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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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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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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을 구하는 방법(4)

DUMMY

도시를 좌지우지하던 귀족의 피로 물든 연회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피 한 방울조차 보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이 끈적이고 짙은 붉은 액체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블레앙에 법과 질서가 자리 잡았군.”


말을 뱉고 나서도 이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온몸이 피로 물들어 미약한 열기를 내뿜는 조반니와 경비대를 보며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경비대와 구호기사단이 병풍처럼 둘러싼 한현을 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귀족들은 덜덜 떨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오블레앙의 공작은 이제 본인이다. 따라서, 이 도시의 행정과 법은 모두 본 공작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사실을 부정할 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나서라.”


귀족들은 한현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얼어붙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현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느꼈을 때 멜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멜빈은 눈치를 채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새로운 공작님께 충성을 맹세할 자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멜빈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귀족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피로 얼룩진 바닥에서 예식을 진행하겠다니, 이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척!


“백장미 기사단장, 조반니 푸아테리. 공작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조반니는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한현의 오른손에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원래라면 연회 중에 자연스럽게 충성 서약이 진행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지금, 새로운 권력의 시작을 알릴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한방이 전해지자, 상황은 금세 달라졌다.


눈치 빠른 귀족들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나와 한현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 충성을 맹세합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오직 당신께 충성하겠습니다.”


몇몇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으나, 귀족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권력의 주인에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나서서 충성을 맹세했다.

살아남은 귀족들이 모두 복종을 표하자, 한현은 사람들을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이 도시의 자치권과 기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부정할 자가 있는가?”


감히 그에게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도시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조반니, 당신을 임시 군사 고문으로 임명한다. 병력 징집권과 훈련권을 일임할 테니, 오블레앙의 경비대와 백장미 기사단 그리고 공작군을 재정비하라.”


“충! 법과 질서를 위하여.”


귀족들은 이 순간 더 이상 그들의 꽃놀이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에밀레 주교”


구호기사들 사이에 있던 에밀레 주교가 앞으로 나와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당신을 임시 재무관으로 임명한다. 조세권과 징수권을 맡겨, 악마의 하수인으로 밝혀진 가문의 자산을 몰수하고 오블레앙의 조세를 정상화하라.”


“여신의 뜻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귀족들은 군사 고문과 재무관이 순식간에 결정되는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중 몇몇은 혹시 자신이 지위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으나,


“마지막으로 공석이 된 대법관과 자문관은 본 공작이 직접 살필 것이다.”


그들의 기대는 한현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것으로 이번 연회는 끝이다. 해산하라.”


한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연회장의 문이 열렸고,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귀족들은 서로 앞다투어 서둘러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정말 피곤하군.”


한현은 구호기사단과 에밀레 주교를 먼저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조반니와 경비대도 물러나게 했다.

멜빈에게는 피로 얼룩진 연회장을 정리하라고 지시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대관식과 연회를 잇달아 치르면서 그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씻고 나자,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윽···”


한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피로에 절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에는 운이 따랐다.

게임이 아직 극초반이라, 소환된 악마와 직접적으로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악마가 이미 소환되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였다면, 이렇게 쉽게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악마로 빙이되었다면, 이 연회장은 순식간에 악마 레이드로 변했을 테니.


[데빌슬레이어]는 기본적으로 RPG 게임이지만, 공작 위에 오르면 영지 경영 요소도 포함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공작 위에 오르면 통치권, 사법권, 군사권, 경제권에 대한 4대 고문을 설정할 수 있다.

각각 자문관, 대법관, 군사고문, 재무관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퀘스트를 통해 얻은 동료나 네임드 NPC를 임시로 지정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식으로 임명할 수 있다.


군사고문으로 임명한 조반니는 병력 징집 및 훈련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NPC다.

다만, 다른 영지와의 영지전이나 전쟁이 시작되어 그가 대장군으로 파견될 경우, 전쟁의회에서 명예도에 마이너스를 받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여하튼 전쟁 전까지는 꽤 유용한 캐릭터였다.


에밀레 주교는 네임드 NPC는 아니지만, 대성당에서 나온 일반적인 주교로서 조세권에 강점이 있다.

주교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고, 법적 근거에 따라 징수권을 행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단 임시로 지정한 상태다.

더군다나, 이미 대성당과 징수된 세금의 일부를 교회에 헌금으로 바치는 조건으로 협의한 바 있었기에, 그에 따라 대성당에서 에밀레 주교를 전문가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머지 자문관과 대법관은 한현이 직접 맡기로 했다.

아무나 임명했다가 군주의 위신이나 도시의 행복도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한현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게임에서도 플레이어가 직접 이러한 역할을 일괄 처리할 수 있었다.


#


한현이 공작의 자리에 오른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특별한 퀘스트나 일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심신이 지쳐버린 탓이었다.

일전에 오직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던 탓에, 죽음을 피한 지금은 어느 정도 긴장이 풀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게임에 중독된 백수에서 거지로, 그리고 거지에서 대영지의 공작으로.

이 모든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사실, 죽음이 확정된 퀘스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면, 혹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없었다면, 거지 상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한현은 [데빌슬레이어] 세계의 고인물이었고,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게임이 완전히 현실이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상치(Outlier)들도 눈치 챘기에 더욱 그랬다.


여하튼, 고인물로서 쌓아온 경험과 통찰 덕분에 생존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 [데빌슬레이어]라는 세계는 절대 쉽지 않았다.

단순히 공작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악마에게 뒤통수 맞을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아포칼립스 세계였다.


지금까지 완료한 주요 퀘스트들을 떠올렸다.


[공작가의 비사] “완료”

- [가문을 찬탈한 자] 처리


[잊혀진 성자] “완료”

- [약속된 성자의 단검] 획득


[죽음을 기다리는 자] “완료”

- [죽음을 기다리는 자] 처리


[끝나지 않는 제국 : 선제 후] “완료”

- [오블레앙 공작] 획득

- [대공의 보검] 획득


[여신의 종 : 루멘티아 교단] “완료”

- [대성당 확고한 동맹] 획득

- [여신의 왕홀] 획득


[돌아오지 않는 언니] “완료”

- [신앙의 물음] 획득


[도시에 스며드는 어둠] “완료”

- [타락한 대법관] 처리

- [타락한 자문관] 처리

- 여타 귀족 등등 ... 처리


꽤 많은 퀘스트를 연달아 완료했다.

오블레앙에서 수행할 수 있는 주요 도시의 메인 퀘스트는 거의 다 마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퀘스트마다 크고 작은 연계 퀘스트가 무수히 많았을 테지만, 그중 많은 부분을 놓쳤다.

만약 그 연계 퀘스트들까지 잘 수행했더라면, 더욱 알찬 경험치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는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캐릭터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상당한 양의 경험치가 쌓여 있었다.

다음 공략을 위해서는 이 경험치를 사용해 레벨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레벨업을 해야 체력, 정신력, 힘, 지능, 민첩, 지혜, 운, 카리스마, 손재주 등의 스탯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어떤 식으로 스탯을 분배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직업적으로는 공작이 되었지만, 게임 내에서 흔히 선택하는 마법사나 검사와 같은 직업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임이라면 굳이 신중히 선택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캐릭터를 키워낼 수 있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실에서 한 번도 칼자루를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숙련된 검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마법사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마법사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막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경험과 훈련이 없이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향했다.

며칠째 끙끙대며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서였다.


스르륵-


‘휴, 드디어 끝났다.’


마침내 마지막 부분까지 읽어냈다.

중앙계단 벽면에서 얻은 [붉은금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하고 난해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 상당한 집중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한현이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순히 마법적 지식을 얻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상태창!’


한현은 눈을 감고, 캐릭터 상태창을 떠올렸다.


그가 [붉은금서]를 읽어낸 진짜 이유는 스펠북의 능력이 실제로 활성화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실제 마법적 능력을 부여하는 스펠북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 의문을 풀 순간이 다가왔다.


“으윽!”


짧고 강렬한 두통이 한현의 머리를 찌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떴다!’


캐릭터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캐릭터 스탯만 보이던 창에 새로운 스킬 창이 떠오른 것이다.


그곳에는 한 가지 스킬이 적혀 있었다.


[피의 서약 (Blood Pact)]

- 영구적으로 혈류량이 증가하여 전투 시 HP를 회복합니다.


“야르!”


한현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스킬이 실제로 존재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앞서 직업적 선택을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스탯만 존재하고 스킬이 없었다면, 고인물 플레이어인 한현에게는 큰 제약사항이 될 수 있었다.

특히나, 다른 명확한 이점이 없다면, 여느 소설에서처럼 힘만 집중적으로 올려 '힘숨찐' 캐릭터로 키우는 것이 유일한 정답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스킬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는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눈길은 책상 위에 놓인 [월영단검]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조심스럽게 단검을 손에 쥐고, 다시 상태창을 확인했다.


[월광의 축복]

- 달빛을 흡수하여 체력과 마나를 회복합니다.


[월광의 저주]

- 달빛 아래 입은 피해는 자연치유가 불가능합니다.


단검을 쥐고 있는 순간, 스킬 창에 나타난 이 두 스킬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스펠북뿐만 아니라 아이템 스킬도 획득이 가능하단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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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오블레앙의 어둠 (4) 24.09.10 21 1 13쪽
17 오블레앙의 어둠 (3) 24.09.05 23 1 13쪽
16 오블레앙의 어둠 (2) 24.09.04 28 1 13쪽
15 오블레앙의 어둠 (1) 24.09.03 31 1 13쪽
» 동맹을 구하는 방법(4) 24.09.02 35 1 12쪽
13 동맹을 구하는 방법 (3) 24.08.30 31 1 18쪽
12 동맹을 구하는 방법 (2) 24.08.28 34 1 13쪽
11 동맹을 구하는 방법 (1) 24.08.27 30 1 13쪽
10 법과 질서를 위하여 24.08.26 38 1 13쪽
9 뜻밖에 등장 24.08.22 40 1 13쪽
8 리스폰, 끝없는 의심 24.08.21 39 1 12쪽
7 피의 연회장 24.08.20 37 1 12쪽
6 다시 만난 숙부 24.08.19 38 1 12쪽
5 경험치 그리고 퀘스트 24.08.15 48 1 13쪽
4 단검의 쓰임 24.08.14 49 2 14쪽
3 공략과 현실 24.08.13 54 1 15쪽
2 익숙함의 발견 24.08.12 69 1 12쪽
1 그곳으로 +1 24.08.08 10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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