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감자케챱
작품등록일 :
2024.07.15 16:23
최근연재일 :
2024.09.06 19:37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356
추천수 :
0
글자수 :
114,939

작성
24.08.14 18:53
조회
16
추천
0
글자
12쪽

감금

DUMMY

박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소녀를 똑바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헉’하고 놀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제까지 황망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젊은 남자가 총구 앞으로 뛰어들었다.


“안 돼!”


남자는 그들의 옆에 서 있던 김에게 순식간에 제압되었지만, 함께 있던 여자가 뛰어드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리고 박의 총에서 발사된 탄환이 여자의 어깨를 꿰뚫었다.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사무실 안을 채웠다.

박은 고통에 주저앉는 여자를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이 다가가 총을 든 채로 굳어진 듯한 박의 팔을 끌어내리자, 박이 김을 바라보며 허둥지둥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저는, 전 사람을 쏘려던 게 아니라···.”


항상 능글거리던 태도에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쏴대던 사람이 대체 왜 저러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우선은 총에 맞은 여자 쪽이 더 걱정됐다.

몇몇은 총알이 자신에게 날아올까 불안한 듯 사무실 끝으로 멀찍이 물러났고, 절반쯤은 여자를 부축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던 앳된 얼굴의 남자가 굳은 얼굴로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는 바람에 다들 그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남자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동안, 아마도 소녀의 아버지일 젊은 남자의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무릎으로 내리누른 김이 총을 들어 아이를 겨눴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가 다급하게 한 손을 들어 아이의 얼굴을 가렸다.

맨손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을 리 없는데, 퍽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끈으로 묶어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고작 아이 한 명입니다.”


김은 총을 그대로 겨눈 채로, 애원하는 표정의 남자와 경악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후 총을 다시 허리춤에 찬 김이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중년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양팔을 벌리며 되물었다.


“정말이야?”


“네.”


김의 말에 여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앉아 있던 철제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적였다.

뭉텅이로 묶인 케이블 타이를 김 쪽으로 던진 여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걸 쓸 일이 있을지 몰랐네. 공사장에 웬 쓰레기를 넣어두고 갔나 했더니.”


케이블 타이 뭉치를 가볍게 받아낸 김이 앳된 남자에게 손짓해 아이의 아버지를 대신 제압하게 했다.

김은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에게 걸어가면서 사무실 한구석에 굴러다니는 비닐을 주워 들었다.

공사용 비닐인지 자재를 포장했던 것인지 여기저기 구멍이 난 비닐에도 바닥처럼 뿌연 먼지가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김은 남자에게 별다른 말도 붙이지 않고 아이의 머리를 비닐로 싸버렸다.

순식간에 비닐에 뿌연 증기가 어리는 걸 본 아이의 아버지가 다시 발버둥을 쳤으나 김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아이의 팔과 다리를 모두 케이블 타이로 묶더니, 벽 근처에 있는 낡은 라디에이터에 묶었다.

두어 걸음 물러난 김이 비닐을 벗겨내자 뿌옇게 흐려진 눈을 부릅뜬 여자아이가 딱딱 이빨을 부딪치며 김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케이블 타이가 당겨지며 라디에이터에 부딪혀 낮게 울리는 소리를 냈다.

얇은 케이블 타이가 당겨지며 아이의 손목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다.


“지아야!”


바닥에 엎드린 채 앳된 남자의 무릎에 짓눌려 있는 남자가 아이를 바라보며 울음 섞인 소리를 질렀다.

젊은 여자도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멍한 눈으로 자신의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끝없이 괴성을 내지르며 발을 버둥거렸다.

탁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따라 끝없이 움직였다.

김이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아까 전 벗겼던 비닐을 다시 아이의 얼굴에 뒤집어씌웠다.

아이의 아버지도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이것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총을 들어 아이를 겨눴다.


“잠깐.”


내가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는 그 애랑 같은 곳에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른 곳에라도 데려다 놓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래요, 꼭···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어요?”


강예라가 거들고 나서니 꺼림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거들었다.

김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은 당황스러울 만큼 커다란 소리로 사무실을 채웠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아야!”


그제야 풀려난 젊은 남자가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여자도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어깨를 부여잡고 아이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왜···살려 주시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아이를 안고 왔던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물었다.

김이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살려? 어떻게?”


김이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데려왔을 때부터 죽어 있었어. 모르겠으면 총기나 반납해.”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을 바라봤지만, 순순히 총을 넘겼다.

김은 총 안에 든 탄약을 모두 꺼내고 단발 여자에게 총을 넘겼다.


여자가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아 실랑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기운이 빠진 듯 의자에 털썩 앉으며 대화를 끝내듯 손을 휘저었다.


“잘했어, 잘했어.”


김은 아직도 넋이 나간 듯 서 있는 박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함께 사무실 한쪽 구석으로 물러났다.


젊은 부부는 아직도 라디에이터에 묶여 있는 아이의 시체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앳된 얼굴의 남자가 주춤주춤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총 맞은 여자의 어깨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의 훌쩍이는 소리를 제외하면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김의 질문에 보였던 반응들을 떠올리는 듯했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나와 강예라를 노려봤다.

몇몇 사람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고, 대다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결국 아무 소용 없었네요.”


강예라가 울고 있는 부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게 아니었으니까요.”


강예라의 말에 그렇게 답하자 그녀가 흘긋 김과 박, 두 사람이 서 있는 쪽을 바라봤다.


“왜 저렇게까지 죽일까요? 저 남자 말대로 아까 전 그 어린애는 그냥 묶어뒀어도 됐을 텐데.”


그 말에 김이 고현우를 죽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고현우는 계단 난간에 온몸이 칭칭 감겨 있었던데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김은 망설임 없이 고현우의 머리를 찔러 죽였다.


강예라의 말대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내가 김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각자의 무리에 모여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단발 여자에게 다가갔다.

진회색 정장을 입은 노인이 사람들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여기서 대체 언제쯤 나갈 수 있습니까?”


단발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히 답했다.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도 모릅니다.”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는 걸 봤는데,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르고 여기에 그냥 있으라는 거요?”


노인의 살짝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손을 들었던 사람 중 하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적어도 대략 어느 정도 걸릴지는 알 거 아니오?”


단발 여자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봤다.

화난 사람들 수십 명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전혀 주눅 든 모습이 아니었다.


“이 상태가 정리된 이후에야 나갈 수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정확히 어떻게 정리한단 말이오?”


노인이 다시 캐물었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앳된 남자 쪽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뒤로 물리라는 듯 손짓을 했을 뿐이다.


서둘러 다가온 앳된 얼굴의 남자가 팔을 벌리고 여자의 앞을 막아서며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대답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함을 질러대자 앳된 남자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저희도 정말 모른다니까요. 며칠이면 될지, 몇 주가 걸릴지, 몇 개월이 걸릴지···.”


그 말에 소란은 더욱 커졌다.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간은 고작해야 몇 시간, 며칠을 예상했을 사람들에게 너무도 긴 기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들이 얘기하는 상황의 끝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밖에 있는 그 사람들을 다 죽여야 상황이 끝나는 겁니까?”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 여자는 몇 초간 말이 없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뒤늦게 그런 대답이 돌아왔지만, 사람들은 이미 답변을 알아차린 후였다.


“지금 바깥에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친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요!”


흰 반 반소매 셔츠를 입은 남학생 하나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도 앞다퉈 입을 열어 떠들어댔다.

소란 중 일행을 잃은 사람들이 가장 경악한 듯했고, 헤어지기 전 같이 있던 이가 물리는 걸 본 사람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들 군인들이지? 군인이면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거 아니야! 고작 누구한테 물렸다고 해서 사람을 쏴 죽이겠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던 중년 남자 하나가 단발머리 여자를 향해 달려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곧 여자의 앞을 지키던 앳된 얼굴의 남자에게 잡히고 말았지만, 흔들림 없이 여자를 노려보며 연신 외쳤다.


“살인자들!”


중년 남자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휙 떨쳐내더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철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빠져나간 후 바람에 밀린 철문이 ‘쾅’ 거칠게 닫혔다.


뒤늦게 달려온 김과 박이 철문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한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본 이들은 순순히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와 상대의 수를 헤아리며 눈을 빛냈다.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던 김이 총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까 여기서 나가는 건 막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해도 나가지 않으셨잖습니까.”


김의 태연한 답변에 기가 막혀 살짝 입을 벌린 채로 서 있었다.

내 당황한 표정을 바라보던 김이 살짝 몸을 틀어 길을 터 줬다.

여전히 총을 들고 있는 채였다.

“저도 사람을 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여기서 나갈 수는 있지만···어차피 멀리 가지 못하실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불길한 예감이 들어 되묻는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렸다.

이곳에서 나가는 데 관심 없다는 듯 창가에 서 있던 하윤서가 갑자기 창밖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자 입을 틀어막은 하윤서가 손가락을 들어 창문 아래쪽을 가리켰다.

사람들과 함께 창가로 달려간 나는 창턱을 짚은 채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건물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은 방금 이곳에서 뛰쳐나간 중년 남자였다.

쓰러진 그의 머리 주변에 핏물이 고여 있었다.

점점 넓어지는 피 웅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군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지키기 위해 여기 온 것도 아니고요.”


나는 들어오는 길에 본, 위층 창문에 빠져나와 있던 총구들을 떠올렸다.


감염된 사람들이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한 배치라고 생각했는데.


“살고 싶다면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식량과 식수는 저희가 공수해 오겠습니다. 이 안에만 계신다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안전할 겁니다.”


여자는 우리를 달래듯 마지막 말을 덧붙였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콘크리트로 된 서늘한 창턱을 잡고 멍하니 선 채로, 저 아래 누워 있는 남자의 시체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 철물점 24.09.06 5 0 14쪽
17 비명 24.09.03 7 0 12쪽
16 익명 24.08.29 10 0 13쪽
15 편의점 24.08.27 14 0 15쪽
14 이동 24.08.23 13 0 13쪽
13 살인자 24.08.21 14 0 12쪽
12 노인 24.08.17 15 0 13쪽
» 감금 24.08.14 17 0 12쪽
10 아이 24.08.12 20 0 14쪽
9 지원상사 24.08.07 19 0 13쪽
8 출발 24.08.05 20 0 13쪽
7 복도 24.08.01 24 0 13쪽
6 수상한 인물 24.07.30 23 0 15쪽
5 2층 24.07.26 26 0 16쪽
4 엘리베이터 24.07.23 25 0 15쪽
3 회의실 24.07.21 28 0 18쪽
2 신호불량 24.07.17 31 0 16쪽
1 재난경보음 24.07.15 46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