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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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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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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등장

DUMMY

[데빌슬레이어]는 참 불친절한 게임이었다.

방대한 분량을 자랑했지만, 세세한 부분은 철저히 감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버려진 거지'의 실제 이름 같은 현실적인 부분은 알 수 없었다.


에드워드 조드 디 오블레앙


주입된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이 몸의 진짜 이름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대지와 아름다운 역사적 대성당을 품고 있는 광활한 영토, 오블레앙의 주인이자,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일곱 제후 중 하나인 디 오블레앙 공작가의 당대 공작의 이름이었다.


현재 한현에게 중요한 건 공식적인 공작 위 계승이었다.

불안한 현 지위를 우선 안정화해야 했다.

멜빈의 행동에서 보았듯, 스스로를 공작이라 여긴다 해도 주변에서는 그를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공작 위는 세습되는 작위였기에,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가 있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문장원에서 다음 대 승계를 거절할 수 없었다.

또한, 한현이 알고 있는 게임 스토리와 이 육체의 기억을 종합해 보면, 현재 한현이 소속된 제국은 국가 시스템이 거의 붕괴한 상태였다.

사실상 주요 귀족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왕처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에, 황제에게 별도로 작위에 대한 승인이나 검토를 받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적법한 후계자인 한현이 공작 위를 계승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영토의 공작 위를 지정하는 황제의 직인은 족보의 혈통서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며, 유명무실한 황제의 재가는 생략하고 작위 계승식만 잘 치르면 관습법에 의해 공작 위는 자연히 한현의 것이 될 것이다.


한현은 이름이 적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바로 문장원으로 보내. 적법한 후계자가 돌아왔다고.”


“네, 알겠습니다.”


한현은 족보 외에도 작위 계승식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정리했다.

문장원에 제출할 서류 외에도, 멜빈의 도움을 받아 다른 문서들도 꼼꼼히 살폈다.


공작위는 단순히 하나의 도시 지배자에 그치지 않는다.

넓은 의미로 공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주인이자, 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살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 상황은 게임과는 조금 달랐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클릭 몇 번으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었다.

무엇 하나 진행하려 해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보좌관이나 신하를 구해 맡기는 게 맞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집사장 멜빈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게임 공략으로 따지자면, 한 지역의 영주가 되는 것은 게임 중후반에나 가능한 메타였다.

지금처럼 게임 극초반, 아니 시작부터 영주로 시작하는 것은 치트나 모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려해야 할 공략과 콘셉트 설정들이 많이 달라졌다.


[데빌슬레이어]에서는 우선순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작 지위를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영지 발전은 나중에 고려하고, 지위 확립을 우선시해야 후반부에 스노우 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빈 종이 같은 거 있나?”


멜빈은 책꽂이에서 공책처럼 엮인 빈 서류철을 가져다주었다.


한현은 깃털 펜으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먼저 그가 알고 있는 게임 스토리를 나열했다.

대략적인 사건들의 시간 순서가 정리되자, 그가 챙겨야 할 이벤트와 아이템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게임 내 조직 간의 세력과 반전들을 다시 정리했다.

한참을 적고 나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추려졌다.


‘그래, 이게 맞지.’


단순히 머리로만 생각하던 것을 직접 글로 작성해 나열해 보니, 무언가 또렷한 방향성과 체계를 잡을 수 있었다.


미리 선결해야 할 일들과 알아야 할 정보들을 정리한 후, 멜빈에게 말했다.


“...에게 집결하라하고, ...에게 내가 좀 보자고 전달...”



이러저러한 일들을 처리하고 서류와 씨름하다 보니, 밝았던 서재에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때, 멜빈이 가져다 놓은 고래기름 등이 다시 서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두둑-


한현은 잔뜩 힘이 들어갔던 몸을 펴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서류 작업에 꽤 긴장했던 모양이다.


웅성- 웅성-


서재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다툼을 벌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졌다.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한현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무슨 일이지?”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현은 작성 중이던 서류철을 소중히 품에 갈무리했다.

서류철은 전공 서적만 한 크기였지만, 품속에 넣기에 충분했다.


이 서류철이 남들에게 공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 내용이 사실상 종말을 예고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서류를 본 사람들은 한현을 묵시록을 예언한 죽음의 예언자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끼익—


서재로 돌아온 멜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뭐? 손님?”


“네.”


“누구지?”


“대성당에서 사람을 보낸 듯합니다.”


한현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게임이라면 선택지로 나올 몇 가지 퀘스트와 이벤트들이 대성당과 관련되어 있었다.

앞으로 그가 세운 계획에서 성당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안 그래도 성당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 게임에는 여러 세력이 등장하지만, 게임 엔딩까지 믿을 만한 세력은 대성당만 한 곳이 없었다.

속은 썩었을지 몰라도, 어쨌든 다가오는 종말에 끝까지 악마에게 저항하는 세력이 바로 대성당이었으니 말이다.


한현은 멜빈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큰 응접실에는 네 명의 사람이 있었고, 응접실 밖 복도에도 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는 듯했다.


응접실의 네 명 중 하나는 주교 혹은 사제로 보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기사인 듯했다.


“어!”


성기사 중 한 명이 한현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였다.

길에서 아사 직전에 그를 구해준 그 여기사.


한현도 당황스러웠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어쨌든 지금의 한현은 공작의 위치에 있으니, 조금은 위엄을 보여야 할 때였다.


서로를 탐색하는 미묘한 시간이 흐른 뒤, 한현은 모르는 척 그들을 바라보았다.


멜빈이 한현의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기 계신 분은 오블레앙의 적법한 주인, 오블레앙 공자이십니다. 예의를 갖춰주시오.”


그제야 주교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말했다.


“여신의 미천한 종, 에밀레 주교입니다.”


한현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에밀레 주교. 무슨 일로 오셨소?”


“공작가에 변고가 있다고 하여 찾아왔습니다.”


“변고라···”


주교와 성기사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작을 참칭하는 무리가 있었소.”


주교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신들도 눈치챘겠지만, 그들은 악마를 추종하는 무리였고, 본 공자가 그들 모두를 정리하였소. 또한, 관련된 인물 모두를 처리할 예정이니, 성당에서는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오. 원한다면 관련 자료와 명단은 성당으로 보내 줄 의향은 있으니, 언제든 말씀하시오.”


“흠···”


주교 입에서 짧고 낮은 한숨이 나왔다.


사실 대성당 역시 공작가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살펴보고 있던 참이었다.

악마와 관련된 일까지는 예상 못했지만, 귀족 집안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판단하고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다만, 며칠이 지나도 공작가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어, 이를 확인하고는 주교와 성기사를 파견한 상황이었다.


“하···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무엇이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여신께서도 이 상황을 살펴보고 계심을 알아주...”


“됐고, 주교. 본 공자는 대성당에 몇 가지 부탁할 일이 있소. 우선···”


말을 중단당한 주교는 다소 기분이 상한 듯했으나, 한현이 이어서 꺼낸 말들을 듣고는 곧 흥분된 표정으로 돌아갔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주교, 나는 허언하는 사람이 아니오. 자세한 이야기는 서면으로 보내주겠소. 성당 측의 뜻은 내 계승식 때 듣겠소.”


주교는 한현의 말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현이 말한 것은 그들의 몇몇 족쇄를 풀어줄 수 있는 엄청난 것들이었다.


“오! 신이시여, 공자님의 계승식을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주교와 성기사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현에게 들은 말을 빠르게 성당에 전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빨리 서두르시오!”


한현은 서재로 돌아와 창가에 서서 주교와 성기사들이 대저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급히 대저택을 떠나야 했지만, 한현을 만났던 여자 성기사는 뭔가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대저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거대하고 우아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대저택만이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비칠 뿐이었다.


#


여덟 마리의 북 대륙 출신 키 큰 백마들이 이끄는 [골든 스테이트 코치]는 오직 공왕만이 탈 수 있는 특별한 마차였다.

이 대마차는 [데빌슬레이어]에서 최고급 탈것으로, 탑승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여관에서 하루를 쉬는 것처럼 회복 효과를 주는 아이템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하얀 깃이 장식된 검은색 페도라를 쓴 마부가 말을 마친 후, [골든 스테이트 코치]를 몰기 시작했다.


[골든 스테이트 코치] 내부는 매우 고급스러운 붉은색 벨벳으로 덮여 있었다.

벨벳의 표면에는 섬세한 금박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로 정교하게 자수 된 패턴이 빛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였다.

사방의 벽면과 바닥에는 푹신한 쿠션이 들어가 있어 마차가 움직일 때마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마차 창문에는 정교한 금선으로 엮인 섬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금박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며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쓱-


한현은 화려하게 금박으로 장식된 창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저택에서 나온 마차는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를 여유롭게 달리고 있었다.

마차의 앞과 뒤에는 도시 경비대 소속의 기마들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어, 그들은 훈련된 동작으로 마차를 신중하게 호위하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경비대는 단정하게 정돈된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말들은 곧게 발굽을 구르며 행진했다.

그들의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위엄이 넘쳤고, 경비대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마차의 행렬을 더욱 장엄하게 만들었다.


도로 옆에 모여 있던 도시 사람들은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열광적인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일부는 기뻐서 작은 깃발을 흔들거나 꽃을 던지며,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장식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고, 거리 전체가 마치 축제의 장처럼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에게도 [골든 스테이트 코치]와 흉갑을 맞춰 입은 경비대는 오랜만에 보는 진풍경이었을 것이다.


공작만이 탈 수 있는 대마차는 그들의 눈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든, 오직 공작만을 위해 마련된 이 화려한 마차는 그들의 평소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고귀한 상징이었다.

대마차의 웅장한 모습과 그에 걸맞은 호위의 장엄함은, 마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귀족이지...”


한현은 창문 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게임 플레이를 하면서 익힌 주요 거점과 퀘스트 포인트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들을 살펴보며, 게임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지역들과 사건들을 떠올리며, 현실과 게임이 교차하는 순간을 실감하고 있었다.


각 거점의 위치와 역할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게임에서 얻은 정보와 현실의 상황을 교차 검토했다.

중앙여관, 시계탑, 잡화점, 마구간, 광장, 시전, 무구 및 방어구 상점, 술집, 카타콤, 마법 아카데미, 연금술 상점, 마법 상점, 용병단, 흥신소, 매음굴, 플레이어용 하우징 집들, 경비초소, 태극루 등, 도시의 주요 장소들을 차례로 점검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현의 시선이 뒤로 돌아가며 멈췄다.


“뭐? 태극루? 저, 저게 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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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맹을 구하는 방법 (1) 24.08.27 30 1 13쪽
10 법과 질서를 위하여 24.08.26 3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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