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게임속 꿀빠는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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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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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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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의 발견

DUMMY

"아...”


···


“어떡하지?"


말은 이렇게 내뱉었지만,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이 정리되고 있었다.


게임 속에 던져진 플레이어.

현실이 되어버린 게임.

대략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걸까.


'주인공이라도 된 건가?'


소설에서 자주 나오던 상황이었다.

사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당황할 만한 일이었다.


행복한 일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였다.

가족도, 연인도, 쌓아온 노력도.

그 모든 것이 사라져 절망스러운 일이 될 테지.


하지만 한현은 달랐다.

행복은커녕, 빚만 남은 인생.

가족은커녕, 단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순된 세상을 환영해야 하는 걸까?


한현은 미진한 정신을 잠시 가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대출은 확실히 안 갚아도 되겠네?'


아니다.

지금 대출금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쒸잉~


서늘하고 알싸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진 게 아니었다.

분명 음습하고 찝찝한 이곳의 기운이 한현을 감싸고 있었다.

이 게임 속 세계관은 여느 소설처럼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뻔하디뻔하지만 이 세계는 아포칼립스가 주제인 곳이었다.

길가에 걷는 고양이가 대악마일 수 있으며, 마을의 영주가 허깨비일 수도 있었다.

대도시엔 종말급 질병이 사시사철 창궐했고, 아무 이유 없이 쓰나미급 태풍이 대산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게임 데빌슬레이어는 악마가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오고, 그 악마가 습관적으로 종말을 일으키는 멸망 끝자락에 도달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악마와 종말...


그러고 보면 그 엿 같던 헬조선이 그나마 살만한 동네였다.

그곳에서는 팬데믹 정도에 질병이 퍼진다거나 환경오염이 심해졌다 뿐이지, 종말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엿 같아도 악마를 만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아닌가? 인간 군상에도 악마 같은 놈들이 파다하니···


“하아··· 망할 놈의 세상.”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생엔 해답이 없지만, 게임엔 해답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해답들이 한현의 머릿속에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현이 [데빌슬레이어] 세계관만큼은 닳고 닳은 고인물이라는 것이다.


'근데, 하필 거지냐...'


보통의 판타지 혹은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이계에서 눈을 떴을 때는 주위에 아름다운 메이드가 있어야 했다.


'그게 이 장르에 클리쉐일텐데...'


만약 아름다운 메이드가 없다면 충성스러운 하인은 필수였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주위에 메이드는커녕 하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누더기와 목걸이 그리고 냉랭한 골목길뿐.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클리쉐 비틀긴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음 맡아본 꿉꿉한 냄새.

보도블록이 아닌 돌로 장식된 땅바닥.

이색적인 문양들이 새겨진 골조의 건물.

분명 서울이 아닌 데빌슬레이어임을 확신했다.


'분명, 데슬인데...'


아쉽게도 고인물인 한현도 미 구현된 도시 안쪽 골목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실제 게임에선 이런 후미진 곳까지는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가만 보자..’


혈통의 목걸이로 시작되는 퀘스트의 이름은 [공작가의 비사]이다.

이 퀘스트는 쫓겨난 적통의 후계자가 악마 들린 가문으로 되돌아가 작위를 되찾는 그저 그런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뭐, 쉽네. 아, 아닌가?'


한현은 등에서 서늘한 땀 한줄기를 느꼈다.


이 퀘스트는 분명 타임어택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요구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퀘스트 NPC를 죽이는 트리거가 걸려 있었다.


물론, 시간 내에 악마 들린 가짜 숙부에게서 공작가를 되찾으면 되지만···


운도 지지리도 없었다.

하필 죽음이 확정된 NPC로 빙의라니.


“망할...”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데빌슬레이어를 NPC 콘셉트로 플레이한다고 말이다.


어쨌든 명확한 트리거는 시간 초과이다.

결과는 죽음이고.


그럼 트리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즉, 시간 초과 전에 퀘스트를 깨야 했다.

게임이라면 게임타임으로 1달이다.

플레이타임으로는 하루.


"앗!"


아니다. 정확한 타임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한현이 플레이한 게임이 현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만일 정말 단순히 [데빌슬레이어]였다면, 굳이 퀘스트를 깨지 않고도 방법은 많았다.

스토리 라인을 스킵하도록 유도하거나, 버그를 이용해 죽음 인카운터를 회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해당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고, 버그를 이용한다고 해서 확실히 죽음을 회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이 거지 몸으로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똥 같네. 진짜.'


숨을 조여 왔다.

답답한 마음이 습관적인 공황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극악한 난이도에 재도전 불가 플레이라...’


웃기게도 고인물인 한현에겐 이 또한 하나의 콘셉트 플레이로 느껴졌다.


죽음이 확정된 스토리 + 타임아웃 플레이 + 재도전 불가 + 극악의 전설 난이도


"쓰읍- 후~, 재밌겠는데? 그래. 이건 재밌는 거야."


한현은 하드코어 난이도로 데빌슬레이어를 플레이한다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 뭐 별거 없잖아? 하던 대로 하자.’


몇 번의 작은 다짐에 기분은 개미 똥구멍만큼은 좋아졌다.


리스폰만 된다면, 재도전 불가인 극악의 전설 난이도가 아닐 수도 있었다.

죽어보지 않았기에 리스폰이 되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별다른 이유 없이 생으로 죽는 용기는 없었다.


한현은 빠르게 생각을 전환했다.


‘이건 게임이다. 게임이라고···“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고려되어야 할 것은 캐릭터 콘셉트와 성장 루트였다.


데빌슬레이어는 특히 초반에 콘셉트를 잘 정리해야 했다.

콘셉트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성장 후반에 꿀을 빨기위해서는 더더욱 중요했다.

이는 한현이 수십번도 더 깬 데빌슬레이어에서 깨달은 진리였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자잘한 퀘스트는 스킵하고 최선의 결과만 추려내야 했다.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데빌슬레이어는 태초의 악을 찾아 없애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거창하게 태초의 악이라지만 결국 악마라는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시작이자 끝인 샘이다.

결론적으로 이 거지의 죽음도, 그놈의 악마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죽음의 원인인 악마를 처단한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정석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한현은 최초 엔딩 이후에는 정상적인 플레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온갖 편법과 버그를 이용해 스토리를 무시하며 플레이 해왔다.

고인물이 되어버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버그가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퀘스트가 꼬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물론, 편법 및 버그 플레이를 하다 보면 항상 퀘스트 및 시스템이 꼬이기 마련이었다.

초반 빌드업을 잘못하다 꼬여버린 시스템 때문에 퀘스트 진행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되었기에 퀘스트가 꼬이는 시스템 버그까지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싶었다.


‘그래 버그까지 사용하는 거야.’


퀘스트의 최적의 경의 수가 그려졌다.

매번 하던 일이라 힘들지 않았다.


한현은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결국 관건은 이 거지 캐릭터를 어떤 직업으로, 무슨 스킬 트리를 타서, 어떻게 스토리를 진행하게 할까다.


‘탱커가 좋으려나, 아니면 마법사? 망할, 이 상황에서도 컨셉질이라니.’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도 빠르게 초반 빌드와 진행 루트에 대한 생각을 끝냈다.


이제 남은 건 한가지였다.

이 장르의 마지막 클리쉐 확인이다.


한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허공에 소리쳤다.


“상태창!”


...


병신 같지만 '혹시나'였다.


빌어먹게도 눈앞에 네모난 디스플레이 같은 시스템 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생각나는 대로 단어를 내뱉었다.


“능력창?”

“상태!”

“경험치!”

“시스템!”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돌로 조각된 바닥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과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골목길만 보일 뿐이었다.


'허, 이러면 안 되죠?'


공허한 느낌에 허공을 자연스럽게 쳐다보았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청명하고 푸른 하늘이었다.


찌릿!


강렬한 햇빛이 송곳처럼 눈을 찔렀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 뒷덜미에서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멈추었다.


마치 동영상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살 곁을 닫는 주변의 공기와 사방을 채우는 먼지가 정지됨을 느꼈다.

서서히 손에서부터 발끝까지 마비가 되고 숨 쉬던 맥박도 멈췄다.


하지만, 숨도 멎었지만 이상하게도 답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은 눈앞에 익숙한 화면이 떠 올랐다.


10년간 모니터로 보았던 그 창.


캐릭터 상태창이었다.


"뭐?"


한현은 깜짝 놀라 눈을 뜨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멈춰있던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꽉 막혔던 공기의 흐름이 다시 원활하게 움직였다.

그러고는 멈춘 듯했던 심장도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게 몇 번을 눈을 감았다 떴다.


열 번 정도를 반복했을까.


“허억!”


한현은 숨 막히듯 숨을 내쉬었다.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상태창의 사용 방법을 알게 됐다.

눈을 감고 상태창을 생각하면 게임에서 보던 화면이 나타나는 형식이었다.


다만, 완벽한 상태창은 아니었다.

몇몇 부분이 비어 있었지만, 그래도 분명 상태창이 존재했다.


"다행이다."


한현은 남모를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완전히 죽으란 법은 없었나 보네.’


상태창을 훑어보니, 다행히도 이 몸의 기본 능력치는 표시되어 있었다.

어떤 직업을 해도 무난한 스탯이었다.


그 말은 별도로 특별한 능력치는 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힘올인이나 행운몰빵 등의 극단적인 스탯으로 캐릭터를 키우던 한현에겐 아쉬움을 주었지만 상태창이 있음에 감사했다.


뉴트럴한 스탯을 보니, 스탯 트리는 기본 공략대로 가는 게 가장 위험이 적어 보였다.


“에고, 결국 노멀하게 시작하란 거네..”


생각을 끝낸 한현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바뀐 몸이라서 그런지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곧 어색함보다는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뭔 거지새끼 몸이 왜 이렇게 좋냐?’


한현의 원래 몸은 10년간 폐인 짓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었다.

살도 많이 쪄 거동도 불편했고, 근육이 굳어 이곳저곳이 아팠다.


하지만, 이 거지의 몸은 못 먹었다 뿐이지 군살이 하나도 없는 매끈하고도 근육이 적당히 올라온 나이스한 몸이었다.

이런 몸은 처음이라 한현은 얼떨떨했다.


시끌시끌-


한참을 몸에 정신이 팔려 길을 걷다 골목 어귀를 나올 수 있었다.

눈앞에 게임 화면으로 자주 봐온 도시 광장이 나왔다.


모니터로 보던 것보다 훨씬 번화한 거리였다.

수많은 NPC가 각자 바삐 움직였다.

얼핏 그가 알만한 NPC들도 보였지만, 그가 잘 모르는 NPC들도 간간이 보였다.


꿀꺽-


긴장된 한현은 한참을 멍하니 주변을 살폈다.


다행인지 그런 한현에게 관심을 주는 NPC 아니, 사람은 없었다.


‘와씨, 진짜 같네. 아니 이젠 진짜지?’


멍때림을 그만둔 한현은 그렇게 NPC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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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스폰, 끝없는 의심 24.08.21 38 1 12쪽
7 피의 연회장 24.08.20 37 1 12쪽
6 다시 만난 숙부 24.08.19 38 1 12쪽
5 경험치 그리고 퀘스트 24.08.15 4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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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략과 현실 24.08.13 5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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