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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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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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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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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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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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DUMMY

약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김이 입간판에 감았던 셔츠를 내밀었다.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다급하게 약을 삼키고 셔츠를 받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이 유리문을 내리치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는지 남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저씨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데 다짜고짜 남의 가게 문을 부수려고 하고 총까지 들고 다녀요? 요즘 밖에서 나던 총소리가 혹시 아저씨들이에요?”


김은 남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편의점의 매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남학생은 김에게 총에 대한 것을 더 캐묻고 싶은 듯 보였으나, 곧 물과 통조림 따위를 쓸어 담고 있는 단발머리 여자와 검은 옷의 남자를 보고 기겁하며 달려갔다.


“저기요, 뭐 하시는 거예요?”


“이 안에 계속 혼자 있을 생각이야? 어차피 우리랑 같이 이동하는 게 나을걸.”


단발머리 여자가 남학생의 앞을 가로막고 딱딱한 투로 답했다.

남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화난 목소리로 퉁명스레 답했다.


“이 안에서도 안전하게 잘만 있었거든요?”


단발머리 여자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듯 어둠이 내려앉은 창문 바깥으로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언제까지 안전할지는 모르지.”


남학생이 얼굴을 찌푸리고 김을 향해 삿대질하며 말했다.


“저 아저씨가 문을 깨부수려고 하기 전까지는 안전했다니까요. 좀비도 다 그냥 지나갔고요.”


“그것들 얘기가 아냐. 봉쇄된 지 며칠이 지났으니까 이제 슬슬 사람들이 식량을 찾아서 돌아다닐 거라는 말이지.”


통로 바닥에 다리를 펴고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박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학생은 경악한 표정으로 박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봉쇄요? 밖에서 사람들이 우릴 구하러 오는 거 아니었어요?”


“이제 그 희망은 슬슬 버리는 게 좋을걸.”


남학생에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생수병을 뜯어 마시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렇게 죽였는데도 끝도 없이 나오니, 차라리 도시를 싹 쓸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 무덤덤한 말에 순간 소름이 끼쳐 남자를 바라보니 단발머리 여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그 눈초리를 받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으나 순순한 표정은 아니었다.

남학생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이 남은 듯했지만, 무거워진 공기를 뚫고 물어볼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단발머리 여자의 허리춤에 꽂힌 권총 근처를 불안하게 훑었다.


한동안 물과 먹을거리를 챙기는 부스럭 소리만이 이어졌다.

다들 부산하게 움직이거나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남학생이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정말 나가는 길이 막혀 있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질문하기 쉬워 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역시 작은 소리였다.


“강남이 봉쇄됐다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어. 도로에 차가 멈춰 있는 걸로 봐서는 길을 막은 건 맞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남학생이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창문 밖을 바라봤다.

편의점 앞의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아저씨는 저 사람들이랑 달라 보이는데, 왜 같이 다니는 거예요?”


“그게···.”


입을 여는 순간 설명을 하기에는 너무도 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미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학생에게 ‘저 사람들이 누굴 죽이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다’고 알려주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도 사무실에 숨어 있다가 저분들이 와서 나온 거야.”


강예라와 이정숙을 가리키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사이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긴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는지 남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도 될 만한 사람들이에요?”


그걸 저 사람들과 같이 다니는 나한테 물어봐도 되는 건가?


그 순진한 물음에 순간 망설이는 마음이 들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곳에 혼자 남아 있는 것보다는 우리와 같이 다니는 편이 안전할 듯했다.


“형은 이름이 뭐예요?”


그 짧은 대화로 친근함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갑작스럽게 바뀐 호칭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짧게 토해낸 웃음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지 모두가 나와 남학생 쪽을 바라봤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도지혁이야. 그냥 지혁 아저씨나 지혁 삼촌이라고 불러. 너 고등학생 아니야? 넌 이름이 뭔데?”


내 말에 남학생도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네, 그럴게요. 전 김지호요. 다른 분들은요?”


김지호의 질문에 강예라와 이정숙이 먼저 이름을 밝혔다.


“물은 미안해. 나도 나중에 상황 괜찮아지면 결제하러 올게.”


강예라가 반쯤 마신 물병을 들어 보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자 남학생이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몇 개 가져가는지 세지도 못하겠는데요, 뭐.”


김과 박은 변함 없이 성씨만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 자뿐인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남학생이 퍽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김과 박이 자신들의 성을 밝힌 이후 물 흐르듯 자연스레 다른 이들의 소개도 이어졌다.

두 사람의 선례를 따르겠다는 것인지 그렇게 약속하고 온 것인지 몰라도 다들 밝힌 내용은 외자 성뿐이었다.


단발머리 여자는 ‘이’, 앳된 얼굴의 남자는 ‘최’, 위층에 있던 검은 옷의 남자는 ‘조’,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는 ‘강’이라고 말했다.

중간중간 고민하던 모양으로 봐서는 이들이 알려준 성씨 역시 진짜일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부를 이름이 생겼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왜 이름을 안 알려주는 건데요?”


김지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묻자 조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나중에 다시 보고 싶지 않거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벽에 기대 눈을 감아 버리는 조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달아나던 남자를 쏴 죽인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모두 끝난 후에 누가 그 살인자를 찾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겠지.


우리가 이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은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성 하나뿐이니까.


해가 완전히 지고 나자 음료 냉장고 안에서 나오는 어슴푸레한 빛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화기애애하게 떠들만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다들 흩어져 잠을 청했다.


조는 홀로 깨어 문 근처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또 불침번을 정한 모양이었다.

바깥의 가로등에서 들어오는 흰빛이 조의 얼굴에 음울해 보이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음료 냉장고의 불이 꺼졌다.

계속해서 들려오던 냉장고의 소음이 뚝 끊기자 불안한 침묵이 자리를 메웠다.

가로등의 불빛도 동시에 사라졌다.


놀라 몸을 일으켜 바깥을 바라봤다.

며칠 동안 새하얗게 불이 켜져 있던 가게와 건물들이 모두 어두컴컴하게 바뀌어있었다.


부스럭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였다.

그녀는 예상한 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다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우리한테 좋은 일은 아니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 멀리 건너편 하늘이 뿌옇게 밝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빛이 아니라 인공적인 조명인 듯했다.

불이 켜져 있었다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어둠 속에서는 흐리나마 분명하게 보이는 불빛이었다.


서초 방향인가?


강남 바로 옆의 도시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일지 그게 아니면 이가 말한 봉쇄선의 조명일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그 빛을 바라보다가 피로가 몰려와 자리에 누웠다.

저 빛이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면 이와 그 일행들이 저 방향으로 가지 않는 데 다른 이유가 있겠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자는 일뿐이었다.

자리에 눕자 어느새 약기운이 사라진 듯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지독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떨쳐내지 못한 탓인지 얕은 잠에 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하지만 악몽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어지러운 꿈을 꾸던 중 갑작스러운 소란에 눈을 떴다.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빛이 편의점 안을 흐리게 밝히고 있었다.


“그만해!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의 날카로운 고함에 뒤이어 박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한다. 잘해.”


소란이 이는 방향을 바라보니 조가 강의 위에 올라타 그 목에 단검을 꽂아 넣으려 하고 있었다.

강이 팔을 들어 조의 손을 막고 있기는 했으나, 조의 무릎에 가슴팍이 눌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듯 힘이 없는 동작이었다.


강의 근처에 있던 강예라와 이가 달려와 조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이정숙이 그들의 옆에서 다툼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몸을 일으킨 이가 강예라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하더니, 워커를 신은 발로 조의 얼굴을 강하게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난 조의 몸이 매대에 부딪히고 바닥을 굴렀다.


달려온 김이 조의 팔을 뒤로 하고 무릎으로 찍어 눌러 제압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겨우 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강이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냈다.

강예라가 그런 강에게 다급하게 물을 건넸다.


“왜 그랬지?”


김이 조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며 물었다.

고통스러운지 살짝 얼굴을 찌푸린 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자식이 그걸 데려왔던 걸 아는데 이 상황에 어떻게 같이 다닙니까? 또 그러면 어쩌려고요?”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얘도 제정신이 아니네.”


박이 툴툴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리 때문에 조를 때리지 못하는 게 껄끄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 죽이는 게 걱정이면 여기 오지 말았어야지.”


조가 박을 바라보며 빈정거리듯 말했다.


“어제 전기가 끊어졌습니다. 위에서 보장한 건 적어도 일주일이었잖아요.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한데 여기서 저 배신자 새끼랑 민간인이나 지키면서 짱박혀 있자고요?”


조의 말에 겁을 먹었는지 김지호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대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냐는 듯한 눈치였다.


이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


“민간인들이 팀원을 죽이는 바람에 대피소를 떠난 건데, 굳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닐 필요도 없죠. 그냥 저희끼리만 어디 숨어 있다가 끝나고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조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이정숙과 강예라, 나와 김지호를 훑었다.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을 뭐 때문에 데리고 있냐는 듯한 눈치였다.


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그의 의견대로 우리를 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 무렵, 이가 입을 열었다.

조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왜 제대로 생각이 박힌 X끼가 하나도 없어···.”


이가 피곤한 표정으로 총을 들어 올려 조를 겨눴다.

모두 기겁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봤으나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쪽에 떨어져 서서 살짝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다툼을 지켜보고 있던 최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와서 이 X끼 좀 묶어.”


최가 매대에서 박스테이프를 집어 오자 김이 옆으로 비켜섰다.

이가 계속 그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인지, 한번 만에 포기한 것인지 몰라도 조는 순순히 손을 뒤로 내밀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팀장님.”


조는 덤덤한 얼굴로 한마디를 덧붙인 후에야 입을 다물었다.

이가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나와 강예라, 이정숙과 김지호는 모두 잔뜩 긴장한 채로 이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조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느새 완전히 날이 밝아 있었다.

한동안 고민에 빠진 듯 말이 없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분히 말했다.


“다들 챙길 만큼 챙기고 나갈 준비 하시죠.”


김지호가 나눠준 편의점 봉투에 물 몇 병과 통조림 따위를 챙기면서도 우리는 연신 이와 그 일행들의 눈치를 살폈다.


팀장이라는 호칭은 확실히 군인들이 쓸만한 호칭이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이들의 정체는 모호해지기만 했다.


카운터 쪽을 확인하던 김지호가 검은 크로스백에 망치와 드라이버를 챙겨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연신 이와 김의 눈치를 살피는 걸로 보아 이 소동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기가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괜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김지호를 바라보는데,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박과 눈이 마주쳤다.


반사적으로 흠칫 놀라니 박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모습으로 보아 김지호의 망치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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