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사건 발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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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케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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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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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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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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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DUMMY

노크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나는 차마 단발머리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고작 병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고 한 건가?


여자가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알아차린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네요. 그렇지만 그쪽도 병에 걸린 사람들을 봤으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여자의 말에 사람들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도···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고 괜찮은 사람들은 내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꼭 이렇게 사람들은 도시 안에 가둬놓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문 쪽을 가리켰다.


“언제 열어줄 생각입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문밖의 노크 소리는 전혀 조급함 없이 같은 박자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침착한 노크 소리로 문밖에 있는 사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질문을 멈추고 문으로 다가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문이 열렸으나 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살피려는데, 억센 손아귀가 내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이후 상대가 주먹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왼쪽 얼굴이 철문에 세게 처박혀 턱 전체가 욱신거렸다.


내 몸에 밀린 철문이 복도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예라의 다급한 비명이 이어졌다.


“지혁 님!”


무언가 서늘한 금속이 목 뒤를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직접 보이진 않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붙잡아 벽에 처박고 뒷덜미에 총을 겨눈 사람이 사무실 안을 바라보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내 머리를 벽에 누르고 있는 손에서 당황한 듯 멈칫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크 소리에서 짐작한 대로 김의 목소리였다.

나는 차가운 철문에 닿은 고개를 힘겹게 움직여 입을 열었다.


“다들 달아났습니다.”


이번에는 놀라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은 잠시 침묵하다가, 여전히 내 뒤통수를 누른 채로 다시 물었다.


“그럼 도지혁 씨는 왜 여기 남아 계신 겁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매우 중요한 모양이었다.

머리를 누르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 철문에 닿은 뺨이 욱신거렸다.


그때 단발머리 여자의 목소리가 그런 김을 말렸다.


“그만 놔드려. 도지혁 씨가 안 남았으면 그놈들이 우릴 어떻게 하고 갔을지 모르니까.”


김은 순순히 나를 놓고 물러났다.

아마 나를 인질로 삼아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과 협상하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실례했습니다.”


처음 만난 날과 마찬가지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였다.

살짝 고개를 숙인 김이 복도 끝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그곳에 초조한 표정의 앳된 얼굴의 남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의 수신호를 받고 총구를 내리는 남자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손등에 남아 있는 붉은 핏자국이 눈에 띄었다.

김이 다쳐서 난 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찾아갔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총을 들고 싸우고 있었다는 사람들.

김과 앳된 얼굴의 남자가 멀쩡히 돌아온 걸 보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오싹한 마음이 들어 살짝 몸을 떠는데, 앳된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돌려 계단 위를 바라보며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 보였다.

계단 위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걸어 내려왔다.

함께 떠났던 다른 두 남자는 돌아오지 못했는지, 위층에 남아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보고 김이 어떻게 문을 두드린 순간부터 사무실 안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무실에 오기 전에 먼저 위층에 올라갔던 것이다.

위층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했고 노인 일행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시체를 치웠을 것 같지도 않으니, 분명 문을 열자마자 문제가 생긴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단발머리 여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세 사람이 모두 들어온 후 마지막으로 들어온 검은 옷의 남자가 문을 걸어 잠갔다.


단발머리 여자가 김의 일행을 빤히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머지는?”


“···죽었습니다. 생각보다 저항이 거센 데다 안에 그것이 있더군요. 아마 감염된 사람을 지키느라 다른 팀과 실랑이를 벌였던 듯합니다.”


여자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헤집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총은?”


김이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여자의 책상에 내려놓은 뒤 앳된 얼굴의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도 역시 총 하나를 꺼내 여자에게 넘겼다.

김이 드물게 머뭇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회수는 했지만 탄약이 없습니다. 아까 위층도 확인해 봤지만···.”


“알아, 아무것도 없었지? 탄약 가방까지 싹 쓸어가는 것 같더라고.”


여자가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위에 뭐가 남아 있긴 했어?”


“거의 없었습니다. 식량도 대부분 들고 갔더군요.”


김의 말을 듣고 여자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여자는 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본래 위층에 있었을 검은 옷의 남자는 다시 올라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젓고 사무실에 남았다.

사나운 눈으로 나와 강예라, 이정숙을 노려보는 남자의 눈빛이 신경 쓰였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의 물음에 박이 알려고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남자의 물음을 들은 이정숙이 반사적으로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도 어제 소동에 대해 들은 것이 있는지, 눈치 빠르게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남자가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X발, 너냐? 이래서 일한 지 얼마 안 된 새X는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뭘 잘했다고 아가리를 다물고 있어?”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는 양손이 묶여 있어 반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먹을 얻어맞았다.

바닥에 쓰러져 맥없이 주먹세례를 받아내는 남자를 보고 놀란 이정숙이 달려가 그를 말렸다.

놀란 이정숙이 달려가 그를 말렸다.


“아이고, 그만해요.”


앳된 얼굴의 남자도 얼른 달려와 검은 옷의 남자를 말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어 떼어내자 남자는 씩씩거리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흠씬 얻어맞은 남자가 엉망이 된 얼굴로 일어나 앉더니, 이정숙과 앳된 얼굴의 남자를 바라보며 원망스럽다는 듯 내뱉었다.


“그냥 죽이게 내버려두지 그랬습니까?”


“아, 거 되게 징징거리네.”


다친 다리 탓에 움직이지 못하고 벽에 기대앉아 있던 박이 투덜대며 말했다.

그때 위층을 확인한 김과 여자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지 여자의 얼굴이 어두웠다.


“죄송하지만, 저희도 여길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데로요?”


이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떠나는 팀과 함께 가지 않은 이정숙이 난색을 보이며 되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사람들이 물도 탄약도 모두 가져갔습니다. 저희에게 남은 건 이 친구가 남겨 온 탄창 하나뿐이라서, 이것까지 다 쓰기 전에 식량이나 무기가 있는 곳을 차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나간 사람들이 이곳 위치를 알고 있으니 언제 돌아와 공격할지도 모르고요.”


“그걸 가지고 봉쇄선 근처로 가서 지원을 받아오는 건 안 될까요? 탄약만 더 있어도 훨씬 마음이 놓일 텐데요.”


앳된 얼굴의 남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의 무기를 가지고 도시 안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 자식들이 위성전화기를 가져갔어. 연락도 없이 바리케이드 근처로 다가가면 우리가 먼저 벌집이 될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흠칫 놀라 되물었다.


“잠깐, 그러면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은 전부 죽인다는 겁니까? 대화나 경고도 없이?”


여자는 내 반응이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바깥에 걸어 다니는 것들이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 보입니까? 대화하겠다고 가까이 오게 뒀다가 물리는 것보다는 선제 사격이 낫습니다.”


여자의 말을 듣자 노인과 함께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나간 정 차장과 김 부장, 하윤서의 모습도.


“그러면 나갈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따지며 묻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가 차분히 답했다.


“···제가 그걸 알려줬으면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저와 이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서 끌고 갔겠죠.”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뻔히 보이는 사지로 사람들을 내보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예라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굳은 얼굴로 여자를 바라봤다.

그러나 곧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내 등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근처까지 갔다고 해도 전부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사람들도 총을 가져갔으니까 어디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 있겠죠. 정 차장님이랑 과장님이 제일 앞에 서서 갈 만한 분들도 아니니까 저희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그래, 죽는다면 아마 총을 가지고 가장 앞서서 걸어 나간 노인과 그 세 남자 중 한 명이 먼저겠지.

안도감이 드는 한편 내가 아는 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데서 안도감을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 일었다.


“근처에 철물점이 하나 있습니다. 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으로 봐서는 일이 터지던 날 휴무일이었던 걸로 보이니 안에 사람이나 감염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이 여자에게 철물점의 위치를 설명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거리면 갈 만하겠네. 해지기 전에 바로 이동하자고. 괜찮겠어?”


여자의 마지막 질문은 김과 앳된 얼굴의 남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이제 막 바깥에서 돌아온 세 사람은 지친 기색이었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총각도 갈 수 있을까요?”


여자가 흘긋 박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아무래도 어렵긴 하겠지만···한 사람의 손이 급한 상황에서 다리 좀 다쳤다고 두고 갈 수는 없죠.”


“휴, 다행이네요.”


박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더니 싱글거리며 답했다.


“도지혁 씨, 부축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다른 친구들은 손이 좀 바쁠 것 같아서요.”


여자의 말에 둘러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김이 모두 손에 단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김이 고현우를 죽이는 데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느새 김이 들고 있던 권총은 앳된 얼굴의 남자 손에 들려 있었다.


“가방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여자의 부탁에 군말 없이 백팩을 내밀었다.

가방을 연 여자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체 가방에 멀티탭은 왜 이렇게 많이 넣어 다니시는 겁니까?”


문득 사무실 안에서 밧줄로 쓰기 위해 멀티탭을 닥치는 대로 뽑아 가방에 쑤셔 넣은 일이 떠올랐다.

설명하자니 머쓱한 기분이 들어 말을 얼버무렸다.


“쓸 일이 있어서···.”


박이 멀티탭으로 묶여 있던 고현우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갑자기 웃어대는 박이 이상한지 그를 흘끗 바라봤지만, 곧 아무러면 어떠냐는 듯 가방을 뒤집어 멀티탭과 컴퓨터 선을 모두 털어냈다.


그녀는 탄창 없는 권총들을 모두 가방에 쓸어 넣은 후, 구급상자까지 넣은 후 직접 그 가방을 멨다.


박을 일으키기 위해 그 앞으로 다가가니 박이 손을 내밀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내 손과 벽에 의지해 일어선 박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무게를 기댔다.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김 정도로 큰 키는 아니었으나 박 역시 평균을 훨씬 웃도는 키였다.


내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강예라가 나를 돕기 위해 서둘러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까지 묵묵히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있던, 아이를 데려왔던 남자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

그가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박의 나머지 팔을 제 어깨에 걸치게 했다.


박은 남자에게 부축을 받는 것이 살짝 거북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직접 입을 열어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내가 혼자서는 저를 부축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정숙은 아무런 짐도 들지 않고 우리의 뒤를 따랐다.

강예라는 이정숙이 비틀거릴 때 부축하기 위해서인지 이정숙의 옆에 붙어 섰다.


그렇게 우리는 힘겹게 도착한 대피소를 떠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식수 한 병 없이, 총알이 거의 떨어진 권총 한 정을 든 채였다.

문을 나서며 문득 미용실에 두고 온 대걸레가 떠올랐다.


그걸 챙겨왔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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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상한 인물 24.07.30 23 0 15쪽
5 2층 24.07.26 26 0 16쪽
4 엘리베이터 24.07.23 25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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