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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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작품등록일 :
2024.07.15 16:23
최근연재일 :
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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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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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경보음

DUMMY

“지혁 씨, 괜찮아요? 피곤해 보이네.”


정미경 차장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었다.

수더분한 외모에 통통한 체격의 정 차장이 두 눈 가득 걱정을 담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십 대 아들이 둘이라는 정 차장은 유독 인턴들에게 상냥한 상사였다.


자기 자식들이 나중에 어디 가서 인턴을 하게 되면 이만큼은 챙겨 주는 회사에 갔으면 좋겠다며, 가끔 자잘한 팁을 일러주거나 카페에 데리고 가 숨 돌릴 짬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진심이 담긴 걱정이라는 걸 알기에 졸음을 참고 애써 미소를 띠며 답했다.


“예, 어제 모기 때문에 잠을 좀 설쳐서요.”


거짓말이다.

오늘 있을 PT 준비를 하느라 지난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인턴 입사 한 달 차에 있는 시장 분석 발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입사 선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젯밤 노트북을 덮고 누울 때마다 바로 수정할 부분이 떠올라 날을 꼬박 새운 것이다.


“에구, 벌써 모기가 나와? 요즘 좀 더워진 것 같긴 한데 이르게 나왔네. 지혁 씨네 집이 좀 낮은 층에 있나?”


“...네, 사 층에 사는데 뒤쪽에 산이 있어서요. 매년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 산모기가 독하지. 그래도 지혁 씨네 공기는 좋겠다.”


“하하. 그래봐야 조그만 뒷산인데요, 뭐.”


“그래도 근처에 풀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야 좋지! 우리집도 슬슬 모기약 좀 사둬야겠다.”


빙긋 웃은 정 차장이 다시 뭔가 말을 이어가려는데, 저쪽에서 걸어오던 김 부장이 손을 번쩍 들고 정 차장을 불렀다.


“어, 정 차장! 잠깐 얘기 좀 하지.”


정미경 차장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곧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걸어갔다.


“김 부장님, 바람 쐬고 오세요?”


김 부장이 천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건성으로 답했다


“어어, 위에 좀 다녀오는 길이야.”


회사에서 알아주는 골초였으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에 다녀왔다는 건지 상사를 만나고 왔다는 것인지 애매한 답변이었다.


“내가 저번 주에 말한 거 생각해 봤어?”


김 부장의 물음에 정 차장이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빈 회의실 쪽을 가리켰다.


“네, 안 그래도 그걸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까 자리에 안 계시더라고요...”


곧 두 사람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는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오늘 발표 때문에 그러세요?”


갑작스러운 속삭임에 휙 고개를 돌리니 동기 인턴 강예라가 김이 피어오르는 흰 머그잔을 들고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모델을 생각나게 하는 큰 키에, 얼핏 보면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서글서글한 성격 덕분에 내가 인턴 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25살로 이번 기수 인턴 중 가장 어렸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본 면접에서 바로 취직에 성공해 인턴으로 취직했다고 들었다.


정미경 차장에게 한 것과 같은 거짓말을 둘러대려다 결국 쩝, 입맛을 다시며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그렇죠. 이번에 평가를 낮게 받으면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강예라가 짐짓 우울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며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저도 그것 때문에 긴장돼서 어제 잠 엄청 설쳤어요.”


“정말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 말에 강예라가 머그잔을 기울여 속에 든 검은 액체를 보여줬다.

커피 같은데, 어쩐지 찐득해 보일 정도로 검은색이었다.


“카X 네 스틱 넣었어요. 카페인으로라도 버텨야죠. 카페인하고 화장으로.”


“좋은 생각인데요. 저도 탕비실 가서 커피나 좀 타와야...”


웃으며 장난스레 말하는 강예라에게 다시 웃으며 답하려는 순간 다각다각 하는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흘긋 고개를 돌렸다가 모니터 너머로 날 싸늘하게 노려보는 시선과 눈을 마주쳤다.

강예라와 함께 마케팅1팀 인턴으로 들어온 동기 구현우였다.


사실 강예라와 내가 다른 인턴들에 비해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건 구현우의 덕이 컸다.

사사건건 말을 얹고 모든 일에 딴지를 걸고 나서는 구현우 덕분에 남은 두 사람이 오히려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익숙한 상황에 재빨리 모니터 아래 구석을 바라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지나 있었다.


“업무 시간이네요.”


강예라에게 작게 속삭이자 그녀는 살짝 허리를 숙여 구현우에게 보이지 않도록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숨겼다.

그 상태로 가볍게 인상을 찌푸려 보이더니, 곧 휙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강예라가 떠난 이후로도 얼굴에 쏟아지는 구현우의 따가운 시선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한참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순간 졸음이 쏟아졌다.


무의식적으로 잠에 빠져 고개를 몇 번 꾸벅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파티션 너머로 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구현우의 얼굴이 보였다.


한차례 마른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차가운 물이라도 한 번 끼얹지 않고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자신이 없었다.


이제 막 업무 시간이 시작된 덕인지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수도꼭지를 냉수 쪽으로 끝까지 돌려 세수를 한 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핸드타올 쪽으로 뻗었다.

휙, 한 번 헛손질을 하고 나서야 손으로 눈가에 맺힌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핸드타올 디스펜서 쪽을 바라봤다.

웬일인지 디스펜서가 텅 비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걸어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휴지를 뽑았다.

변기 뚜껑을 닫고 자리에 앉아, 피곤한 눈을 감고 휴지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기 시작했다.


.

.

.


-삐이이 삐이이 삐이이


낮고 불쾌한 재난 경보음에 화들짝 놀라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대체 언제 잠이 든 거지?

다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9:14]


화면에 뜬 숫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해야 화장실에 들어온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손에 들린 젖은 휴지를 휴지통에 던져넣고 졸음을 쫓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잠에 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고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기껏해야 삼 분 남짓한 수면은 피로를 몰아내기는커녕 이미 눈꺼풀에 앉은 졸음에 무게를 더할 뿐이었다.

손가락으로 지끈거리는 미간을 누르며 그제야 핸드폰 화면에 뜬 재난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강남역 근처 거동 수상자 발견 시 접근하지 마시고 112로 신고 바랍니다. 흐린 초점, 비틀거리는 걸음, 지속적인 신음성 등]


“뭐 이런 걸로...”

재난 경보음까지 울리고 그러지?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려는 순간 후웅-하고 화장실 문이 열리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화장실 칸 안에서 시간을 때운다는 뒷말을 듣게 될까 서둘러 입을 다물고 조용히 변기 물을 내렸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의 잠금쇠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멈칫,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르륵...그으으...”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무언가를 뱉어내지 못해 억지로 삼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술이라도 마셨나?


하는 수 없이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바깥의 상대가 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 칸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저렇게 시끄럽게 구는 걸로 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괜히 지금 가서 얼굴 마주쳐 봐야 서로 머쓱하기만 하겠지.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변기 칸 문이 여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발을 질질 끌며 걷는 듯한 소리, 그리고 여전히 기괴한 ‘그르륵’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세면대 앞에 서 있는 건가?


결국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문을 열었다.

인턴들의 발표가 이제 십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대체 누구길래 화요일 아침부터 술을 퍼마시고 저렇게 앓는 소리를 내는 거야?


혹시 아는 사람일까 싶어 세면대로 향하며 시선만 살짝 움직여 상대를 확인했다.

출입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기우뚱하게 서 있는 사람은 멀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회사에서 처음 보는 이였다.


다른 팀 사람인가?


이제 입사 한 달 차 인턴인 내가 같은 층의 모든 직원 얼굴을 외우고 있을 리는 없으니, 일단 인사를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세면대를 향해 걸어가며 상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갑자기 남자가 휘청거리며 쓰러질 듯 몸을 기울였다.


화들짝 놀라 손을 뻗어 남자의 팔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인 남자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내 손을 움켜쥐었다.

지나치게 꽉 잡은 손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남자의 상태가 걱정됐다.


“어디 안 좋으세요?”


그렇게 묻는 순간, 손등에 닿아 있던 남자의 손톱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이어 다른 손으로 내 팔뚝을 움켜쥐더니, 입을 벌리고 내 팔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겁하며 놀라 강하게 팔을 당겨 남자의 손을 떨쳐 냈다.

남자의 손톱이 내 손등을 주욱 긁어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다음 순간 내 팔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양 이빨이 딱 거세게 다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팔을 당긴 여력으로 두어 걸음 뒤로 휘청휘청 물러났다.

그리고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드는 남자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 지금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다음 순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눈 위에 얇은 막이 한 꺼풀 씌워진 듯 탁한 빛의 홍채가 내 위치를 찾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벌어진 입에서는 칸 안에서 들었던 ‘그극’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입가를 타고 걸쭉한 침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사내의 한쪽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 가까운 칸 안으로 몸을 던져넣고 문을 걸어 잠근 것은 반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쾅!!


사내가 몸 전체를 던져 부딪힌 듯 문이 굉음을 내며 거칠게 흔들렸다.


저, 저게 대체 뭐야?

지금 날 물려고 한 거야?


몸의 무게를 이용해 문을 막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얇은 판에 나사로 고정해 둔 잠금장치 따위는 한 번에 떨어져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문에 맞닿은 부분 전체가 욱신거렸고, 손톱에 깊이 파인 손등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손등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화장실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분명 남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있는데도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리는 듯했다.


쾅, 쾅- 몇 차례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충격이 이어지더니, 이내 까드득 까드득 하고 문을 긁어내리는 소음으로 넘어갔다.

소리가 날 때마다 가볍게 문이 떨렸지만 문이 열릴까 불안할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다.


헉, 헉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화장실 문에 붙어선 채로 숨을 죽였다.

서늘한 칸막이 문에 맞닿은 등에서부터 오한이 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곧 문 근처에서 멀어지듯 지익...직...하고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내는 신음이 들려왔기에 차마 큰 소리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바깥의 이상한 사람이 다시 한번 달려들까 두려워 문에 기댄 등에 단단히 힘을 준 채였다.

남자는 덩치가 있는 편이었으니 무게를 실어 부딪히면 나도 막을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은 손에서 묻어난 피로 미끈거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벌써 인턴들의 발표가 시작되었을 시간이다.


바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날 노리고 서 있는 상황에서 업무평가가 더 걱정되다니.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손으로 번호 목록에서 정미경 차장의 번호를 찾아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 너머로 ‘뚜르르’하는 신호음이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쾅!! 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문을 막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피에 젖은 손에서 미끄러진 핸드폰이 닫힌 변기 뚜껑을 맞고 튕겨 나가 칸막이벽에 세게 부딪힌 후 바닥에 떨어졌다.


쾅쾅쾅!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자가 문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데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까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변기로 한쪽 발을 받치고 모든 무게를 실어 문에 기대어 섰다.

문에 바짝 붙어 서 있으니 한 차례 충격이 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곧 쾅.하고 의욕을 잃은 듯한 작은 충격이 느껴지더니 다시 그륵그륵 가래 끓는 소리와 질질 끄는 발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소리가 몇 걸음 떨어진 곳까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몸을 숙여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화면에 길게 금이 가 있긴 했지만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화면을 터치해 열자 새빨간 수신 거절 아이콘이 보였다.


어느새 식은땀에 젖은 목덜미가 선뜩했다.

긴장으로 굳은 손을 움직여 전화번호 목록을 뒤졌다.


벌써 발표가 시작된 건가?

그럼 예라 님이나 현우 님도 다 연락이 안 될 텐데...누굴 불러야 하지?


스크롤을 내리며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는데 ‘지이잉’ 갑자기 손에 들린 핸드폰이 진동음을 내며 몸을 뒤틀었다.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떨어뜨리기 전 가까스로 잡아낼 수 있었다.


혹시 바깥에서 또 달려들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지만 손에 들고 있던 덕에 진동 소리가 작았는지 알아차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가 들릴 때만 저러는 건가?

어쩌다 갑자기 회사 안에서 저런 미친 사람을 만나서...


문득 조용히 지나가면 보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방금 마주쳤던 얼굴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포기했다.

그제야 진동의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면을 열었다.

메시지 함의 가장 위에 숫자 [1]이 떠 있었다.


[정미경 팀장 – 지혁 씨, 어디예요?]


손가락을 움직여 팀장의 문자에 답하려는데, 문득 그 아래로 방금 울린 재난 문장의 내용이 눈에 띄었다.


[강남역 근처 거동 수상자 ··· 흐린 초점, 비틀거리는 걸음, 지속적인 신음성 등]


익숙한 묘사에 갑자기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거...저 사람 얘기 아니야?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댄 채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한동안 소리를 죽이고 있자 문에서 떨어져 화장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 지익 지이익 신발 끄는 소리가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들려왔다.

불규칙하게 들리는 발소리로 보아 휘청거리거나 비틀거리며 걷는 듯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손가락으로 스피커 부분을 틀어막고 천천히 112를 눌렀다.

먹먹하게 막힌 신호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신호음이 계속 이어졌다.

전화를 받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몇 분간 그 신호음을 듣고 나서야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이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있나?

계속 이렇게 화장실에 숨어 있을 수는 없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와 통화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화장실 안이 조용해진 듯했다.

문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아 변기를 딛고 올라가 문 위로 눈만 살짝 내밀어 바깥을 살폈다.

화장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던가?


조용한 화장실을 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한동안 그렇게 변기 위에 선 채 시간을 보냈다.


똑, 물 떨어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을 차렸다.


문 위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던 바람에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이 정도면 정말 아무도 없는 거겠지?

설마 숨어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치밀해 보이지는 않았어.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고 나와 유리문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겨우 문앞까지 도착해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반쯤 열었을 때, 뒤쪽에서 익숙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그륵...그으윽....”


화장실 맨 끝 칸에서 그 남자가 비틀거리며, 질질 끄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긱긱 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토해내며 고개를 꺾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곧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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