 마음이 쓰이실 테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마음이 복잡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통제실을 나와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정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헌데 정문 앞 경비 자리에 아빠가 쉘터 경비를 서고 계셨다.
나는 급하게 몸을 돌려 다시 되돌아갔다.
"임헌터님? 왜 이리 가십니까?"
[죄송합니다 정문 말고 다른 문은 없습니까?]
"아 후문쪽에 있는 쪽문으로 나갈 수 있기는 합니다."
[그쪽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쉘터를 빠져나와 부모님이 계신 쉘터가 안보일 때쯤 나는 빨리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뒷문으로 빠져나와 쉘터와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졌을때 뒤를 돌아보니 차헌터가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아빠와 대치 중 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혹시 내가 좀비가 된 사실을 밝히지는 않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꾸 쉘터 쪽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되도록 빨리 벗어나려고 앞만 보고 무작정 뛰었다.
'잡히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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