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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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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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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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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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DUMMY

“아아아아악!”


등 뒤에서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고현우가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쓰러진 의자가 나뒹굴었다.


강예라는 멍한 얼굴로 문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분명···분명 대리님 죽었었는데···저랑 현우 님이 같이 봤어요!”


김 부장이 쯧 혀를 차며 문으로 다가갔다.


“잘못 봤거나 다치기만 했나 보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도망친 거야?”


정 차장은 미심쩍다는 표정이긴 했으나 역시 사람을 밖에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김 부장과 함께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문으로 다가갔다.


“저기···.”


머뭇거리며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저도 들어오는 길에 대리님을 봤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시 경악한 표정으로 책상에 쓰러져 있던 대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긴장으로 한 차례 침을 꿀꺽 삼킨 후 시체가 물어뜯겼던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성 대리님···이쪽 살 전체가 뜯어먹힌 것처럼 없었어요.”


강예라와 고현우는 이미 그 모습을 봤던지 시선을 피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김 부장과 정 차장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제가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사람이 목을 뼈가 드러날 정도로 물어뜯기고도 살아 있을 수 있나요? 주변에 피도 흥건했는데···.”


김 부장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힘들긴 하겠지만···사람 목숨이란 게 워낙 질기지 않나. 혹시 살아있으면 어쩌려고?”


김 부장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 화장실에서 만난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문에 끼어 갈비뼈가 부러지고도 나를 쫓아 달려왔다는 말에 고현우가 힉, 하는 이상한 소리를 뱉었다.


“뭘 잘못 본 건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그 상태로 달릴 수 있어?”


“저도 차라리 잘못 본 거라면 좋겠지···.”


그러나 아직도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진동이 손을 타고 전해져오던 감각이 생생했다.


회의실 안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절대 들여보내면 안 돼요! 지금 저 자식도 내보내고 싶은 걸 참고 있구만.”


고현우가 나를 삿대질해 가리키며 나직하게 외쳤다.

김 부장은 고현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고민하는 표정으로 문밖을 바라봤다.


성 대리는 여전히 유리 너머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내가 한동안 소리를 내지 않으니 조용해졌던 남자와는 다른 반응이다.


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 우리가 계속 보이기 때문인가?


길게 고민하던 김 부장은 결국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고. 내가 위로 올라가서 성 대리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게. 인턴들 말대로 정말 죽은 게 확실한 것 같으면 안으로 들이지 않는 걸로.”


“···그게 어떤 모습인데요?”


정 차장이 불안한 표정으로 김 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김 부장 역시 시원히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회의실 책상 위로 올라설 뿐이었다.


그는 몸을 곧추세우고 시트지 위쪽 투명한 유리를 이용해 성 대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 부장이 책상 위로 올라서자 성 대리가 고개를 휙 올려 김 부장을 바라봤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듯, 갑작스러운 동작에 성 대리의 상체가 쿵 하고 유리 벽에 부딪혀 붉은 자국을 남겼다.


시선 한편에 정 차장의 손을 꼭 붙잡는 강예라의 모습이 보였다.


김 부장은 몸을 살짝 기울여 창밖의 성 대리를 확인하더니,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았다.


“욱···.”


그는 고개를 숙여 우리를 바라보고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이 사색으로 질려 있었다.


정 차장은 현기증이 온 듯 강예라의 어깨에 기대어 섰다.

그때 김 부장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더니, 책상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숨어, 숨어! 아무거나 휘두를만한 것 좀 찾든가!”


“왜···.”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이유를 물어보려는 순간 쿵! 무언가 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성 대리가 서 있던 곳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사무실 문 앞까지 나를 쫓아왔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우리 다섯을 좇으며 다시 유리에 몸을 부딪쳐 왔다.


“이, 이거 유린데 깨지는 거 아니야?”


고현우가 회의실 맞은편 벽에 바짝 붙어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저희가 계속 보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네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고현우가 가장 먼저 일어나 회의실을 돌아다니며 숨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는다고 비밀의 문이라도 나오나?”


김 부장이 빈정거렸다.

가장 먼저 의견을 낸 건 강예라였다.


그녀는 손을 살짝 들어 시선을 모으더니, 회의실 중앙에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이걸 옆으로 쓰러뜨려서 그 뒤에 숨는 건 어떨까요?”


이야기가 길어지는 동안 유리문 앞에 두 개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내가 나타나기 전 네 사람이 봤다는 짧은 머리의 남자 한 명, 그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다른 팀의 사원 한 명이었다.


사람 수가 늘자,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의 간격이 짧아졌다.

텅 빈 회의실 안을 퉁퉁 연이어 울리는 소리가 불안감을 자극했다.


책상 뒤에 쪼그려 앉아 소리도 내지 않고 서로 눈짓만 주고받은 채로 몇 분이 지났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유리 앞에 모여 있던 이들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어쩌지?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


정 차장이 숨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생각해 내지 못한 듯, 정 차장의 질문은 답변받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해가 서서히 지면서 회의실 전체에 그림자가 길게 내려앉았다.


회의실은 여전히 불이 꺼진 상태였지만, 사무실 안의 불을 끌 사람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바깥에서 유리를 넘어 흘러들어오는 빛으로 사물은 식별할 만했다.


책상 뒤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다리가 저려 왔다.


그에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자세를 바꾸는데, 옆에서 부산스럽게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좀 해!”


김 부장의 조그마한 호통 뒤로 고현우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자세가 너무 불편하니까 이러죠. 대체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럼 혼자 나가지 그래요, 현우 님?”


강예라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녀도 다리가 저린 건 마찬가지인지 베이지색 슬랙스를 입은 다리를 살짝 펴고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정 차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우 씨 말도 맞아. 여기 이렇게 모여서 쪼그리고 있는다고 일이 해결될까? 이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래도 여기가 서울 중심인데, 누가 구하러 올 수도 있잖아.”


김 부장이 투덜거리며 답했다.


“근데 이상해요. 아까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 사무실에서 뛰쳐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지금까지 아무도 신고를 안 했을까요? 왜 아무도 안 오지?”


강예라가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강예라의 말에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핸드폰은 여전히 상단에 텅 빈 작대기만을 화면에 띄우며 신호 없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도 안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일제히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재난 문자, 이어진 통신 두절.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릴만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지난 열두 시간.


화면에 뜬 10:00이라는 숫자가 내가 40시간째 깨어 있다는 걸 알려 왔다.

긴장으로 인한 각성 사태에 빠진 머릿속은 안개에 잠긴 듯 먹먹했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면서 얘기를 꺼냈다.


“잠깐 밖이 어떤지 봐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강예라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지혁 님 보자마자 저것들이 다 몰려오면 어떡해요? 아까보다 더 많아졌으면요?”


“그렇다고 이대로 상황도 모른 채로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다들 지친 것 같고···고개만 살짝 내밀었다가 바로 내릴게요.”


내 말에 강예라가 마지못한 듯 손에 힘을 풀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불이 훤하게 켜져 있는 사무실을 바라봤다.

유리에 묻은 핏물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붉은 빛이 회의실 바닥 여기저기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시트지 너머에 바짝 붙어 있던 흐린 인영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화장실에서 만난 사람처럼 회의실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트지 위쪽을 확인하기 위해 딛고 올라설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주변에 흩어져 있는 의자들은 모두 회전하는 것들에다 책상은 이미 쓰러뜨려 놓아 밟고 올라갈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던 중 회의실 유리벽 한군데에 붙인 시트지 사이에 얇은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밝을 때는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의 틈이었지만 불 꺼진 어둑한 회의실에서 보니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눈에 훤히 띄었다.


시트지 틈에 눈을 대고 회의실을 확인했다.

텅 빈 회의실에는 을씨년스러운 백색 조명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때?”


김 부장의 조급한 물음에 슬쩍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손으로 가볍게 가위를 만들어 보이자 다들 안도한 듯 얼굴의 긴장이 풀렸다.


“일단은 아무도 안 보이지만···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고현우는 어딘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불안하기는 해도 우선 동의를 받았으니, 텅 빈 사무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움직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슬슬 나가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고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그래? 그러고 있다가 그 미친놈들이 다시 오면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는 거잖아!”


말을 마친 고현우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단숨에 문의 아래쪽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렇게 갑자기 나가면 어떡해요!”

강예라가 날카롭게 쏘아붙였으나 고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쪽 잠금장치까지 마저 돌려버렸다.


“싫으면 저 사람이 오케이 할 때까지 다 여기에 남아 있든가.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우리가 저쪽 부하직원도 아닌데.”


고현우의 말에 그제야 상황이 멋쩍었던지 김 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책상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역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문 근처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당장 뛰쳐나갈 것처럼 행동하던 고현우 또한 잠금장치를 모두 푼 이후에는 겁을 먹었는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기야 했지만 고현우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대로 바깥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고현우의 말대로 꼼짝없이 다음 열두 시간을 다시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럼 현우 님이랑 저랑 먼저 나가 보죠.”


문 쪽으로 다가가며 말을 건네자 고현우가 퍽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 차장과 강예라, 김 부장을 돌아봤다.


“뭐? 왜 내가 먼저···.”


투덜거리던 그도 문득 자신이 앞서 한 행동이 떠올랐던지 꾹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문앞에 서자 고현우가 슬쩍 옆으로 비켜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 태도가 얄밉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고현우가 그런 것이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목숨이 걸린 일에 겁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식은땀이 배어난 손을 서늘한 유리에 대고 슬쩍 밀었다.

문은 작은 바람 소리와 함께 저항 없이 열렸다.


움켜쥔 주먹에 식은땀이 고였다.


문 근처는 회의실 안에서 본 대로 텅 비어 있었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본 고현우가 날 밀치고 지나치더니 사무실 출입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근처에 있던 책상을 짚고 자세를 바로 했다.


“현우 님!”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다급하게 속삭였지만 내 소리는 고현우에게 닿지 않은 듯했다.


출입문 앞에 도착해 초조한 표정으로 복도를 살피던 고현우가 곧 바깥에서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다급하게 출입문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얇은 플라스틱판을 연달아 내리치는 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고현우의 그 초조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까지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김 부장과 정 차장이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도 얼른 가자고.”


김 부장이 나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가려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옆에 선 정 차장이 양손으로 입가를 틀어막는 것이 느껴졌다.


출입문 근처에는 작은 탕비실이 있었다.

의자나 탁자를 놓을 정도로 큰 공간은 아니라 막아두지 않았지만, 시야가 어지럽다는 이유로 천장까지 닿는 불투명한 가벽을 세워 음료 냉장고를 가려 놓은 곳이었다.


바로 그 벽 뒤에서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발을 질질 끌며 빠져나왔다.


지이익···하고 작게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다급하게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고현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했다.


발소리가 크지 않았으므로 서서히 열리는 출입문에서 나는 마찰음도 남자의 소리를 덮을 만했다.


나는 무기로 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있던 다른 팀 사원의 책상 위에 두꺼운 커터칼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고현우는 여전히 뒤에서 다가오는 남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쩍 입을 벌린 남자가 고현우의 뒷덜미를 물어뜯으려는 듯 달려들었다.


“현우 님!!”


커터칼을 단단히 움켜쥐고 고현우의 이름을 외치자 의아한 표정의 고현우가 내쪽을 바라보기 위해 몸을 틀었다.


고현우가 몸을 돌린 덕분에 남자의 이빨이 고현우의 목을 비껴갔다.


달려들던 기세로 얼굴을 출입문 옆 벽에 처박은 남자의 몸이 고현우와 뒤엉켜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패닉에 빠진 사람처럼 버둥거리며 고함을 지르던 고현우가 남자를 걷어찼다.

사지를 뒤틀며 두어 발짝쯤 밀려난 남자가 고현우를 노려보며 캬아아악 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창백하게 질린 고현우가 어느새 열렸다가 닫히고 있는 출입문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갔다.

뒤이어 고현우를 향해 손을 뻗던 남자의 팔이 출입문에 걸린 채로 끼었다.


하지만 곧 방해물을 감지한 출입문이 다시 스스스 작은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복도 쪽에서 우당탕 달려가는 고현우의 발소리가 들렸다.


“우리 다시 들어가, 들어가자고! 얼른! 고 인턴은 어차피 이미 늦었어!”


회의실 안으로 물러난 김 부장이 다급하게 정 차장을 끌어당기며 우리를 향해 외쳤다.

불행히도 김 부장의 외침이 남자의 주의를 끌었다.


열리는 문 너머 고현우를 똑바로 노려보던 남자의 고개가 휙 우리를 향해 돌아갔다.

벽에 부딪히며 코가 부러졌는지 기이하게 꺾인 코와 검붉은 피로 얼룩진 얼굴이 끔찍했다.


정 차장을 마침내 회의실 안으로 끌어당긴 김 부장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벌어진 문틈에서 팔을 빼낸 남자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리고 달려오는 순간, 김 부장은 회의실 문을 닫았다.


“과장님!”


강예라가 다급하게 달려가 문을 두드렸지만, 철컥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만 들려왔을 뿐이다.


“야, 이 개같은 X끼야!”


강예라가 탕, 발로 회의실 문을 걷어찼지만 안에서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뒤쪽에서 소란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남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칼날을 길게 뽑은 커터칼을 잡은 손에 차가운 식은땀이 느껴졌다.


“물러나세요!”


위협을 위해 커터칼을 앞으로 들고 외쳤으나, 남자는 오히려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남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면서 커터칼의 날이 얇은 티셔츠를 뚫고 사람의 살에 박히는 감각을 느꼈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단단한 살로 파고드는 커터칼의 감각이 소름끼쳤다.

커터칼은 갈비뼈를 피한 것인지, 사람의 무게에 눌려 별 저항 없이 칼자루까지 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손을 타고 미지근하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폐나 심장까지 찔렸을 것 같은데, 남자는 화장실에서 만났던 남자처럼 입으로 피를 토해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 공격하려 들었다.


그가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의 밑에 깔린 날 물어뜯으려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악! 지혁 님!”


강예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고, 왜인지 예상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자 강예라가 효자손을 들고 손잡이 쪽으로 마구 남자의 이마를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공포에 질린 외침에는 울음이 반쯤 섞여 있었다.


퍽퍽, 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밀려날 때마다 붉은 자국이 남던 남자의 이마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이마를 타고 끈적해 보이는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나와 강예라 쪽으로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이를 딱딱 부딪는 남자를 마구 밀어내던 효자손 손잡이가 남자의 이마를 빗나가 눈을 향했다.


그리고 나와 강예라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손잡이가 쑥 남자의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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