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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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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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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레앙의 어둠 (3)

DUMMY

"본좌는 부활했지만,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다."


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의 눈빛은 불안과 죄책감으로 어두워졌다.


"이런... 어찌 이런 일이..."


그는 무겁게 속삭였다.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는 얼굴이었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천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가 마주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 죽음에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돌아온 것은 아닌 거지."


천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의 마음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죽음을 이겨낸 교주가 경이롭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도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다만, 죽음을 거스른 대가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천우의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언제나 대가가 따랐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을 천우는 알고 있었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교주가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기억이 사라지든.


"다만, 본좌가 기억하는 건, 너에게 남긴 밀명과 내가 숨겨둔 진전의 위치뿐이다."


천우는 '진전'이라는 말에 순간 눈빛이 번뜩였다.

진전이라 함은 천마신공을 뜻하는 것이었다.


천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직감하자, 그의 마음속에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이 모드의 퀘스트에서 천마신공만큼은 특별한 방법으로만 획득할 수 있었는데, 한현은 그 방법을 알고 있기에 그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시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신 것입니까? 혹시 미천한 자들이 감히 교주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죽여야 할 놈들이 있다면, 제가 지금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아, 아니 됐다."


한현은 자신도 모르게 씁슬한 미소 지으며 옆에 서 있는 흑기사를 힐끗 살폈고, 그 모습을 본 천우는 뭔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 철강시를 보니 굳이 제가 나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천우가 뭔가 오해한 듯했지만, 한현은 굳이 그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본좌가 기억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천우, 너도 알다시피 나의 진전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무공들이 필요하다."


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교주님께서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미천한 종은 본교의 무공뿐만 아니라 소림의 무공까지 여러 무공 절예를 익혀두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명하시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기억이 온전하지 않으시더라도 제가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현이 예상했던 대로, 다양한 무공들을 손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우는 호법장로로서 천마신교가 정파와 사파를 막론하고 훔치거나 강탈한 무공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실제 천우가 알고 있는 무공의 종류는 실로 방대했다.


'뭘 먼저 배울까?'


이 모드는 다양한 무공스킬 모드들을 모아 만든 합본 모드로 유명했다.

유일하게 천마신공만큼은 제작자가 직접 정교하게 설계한 스킬이었다.

따라서 천마신공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초반에는 다른 무공들을 익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이곳이 현실이 되었으니, 어떤 무공을 배우든 모두 익히는 데 제한은 없었다.

그러나 상태창이라는 스킬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스킬을 배울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일단 대저택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봐야겠어.’


극초반 시작 스킬을 무엇으로 삼을지 천천히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천우, 너를 봤으니 이제 본좌는 복귀해야겠다."


"존명."


한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천우도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한현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지?"


천우는 오히려 당황하며 되물었다.


"무엇을 말씀입니까, 교주님?"


"혹시... 본좌를 따라오려고?"


"무슨 말씀입니까? 호법이 교주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현은 천우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이 묘한 긴장을 남긴 채 이어졌다.


“...”


예상치 못했다.

게임에서 NPC 천우는 동료로 지정하지 않으면 따라오는 일이 없었다.


'이게 현실이라서 그런 건가...?'


한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일단 가자."


"존명."


밤이라, 공작가로 복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누군가 한현의 모습을 본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작이 이렇게 밤늦게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천우야."


"존명."


"본좌가 당대 오블레앙 공작이다."


한현이 다짜고짜 사실을 털어놓자, 천우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정보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역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교주님이십니다. 범상치 않은 곳에서 태어나셨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음... 그래서 말이다, 그 호칭부터 좀 바꿔야겠어."


"호칭을... 바꾸신다고요? 어떤 호칭으로 말입니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앞으로는 나를 '공자'라고 불러라."


"공자라니... 교주님께서 모습이 미령해지시더니, 음... 알겠습니다. 교주... 아니, 공자님."


천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순순히 명령을 따랐다.


교주가 생전에 자식처럼 키운 자가 바로 흑마 천우였다.

그런 교주를 마치 어린 소가주처럼 부르라는 명령은 천우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게다가 스토리 상 전대 교주는 여든 살 즈음에 그의 제자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이했었다.

어쩌면,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자신을 '공자'라고 불러달라는 느낌일 듯했다.


"그리고 현재로선 우리가 천마신교의 교도임을 드러내선 안 될 듯하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알다시피 본좌는 아직 강하지 않다."


이 한마디에 천우는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


"아..."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는 적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기에 한현이 아직 강하지 않다는 것은 언제든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교주인 한현이 아직 기억이 온전하지 않았다.

본래의 힘을 되찾기 전까지는, 한현이 천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천우도 잘 알고 있었다.


끼이잉- 쿵!


한현 일행이 태극루를 떠나려 할 때쯤, 뒤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음?’


뒤를 돌아본 한현의 시선에 이색적인 건물, 태극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신이 돌아왔으니, 신을 모시던 신묘는 더는 의미가 없지요. 흐흐흐흐."


옆에서 천우의 광기 어린 웃음이 들려왔다.

한현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그래도 꽤 오랜 시간 거주하던 곳이지 않으냐?"

"괜찮습니다. 이제 하늘 아래 공자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깟 건물쯤이야 대수겠습니까? 흐흐흐흐."


순간 한현은 천우를 데려가는 것이 맞는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운 나이에서야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원념을 찾아낸 노인을 떨쳐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저택으로 향하는 길은 금방이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태극루로 가는 길은 초행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은 이미 익숙해져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저택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천우가 한현의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나와라! 보아하니 흡혈귀 녀석인 듯한데, 감히 본 노부 앞에서 숨바꼭질을!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꼴이니. 교주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를 곧게 편 채, 꼿꼿이 걸어 나오는 멜빈이었다.


"돌아오셨습니까?"


"그만, 천우야. 그는 내 집사다."


"철강시에 흡혈귀라니... 흐흐흐, 역시, 교주 아니, 공자님답습니다."


천우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오해는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반면, 멜빈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놈은 또 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멜빈, 이쪽은 천우다. 먼 동쪽에서 온 내 손님이지."


"손님이라... 어떻게 모실까요?"


"됐다, 흡혈귀 녀석아. 네놈이 어떻게 교주, 아니 공자님을 모셨는지 모르겠으나, 이제부터는 내가 모실 테니 그리 알아둬라."


멜빈은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기울이며 천우를 바라봤지만, 굳이 반박하거나 나서서 설명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일단 공작가의 먼 친척으로 생각해."


"네, 알겠습니다."


한현은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아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오블레앙은 꽤 큰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 외곽을 다녀오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지친 몸을 씻고 얼른 자려 했지만, 천우가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한현은 천우에게 흑기사도 있으니 호법은 앞으로 살 자신의 방을 확인한 후에 하라며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겨우 천우를 떼어내는 수고를 겪었다.


짹- 짹-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며, 레이스가 달린 거대한 침대를 환하게 비췄다.


“으···”


한현은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는 가위눌림 때문이었다.


머리가 먹먹한 상태로 겨우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으헉!”


놀라서 소리친 한현은 그를 바라보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옵니까?”

“기침하셨습니까?”

"..."


멜빈과 천우가 서로를 노려보며 경쟁적으로 한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 옆에서 흑기사마저 조용히 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어젯밤 가위에 눌린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 같았다.


“이 흡혈귀 자식이 감히 교주, 아니 공자님이 침수 드시는데 방해를...”


“공작님을 모시는 건 집사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오.”


“아, 됐고! 다 나가!”


한현은 귀찮은 방해꾼들을 내보낸 후, 세수를 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집무실로 향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방해꾼들 외에 또 다른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장미 기사단의 단장, 비토레였다.


‘다른 사람들은 히로인들이 주위를 둘러싸는데, 왜 내 주변엔 늙다리들만 들끓는 거야’


불길한 생각을 뒤로한 채 한현은 말을 이었다.


“무슨...?”


"충! 피와 명예를 위하여!"


비토레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피와 명예라... 흐흐흐, 역시 교주, 아니 공자님이시군."


옆에서 천우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잠시 저 인물을 데려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후회가 밀려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천우를 날카롭게 노려본 뒤, 비토레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조반니 경이 저를 보냈습니다.”


“조반니?”


한현은 멜빈에게 눈짓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수도원장이 카타콤에 이상이 있다고 조반니 경에게 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붉은 장미 기사단을 보내어 상황을 확인해 보려는 듯합니다.”


멜빈의 설명을 듣고 나니, 한현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죽지 못한 자들의 무덤] 퀘스트가 진행 중인 듯했다.


다만, 조반니가 비토레에게 명령을 내린 것을 보아 서로 교통 정리가 끝난 것 같았다.

원래 백장미기사단과 붉은장미기사단은 라이벌 관계였지만, 이번에는 협력하는 모양이었다.


“현재 붉은장미기사단만으로 충분하겠어?”


“충분합니다, 공작님.”


말은 저렇게 했지만, 별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현재 붉은장미기사단은 한현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럼, 본 공작도 함께 가겠다.”


“그... 그건!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비토레는 당황한 표정으로 멜빈을 쳐다보며, 왜 말리지 않느냐는 듯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멜빈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재 한현의 능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멜빈이었다.

그는 한현이 데리고 있는 흑기사의 엄청난 전력을 알고 있었고, 비록 정확한 능력은 알 수 없지만 어제 들어온 천우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 두 인물이 한현을 보좌하는 상태에서 붉은장미기사단까지 합세한다면, 카타콤 따위야 결코 대수로운 일이 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다 대비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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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블레앙의 어둠 (2) 24.09.04 27 1 13쪽
15 오블레앙의 어둠 (1) 24.09.03 30 1 13쪽
14 동맹을 구하는 방법(4) 24.09.02 34 1 12쪽
13 동맹을 구하는 방법 (3) 24.08.30 30 1 18쪽
12 동맹을 구하는 방법 (2) 24.08.28 34 1 13쪽
11 동맹을 구하는 방법 (1) 24.08.27 30 1 13쪽
10 법과 질서를 위하여 24.08.26 38 1 13쪽
9 뜻밖에 등장 24.08.22 39 1 13쪽
8 리스폰, 끝없는 의심 24.08.21 39 1 12쪽
7 피의 연회장 24.08.20 37 1 12쪽
6 다시 만난 숙부 24.08.19 38 1 12쪽
5 경험치 그리고 퀘스트 24.08.15 47 1 13쪽
4 단검의 쓰임 24.08.14 48 2 14쪽
3 공략과 현실 24.08.13 5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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