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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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작품등록일 :
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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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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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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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DUMMY

눈앞에 있는 이들이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그들을 살인자로 인식했다.

차라리 그들이 남자를 쏘아 죽였다면 누군가 달려들기라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자를 쏴 죽인 것은 몇 명이나 될지 모르는 위층의 인물들이었고, 사람들은 정체도 알 수 없고 인원도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쉽게 대항하지 못했다.

사건이 정리된 후 김과 박, 그리고 다른 두 남자가 어디선가 350ml짜리 물병과 편의점 도시락 한 상자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음식을 받아 손에 들고 나서야 내가 어제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허기가 미친 듯이 몰려왔다.

우리 일행이 모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밀어 넣는 것을 본 남자가 우리에게 굶은 시간을 물어보더니, 도시락을 하나씩 더 건네줬다.


음식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발머리 여자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 모두가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불을 꺼버렸다.


여자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지 않고 투박한 핸드폰을 든 채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아마 위층에 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했다.


김과 박도 사람들에게 멀찍이 떨어진 곳에 누웠고, 앳된 얼굴의 남자는 벽에 기대앉아 불침번을 섰다.

내내 어두운 표정이던,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도 김과 박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누웠다.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걸 지키기 위한 불침번은 아니었다.

남자는 문에 등을 돌린 채 잠자리에 든 사람들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간간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바깥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들이 보였으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곧 사방이 조용해졌다.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몸이 풀어지며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슬쩍 일어나 불침번을 서는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저, 그 아이.”


나는 말을 멈추고 멀찍이서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는 젊은 부부를 바라봤다.

김과 박이 아이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가지고 간 후에도 그 부부는 라디에이터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 아이 말인데요. 물린 지 얼마나 됐었을까요?”


아이는 이제까지 본 감염자들과 달리 정말 멀쩡해 보였다.

눈을 뜨고 김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그저 열감기에 걸린 어린아이로만 보였다.

순식간에 악귀처럼 일그러지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남자는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보통 물리고 삼십 분 이내로 완전히 감염이 끝납니다. 애초에 살릴 수 없는 아이였어요.”


상황에 대해 변명하듯 뒷말을 덧붙인 남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내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듯 보여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데, 자리에 누워 있던 김과 눈이 마주쳤다.


빛을 받아 번뜩이던 눈이 순식간에 눈꺼풀 뒤로 모습을 감췄다.

아마 우리 얘기를 들은 듯했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기적이지만 삼십 분 안에 감염이 끝난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나니 불안이 해소된 듯 졸음이 쏟아졌다.

꼬박 이틀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상처에는 피가 튀지 않았거나, 튀었어도 감염이 되지 않은 거겠지.


졸음으로 흐릿해진 머릿속에 난간에 묶여 있던 고현우의 시체, 내게 달려들던 성 대리의 모습, 사람들에게 물어뜯기던 베이지색 셔츠의 여자와 죽은 아이의 모습이 뒤엉켜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나 자신이 그 이상한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꿈을 꿨다.

나는 내 근처에 누워 있던 나와 함께 온 이들을 모두 물어뜯었고, 입가가 온통 피범벅이 된 채로 사무실에서 도망치려다가 김의 총에 머리를 맞았다.

내 머리에서 쏟아지는 핏물 사이로 김의 차가운 표정이 보였다.


그 표정에 대한 기억을 마지막으로 번쩍 눈을 떴다.

공사 중인 사무실에 블라인드나 커튼이 있을 리 없으니, 사무실 안은 온통 눈부신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햇빛으로 인해 사무실 안이 온통 후끈거려 몸에 난 땀이 꿈 때문인지 온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더위에 눈을 뜬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나마 그늘이 진 벽 쪽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와 일행들도 자리를 옮겨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붙어 앉았다.


다들 어제의 일을 생각하듯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내려온 단발머리 여자의 지시에 따라 앳된 얼굴의 남자와 어제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가 다시 물과 간단한 샌드위치를 나눠줬다.


김과 박은 문 옆에서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듯 부산히 움직였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 너머에서 가끔 총소리가 들려왔다.

전쟁터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김 부장은 창밖에서 총성이 들려올 때마다 흠칫 놀라는 듯했다.

연신 창밖을 흘끔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상황이 낫지는 않았다.


모두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신호도 잡히지 않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배터리를 아끼려는 것인지 계속 핸드폰 화면을 껐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말 몇 개월씩이나 걸릴까?”


정 차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끔찍하게 무거웠다.

모든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공기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몇 개월 후에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나갈 수 있을까?

정해지지 않은 기간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바깥에서 다급하게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빠르긴 해도 귀에 익은 박자였다.


어제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가 문으로 걸어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불침번을 선 이후 한 구석에서 자고 있던 앳된 얼굴의 남자가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바라봤다.


“빨리 오셨네요? 아직 근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


의아한 듯 묻던 앳된 얼굴의 남자가 뚝 말을 멈췄다.

박이 김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왼쪽 다리가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 남은 붉은 발자국을 보고서야 박의 바지를 적신 것이 전부 핏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앳된 얼굴의 남자가 서둘러 박의 다리를 살펴보는 동안 단발머리 여자가 김에게 다가갔다.

“물린 거야?”


김을 탓하듯 얼굴을 찌푸린 여자가 물었다.


“아닙니다. 총에 맞았습니다.”


김의 대답에 여자가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어떤 X친놈이 같은 편을 쐈어? 신원 확인했어?”


김이 고개를 저었다.


“같은 편이 아닙니다. 어느 팀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총을 뺏긴 것 같습니다.”


김의 대답을 들은 여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떤 새끼들이 멍청하게 민간인한테 총을 뺏겨?”


무의식적으로 짜증 섞인 말을 뱉어낸 여자가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듯 주변을 둘러봤다.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여자는 욕설을 내뱉더니,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남자가 박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도 여자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인원이 많아? 한 팀만 당한 거면 총을 다 뺏겼대도 두 정밖에 없을 거 아냐.”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습니다. 바리케이드를···.”


여자와 김의 대화 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곧 철문이 완전히 닫히고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상처를 봉합하는 고통을 참아내는 박의 앓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정숙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 또한 막막한 마음이 들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지를 잃은 사람들을 모두 쏴 죽이겠다는 이야기도 쉽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언젠가 이 사람들의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이 믿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안에서 총을 든 사람끼리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면 이 상황이 정말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여자가 돌아오더니 앳된 얼굴의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처치 끝났어?”


“네. 이제 드레싱만 하면 됩니다.”


“끝나면 너는 쟤랑 나갔다 와. 가서 상황 정리하든가, 안 될 것 같으면 인원수라도 파악해 오고. 위에 몇 명 내려왔으니까 같이 가.”


여자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위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은 계단 근처에 서 있는지 사무실 안에서 보이지 않았다.


“제가요?”


앳된 얼굴의 남자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단발머리 여자는 두 사람을 내보낸 후 다시 문을 잠갔다.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린 박이 절뚝이며 벽 근처로 다가가 기대앉았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강예라와 함께 아래쪽을 바라봤다.


김과 남자, 그리고 두 사람과 비슷하게 검은 옷을 차려입은 남자 세 명이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런 이들에게서 총을 빼앗아 대치하고 있는 걸까?


어디쯤 그 사람들이 있을지 가늠하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 여자에게 상황을 따져 물었던 진회색 정장의 노인을 발견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김을 포함한 다섯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다른 사람들의 체념 섞인 빛과 매우 달랐기 때문에,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그 노인을 바라봤다.


그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더니, 잠시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몇 명 불러 모으더니 작은 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느라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어딘지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문 근처에 앉은 박에게 다가갔다.


“좀 괜찮나?”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박이 노인의 걱정 담긴 물음에 씩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네. 고작 다리니까요, 뭐···.”


그러나 박의 이어진 말보다는 노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노인은 거의 온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박의 시야를 가리고 총집에 꽂힌 권총을 단단히 붙잡았다.


노인이 쓰러지면서 무릎으로 총상을 찍는 바람에 고통스러운 소리를 뱉어낸 박이 순간적으로 총을 놓고 노인을 밀쳤다.

노인은 박의 총을 붙잡은 채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어느새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와 안경을 낀 이십 대 남자 하나가 허둥지둥 달려가더니 어제 김이 사용했던 케이블타이로 박의 손을 묶었다.


“이게 무슨 멍청한 짓입니까?”


여자의 고함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창문 쪽에 서 있던 여자에게도 노인과 이야기하던 이들 중 두 사람이 달려든 것이 보였다.

그녀는 창밖으로 보고 있던 탓인지 박보다 조금 반응이 늦었다.

택배 조끼를 입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중년 남자와 삼십 대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의 손에서 총과 위성 전화를 모두 빼앗고 역시 케이블타이로 그 손과 발을 묶었다.


어제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에게도 남자 두 명이 달려들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순순히 두 손을 내밀고 두 사람이 제 손을 묶는 것을 체념한 듯 바라봤다.


노인과 그 일당이 상황을 마친 후에야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았다.

일을 마친 노인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리자 하윤서가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뭐 하신 거예요?”


하윤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위에 총 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들만 잡는다고 돼요? 게다가 저 바로 앞에 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좀 조용히 좀 말하게, 학생.”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하윤서를 꾸짖으며 열린 창문 쪽을 가리켰다.

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란이 들킬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러주듯 한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을 이어갔다.


“이 위에 있어 봐야 몇 명이나 있겠나? 밖에서 봤을 때 위쪽에 보이는 총구는 네 개 정도밖에 없었어.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해봐야 서른여덟 명밖에 안 되는데 이 상황에 여기만 지키자고 한 소대를 쓰기라도 했겠나?”


“그렇지만 위층에 있는 군인들은 어쩔 생각이세요? 어차피 이대로 가면 나가는 길에 총 맞아 죽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냥 저 사람들은 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정숙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풀어주면? 또 저것들이 총구 들이대면서 여기 앉아라 저기에 누워라 하는 거나 듣고 있으란 말이오?”


노인이 눈을 번뜩였다.


“내 살면서 군인이나 그 비슷한 놈들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이득 본 일이 없소.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이 안에서 두려움이나 떨다가 이놈들에게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난 나갈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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