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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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작품등록일 :
2024.07.15 16:23
최근연재일 :
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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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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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DUMMY

노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노인과 함께 움직인 이들은 애초에 고민을 끝낸 듯 앳된 얼굴의 남자와 단발머리 여자에게서 빼앗은 총과 전화기를 확인할 뿐이었다.


손과 발이 묶인 채 무릎이 꿇려진 여자가 그들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나가시면 벗어날 수 있는 시간만 늦어지는 겁니다. 잘못 생각하시는 거라고요.”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여자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가느니 도시에 갇히는 게 낫지.”


여자는 결국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더니, 노인과 일행이 아닌 이들에게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이곳까지 자신들을 데려온 건 여자가 속한 집단이었으므로 몇몇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상황을 알아차린 듯 노인과 함께 움직였던 안경을 낀 남자가 여자에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조용히 안 해?”


“근데 정말 나가서 대체 뭘 어쩌려고 그래요? 다들 어디에 숨죽이고 숨어 있다가 우리가 가서 겨우 여기까지 온 거면서.”


아직도 상처가 아픈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 박이 덤덤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대부분의 행동은 김이 한 것이었지만 애초에 가장 먼저 총구를 들이댄 것은 박이었다.

다들 싸늘한 눈으로 박을 바라보니 그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총에 맞아 어깨에 붕대를 감은 여자를 바라보는 표정이 어쩐지 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가려면 지금 바로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낮은 목소리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제 아이를 데리고 왔던 남자가 기운 없이 벽에 기대앉은 채로 말을 이었다.


“아까 세 명이 나갔죠? 아마 위에 한 사람밖에 안 남아 있을 겁니다.”


“야!”


여자가 남자를 노려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번에는 안경 낀 남자가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


그 갑작스러운 폭력에 이제까지 상황에 관여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여자는 입가가 찢어진 듯 입술에 핏물이 고였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은 표정으로 안경 낀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저놈 데리고 올라가 보자고.”


노인이 함께 행동했던 네 남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안경을 낀 남자가 권총 한 정을 가지고 사무실에 남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남은 권총 한 정을 챙기고, 구급함에 들어 있던 가위로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의 발을 묶었던 케이블타이를 끊었다.

그리고 남자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애는 쓰면 안 된다니까···.”


맥없이 앉아 있던 박이 짜증을 못 이긴 듯 뒤통수로 쿵 벽을 박으며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내가 흘긋 그를 바라보니 박이 꾹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위층에서 탕 하는 총성이 들려왔다.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입에서 무의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자와 박은 그렇게 하면 천장을 뚫어 볼 수라도 있다는 듯 위쪽을 노려보며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까지 오가던 신호와 달리, 박자 없이 거칠게 두드리는 노크였다.


안경 낀 남자가 서둘러 문으로 다가가 벌컥 철문을 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가 비켜선 후에야 드러난 이들의 모습을 보고 놀란 숨을 들이켰다.


양어깨에 저격소총을 둘러맨 중년 남자와 회사원이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양손에 권총과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든 대학생과 노인이 뒤따랐다.

대학생은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바닥에 쿵 던지듯 내려놓은 후 밖으로 나가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를 끌고 왔다.


갈 때도 묶인 손이 붙들려 나가긴 했으나 순순히 그들을 따라 움직이던 남자가 이번에는 강제로 질질 끌려 들어왔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검붉은 피멍이 맺혀 있었다.


여자는 묵묵히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남자와 달리 상처 하나 남지 않은 노인의 일행들을 바라보다 물었다.


“···죽인 겁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네. 안에서 총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한데 그럼 맨몸으로 겨뤘겠나?”


노인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당당히 답했다.


“뒤에서 또 쏠지도 모르니까 이건 우리가 전부 가지고 가야겠어.”


노인의 말에 여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을 뱉더니 물었다.


“허가라도 필요하십니까?”


노인은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하고 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길을 찾아보러 갈 생각이오. 정 못 찾겠으면 제대로 된 군인들이나,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고. 같이 갈 사람 있으면 지금 나오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부장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에 시선이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을 믿는다기보다 총도 남아 있지 않은 여자의 집단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는 눈치였다.


“지혁 씨는 어쩔 거야?”


정 차장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초조한 표정의 정 차장은 나와 강예라의 눈치를 살피며 묻었다.


“지혁 씨랑 예라 씨는 어쩔 생각이야?”


강예라는 고민하듯 노인의 일행 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노인의 근처에 모여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구해주겠다고 사람들을 모아 와 놓고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쏘아 죽였으니 누구인들 이 안에 남아 있고 싶겠는가?

하지만···.


“위에서 죽였다고 한 사람···.”


살짝 목소리를 높여 노인과 그 일행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말했다.


“그 사람이 어제 아저씨를 쏜 사람이었나요?”


노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린 정당한 방어를 한 거야.”


노인의 말에 그의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노인이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휙 고개를 돌리자 다른 사람들도 각자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로 정 차장에게 속삭여 답했다.


“전 여기 남겠습니다.”


“뭐? 정말 괜찮겠어? 예라 씨는?”


강예라는 굳은 표정으로 노인과 그 옆을 따라는 네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동안 침묵하던 강예라가 결국 입을 열어 답했다.


“저도 여기 남을게요. 밖으로 나가서 숨어 있을 곳을 또 찾으러 돌아다니기도 좀 무섭고요.”


정 차장은 강예라와 내가 모두 가지 않는다고 하자 퍽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안 가면 나도 남아 있고 싶지만, 아무래도 얼른 나가서 애들이랑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인턴들을 끝까지 챙기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지 정 차장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당부의 말을 건넸다.


“건강하고. 집에 도착하거나 안전한 데 가면 나중에라도 연락줘야 돼!”


“너무 걱정 마세요. 정 차장님도 건강하시고요.”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정 차장은 연신 우리를 바라보며 노인의 일행에 합류했다.

노인의 행동에 반대하던 하윤서까지 일말의 고민 없이 떠나는 팀 곁에 가 섰다.


“총도 없는데, 아까 떠난 사람들 오기 전에 그놈들이 먼저 오면 어떡해요? 여기서 다 죽는 거 아니야?”


어깨에 총을 맞은 젊은 여자와 그 남편도 박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는 팀으로 들어갔다.


“치료받으려면 여기에 있는 게 제일 낫다니까요. 그래도 지금 나가 있는 그 친구가 의대 나온 앤데.”


젊은 남자는 다급하게 말하는 박을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고 휙 몸을 돌렸다.

부인은 아예 박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결국 인원을 나누고 나니 사무실에 남기로 결정한 사람은 나와 강예라, 그리고 이정숙뿐이었다.

이정숙은 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우리와 함께 남기로 했다.


“정말 남을 건가?”


노인은 이정숙이 아니라 나와 강예라에게만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네. 여러분은 무사하게 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한번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끌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노인의 뒤를 따라가던 택배 기사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어딘지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흘끔흘끔 돌아보더니,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긋대다 떠나버렸다.


문이 닫히고도 복도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한동안 시끄럽게 들려왔다.

잠시 후 복도가 조용해지고, 사무실 안에도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봐요.”


단발머리 여자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여자가 고개를 살짝 돌려 뒤로 묶인 손목의 케이블타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부탁했다.


“여기 묶은 것 좀 풀어주시죠.”


눈매에 짜증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강예라는 약간 불안한 표정이긴 했지만 내가 여자의 손에 묶인 케이블타이를 끊어내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손목이 자유로워지자 여자가 내 손에서 탁 가위를 낚아채 자신의 발에 묶인 케이블타이를 끊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박의 손목과 발목에 묶인 케이블타이도 모두 끊어낸 후 가위를 다시 구급함에 넣어버렸다.


“저 사람을 아직 안 풀어줬는데요.”


강예라가 얼굴에 피멍이 든 남자를 가리키며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단발머리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전히 남자의 손은 풀어주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놈들이 손이 아니라 입을 묶어버렸어야 하는데.”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싸늘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여자의 눈길에 주눅 든 표정으로 살짝 시선을 피했다가, 갑자기 욱한 듯 눈을 치뜨고 쏘아붙였다.


“예, 제가 아이를 데려온 건 잘못한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멀쩡한 사람까지 쏘는 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여기서 나가려는 것도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의 눈 안에 분노가 이글거렸지만 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오기 전에 지시 안 받았어? 애초에 알고 왔으면서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를 사람들 눈앞에서 쏘지만 않았으면···.”


여자가 뚝 남자의 말을 끊고 싸늘한 목소리로 뱉어냈다.


“그걸 사람들 눈앞에서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든 건 너야. 그러니까 뛰쳐나간 사람이 총에 맞아 죽은 것도 네 잘못이라고. 게다가 위에 있는 동료는 기습당해 죽게 만들기까지···.”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를 꾸짖는 듯하던 말투가 곧 한탄 섞인 혼잣말로 바뀌었다.


“뭐가 무서운지 모르니까 이러겠지.”


남자는 여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던지 여자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뭘 모른다는 건가요? 뭘 알아야 도망치는 사람을 그냥 쏘아 죽일 수 있습니까?”


나 스스로도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목구멍을 틀어막은 기분이었다.


고작 사흘 만에 죽은 사람을 너무도 많이 봤다.

아마 내가 이곳에 남지 않았다면 여자와 두 남자도 손이 묶인 채로 맥없이 죽었을지 모른다.


사흘 만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일상을 살았을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총을 들고 같은 사람을 향해 쏘아 대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강예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처음으로 본 살인자이자 공범인 직장 동료의 얼굴을 바라봤다.

강예라는 지쳐 보였다.

아마 그녀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비슷하겠지.


단발머리 여자는 내 말에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듯 미간을 좁혔다.

곧 입을 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어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돌 때는 멧돼지를 잡는다는 얘기 못 들어보셨습니까?”


그 건조한 답변에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 순간, 철문에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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