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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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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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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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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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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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상사

DUMMY

투박한 워커를 신고 있는데도 김과 박은 거의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었다.

자동문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가장 앞에서 걷던 김은 자동문 바깥이 보이는 위치에 멈춰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를 따라 걸음을 멈춘 우리가 고개를 내밀어 문 바깥을 바라봤다.

어둠에 잠겨 있던 어젯밤과 달리 햇빛으로 밝혀진 문 앞은 사방에 번져 있는 핏자국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죽는 모습을 봤던 여자의 시체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성 대리나 고현우 때처럼 어딘가에서 비틀대며 걸어 다니고 있겠지.


머릿속에 떠오른 유쾌하지 않은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한동안 바깥을 바라보던 김이 마침내 나가자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자동문이 조용히 열렸고, 초여름 정오의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김과 박은 에스컬레이터의 반대쪽 경사로를 따라 일행을 이끌었다.


“오는 길에 보니 1층 홀에 그것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저희가 가까이 가면 밖으로 몰려나올 테니 건물 뒤쪽으로 돌아서 가겠습니다.”


경사로의 중간쯤에 멈춰 선 김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데, 밝은 햇빛과 어울리지 않게 텅 빈 거리가 스산했다.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으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는 광경이었다.


김의 발이 경사로 끝 바닥을 딛는 순간, 경사로 옆 사각에서 피투성이 손이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악···!”

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히피 펌 여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사적으로 새된 소리를 뱉어내다 스스로 놀란 듯 입을 틀어막았다.


김의 반응은 빨랐다.

그는 침착하게 반대쪽 발을 휘둘러 그 손목을 걷어찬 후 손이 나온 방향에 총을 겨눈 채 뒤로 물러났다.

이상하게도 손이 튀어나왔던 곳에서 누군가 달려 나올 낌새는 없었다.


김이 우리를 바라보며 벽에 붙어 걸으라는 듯한 손짓을 보냈다.

햇빛에 달아오른 장식용 대리석 벽에 바짝 붙어 섰을 때, 드디어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베이지색 블라우스 자락이 언뜻 보이고,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가 양팔로 바닥을 짚어가며 김을 향해 기어 나왔다.

어젯밤에 본 여자였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는 나도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여자가 김을 보자마자 뛰쳐나와 물어뜯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여자에게는 하체가 없었다.


허리 중간에서부터 사라진 여자의 몸 뒤로 진득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분명 느렸으나, 포복으로 기는 것 치고는 빠른 속도였다.

김은 자신을 향해 빠르게 기어 오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박에게 어딘가를 가리켜 보였다.

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고, 내 뒤에서 걷던 박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외쳤다.


“저 쫓아오세요!”


좁은 길 건너편의 빌딩을 끼고 돈 박이 우리를 멈춰 세우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뒤이어 우리에게 합류한 김이 벽을 낀 채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 바깥쪽을 바라봤다.


잠시 후, 십수 명의 사람들이 괴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크르륵 하고 가래가 끓는 듯한 소음과, 질질 끄는 발이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한동안 지속되던 소리는 몇 분 후 하나둘 줄어들더니,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다시 조용해졌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괴한 신음만이 아직 남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과 박은 더 이상 뒤쪽을 확인하지 않고, 우리를 이끌고 큰길로 나섰다.


“이렇게 탁 트인 데서 걸어도 됩니까? 보이면 달려드는 것 같던데···.”


김 과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박에게 속닥였다.

박이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으며 역시 낮은 소리로 답했다.


“차라리 트인 데가 낫죠. 건물에 붙어서 걷다가 안에서 튀어나오면 더 골치 아파요. 바깥에선 다가오는 놈들한테 총 쏘고 이동해서 숨으면 되거든요.”


“그래도···. 차라도 타고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하 주차장에 제 차가 있는데.”


김 과장의 말에 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거길 돌아가자고요? 아마 그 주변에 꽤 모여 있을 텐데.”


“아니, 그야 총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맨몸으로 걸어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김 과장이 허둥지둥 덧붙이니 박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기 가려면 기관총은 있어야 할 걸요. 그리고 차 타는 것보다 그냥 걸어가는 게 나아요.”


“···왭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김 과장과 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다들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듯했다.


나 역시 이제까지 사방에 막힌 곳에만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칼 위를 걷는 듯 불안한 마음이었다.

박이 손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저게 이유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텅 비어 있던 도로의 끝자락에 멈춰 서 있는 차 한 대가 보였다.

흰색 아이오X5, 위쪽에 택시 등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의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 전체를 꽉 메운 수십 대의 차량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왜···.”


“지금 여기선 아무도 못 나가거든요. 차를 구해도 여길 어떻게 지나가겠어요?”


“여기서 못 나간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누가 도로를 막고 있다는 말이에요?”


“···.”


박은 대답 없이 싱긋 웃어 보였다.

이것도 말할 수 없는 내용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멈춰 있는 차 안을 들여다봤다.

갑자기 사람이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몇 미터쯤 더 걸어가니 길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뿌옇게 흐려진 눈동자나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 입 근처에 남아 있는 게거품 흔적들로 보아 김과 박이 ‘그것’이라고 부르는 이들 중 하나인 듯 보였다.

대부분 머리에 총을 맞은 듯, 검은 구멍이 뚫려 있고 주변 바닥이 피로 젖어 있었다.


우리는 사방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걸음을 재촉했다.


김과 박 두 사람이 죽인 이들이라기엔 시체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대피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생각보다 큰 단체에 속해 있는 모양이다.

안심을 해야 할지 불안감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데, 앞서 걷던 강예라가 내쪽으로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저 사람들, 위에 올라가서 뭐 했어요?”


“···시체에서 뭔가 찾는 것 같던데요.”


“찾아요? 뭘요?”


대답을 하기 전 흘긋 김과 박을 바라봤다.

앞서서 걷고 있는 김은 주변을 경계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박은 뒤로 처진 이정숙의 옆에 서서 평소대로 무언가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우리 대화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아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핸드폰이요.”


“핸드폰이요? 그건 왜 찾았을까요?”


강예라의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강예라에게는 핸드폰에 관한 이야기보다 급하게 전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찾았다는 핸드폰의 의미를 고민하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강예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사무실에 있는 그 남자와 아는 사이 같았습니다.”


강예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경악한 빛으로 날 바라보는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제가 죽인 사람이요?”


“···같이 죽인 거죠.”


확연히 동요하는 강예라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덧붙였지만, 그리 통하는 것 같진 않았다.


생각해 보니 김과 박 모두 이제까지 모두 머리를 겨냥하고 총을 쐈다.

머리에 박힌 효자손과 달리 내 커터칼은 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예라도 이제까지 쓰러진 시체들의 모습을 봤으니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


강예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김과 박의 눈치를 확인하는 걸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희한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강예라가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 역시 두 사람이 보였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들었던 말만 그대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하다고···하더라고요.”


강예라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앞서서 걷던 김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김이 가리킨 낡은 건물을 올려다본 모두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답답할 정도로 작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얼핏 보기에도 수십 년은 된 건물은 그리 믿음직한 대피소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라고요?”


히피 펌 여자가 질린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봤다.

미용실에 남아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김은 여자의 절망하는 표정에 대해 어떤 반응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계단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삼 층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말에 손차양을 만들어 햇빛을 가리고 삼 층 창문을 올려다봤다.

저물어가는 햇빛이 유리창에 반사돼 눈을 따갑게 찔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위를 올려다보는데, 꼭대기 층의 창문 몇 개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틈으로 검은 막대 같은 것들이 빠져나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어느새 뒤로 다가온 박이 내 등을 밀어댔다.


“얼른 올라가자고요. 뭐 하러 밖에 오래 있어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등이 켜진 삼 층 복도는 낮의 햇빛이 닿지 않는 듯 어둑했다.

복도를 따라 나 있는 창백한 색의 철문은 모두 단단히 닫혀 있었다.


복도 끝에 있는 철문에 도착한 김이 특이한 박자에 맞춰 문을 퉁퉁 두드렸다.

철문 옆에 붙은 정사각형 명패에 ‘지원상사’라는 사명이 적혀 있었다.

몇 초의 기다림 끝에 문이 열렸다.


앳된 얼굴의 남자 하나가 김과 박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

열린 문틈으로 공사 중으로 보이는 사무실의 모습이 보였다.


낡은 책상과 의자, 파티션 따위가 사무실 벽 쪽으로 아무렇게나 밀려 있었고, 반쯤 뜯어진 천장에는 이리저리 뒤엉킨 전선이 늘어져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고 가루가 뿌옇게 내려앉은 바닥에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어두운 표정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폐에 엄청 안 좋을 것 같은데요.”


히피 펌 여자의 말에 박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게 제일 걱정 돼요?”


“왔어?”


문 근처 책상에 앉아 있던 단발머리 중년 여자가 김과 박을 보더니 덤덤하게 인사를 건넸다.

손에는 투박해 보이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예. 그리고···.”


여자에게 다가간 김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듯했다.

김의 몸에 가려져 정확히 무엇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남자에게서 회수한 휴대전화일 거라고 예상했다.


여자는 김에게서 받은 것을 책상 서랍에 넣고 닫아버리더니, 우리 일행을 흘긋 바라보고 물었다.


“그 친구는?”


“···죽었습니다.”


“어떻게 죽었다는 거야?”


“···걸어 다니고 있진 않습니다.”


김의 말에 멈칫했던 여자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더니, 위로하듯 김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저, 손은 어쩌다 그런 겁니까?”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김과 박에게 문을 열어줬던 남자가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흠칫 놀라 손을 뒤로 숨기고 머뭇거리며 답했다.


“···긁혔습니다.”


“꽤 심하게 긁혔습니다. 소독약이라도 바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구급상자를 열어 투명한 소독액과 거즈를 꺼냈다.

소독액을 뿌리고 능숙한 동작으로 거즈를 붙이고 테이핑을 마친 남자가 익숙한 펜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아마 밖에서 확인하고 들어오셨겠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봐야 해서 말입니다. 이쪽 좀 봐주시겠습니까?”


남자는 김이 했던 대로 내 눈에 펜라이트 조명을 쏴 동공을 확인하더니, 적외선 체온계로 이마 온도를 재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러 갔다.

남자가 멀어진 후 거즈가 붙어 있는 손을 들어 상처를 확인했다.

새하얀 드레싱이 상처를 가리고 있으니 오히려 더 심한 부상으로 느껴졌다.


손을 돌려 손바닥을 바라보니 새빨간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무 이상도 없다는데, 굳이 상처에 피가 들어간 것 같다는 말을 해야 하나?

말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김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광경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순간적으로 오한이 일었다.

몸의 이상인지 심리적인 공포감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때, 중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김이 대화를 마친 듯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살짝 공포에 질려 그를 바라보는데, 김이 내게 물었다.


“뭐 숨기시는 거 없습니까, 도지혁 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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