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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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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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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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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숙부

DUMMY

끔찍한 벌레의 비명 뒤에는 어김없이 흑기사의 대검이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우, 정말 잔인하군.’


흑기사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벌레들을 차례로 처치해 나갔다.

그 위력에 한현은 혀를 내둘렀다.


흑기사의 모습을 보며 한현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전에 흑기사의 공격을 미리 알고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자신의 현재 능력치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기사의 설정에 따르면 그 갑옷의 무게만 해도 1톤에 다다른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1톤일 리는 없겠지만, 1톤에 가까운 중량감을 가진 흑기사의 움직임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 거대한 중량이 공간을 뭉개며 움직이는 모습은 기괴하게 보일 정도였다.


‘정말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 그래도 테이밍만 잘됐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뭐.’


벌레 크리쳐들이 죽으면서 남긴 아이템들이 많았다.

그중 몇 가지는 꼭 챙겨야 할 중요한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면 거미의 독액이나 개미의 날 선 더듬이 같은 것들로, 나중에 [마녀들의 수다]라는 퀘스트와 연계될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이 아이템들은 바로 챙기지 않으면 오염될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었지만,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어서 아깝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현은 저택을 수복하게 되면, 이 아이템들부터 빠르게 수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흑기사와 한현의 앞에 거대한 석벽이 나타났다.

석벽에는 뿔 달린 악마들이 인간들을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수많은 인간이 악마들에게서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악마들은 그런 인간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흑기사는 잠시 석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한현을 쳐다보았다.

마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석벽 뒤에 저택의 지하 연회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석벽은 [죽음을 기다리는 자] DLC가 적용되면 생성되는 공간이다.


많은 플레이어가 흑기사를 처치한 후 이 통로로 돌아와 벽을 조사했다.

무언가 특별한 기믹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기믹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이 벽은 평범한 벽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많은 플레이어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한현도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이 벽에 뭔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알아낸 방법은 단순히 근성으로 석벽을 무식하게 때려 부수는 것이었다.

특별한 기믹은 없었지만, 공작가 지하 연회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방법을 처음 커뮤니티에 공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게 진짜 공략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특별한 기믹이 없다는 점에 실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원성이 너무 커지자, 결국 개발자 한 명이 SNS에서 이 석벽에 특별한 기믹과 퀘스트를 계획되었다가 개발 기간 때문에 삭제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벽을 때려 부수는 방법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식 공략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뭘 봐, 그냥 부셔.”


한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기사는 거대한 대검을 들어 올려 벽을 내리쳤다.


쿵!


던전 전체에 쿵 하는 진동이 울려 퍼졌고, 마치 땅이 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마, 지하가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 강력한 대검에 맞고도 석벽은 여전히 멀쩡했다.

흑기사는 약간 분노한 듯한 표정으로 거대한 대검을 다시 여러 차례 내리쳤다.


쿵! 쿵! 쿵!


몇 번이나 그렇게 내리쳤을까.


쿵!

쿠궁!


벽이 찍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르릉—


땅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화아-악—


응축된 공기가 무너진 벽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현은 잠시 숨을 멈추고 앞을 응시했다.

그 앞에는 넓은 공동이 펼쳐져 있었다.


···


그 넓은 공동에는 흑기사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한현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


모두가 깔끔하게 예식 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육망성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촛불들이 공동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압축된 공기가 몇몇 촛불을 꺼뜨렸고, 이제 남은 몇 개의 촛불만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블랙 정장을 입고 올백 머리를 한 한 남자가 무너진 벽 쪽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흑기사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 남자를 본 순간, 한현은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차렸다.

스토리상으로는 한현의 가짜 숙부, [가문을 찬탈한 자]였다.


“뭐하냐?”


한현이 숙부를 향해 낮게 물었다.


놈은 흠칫 놀라며 흑기사 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현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네놈이···?”


한현은 놈의 말을 무시한 채, 공동 안쪽을 살폈다.


바닥에는 거대한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고, 석문 쪽으로는 작은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무언가 중요한 의식이 진행 중이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제단 위에는 한 여자가 묶여 있었고, 그녀의 배는 갈라져 온갖 내장이 쏟아져 있었다.

그 장면은 충격적일 만큼 잔혹했다.


원래 데빌슬레이어는 중학생부터 이용가 게임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성인 이용가 등급을 넘어선 잔인함이 보였다.


“미친...”


한현은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이놈들은 저택 지하 공동에 악마를 부르는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제사와 비슷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광경은 한현에게 경악과 분노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물러나시죠. 가주님!”


척! 척! 척!


뒤쪽에 있던 붉은 나비 문양이 수놓아진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강철 메일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현에겐 공격적이었다.

가짜 숙부를 감싸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니 퍽이나 충성스러웠다.


아마도 붉은 나비 기사단인 듯했다.

붉은 나비 기사단은 공작가의 기사단 중 하나였다.

물론 가짜 숙부가 만든 족보 없는 집단이었다.


천천히 한현은 제단 앞으로 걸어 나왔고, 흑기사는 그를 지키는 듯이 한현의 옆에 시립했다.


한현은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어휴~”


사실 원래 계획은···

아니다. 상관없었다.


모두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한현은 [공작가의 비사] 퀘스트를 깨는 3가지 방법 중 마지막 방법을 떠올렸다.

저택 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방법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현은 품속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보아라! 가주의 표식이다! 너희들의 진정한 주인이 여기 있다!”


실제 퀘스트에서 이 대사는 [버려진 거지]가 그의 가신들에게 하던 대사였다.

혹시라도 그들 중 누군가 찬탈자를 몰아내고 자신을 따를 자가 있다면 살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들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비웃음뿐이었다.


“크하하하하하!”


그들의 조롱 섞인 웃음이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

“호호호호”


웃음소리가 동공을 가득 채웠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현을 비웃고 있었다.


“조카야, 그따위 장신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동공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문의 정통한 일원이 아닌, 숙부가 데려온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한현은 상황을 파악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외쳤다.


“아무도 없느냐? 진정한 주인을 모실 사람 말이다!”


쓱-


그때 사람들 무리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각진 턱이 인상적인 노년의 남자였다.

나이는 지긋해 보였으며, 서늘한 낯빛과 꼿꼿하게 선 허리는 그의 강직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인은 한현의 발치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한 가주시어, 미천한 종복이 인사드립니다.”


의외였다. 한현은 자신의 외침이 단지 의미 없는 메아리일 것으로 생각했다.


“집사장! 무슨 짓이오!”


단 한 명도 넘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한 명이 넘어오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왜인지 모르게, 한현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늙은 형은 뒤로 빠져!”


“감사합니다. 주군.”


집사는 쩔뚝거리지 않고 꼿꼿이 서서 한현의 뒤로 물러섰다.


“이놈들! 뭐 하느냐!?”


숙부는 한현과 집사장의 모습에 화가 난 듯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느냐! 저 놈들을 잡아들이지 않고!”


그때, 기사들 중 유독 어려 보이는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 젊은 기사는 이 기회를 통해 가주에게 얼굴을 알리고 한몫 잡아보려는 듯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인생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현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기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한현은 흑기사에게 명령했다.


“치워-”


쿵! 퍽!


흑기사의 대검이 정확하게 젊은 기사를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

두 개로 분리된 기사는 잠시 꿈틀대더니, 이내 부르르 떨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


사람이 갈려나갔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한현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약간 걱정되었지만, 일단 퀘스트를 진행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이... 멍청한 것들!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숙부의 외침에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제야 한두 명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한현은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흑기사에게 말했다.


“정리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기사는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대쉬했다.


쿵!


마치 어른이 아이들을 상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단한 강철 판금갑옷은 플라스틱 바구니처럼 으깨졌고, 그 안에서는 짓이긴 살점과 핏덩이들이 터져 나왔다.


콰직! 푸직!


기사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현은 속이 매슥거림을 느꼈다.

더 이상 이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단 앞에 작은 계단이 보였다.

한현은 천천히 계단으로 가서 걸터앉았다.


그의 눈앞에서는 여전히 검은 형체가 빠르게 움직이며, 여기저기서 혈육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현실로 보니 정말 역겹네.’


흑기사의 대쉬는 세계관 내 최상의 물리 파괴력 등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흑기사의 대쉬는 마주쳐 막기 보다는 회피하거나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피해야 했다.


한현은 종이처럼 가벼운 몸무게 덕에, 흑기사의 대쉬가 접근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풍압만으로도 나뒹굴었지만.

안타깝게도 붉은나비 기사들은 무거운 풀 메일을 입고, 회피보다는 방패 가드나 패딩을 시전 했다.


물론 그들의 기술 또한 나쁘지 않으나.

원체 체급 차가 크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었다.

덤프트럭이 달려오는데 그걸 막아 보겠다고 달려드는 꼴이었다.


‘멍청한 놈들...’


어떻게 보면 그들도 먼 혈육이지만, 어차피 악마에 홀린 자들이었기에 자비를 베풀어도 결과는 좋지 않을 터였다.

사람에게 별다른 정이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한현이라 타인에 대한 이타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의 양심의 가책이 들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은 이미 악마가 등장한 아포칼립스가 되어버렸으니.


“주인님, 혹시 목마르시지 않으십니까?”


아까 내 편으로 섰던 노집사가 물어왔다.

한현은 옆에 서 있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창백한 낯빛과 잿빛 머리카락은 그의 성격과 연륜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말이죠?”


“위스키, 꼬냑, 홍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한현이 말없이 그를 다시 쳐다보자, 집사는 마치 마술처럼 자켓 안쪽에서 주전자와 찻잔을 꺼냈다.


‘허...’


“집사장입니다. 언제든 준비되어 있지요.”


이 할배도 정상은 아닌 듯했다.


‘역시 판타지란 말인가? 메이드 클리셰는 없지만, 힘을 숨긴 집사라니...’


한현은 비록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술이나 차를 마실 정도의 반사회성 장애인은 아니었다.


“나중에 먹죠.”


콰직!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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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맹을 구하는 방법 (2) 24.08.28 33 1 13쪽
11 동맹을 구하는 방법 (1) 24.08.27 30 1 13쪽
10 법과 질서를 위하여 24.08.26 37 1 13쪽
9 뜻밖에 등장 24.08.22 39 1 13쪽
8 리스폰, 끝없는 의심 24.08.21 38 1 12쪽
7 피의 연회장 24.08.20 37 1 12쪽
» 다시 만난 숙부 24.08.19 38 1 12쪽
5 경험치 그리고 퀘스트 24.08.15 47 1 13쪽
4 단검의 쓰임 24.08.14 48 2 14쪽
3 공략과 현실 24.08.13 5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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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곳으로 +1 24.08.08 10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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