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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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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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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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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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DUMMY

우리 팀이 있는 사무실의 반대편, 다른 부서가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의 문 앞에 김과 박이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에선 젊은 여직원 하나가 우리를 보고 눈을 번들거리며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 번 주먹질할 때마다 유리문 전체가 흔들리며 쿵쿵 무거운 소리를 울렸다.


나는 상처 난 손을 반쯤 무의식적으로 뒤로 숨긴 채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냥 유리 너머로 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차마 사람을 ‘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물었다.

김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장애물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습니다. 총으로 쏘고 나면 작은 충격으로도 완전히 깨질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문 옆의 지문 인식기로 다가가 섰다.


“문이 열리면 바로 옆으로 물러나십시오. 총을 쏠 만한 틈이 벌어지는 대로 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지문 인식기에 손을 올렸다.


[인증되었습니다.]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오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두 사람이 총을 들고 서 있었으므로 몸을 피하려면 복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튄 총알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지문 인식기에 녹색 불빛이 들어오기 무섭게 뒷걸음질 쳐 문에서 멀어졌다.


걱정과 달리 김의 사격 실력은 좋은 편이었다.

하기야 복도에서도 세 번 만에 세 사람을 죽였으니, 이렇게 코앞에서 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열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 서서 총을 맞은 여자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오싹한 광경이었지만 충격에 빠져 시선을 돌릴 정도로 꺼림직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람은 모든 일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내가 여자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던 그녀가 쓰러지자 그 뒤로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뿌옇게 번진 피 보라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내게 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된 바로 그 남자였다.

김과 박이 찾던 바로 그 남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다시 나를 향해 달려왔다.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 있는 얼굴을 보자 공포에 질린 몸이 절로 뒷걸음쳤다.

남자는 아직 벽에 가려져 있어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위치였다.

다급하게 몸을 돌려 달아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왼쪽 안에 하나 더 있어요!”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총성이 한 차례 울렸다.


“이런 씨···.”


신경질적인 박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 뒤를 돌아보다가 발을 헛디뎌 복도 바닥에 세차게 넘어졌다.


돌바닥에 부딪힌 팔꿈치가 심하게 욱신거렸으나 상태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턱을 쩍 벌린 남자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박의 욕설은 아무래도 총알이 빗나간 것에 대한 짜증이었던 모양이다.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백팩을 다급히 열고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느껴졌다.

상대를 죽이겠다거나 총을 쏘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권총을 꺼내기도 전에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고,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간 남자가 복도 벽 전체에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내 몸 위에 쓰러진 남자의 머리통 위로 총알이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처에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몸을 틀어 헛구역질했다.


두어 차례 바닥에 대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구역질을 한 후에야 바닥을 짚은 손에 핏방울이 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상처가 난 손은 권총을 잡기 위해 가방에 넣었던 덕인지 깨끗했다.


얼굴 전체에 무언가 묻어있는 것이 느껴져 옷자락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흰 셔츠에 핏자국이 묻어났다.


“괜찮으십니까?”


멀찍이서 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김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총으로 날 겨누고 있었다.

박은 총을 늘어뜨리고 있었으나 역시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 가방에 들어 있는 총을 봤나?


화들짝 놀라 손을 들어 올리고 움직임을 멈추자 김이 총구를 위로 살짝 까닥였다.


“천천히 일어나십시오.”


그 지시에 따라 내 다리를 깔고 쓰러진 남자의 시체를 옆으로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김은 피가 튄 곳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휙 총을 휘둘러 몸을 돌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손을 들어 올린 채로 머뭇머뭇 몸을 돌리니 뒤에서 철컥-하는 금속음이 들렸다.


등 뒤에서 쏴 죽이려는 건가?


창문 너머로 건너편 빌딩에 비친 햇빛이 흘러들어와 눈을 따갑게 찔렀다.

뜨거운 햇빛 탓인지 상황 탓인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때 둔탁한 발소리가 나더니, 다가온 김이 남자의 시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손은 내리셔도 됩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말에 머뭇머뭇 손을 내리니, 박이 멋쩍게 웃으며 김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혹시 도지혁 씨가 물렸나 확인하신 거예요.”


“저, 계속 물렸는지 확인하는 이유가 혹시···. 물리면 제가 죽지 않아도 저렇게 변하는 겁니까?”


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뜬 박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건 아니죠.”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는데, 박이 다음 말을 덧붙였다.


“물리면 무조건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렇게 되는 거고.”


“네?”


“뭐, 그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박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이 김의 차가운 목소리가 박의 말을 끊었다.


“그만.”


김의 손에 핸드폰과 스마트워치가 들려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핸드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아마 김의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쓰러진 남자의 시체를 확인하니 왼쪽 손목 근처에 시곗줄 모양으로 피부가 눌려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물건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김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백팩을 바라봤다.

반사적으로 백팩을 움켜쥐었으나 분명 수상해 보였을 행동에도 김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불편할 정도로 길어졌을 때, 마침내 김이 입을 열었다.


“회사의 다른 분들을 다른 것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하셨죠. 혹시 그것에 대한 인상착의도 들으셨습니까?”


“네. 평범한 키의 남자였어요. 검은 티셔츠에 머리가 짧은 편이었고···.”


두 사람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생각은 입속으로 삼켜냈다.

이야기를 꺼내서 굳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고, 설령 두 사람이 정말 그 남자와 관계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사실을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그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좋을지, 숨기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김이 질문을 던졌다.


“그건···어디서 마지막으로 목격하셨습니까?”


아무래도 그 남자까지 찾고 나야 18층 수색을 그만둘 모양이었다.

사무실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가 제 발로 걸어 사라질 리는 없으니, 거짓말을 해 봐야 몇 분 안에 들킬 것이 분명했다.

고민을 멈추고 사무실 쪽을 가리켰다.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시죠. 저 안에 누워 있을 겁니다.”


“누워 있다면···.”


“죽었습니다. 이미 죽어 있던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죽었어요.”


내 말에 김이 문을 열어보라는 듯 눈짓으로 사무실 안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주저없이 문을 열었다.


남자의 시체는 사무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곳에, 우리가 두고 온 그대로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시신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한동안 말이 없던 김이 마침내 걸어가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무릎 담요를 들춰 얼굴을 확인했다.

만난 이후로 계속 가벼운 태도를 유지하던 박이 얼굴을 찌푸리며 휙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시신을 말없이 바라보던 김이 손을 뻗어 시신의 눈을 관통해 박힌 효자손을 천천히 뽑았다.


사무실 안이 조용했던 탓에 나무막대가 시체에서 빠져나오며 내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들려왔다.

효자손을 뽑아낸 김이 손을 뻗어 남자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커터칼까지 뽑아낸 후 시신을 뒤집었다.


그 바람에 티셔츠의 소맷자락이 올라가며 시신의 팔뚝이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남자의 어깨 부근에 사람의 이에 물린 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빨 자국을 따라 살이 약간 파인 듯 보였으나 고현우나 성 대리만큼 심한 상처는 아니었다.


김은 상처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무언가를 찾듯 시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결국 찾던 것을 발견하지 못한 듯 남자의 하나 남은 눈을 감기고 몸을 일으킨 김이 다시 무릎 담요로 시신의 얼굴을 덮었다.


“···누가 죽인 겁니까?”


김과 박의 행동으로 보아 두 사람은 죽은 남자와 확실히 친분이 있어 보였다.

고민은 짧았다.


“제가, 죽였습니다.”


한 차례 꿀꺽 침을 삼키며 답하자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대로 나를 지나친 김은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빠져나갔다.


기운 없는 걸음으로 터덜터덜 김의 뒤를 따르던 박이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박이 물었다.


“담요는 누가 덮어준 거예요?”


“그건 강예라 님이···.”


내 대답에 박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가더니, 문 옆에 서서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날 기다렸다.

일을 마친 두 사람은 2층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용실의 유리문은 진회색 미용 가운으로 가려져 있었다.

김이 몇 차례 문을 두드리고 내가 정 차장을 부르고 난 후에야 미용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이 비스듬히 열리며 햇빛을 받은 유리문에 어지러이 찍힌 손자국이 눈에 띄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정 차장이 우리가 들어오기 무섭게 문을 닫았다.

미용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정 차장과 비슷하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양어깨를 껴안은 채로 소파에 앉아 있는 강예라에게 다가가 묻자 그녀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


“지혁 님이 나간 다음에 갑자기 두어 명 정도가 몰려왔거든요. 안이 보여서 그런가 영 떠나지를 않아서···.”


김에게는 김 부장이 설명을 하는 듯했다.

김은 김 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미용 가운을 들추고 밖을 바라봤다.

문 근처에 서 있는 사람이 없는지, 고개를 돌린 김이 손짓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두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해가 지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이정숙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밤에 움직이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설명이 한참이나 부족한 답변이었다.

어쨌거나, 한 차례 습격이 있었던 탓인지 사람들은 이미 한시라도 빨리 미용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이 달아 있었다.


사무실과 달리 따로 챙길만한 짐도 없었기 때문에 준비는 빨랐다.

짐을 챙겨야 할 사람은 미용실 직원인 히피 펌 여자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녀는 작은 슬링백 하나만 찾아 메고 어서 출발하자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어제부터 내내 여기 갇혀 있었다고요. 그냥 얼른 나가고 싶어요.”


박이 문을 열기 전 우리를 바라보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였다.

급한 일이 생기자 오히려 18층에서의 우울감을 약간 벗어낸 듯 보였다.


“여길 나가고 나면 저희가 말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조용히 하세요. 저것들은 여러분 생각보다 소리를 잘 듣거든요?”


그 말을 듣던 내가 박의 손에 들린 총을 흘긋 바라보니 그가 과장된 동작으로 총을 가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쏘는 거라고요. 어쨌든 가까이 오게 두는 것보다 나으니까.”


박의 너스레에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공기가 살짝 풀어졌을 무렵,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김이 마침내 출발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김의 뒤를 따라 일렬로 늘어서서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미용실에서 나온 히피 펌 여자가 열쇠로 문을 잠그자, 그녀와 함께 나온 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를 바라봤다.

황당함이 담긴 박의 눈빛을 받은 여자는 할 말이 많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경고를 기억한 듯 휙 몸을 돌려 김을 쫓아 걸었다.


박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더니, 두 사람을 기다리던 내게 앞서 걸어가라는 듯 휘휘 손을 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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