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사한 직장인이 차원을 숨김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 한성현.
나는 진짜 내가 웹소설 비슷한 세계관에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라마다 탑과 게이트, 각성자가 생겼고, 탑 최고층 갱신을 못 하면 나라가 그대로 ‘펑’ 하는 그런 세계 말이다.
평상시 ‘아~ 세계 멸망하고 헌터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같은 망상을 하긴 했어도 진짜 그렇게 될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탑이 생기면서 생겨난 마석을 통해 전 세계의 문명 수준이 높아졌고, 우리나라는 클리셰대로 개쩌는 각성자들이 땅덩어리 넓이치곤 많았다는 점.
‘이런거만 안 따라가면 좀 억울할 뻔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긴 해.’
덕분에 외국의 귀화 제안을 받은 뒤 한국에 똥을 뿌리고 탈주하는 미친놈들도 오질나게 생기긴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석권하고 그런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좁아터진 국가치고는’ 많다는 것.
여전히 미국, 중국, 일본처럼 돈 있고 인구수 많은 나라들이 더 잘 산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그렇기에 세계는 전부 탑 등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탑 최고점 갱신을 못 하면 몰살, 그러나 갱신하면 강력한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
어디가 이득인지는 아무리 빡대가리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세계는 대 각성자 시대를 맞게 되었다.
‘물론, 그런 각성자들, 셀럽 놈들이 뭐라 떠들던 나는 모른다. 난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드니까.’
나는 저 멀리 천상계들이 뭐라 떠들던 신경 쓰기 힘든 개미 오브 개미.
그 중에서도 멘탈이 터져서 반쯤 좀비 상태인 개미다.
지금의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전 직장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다 때려치고 여기로 온 거지. 으으.’
지금 나는 귀농을 위해 저 멀리 두메산골로 떠나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찾아 시골 길을 걷는 중이다.
부우우웅!
양 옆에 늘어선 논밭을 구경하며 비포장 도로를 걷던 와중 바지춤에 넣어놓은 핸드폰이 진동한다.
슥 보니 전 직장 팀장 놈이다.
‘에라이. 이 인간은 왜 지랄이야.’
보나마나 호구 하나 퇴사한게 아까워서 붙잡으려는 거겠지.
신경질적으로 폰을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 가방속에 던져 넣었다.
이 팀장 놈을 비롯한 내 전 직장이야말로 내가 귀농을 결심하게 만든 원인들이다.
잠깐 그때를 회상해 본다.
“성현 씨. 이번 달은 미안하지만 나 대신 소망 길드 D급 게이트에 가보고 몬스터 분석 보고서 좀 써줘야 할 것 같은데.”
“사장님. 죄송하지만 저번 하와이 게이트 파견도 제가 갔고, 최근 주말에 팀장님 게이트 검사 대타 뛴 대체휴가도 계속 반려당하는 중입니다.”
그 말에, 사장 새끼는 나한테 인상을 팍 써 보였다.
“그럼 인력이 없는데 어쩌겠어. 엉?”
‘이런 시발. 그럼 인력을 더 뽑으시라고요.’
좆소 게이트 관리 하청.
내 전 직장은 그랬다.
꼴에 A급 헌터가 사장이라고 여러 탑급 길드와 어느새 정부 공식 기관이 된 헌터협회에서 게이트 관리 업무를 대신하는 외주를 받고 있다만, 실상은 이랬다.
A급 헌터 사장이란 놈은 있느나 마나 한 채로 아랫놈들한테 다 짬처리 시키고.
그 아래 팀장급 되는 놈들도 전부 말단한테 짬처리를 시킨다.
과연 나랏님놈의 새끼들은 알까.
지네들이 A급 헌터랍시고 일을 맡겨놓은 인간이 지들이 만들어놓은 노동법을 전혀 준수하지 않는 인간말종이라는 것을.
‘대놓고 어기는데 이악물고 모른척 하는 걸 보면 알면서 눈감아 주는 거겠지. 거지같은 인간들아.’
“성현 씨. 아니, 한성현. 이번 달만 지나면 휴가 보내줄게. 이번 달만 부탁한다.”
내 표정이 일그러진 걸 알았는지 황급히 달래보는 사장이지만, 나는 그 날을 기점으로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
그대로 며칠 후 아프다는 걸 핑계로 퇴사했다.
병원 진단서도 무리 없이 뗐다.
그동안 온갖 과로와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된 상태이상을 달고 살았으니까.
A급 헌터님의 위세가 무서워서 직접 과로라는 말은 못 했지만.
더 일했다간 내가 못 버틸 것 같았다.
퇴사 후 몇 달간은 집에 처박혀 있었다.
물론, 상태는 더더욱 나빠졌다.
혹시나 못 버틴 내가 쓰레기는 아닌지, 앞으로 뭐 해먹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날 덮쳤으니까.
‘요즘은 각성자 아니면 취업하기 힘들다던데. 이 나이 먹고 퇴사해서 다시 써주는 데가 있을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더 이상 답이 없을 것 같아 결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시골 땅에 가서 힐링이나 하자.’
그렇게 바로 짐을 싸들고, 시골로 향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렇다.
팀장 놈의 전화를 무시하고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시고 남겨주신 집.
꽤 감명 깊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에.
“여긴 변함이 없구나.”
슬레이트지붕의 집에 잘 다져진 널찍한 마당.
집 옆에서 뒤까지 이어진 동물 사육장.
집 옆에 넓게 조성된 텃밭과 비닐하우스까지.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하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돌봐주시던 향취가 가득 담겨 있다.
비록 지금은 다들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그 추억은 인생의 버팀목이 되는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일단 좀 잘까.’
집 안에 들어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직장 다닐 때는 정말 매일 같은 야근과 외근을 반복하며 집에 누웠던 게 언젠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지. 퇴사하길 잘한 거야. 그래.’
그렇게 눕는 순간.
“으악! 뭐야?”
환한 빛이 나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렇게 빛이 사그라드는 순간, 나는 보았다.
[각성하셨습니다!]
모두가 꿈꿔 마지않던 상태창을.
황급히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적당히 복권 긁는 감상으로.
그리고, 내 복권은 상상 이상으로 대박이 터져 있었다.
[상태창]
- 이름: 한성현
- 레벨: 1
- 직업: 테이머
- 특성: 차원 육성[EX]
- 공용 스킬: 탑 입장
- 직업 스킬: 소환수 소환
- 특수 스킬: 원격 소환
‘EX급?!’
놀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특성을 확인하자 상태창이 추가로 뜬다.
[차원 육성 특성에 따라 적절한 차원을 매칭합니다...]
[매칭 완료. 하위 특성 ‘용신’을 획득합니다.]
[입장 가능한 차원이 추가됩니다.]
어안이 벙벙하다.
‘차원을 키울 수 있다고? 그것도 용신?’
듣기로는 지금까지 유니콘, 불사조 같은 탑티어 전설의 소환수들은 나온 적이 없다.
기억하기로 지금까지 나온 소환수 중 최고는 아마 불 도마뱀 정령인 샐러맨더.
그걸 가진 1세대 헌터는 무려 S급이었다.
그런데 이쪽은 용이다.
‘대박인데?’
가슴이 요동친다.
원랜 적당히 보다 상태창을 접어두고 자려 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황급히 특성창을 살핀다.
[차원 육성]
[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차원의 파편을 소유한다]
- 현재 보유한 차원 개수: 1
- 하위 스킬: 차원 입장
- 하위 특성: 용신
[차원 입장]
- 보유한 차원의 파편에 입장할 수 있는 차원문을 생성한다.
‘멋지다.’
무려 EX급 특성인 차원 육성.
지금은 탑을 오를 생각이 없지만, 이 특성은 생산계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옛날 한국에 엄청난 생산계 각성자가 있었지.’
탑 1세대. 그 중에서도 초기의 탑 등반을 책임졌던 국제적 영웅인 ‘기적의 구원자들’.
그 일원 중에는 한국인도 몇 명 있었고, 그 중에는 연금술사가 있었다.
‘그 사람이 만든 포션을 먹으면 무려 다리가 잘려도 돋아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고 그랬지.’
지금은 무려 한국 기밀을 캐서 들고 미국으로 전향한 천하의 십새끼지만, 그 놈은 거기 가서도 최강의 각성자 취급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혹시 나도?’
물론,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실 굳이 안 그래도 괜찮다.
‘차원 육성이라던데, 귀여운 동물이나 맛 좋은 특산물, 음식 같은것도 있으면 좋겠네.’
그냥 적당히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만 나와도 좋다.
난 이미 너무 지쳤으니까.
많이 벌다 과로사하는 것보단 적당히 벌면서 놀거 다 노는게 최고다.
EX급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차원 입장.’
스킬을 사용하자, 눈 앞에 차원문이 하나 생겼다.
꼭 겜에서 보던거처럼 생긴 반짝이는 마력 포탈이다.
‘그런데 나 없는 사이 누가 내 집에 들어와서 이걸 보면 어떡하지? 어르신들이라던가.’
[차원문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깜짝이야.
아무튼, 그러면 다행이다.
갑작스럽게 뜬 상태창을 닫고, 조심스레 안으로 입장한다.
그리고, 이놈의 상태창은 날 또 놀라게 했다.
[탑 99층 ‘용계’ 차원의 파편에 입장합니다.]
‘99층이라고??’
현재 한국의 탑 등반 층수는 59층.
세계에서 제일로 잘 나가는 미국조차도 62층에 머무르는 게 현 상황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차원의 파편이 99층의 것이라니.
EX급 특성이라 그런지 정말 심상치 않다.
조심스레 차원을 살핀다.
넓은 평원에 작은 동굴 하나.
평원에선 온갖 강렬한 마력광을 내뿜는 풀들이 보였고, 작은 동굴 안에는 알껍질 더미가 하나 있었다.
‘오오, 여기서 소환수를 얻으면 여기서 작업을 시킬 수 있는 건가봐.’
역시, 생산직의 꿈은 열려 있는 것 같다.
알껍질을 구경하다 보니,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뀽?”
껍질 더미에서 작은 용이 고개를 쏙 내밀고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조심스레 안아 들자, 작은 용이 방긋 웃었다.
‘귀, 귀여워!’
큰 눈망울에 크고 통통하고 말랑말랑한 손발.
그야말로 이상적인 아기용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귀여움이다.
“뀨웅~”
나에게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까지.
이게 동물 집사들의 행복인가.
일하느라 바빠 동물을 키우지 않던 나에겐 신선하고 좋은 경험이다.
[귀속된 차원 파편의 주민을 발견했습니다.]
[소환수 목록에 ‘작은 용’이 추가됩니다.]
[호감도가 최대로 고정됩니다.]
바로 뜨는 상태창.
‘세상에. 진짜 용이 내 소환수가 됐잖아.’
이 귀여운 녀석이랑 앞으로 같이 생활할 수 있다니, 마음이 풍족해진다.
혹시 몰라 다른 곳을 더 뒤져 보았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알들이 조금 있을 뿐 다른 용들은 없는 것 같다.
‘하긴. 용들은 원래 개체수가 적지.’
아쉽지만, 나중 되면 더 늘어날 거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대충 다 본 것 같아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 옆에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작은 용이 달라붙어 있다.
‘음...어디서 키워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작은 용이 알아서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베개를 가져다 그 위에 누운다.
‘집에서 같이 키우면 되겠구만.’
“뀨웅~”
즐거운 듯 베개를 붙잡고 노곤한 표정을 짓는 작은 용을 보니 마음이 풍족해진다.
베개를 하나 더 꺼내어 누웠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탑에 들어가야 하나?’
그렇지만, 그건 싫다.
‘난 지금 좀 쉬고 싶어.’
귀농한 이유부터가 쉬고 싶어서다.
탑에 들어가면 매일같이 내 목숨을 노리는 괴물들과 싸워야 하고, 때로는 같은 헌터들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괜히 탑에 가서 피곤한 혈투를 펼치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나는 그저 움직이기도 귀찮고, 그냥 평화롭고 공기좋고 풍경좋은 곳에서 좋은 주민들과 귀여운 동물들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 아까 보니 차원 안에 뭔가 특이한 풀들이 있었지. 용도 있는데 희귀한 영약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베개에 얼굴을 묻는 순간.
번쩍!
또 다시 상태창의 빛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원격 소환’ 스킬로 탑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특수 스킬이 있었지?’
다시 상태창을 열고 스킬을 확인한다.
[원격 소환] (1레벨)
- 입장 가능한 다른 차원 또는 반경 2km 범위에 소환수를 소환할 수 있다.
- 작가의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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