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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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작품등록일 :
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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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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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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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DUMMY

총 없이 몸싸움을 벌일 것을 생각해서인지 김과 이, 최는 편의점 밖으로 나가기 전 휴지와 박스테이프를 팔다리에 칭칭 감아 보호대를 만들었다.

세 사람이 테이프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나자 편의점에 있던 박스테이프 세 롤은 순식간에 종이로 된 원통만 남기고 사라졌다.


김과 이는 그렇게 테이프를 칭칭 감은 후 목장갑까지 두 겹씩 끼고 나서야 편의점을 나섰다.

최는 총을 쏘기 위해서인지 맨손이었다.


세 사람 모두 팔을 칭칭 감아 날씨에 비해 무척 더워 보이는 차림이었지만 내게 드는 생각이라고는 부러움 뿐이었다.

얇은 셔츠 아래 팔에 소름이 돋은 것은 새벽 공기의 서늘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이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이들이 뒤이어 나갔고, 박을 부축하고 있는 나와 강이 이번에도 가장 마지막에 편의점을 나섰다.

우리가 모두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김지호가 열쇠로 편의점의 문을 잠갔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못 들어갈 것 같아?”


조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으나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김지호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연신 불안한 눈빛으로 조를 바라봤지만, 정작 조의 손에 죽을뻔한 당사자 강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김지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로 연신 나를 힐긋거렸다.

하지만 내가 박을 부축하고 있으니 그 눈을 피해 대화를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던지, 곧 강예라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손이 묶인 채로 김의 옆에서 터덜터덜 걷는 조를 바라보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전기가 끊기면 안 되는 건가요?”


박이 과장되게 눈을 뜨며 의아한 듯 되물었다.


“전기가 끊기면 당연히 힘들죠? 불도 안 들어오고.”


말을 돌리는 기색이 확연했으나 빙글빙글 웃고 있는 박의 표정에 더 캐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쪽에서 박을 부축하고 있는 강을 흘깃 바라봤으나 그 역시 상황을 알려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는 길 내내 감염체와 마주쳤던 전날과 달리 오늘의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한산했다.

한동안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김지호도 갈수록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강예라에게 속삭이듯 떠들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몇 걸음 떨어진 우리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좀비 영화 같은 거 보면서 저럴 때 어떻게 해야지 하고 생각해 보신 적 없어요? 전 되게 많이 생각해 봤는데도 막상 일 터지니까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김지호의 가벼운 태도 덕분인지 강예라도 살짝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그의 말에 답해주고 있었다.


“생각해 본 적이야 있지만···무서워서 집에 숨어 있겠거니 했지.”


그렇게 답하던 강예라가 불현듯 표정을 굳혔다.


“가족들이랑 같이···.”


그 말을 듣고 나자 김지호 역시 가족들이 떠오른 듯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김지호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던 순간부터 못마땅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가 다시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 대화가 사라진 침묵을 뚫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륵 하는, 신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온 순간 모두 우뚝 발을 멈췄다.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는데, 점점 커지는 소리와 달리 감염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건물에 시야가 가려진 상황이라,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에 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굳은 표정으로 내 뒤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의 얼굴이 보였다.


그 표정에서 읽어낸 불길한 징조에 등허리가 선득했다.

박을 부축하고 있어 뒤를 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생존 본능이라는 게 시야까지 넓히는 건지, 반쯤 돌린 고개로도 뒤쪽 길가에 주차된 트럭을 돌아 튀어나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괴성을 토해내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눈을 번뜩이는 네 구의 시체가 턱을 딱딱 부딪쳐가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요란한 총성이 터졌으나 트럭의 사이드미러만 깨졌을 뿐 감염체 중 누구 하나 발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에이, X발, 총 더럽게 못 쏘네!”


옆에서 박이 빠드득 이를 갈며 뱉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강이 박의 팔을 놓고 칼을 뽑아 드는 바람에 갑자기 무게가 쏠려 몸이 기울어졌다.


나 역시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던 참이라 기울어진 몸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강이 달려오던 감염체 하나의 다리를 걷어차 쓰러뜨리고 그 머리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대검이 머리에 꽂힌 감염체는 잠시 버둥거리는가 싶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 옆에서 달려오던 다른 한 구가 바닥에 쓰러진 박과 나를 보고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쩍 벌렸다.

박이 뒤쪽을 바라보며 최에게 다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총 이리 줘!”


박이 미처 앞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감염체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성을 내지르는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린 순간 흰 비닐봉지가 시야를 가로질렀다.


비닐봉지가 턱을 후려치며 그것의 고개가 옆으로 훽 돌아가며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을 구르는 감염체를 보고 얼떨떨하게 고개를 돌리니 가쁜 숨을 몰아쉬는 강예라가 보였다.

노란색 참치 통조림이 그녀가 들고 있는 얇은 비닐봉지 너머로 비쳐 보였다.


“괜찮아요?”


그사이 달려온 최가 건네준 총을 받아 든 박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감염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고개가 뒤로 넘어간 감염체가 도로에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김과 이가 감염체 하나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감염체는 박스테이프가 감긴 이의 팔을 물고 매달려 있었다.


보호구를 착용한 효과가 있는지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져 있었다.

굳은 표정의 김이 이의 팔을 물고 있는 감염체의 뒷목에 대검을 비스듬히 찔러 넣었다.

힘을 잃은 감염체가 주르륵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아악!”


다급한 비명에 다시 시선을 돌리니 도로 옆에 주차된 차에 기대 주저앉은 김지호가 감염체 하나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김지호는 감염체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도로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봉투 쪽으로 애타게 손을 뻗었다.


봉지에서 떨어진 망치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조는 멀뚱히 김지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 좀 이쪽으로 차주세요!”


김지호가 그를 향해 애타게 외쳤으나 조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박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김지호와 감염체를 겨눠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려놨다.


“각이 안 나오는데요. 잘못하면 쟤가 맞을 것 같고···.”


그때 겁먹은 표정으로 김지호와 조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이정숙이 달려와 망치를 집어 들었다.


“저리가!”


망치는 정확히 감염체의 머리를 후려쳤으나 이정숙의 힘이 부족한 탓인지 그 머리만 살짝 틀어졌을 뿐이었다.

고개가 돌아가 이정숙을 보게 된 감염체가 망치를 든 이정숙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다급한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김지호가 드라이버도 챙겼으니 그걸 쓰면 어떻게든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닥에 떨어진 봉지의 위치를 확인하며 달려갔다.


“할머니!”


김지호가 비명을 지르며 이정숙을 옆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그 직후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큰일날 뻔했네···.”


창백한 얼굴을 한 박이 어느새 다시 들어 올렸던 총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숙과 김지호는 힘이 쭉 빠진 듯 얼굴에 튄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머리에 총상이 남은 감염체가 쓰러져 있었다.


조가 그런 두 사람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더니 주변을 슬쩍 살피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총을 두 발이나 쐈는데 빨리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목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김지호가 분한 얼굴로 조를 노려봤다.

하지만 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정숙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걸음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가 바닥에 떨어진 봉지를 주워 들었다.

절그럭 소리가 나 안을 들여다보니 드라이버와 커터칼, 그리고 지폐 몇 다발이 보였다.


김지호를 향해 가려다 문득 멈춰서서 조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가만히 서 계셨습니까?”


조가 왜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괜히 걷어차서 소리냈다가 감염체가 이쪽으로 달려들면 어떡하라고? 손도 묶여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보통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 뻔 하는 와중에 그런 생각까지 하나?

조의 번뜩이는 검은 눈동자가 꺼림직하게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누구 물린 사람 있습니까?”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부여잡고 있던 이가 물었다.

다행히 보호구가 감염체의 이빨에 뚫린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쉰 이가 곧 얼굴을 굳히며 김지호를 바라봤다.


“앞으로는 입 다물고 있어. 또 이런 상황 겪기 싫으면.”


김지호는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으로 다가가 비닐봉지를 건네주며 손을 내밀었다.

김지호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나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냐, 앞으로 조용히 하면 되잖아. 별일 없었으니까 다행이다.”


다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다들 조금 전보다 바짝 모여선 상태였다.


이의 일행이 꺼림직한 듯 이제까지 약간 거리를 두고 걷던 강예라와 이정숙, 김지호는 이제 세 걸음 이상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어찌나 가까운 곳에서 걷는지 박을 부축하며 걷느라 동작이 자유롭지 않은 강과 나는 몇 차례 세 사람과 부딪히기까지 했다.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우리에게서 나는 소리 중 가장 큰 소음이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사람이 내지르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죽어가는 사람이 내지를 법한 끔찍한 소리였다.


으스스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으나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강예라와 이정숙, 김지호까지 소리의 방향을 찾으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이들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길 앞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내 질문에 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지금 우리 처지에 누굴 구하러 간다는 겁니까?”


대답할 말이 없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무니 조가 덤덤한 얼굴로 말을 붙여왔다.


“좋게 생각해. 저쪽에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면 아까 총소리 듣고 몰려오던 것들도 다 저쪽으로 갈걸? 우리야 좋지.”


그의 말에 고개를 젓고 나 역시 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겼다.

누군지 모를 사람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우리들이 갈 길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이 끔찍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 말을 듣고 드는 안도의 마음이었다.


다들 그 끔찍한 비명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지, 우리의 걸음 속도는 조금 더 빨라졌다.

다행인지 철물점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다시 감염체와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게 누군가의 비명 덕분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철물점은 김이 말한 대로 안내문이 붙은 채 닫혀 있었다.

물건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유리 안이 어두컴컴했다.


“망치 좀 빌려주겠습니까?”


김의 부탁에 김지호가 허둥지둥 망치를 꺼내 김에게 내밀었다.

망치를 받아 든 김이 망설임 없이 철물점 유리문의 잠금장치 옆을 내리치더니, 뚫린 구멍 사이로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김지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속삭여 물었다.


“···저기, 저 아저씨 혹시 강도는 아니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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